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86화 (86/243)

# 86

세계정부라 불리는 UN의 본부는 미국 뉴욕에 위치하고 있다.

UN에서는 거의 매일 빠짐없이 각종 회의와 세미나가 열린다.

물론 UN 본부의 모든 회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몇 이벤트의 경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각 국의 정상들이 참석해 연설을 하는 UN 총회가 열리면 뉴욕 시내의 교통을 통제하기도 한다.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등 국제사회의 향방을 결정하는 굵직한 결의안도 UN 안보리에서 발표된다.

많은 사람들이 UN을 이빨 빠진 호랑이로 표현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강대국들도 UN 총회나 안보리에서 결의된 사항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UN에게 스스로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실권은 없다.

그러나 UN은 합당한 명분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누구도 UN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대표로서 그런 UN의 공식적인 초청을 받았다.

UN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기업가 포럼을 개최한다.

세계를 이끄는 기업가 50인을 초청해 연설과 세미나, 상호 교류를 주선하는 행사다.

매번 초청 리스트가 바뀌지만 무려 UN이 선정하는 50인 안에 드는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다.

국내 기업의 경우 오성그룹과 현기자동차의 총수들이 UN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오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오성전자는 350조 원, 현기자동차는 30조 원이다.

그런데 3조 원 규모의 시가총액을 지닌 올림푸스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UN은 시가총액이나 자본, 매출만큼 혁신성을 높이 평가한다.

기업의 사회 공헌과 지속가능한 성장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그렇기에 UN도 올림푸스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남아공의 난민 수용소에 P-2와 깨끗한 식수를 공급한 게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남아공에서 돌아온 최치우는 뉴욕으로 날아갈 준비를 했다.

언론에서도 최치우가 UN 기업가 포럼에 초청받은 뉴스를 비중 있게 다뤘다.

특히 한국은 해외에서 인정받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강하다.

23살의 젊은 사업가 최치우는 시작부터 펜타곤의 인정을 받았다.

이제는 UN의 공식 초청까지 받는 사람이 됐으니 국내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게 당연했다.

최치우가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도 제법 널리 알려졌고,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도 기자들에 의해 소문이 났다.

기업 CEO가 탑 연예인들이나 누리는 인기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승승장구 성공가도와 뜨거운 관심, 23살 청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성공이 최치우의 손에 들어왔다.

만약 그가 정말 23살에 불과했다면, 이미 거만해질 대로 거만해져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을지 모른다.

성공은 마약과 같아서 잘못하면 사람을 망가트린다.

수많은 영재와 천재들이 일찍 꽃을 피우고 금방 시들었다.

하지만 최치우는 달랐다.

7번의 환생을 거치며 쌓은 극단의 경험은 그의 영혼을 누구보다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최치우는 UN에서 선정한 50인의 기업가에 포함됐지만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는 남아공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내용을 토대로 지원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아프리카 법인과 헤라클래스에 직원부터 시설, 자금까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는 것이다.

뉴욕에서 열릴 기업가 포럼도 중요하지만, 이제 막 아프리카에 씨앗을 뿌린 올림푸스의 업무가 훨씬 더 중요하다.

최치우는 본질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곧이어 최치우가 대답을 하지도 않았는데 문이 열렸다.

이런 식으로 대표실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올림푸스에서 임동혁밖에 없다.

최치우는 모니터에서 고개를 돌렸다.

“임 이사님. 그렇게 바로 문을 열거면 노크는 왜 하는 겁니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임동혁이 씨익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최치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임동혁 맞은편에 털썩 앉은 최치우가 입을 열었다.

“한창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중요한 일 아니면 용건만 간단히 부탁하죠.”

“뉴욕 일정 말입니다. 누구랑 가실 겁니까?”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세계의 수도인 뉴욕에서! 세계정부인 UN의 주요 행사에 초청받은 겁니다. 이보다 중요한 일이 몇 개나 되겠습니까?”

임동혁은 UN 기업가 포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초청을 받은 사람은 올림푸스의 CEO 최치우 한 명이다.

하지만 최치우가 지목하면 몇 명이든 동행을 시킬 수 있다.

기업가 50인만 참석하는 비공개 만찬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행사는 열려 있다.

임동혁은 뉴욕에 같이 가고 싶은 티를 노골적으로 내고 있었다.

“우리 영감도 아직 초청을 못 받아봤는데… 이참에 내가 같이 가면 어깨 쫙 펴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영 그룹의 회장도 UN 기업가 포럼에 초청받은 적이 업다.

매출이나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재계 10위 안에 드는 한영 그룹이 올림푸스를 한참 앞선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기업은 매출에 비해 세계적으로 저평가를 받는다.

혁신성이나 사회 기여 부분에서 뒤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이다.

임동혁은 최치우의 동행 자격으로라도 UN 기업가 포럼에 참석해 이름을 빛내고 싶어 했다.

그만큼 기업인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자리인 것이다.

“조용히 혼자 다녀올 계획입니다. 수행할 직원도 필요 없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아프리카 법인이 출범하며 다들 무척 바빠졌는데 직원들 인력을 낭비할 수 없죠.”

“아니, 그래도 나는…….”

“임 이사님도 이시환 본부장을 서포트하는 업무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일이 널널해서 그러는 거면 다른 업무 더 드릴 수 있습니다.”

최치우는 단호했다.

임동혁을 데려가지 않을 게 확실해 보였다.

그가 한번 마음을 먹으면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이제 최치우를 알 만큼 아는 임동혁은 헛된 기대를 품지 않았다.

대신 괜히 사나워진 표정으로 이유를 물었다.

“왜 굳이 혼자 가려는 겁니까?”

“거기서 우린 피라미니까. 남의 잔치에 손님이 기분 내는 것도 웃긴 노릇입니다.”

