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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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래스 대원들은 정말 이래도 되는지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에게 똑같은 권총 한 정과 여분의 탄창이 주어졌다.
공포탄으로 장전을 했지만, 실탄이 아니라고 해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방탄조끼를 입었어도 공포탄에 맞으면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잘못하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다.
그런데 최치우는 방탄조끼도 입지 않았다.
헤라클래스의 기지에 왔던 복장 그대로 권총 하나만 들었을 뿐이다.
반면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원래부터 훈련복 아래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 30 대 1의 모의 전투를 하는 건 시간 낭비다.
더군다나 지형지물도 없는 훈련장에서 무슨 수로 1명이 30명을 상대한단 말인가.
모두가 의아해하며 최치우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대원들이 괴물로 인정한 리더인 리키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줄곧 심각한 얼굴로 30명이 입은 방탄조끼를 일일이 확인했다.
“아직 내 말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아무튼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안 그럼 크게 다칠 수도 있어.”
영어로 주의를 주는 리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가 이처럼 진지하게 말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사방이 뻥 뚫린 사격 훈련장에 도열한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현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신들이 진짜 최치우 한 명을 상대해야 하는 것인지.
리키는 왜 경고를 하는지, 당최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어쨌거나 주어진 상황은 변함없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반쯤 미친 것 같은 스폰서 최치우를 얼른 쓰러트려야 한다.
방탄조끼 없이 공포탄을 맞으면 제법 크게 다치겠지만, 그가 자초한 일이다.
슬슬 약이 오른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누가 먼저 최치우를 맞힐지 눈빛으로 조율하고 있었다.
그때 최치우가 입을 열었다.
“한 발 맞으면 빠지는 걸로. 룰은 아주 간단하죠?”
“…….”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느끼는 불쾌함이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최치우의 장난이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스폰서라 해도 훈련이 시작되면 봐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30명 중에서 유일한 동양인 타미르가 입을 열었다.
그는 몽골 출신으로 워낙 똑똑해서 리키가 특별히 아끼는 대원이다.
리키의 강함을 인지하고 도전하지 않은 단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타미르까지 화를 참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철부지 부자 스폰서가 헤라클래스를 농락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야 좀 해볼 만하군.’
최치우는 30명의 대원들이 내뿜은 기세를 유유히 받아들였다.
은근한 도발로 화를 나게 만드니 다들 확연히 사나워졌다.
우득- 우드득-
말없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위압감을 조성하는 대원도 있었다.
최치우는 30명 중에서 요주의 인물 몇 명을 눈여겨봤다.
타미르를 비롯해 5명 정도는 무림이나 아슬란 대륙, 헌터 월드에서 태어났다면 걸출한 영웅이 됐을 것 같았다.
‘한 수 가르쳐 주지. 너희 모두 내 사람들이니까.’
최치우는 처음 만난 헤라클래스 대원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헤라클래스는 그가 현대에 환생해서 최초로 구성한 무력 조직이다.
그동안 최치우는 무력이 위주가 되는 차원에서만 살아왔었다.
그래서인지 현대에서도 드디어 무장 단체를 만들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 개별 전투 능력을 키우라는 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이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시간이다.
순식간에 최치우의 기운이 바뀌었다.
단전 깊이 잠들어 있던 내공을 끌어올리고, 몸을 열어 자연의 마나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거대한 기파가 최치우의 등 뒤에서 넘실거렸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시작하죠.”
시작이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지축이 울렸다.
쿠구구구궁-
갑자기 날벼락이 치듯 지진이 일어났다.
아무런 방비를 못 하고 있던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땅이 꽤나 거세게 흔들렸기 때문에 10명 가까운 숫자가 넘어지고 말았다.
탕! 탕! 탕!
최치우는 넘어진 사람들에게 총을 쐈다.
오직 혼자만 지진의 영향에서부터 자유로웠다.
아니, 최치우가 서 있는 곳의 땅은 멀쩡했다.
헤라클래스 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의 땅만 흔들리며 일그러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마법은 불가능의 영역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이다.
“읍!”
“크으…….”
넘어지자마자 공포탄에 맞은 대원들이 신음을 흘렸다.
방탄조끼를 입고 있어도 통증이 만만치 않았다.
“왓 더 헬!”
넘어지지 않은 대원들 몇은 욕을 내뱉었다.
당장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게임은 시작됐고, 멍청하게 서서 당할 순 없었다.
탕- 타탕-
정신을 차린 몇 명이 최치우를 향해 총을 쐈다.
그러나 최치우는 이미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그는 6서클의 마법, 미니 퀘이크(Mini Quake)로 지축을 흔든 다음 땅을 박찼다.
슈우우우!
한 마리 새처럼 공중에 떠오른 최치우는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당!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똑같은 권총이다.
하지만 마치 기관총처럼 연달아 불이 뿜어져 나왔다.
퍼퍼퍽!
사격은 깔끔했다.
아직 지진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원들의 가슴에 총알이 박혔다.
방탄조끼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공포탄이 아니었다면 모두 즉사했을 부위다.
척-
허공에서 사격을 마치고 한 바퀴 돈 최치우가 여유롭게 착지했다.
탕!
그때 최치우의 발밑으로 총알이 튀었다.
