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88화 (88/243)

# 88

<테스트>

최치우는 2박 3일의 빠듯한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국내 언론들은 한껏 높아진 최치우의 위상에 대해 며칠째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요아힘 UN 사무총장이 악수를 하며 올림푸스를 언급한 게 단골 소재였다.

종편 프로그램마다 패널들이 나와서 올림푸스는 한국 역사상 해외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기업이 됐다고 말하기 바빴다.

사실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으로 따지면 아직 오성그룹을 이기기 힘들다.

오성전자를 필두로 한 오성그룹의 매출과 인지도, 시가총액은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올림푸스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했다.

올림푸스는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유형의 회사다.

게다가 자신을 꽁꽁 감추는 한국 대기업 오너들과 달리 최치우는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대중들이 올림푸스의 성공기를 살아 있는 신화로 받아들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우아한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 미치도록 발길질을 하는 것처럼 올림푸스와 최치우도 쉴 틈이 없었다.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찬사의 대상이 된 것은 어디까지나 수면 위로 드러난 모습이다.

물밑에서는 직원들 한 명, 한 명이 치열하게 노력하느라 바빴다.

성공에 도취되어 나태해진 직원은 올림푸스에 남기 힘들다.

사실 올림푸스에서는 애초에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지도 않는다.

최치우는 확실한 보상을 해주는 대신, 그만큼의 책임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남아공에서는 본격적으로 첫 번째 광산 개발에 들어섰다.

여의도에 위치한 본사도 관련 업무를 지원하느라 사무실 불이 꺼질 줄 몰랐다.

남아공과 서울의 시차는 7시간.

그렇기에 교대로 돌아가며 남아공 시간에 맞춰 업무를 보는 직원들도 생겼다.

최치우도 절대 한가하지 않았다.

밖에서 보면 멋진 사업을 기획하고, UN의 모임에 참석하는 등 최치우가 마냥 부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최치우는 일당백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그는 매일 국내 업무와 남아공 업무를 동시에 보고받고, 새로운 사업에 대한 계획도 다각도로 검토한다.

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펜타곤의 연구 보고서를 읽으며 프로메테우스의 생산과 판매 현황도 점검하고 있다.

이 정도만 해도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기업의 임원들은 보통 상상하기 힘들 만큼의 업무량을 떠안고 있다.

최치우는 여기에 더해 비밀스러운 일까지 추가로 진행 중이다.

개인 체육관에서 무공과 마법을 수련하는 것은 논외로 치고, 요즘엔 네오메이슨의 그림자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는 에릭 한센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모든 단서를 수집하고 있었다.

한창 젊은 에릭이 일약 경영의 귀재로 떠오르며 세계적인 갑부가 된 배경에는 반드시 네오메이슨이 숨어 있을 것 같았다.

최치우의 추론은 간단했다.

네오메이슨이 에릭 한센이라는 괴물을 만들었고, 괴물이 된 에릭은 다시 네오메이슨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에릭 한센에 대해서는 많은 게 베일에 싸여져 있었다.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투자 감각으로 시드 머니를 모았고, 이후 몇 건의 굵직한 M&A를 주도하며 몸집을 키웠다는 게 알려진 전부다.

최치우는 그의 가족부터 성장 과정, 첫 번째 투자 등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었다.

에릭 한센을 파헤치는 게 네오메이슨의 실체에 접근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당연히 서울의 사무실에서 구글로 검색을 하는 건 시간 낭비다.

최치우는 거액의 대가를 지불하고 최고의 정보 단체와 해커들을 움직였다.

쓰는 돈에 비해서는 주어지는 정보의 양이 터무니없이 적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에릭 한센이란 인간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고 있었다.

우웅- 우웅-

최치우의 스마트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하지만 액정에는 ‘발신 번호 표시 제한’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가죽 소파에 몸을 파묻고 휴식을 취하던 최치우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미스터 초이.”

전화기 너머에서 인도 억양이 잔뜩 묻어나는 영어가 들려왔다.

최치우는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척!

폰을 집어든 채 소파에서 일어난 최치우가 거실을 가로질렀다.

그는 통유리 너머 반짝이는 한강을 내려다보며 영어로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 건?”

“방금 메일로 보냈습니닷. 암호를 알려주려고 전화를 걸었습니닷.”