“그게 무슨…….”

“세계 5대기업으로 꼽히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그리고 아시아 3대기업인 알리바바, 텐센트, 우리나라의 오성그룹. 이렇게 8개 회사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4,600조입니다. 올림푸스는? 이제 3조 원이죠.”

막상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올림푸스의 시가총액을 비교하니 차이가 확 느껴졌다.

임동혁은 심각해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최치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뒤늦게 알 것 같았다.

“물론 우리는 겨우 2년 만에 시총 30억 달러를 이뤄냈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말한 것처럼 올림푸스는 세상을 바꾸는 기업이 될 겁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직은!”

오랜만에 최치우의 언성이 높아졌다.

잠깐의 침묵이 최치우와 임동혁 사이를 감쌌다.

흥분을 가라앉힌 최치우는 냉정함이 깃든 눈빛으로 임동혁을 쳐다봤다.

“올림푸스는 이제 막 천상계에 입장했습니다. 이제부터 천외천의 괴물들을 밀어내고 우리 자리를 확고히 만들어야죠. 이번 UN 기업가 포럼에서는 하늘 위의 괴물들과 제대로 첫 인사를 나누는 겁니다.”

최치우는 UN이 선정한 50인의 CEO가 된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를 쥐락펴락 움직이는 진짜 괴물들 입장에선 루키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맨해튼의 파티에서 에릭 한센을 만났을 때보다는 많이 성장했다.

정식으로 천외천의 세계에 입장할 정도는 된 것이다.

아직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이르다.

최치우는 임동혁이 방심하지 않도록, 올림푸스가 거둔 성공에 도취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다음에… 우리가 UN 기업가 포럼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주인공으로 초대받을 때, 이사님은 내 옆에 설 겁니다.”

최치우는 채찍만 주지 않았다.

당근도 함께 선사했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임동혁은 닭살이 돋는 걸 느꼈다.

저절로 그림이 그러졌다.

온 세계가 주목하는 UN 기업가 포럼에서 최치우와 함께 당당히 입장하는 그림이.

그때는 올림푸스가 50인 중 말석이 아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기업이 돼 있을 것이다.

최치우를 세계 최고로 만들고, 그의 든든한 날개로 우뚝 서면 평생 구박만 해온 아버지로부터 100%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당당하게 한영 그룹의 새로운 회장이 되는 것이다.

외동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력으로 왕관을 쟁취한 재벌 2세.

이제껏 대한민국에서 어떤 재벌 2세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임동혁은 아드레날린이 짜릿하게 분비되는 걸 체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대표님 뜻을 따라 남아공 업무를 지원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짧고 굵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최치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남아공의 사업 현황을 체크하려는 것이다.

임동혁도 말없이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대표실 밖으로 나갔다.

최치우는 그의 조바심과 흥분을 억누르는 대신 더 밝은 미래를 약속했다.

대기업의 후계자마저 탁월하게 다스리는 리더십이었다.

“뉴욕이라, 뉴욕.”

그는 조용해진 대표실에서 혼잣말을 읊조렸다.

아마 에릭 한센도 50인의 CEO에 선정됐을 것 같았다.

부디 그러기를 바랐다.

적어도 맨해튼의 파티에서 만났을 때와는 많은 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재미는 있겠군.”

최치우가 피식하고 가볍게 웃었다.

임동혁에게 말한 것처럼 올림푸스는 이제 막 천상계에 진입한 루키다.

그렇지만 멋모르는 루키가 쟁쟁한 거성들을 다 때려잡는 게 역사의 재미다.

잠시 브레이크를 가진 최치우는 다시 원래의 업무에 집중했다.

다음 주에 뉴욕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UN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퍼스트 클래스 좌석에 비스듬히 누워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남아공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연락처를 건네준 스튜어디스를 먼저 만나게 될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치열하게 낮을 보내는 만큼, 뜨거운 밤을 즐길 자격은 충분하다.

최치우는 일을 하건 여자를 만나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며 젊음을 불태우고 있었다.

***

뉴욕을 대표하는 JFK 국제공항에서부터 제법 많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주요 국가의 대통령과 총리들이 참석하는 UN 총회는 아니지만, 기업가 포럼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일정에 맞춰 JFK 공항에 도착한 기업 오너들의 사진을 찍기 바빴다.

포럼이 열리기 전날 뉴욕에 도착한 최치우도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피해갈 수 없었다.

“치우 초이!”

“올림푸스-!”

공항 여기저기에서 최치우와 올림푸스를 부르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최근 IS의 테러 행위가 다소 잠잠해지면서 공항 경찰들도 기자들을 심하게 막아서진 않았다.

수행원이나 보디가드 없이 혼자 뉴욕에 도착한 최치우는 천천히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또한 최치우가 의도한 그대로였다.

그가 원했다면 얼마든지 비공개로 입국할 수 있었다.

경호원을 대동해서 기자단을 밀어버리고 전진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최치우는 수행원 없이 혼자 뉴욕까지 온 모습을 언론에 노출하고 싶었다.

젊고 남다른 CEO로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제 그는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국제적인 셀렙이다.

공항에서 사진에 찍히는 것도 치밀한 계산 아래 유도하는 게 당연했다.

맨해튼 파티에서 에릭 한센을 만난 이후 다시 뉴욕에 발을 딛은 최치우는 자신의 게임을 시작했다.

최치우는 분명 뉴욕에서 에릭과 재회할 거라는 강렬한 예감을 받았다.

‘이번엔 가볍게 잽 정도로 한 방 먹여줄게, 에릭.’

최치우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JFK 공항을 빠져나왔다.

뉴욕에서의 2박 3일이 짧지만 꽤나 강렬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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