조금만 정확했다면 최치우를 맞췄을 지도 모른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총을 쏜 상대를 확인했다.
몽골에서 온 타미르가 겨우 균형을 회복한 채 최치우를 겨누고 있었다.
‘역시 물건이야.’
실전 같은 훈련을 시작하고 최치우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10명이 넘는 대원들에게 공포탄을 맞췄다.
리키에게 훈련을 제대로 받은 것인지, 타미르를 비롯해 다른 대원들은 상황을 파악하며 냉정을 찾고 있었다.
촤아아악-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은 대원들이 넓게 흩어졌다.
모여 있다간 또 땅이 흔들리면 꼼짝 없이 당하게 된다.
다들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몸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최치우는 산개하는 대원들의 동작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좌우로 흩어진 대원들이 최치우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사실 여기서 게임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다수의 대원들이 넓게 펼쳐진 상태에서 한 점을 집중사격하면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짧은 시간 안에 최선의 판단을 내린 셈이다.
문제는 단 하나, 그들의 상대가 최치우라는 것뿐이었다.
타악!
최치우는 또 다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점프력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헤라클래스 대원들도 당황하지 않고 총구를 옮겼다.
공중에 떠오른 최치우를 조준한 것이다.
20여 개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 나오기 직전, 예고 없이 주위가 어두워졌다.
스으으윽-
어둠의 장막이 대원들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이 20명을 덮쳤다.
갑자기 시야를 잃게 되면 극심한 공포와 혼돈이 찾아온다.
시각을 잃어버리면 몸의 균형도 무너지게 마련이다.
탕! 타앙-!
몇 명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조준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애꿎은 공포탄이 허공을 갈랐고, 최치우는 이미 반대편 땅에 내려섰다.
그는 시야를 잃고 허둥거리는 대원들을 쳐다봤다.
6서클의 강력한 마법인 블라인드(blind)는 베테랑 용병들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었다.
탕! 탕! 탕!
탄창을 바꾼 최치우가 모두의 가슴팍에 공포탄을 꽂아 넣었다.
“으으으…….”
“미친…….”
30명 모두 골고루 공포탄 한 발씩을 맞고 나서야 어둠이 걷혔다.
아프리카의 태양은 여전히 강렬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다만 헤라클래스 대원들의 눈을 가렸던 마나가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30명의 대원들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말을 잃었다.
갑자기 지진이 나고, 최치우는 공중을 빵빵 날아다니고, 설상가상 시력까지 잃는 경험을 했다.
30명이나 되는 사람이 허무하게도 단 한 사람에게 당한 것이다.
현실이 아닌 악몽을 꾼 것 같았다.
멀찍이 떨어져 모든 광경을 지켜본 리키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리키는 최치우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다.
“다들 많이 놀랐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할 테고.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최치우는 담담한 얼굴로 헤라클래스 대원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는 여기저기 넘어진 대원들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거나 광산이 무너질 경우 이렇게 당황할 겁니까? 언제 어디서 예상 못 한 자연재해를 경험할지 모릅니다.”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20명 정도는 대처를 잘했지만, 10명은 최치우가 마법으로 지축을 흔들자 우당탕 넘어졌기 때문이다.
최치우의 뼈아픈 지적은 계속됐다.
“상대의 활동 범위가 예측 반경을 벗어난다면? 두 번째는 괜찮았지만, 내가 처음 공중으로 점프했을 때 곧바로 조준하지 못했죠. 그건 여러분의 시야가 전방과 좌우에만 고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3차원이 아닌 2차원 시야에 머물러서는 1류가 될 수 없습니다.”
뭐라고 반박조차 하기 힘든 말이었다.
단순한 말이 아닌 실전 같은 훈련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스카웃된 베테랑이다.
하지만 최치우 앞에서는 걸음마를 떼는 병아리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차원을 넘나들며 쌓은 최치우의 실전 경험은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렵다.
그는 마법, 검술, 박투, 로봇 대전까지 모든 종류의 전투를 경험했다.
게다가 인간만 상대한 게 아니라 헌터로서 온갖 몬스터들을 포획하고 물리쳤다.
그렇기에 최치우가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는 헤라클래스 대원들에게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시력을 잃었을 때, 적이 연막탄을 터트리거나 암전을 유도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그런 상황에선 기척을 죽이고, 청각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 아까처럼 당황하면… 몰살입니다.”
세 가지 충고를 들은 헤라클래스 대원들은 행운아인 셈이다.
몇 번의 실전을 거치며 동료들이 죽어나가야 알게 되는 노하우를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헤라클래스 1기 30명 중에서도 여럿이 죽거나 부상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이 씨앗을 잘 키워 거목으로 만들고 싶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우락부락한 덩치를 자랑하는 프랑스 출신의 엘빈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충격에서 깨어나 최치우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이다.
최치우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같이 아프리카의 전설이 됩시다.”
그의 말은 헤라클래스 대원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살벌한 훈련을 지켜본 리키도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최치우는 이들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헤라클래스는 올림푸스의 전위대가 되어 전설을 써내려갈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최치우 자신이 헤라클래스를 그렇게 만들 작정이었다.
사막의 붉은 태양 아래 새로운 약속이 잉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