“메일이 해킹당할 확률은 없겠지?”

“초이. 우리를 해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닷.”

상대는 요상한 인도식 영어를 쓰지만 믿음이 갔다.

그가 바로 세계 최고의 해커들만 가입할 수 있는 비공개 그룹, 어나니머스(Anonymous)의 인도 지부장이기 때문이다.

인도는 매년 수많은 IT 천재들을 배출해 실리콘밸리로 보내고 있다.

그렇기에 해커들의 수준도 상상을 초월한다.

어나니머스 소속이라는 것만 해도 보증수표다.

더구나 인도 지부장이라면 전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해커일 것이다.

“실례를 했군.”

“암호는 비틀즈 2집 앨범 4번 째 수록곡. 10번째 마디의 가사, 그리고 14번째 마디의 멜로디를 숫자로 변환하면 됩니닷.”

상당히 복잡한 방식이지만 최치우는 곧바로 이해했다.

암호를 전달받았으니 메일을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약속한 물건을 받고 싶습니닷.”

“언제든 여의도 사무실로 사람을 보내.”

“내일 오후 3시 33분입니닷.”

“좋아, 기억하지.”

어나니머스 인도 지부장이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프로메테우스였다.

돈으로 어나니머스의 해커들을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돈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살 수 있는 해독제가 아니다.

세계 최고의 해커도 P-1을 탐낼 수밖에 없었다.

최치우는 프로메테우스의 수량을 철저하게 통제한 덕을 톡톡히 봤다.

“에릭, 넌 모르겠지만 우린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폰을 내려놓은 최치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급히 노트북 컴퓨터를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발신자를 파악할 수 없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암호는…….”

비틀즈 2집의 4번째 수록곡은 Don’t bother me다.

최치우는 10번째 마디의 가사를 적었고, 14번째 마디의 멜로디를 음계에 따라 숫자로 바꿨다.

타다닥- 타닥!

암호를 입력하자 메일이 열렸다.

무슨 수를 써도 알 수 없었던 에릭 한센의 가족과 성장 배경, 그리고 초기 투자금의 출처가 한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연결 고리!”

최치우의 눈동자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리 많은 정보는 아니지만, 최치우는 단편적인 사실 속에서 일정한 흐름을 캐치했다.

어나니머스 덕분에 에릭 한센의 실체와 네오메이슨이 움직이는 방식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테스트를 해보면 확실해지겠지.”

미소를 짓는 최치우의 등에서 저릿저릿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총칼을 들지 않았을 뿐, 전쟁을 시작했기에 무서운 투지가 발산됐다.

그는 에릭 한센의 아픈 손가락 하나를 날려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메일에 적힌 정보가 사실이라면, 에릭의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를 뒤흔들 것이다.

그다음 반응을 보면 에릭 한센과 네오메이슨의 진면목이 더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에릭도 만만한 적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최치우보다 먼저 올림푸스를 테스트하며 신경을 긁었다.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남아공에서부터 불이 붙고 있었다.

***

이시환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법인의 본부장을 맡아 훌륭하게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첫 번째 광산 개발이 순조롭게 시작됐고, 두 번째 광산도 현지 광부들과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여기까지가 최근의 보고였다.

그런데 며칠 전, 한국 시간으로 한밤중 급작스러운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이시환은 시차를 고려하지 않고 최치우의 개인 폰으로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남아공 정부가 통제하기 힘든 게릴라 반군이 첫 번째 광산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군과 헤라클래스의 개입으로 광산 전체가 쑥대밭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게릴라 반군을 막는 과정에서 헤라클래스 대원 두 명이 사망했다.

게다가 반군은 집요하게 첫 번째 광산을 노리며 주기적으로 기습을 감행할 태세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최치우는 미묘한 낌새를 느꼈다.

더불어 억누르기 힘들 정도의 분노가 들끓었다.

헤라클래스 대원 두 명이 죽은 것이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휘하에 둔 무력 집단의 멤버 두 명이 허망하게 떠나갔다.

최치우는 굳이 리키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슬퍼하며 용암 같은 분노를 쏟아내고 있을 당사자가 바로 리키다.

“시환이 형, 아니 이시환 본부장. 내가 갈 때까지 직원들 동요하지 않도록 챙기고 있어줘요. 가장 빠른 비행기로 남아공에 갈 테니까.”

“하지만 여기 온다고 해서…….”

“내가 직접 해결할 겁니다.”

최치우의 목소리에서 정제된 분노의 기운이 느껴졌다.

무작정 폭발시키는 분노보다 훨씬 차갑고 강렬한 기운이 전화기를 통해 남아공까지 전달됐다.

이시환은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순간적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왠지 모르지만 최치우가 남아공에 도착하면 엄청난 사고가 터질 것 같았다.

최치우는 전화를 끊고 곧장 스마트폰으로 비행기 티켓을 검색했다.

사망자가 발생했고, 현지 직원들과 광부들은 잔뜩 위축돼 있을 것이다.

잘못하면 남아공 광산 개발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게 진짜 리더십이다.

올림푸스의 대표인 최치우가 가장 위험한 곳에 직접 가서 직원들을 다독여야 한다.

그리고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

물론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지만, 최치우는 어떻게든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그는 전화를 끊을 때 여차하면 혈혈단신으로 남아공의 반군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각오까지 했다.

누가 됐든, 이유가 무엇이든 최치우의 사람을 죽인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다.

“에릭.”

최치우는 불현듯 에릭 한센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UN 기업가 포럼에서 에릭에게, 아니 그 뒤에 있는 네오메이슨에게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에릭이 손을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 사람 두 명의 목숨값은……. 후회의 피눈물로 받겠다.”

혼잣말을 내뱉은 최치우의 음성이 어느 때보다 싸늘하게 들렸다.

***

최치우는 말을 실행으로 옮겼다.

꾸물거리지 않고 남아공행 비행기에 올라탄 것이다.

한국에서의 업무는 백승수와 임동혁에게 일임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남아공 광산이 게릴라 반군들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뉴스가 퍼지기 전에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전화위복이다.

초장부터 위기를 겪은 남아공 현지 직원들이 똘똘 뭉쳐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최치우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운전기사를 통해 짐만 보내고 곧장 현지 사무실을 찾았다.

동요하고 있을 현지 직원들을 한시라도 빨리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대표님!”

최치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직원들은 마치 엄마를 되찾은 어린아이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23살이라는 물리적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올림푸스에서 최치우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그의 등장만으로 두려움에 떨던 남아공 직원들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시환 본부장, 지금 당장 리키 대장 불러요.”

“알겠습니다.”

최치우는 직원들 한 명, 한 명을 다독인 다음 이시환에게 지시를 내렸다.

헤라클래스의 대장인 리키에게 정확한 설명을 들을 필요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시환이 리키와 함께 현지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부, 미안합니다. 내가…….”

리키는 최치우를 보자마자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철철 흘러넘치던 장난기는 완전히 빠졌다.

짧은 기간이지만 24시간 붙어 지내던 대원 두 명을 잃었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리키에게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그는 지금보다 훨씬 강인한 사람이 되어 헤라클래스를 이끌어야 한다.

다른 직원들과 리키를 똑같은 기준으로 대할 수 없다.

“리키.”

“네, 사부.”

“헤라클래스 대원 두 명이 죽었는데 리키는 멀쩡하군요. 물론 최선을 다했겠죠. 그러나 대장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

리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만 최치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똑똑히 깨닫고 있었다.

확실하게 문책을 마친 최치우는 금방 화제를 돌렸다.

지나간 일로 시간을 끌 틈이 없었다.

“이시환 본부장이 먼저 종합적인 상황을 설명해 보세요.”

“네, 대표님. 아프리카의 게릴라 반군은 보통 두 부류로 나뉩니다. 정부와 결사항전을 하는 반군이 있고, 단순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반군이 있습니다. 남아공 영내의 반군들은 대부분 후자입니다. 그렇기에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광산을 공격해도 장기간 개발할 기술과 인력이 없으면 당장 돈이 안 되는데…….”

“그런데 연달아 공격을 감행했고, 다시 습격할 것 같은 태세를 보였다?”

“첫 번째 습격에서 우리 광산 지대의 사진을 찍어갔습니다.”

“이상하군, 확실히.”

최치우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곧이어 최치우가 리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투 양상은 어땠습니까?”

“놈들이 이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무기를 썼습니다, 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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