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네오메이슨>
입증은 간단했다.
언제나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최치우는 청와대 안뜰에서 100미터를 대충 그었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대통령이 직접 폰으로 시간을 체크하게 만들었다.
결과는 똑같았다.
임동혁이 놀랐던 것처럼 유영조 대통령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임동혁보다 훨씬 더 놀랐을 것이다.
대통령은 최치우가 파이트 클럽에서 최강자로 이름을 남긴 사실을 모른다.
그렇기에 천재적인 사업가이자 탐험가인 최치우의 육체 능력이 국가 대표 이상으로 뛰어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최치우는 대통령 앞에서 두 번이나 100미터를 뛰었고, 모두 9초대의 기록을 보여줬다.
몇 번의 연습을 통해 어느 정도로 달려야 9초대 기록이 나오는지 깨달은 것이다.
이쯤 되면 국가 대표가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 신기록이 아닌 세계 신기록에 도전해도 될 만한 기록이다.
대통령은 잠깐 나갔던 넋을 다시 붙잡았다.
오래 정치를 하며 별 희한한 경우를 다 봤기에 보통 사람들과는 멘탈이 달랐다.
유영조 대통령은 바싹 마른 입술을 적시며 약속을 했다.
이로써 최치우는 목적을 달성했다.
귀찮은 절차를 패스하고, 곧장 육상 국가 대표 감독에게 테스트를 받게 된 것이다.
일단 테스트만 받으면 뒷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굳이 태릉선수촌에 머물면서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된다.
어떤 환경에서든 9초대의 기록을 내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기 때문이다.
오히려 힘 조절을 잘못해서 8초대나 7초대 기록이 나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대로 최치우가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면 일석삼조다.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초로 100미터 달리기 메달을 획득한 나라가 되고, 육상계는 뜨거운 관심과 스폰을 받으며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최치우는 또 하나의 전설을 쓰며 2년이라는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것이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니… 허허. 아무튼 방금 말한 것처럼 문화부를 통해 연락이 가도록 조치해 놓겠어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요. 이런 특별한 재능으로 사회에 기여할 방법까지 고민을 하다니, 최 대표님의 그릇은 확실히 남다릅니다.”
최치우는 메달 획득을 통해 육상계 전반에 좋은 영향을 끼칠 방안을 설명했었다.
바로 그 점이 대통령의 마음에 꼭 든 모양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의도가 가장 크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를 위한 일이라 칭찬받을 게 못 됩니다.”
“그래도요. 어쨌든 최 대표님의 말을 듣고, 생각지도 못했던 최 대표님의 달리기까지 봤으니 이제 내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대통령이 절반 정도 남은 찻잔을 비웠다.
애초에 최치우를 청와대로 부른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다.
최치우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한 가지 부탁만 하려 했는데… 오늘 최 대표님을 보니 두 가지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먼저 첫째는 아프리카에 관한 것이지요.”
첫 번째 안건은 어느 정도 예상하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올림푸스는 남아공에서 무척 인기가 높아진 상태다.
난민 수용소에 해독제인 P-2를 제공하고,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는 지원 사업을 통해 긍정적 이미지를 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개 광산 개발에 착수하게 되니, 역대 어느 기업도 해내지 못한 성과를 아프리카에서 올린 셈이다.
유영조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한국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을 장려하고 싶은 눈치였다.
2년이 지나면 절대 권력을 자랑하는 대통령도 퇴임을 해야 한다.
만약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 유영조 대통령은 물론, 그를 믿고 따른 계파 역시 고난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집권하는 동안 최대한 많은 업적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올림푸스가 알아서 아프리카 교류의 문을 활짝 열었다.
정부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의 밥상이 차려진 것이다.
올림푸스가 조금만 협조를 해주면 다른 기업도 남아공과 아프리카 진출이 쉬워질 수 있다.
최치우는 실무적인 부분에서 얼마든지 협조하기로 약속을 했다.
이미 남아공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맺은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큰 품을 들이지 않고 한국 정부와 대통령에게 빚을 지웠다.
대통령이 육상 국가 대표 감독을 소개해 주는 것과는 레벨이 다른 도움을 주게 됐다.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반드시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정산을 할 날이 올 것이다.
“올림푸스가 남아공에서 자리를 잡으면, 올해가 가기 전 아프리카 교류전 등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해 보겠습니다.”
“역시 젊은 사람 아이디어는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외교부와 기재부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아프리카라는 넓은 대륙은 특정 국가, 특정 기업이 절대 독점할 수 없습니다. 올림푸스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라도 한국의 좋은 기업들이 더 많이 진출하기를 바랍니다.”
최치우의 똑 부러지는 말을 들은 유영조 대통령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아프리카에는 중국 자본이 대거 진출해 있다.
그들도 아프리카가 기회의 땅이라는 사실을 먼저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이 시점에 올림푸스가 치고 나가며 한국 기업들을 끌어준다면 전세는 역전될 수 있다.
대통령과 짧게 몇 마디를 주고받았지만, 최치우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뚫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은 건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에 비즈니스 한류 열풍이 불면 선두주자인 올림푸스의 입김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허허허! 든든합니다, 든든해요.”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와대 안뜰에서의 비밀스러운 만남은 최치우와 유영조 대통령 서로에게 굉장히 만족스러운 만남이 되고 있었다.
이제 한 가지 안건이 더 남았다.
대통령은 최치우를 직접 보자 뭔가 해줄 말이 더 생겼다고 했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이어서 꺼낼지 최치우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최 대표님, 혹시 말입니다…….”
유영조 대통령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온화하고 인자한 인물이지만, 맺고 끊음이 확실한 편이다.
애둘러 말하거나 모호한 표현을 쓰는 경우도 거의 없다.
정치권에서 단련되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내공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치우는 가만히 대통령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프리메이슨이라고 들어봤겠지요?”
유영조 대통령은 뜬금없이 프리메이슨을 언급했다.
그토록 뜸을 들여 꺼낸 말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최치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세 석공들의 연합에서 시작된 단체라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세계를 좌우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음모론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앵글로 색슨 리더들의 사교 모임이라고.”
“그럼 일루미나티에 대해서는요?”
“프리메이슨과 비슷하게 세계를 지배하는 그림자 정부가 일루미나티라는 음모론 정도는 들어봤습니다.”
최치우는 왜 대통령이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에 대해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때는 뜨거운 이슈였지만, 지금은 철 지난 음모론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떠돌았던 이야기들이 모두 진신을 아니겠지만… 완전히 실체 없는 소문은 아니었어요. 물론 나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지요.”
대통령의 음성이 낮아졌다.
그는 지금 실없는 장난을 치는 게 아니었다.
최치우도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한 귀로 듣고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이자 존경스러운 인품을 지닌 유영조의 말이다.
조금 이상해도 진지한 자세로 경청하는 수밖에 없다.
“프리메이슨은 알려진 것처럼 석공들의 모임에서 비롯된 사교 모임이지요. 그러나 미국 대통령, 영국 왕세자 등이 가입하며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조직으로 성장하게 되었어요. 물론 음모론에 나오는 것처럼 이들이 세계를 지배하거나 멸망시키려는, 그런 의도 따위는 없었다고 합니다.”
최치우가 귀를 세웠다.
유영조 대통령이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면,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을 듣게 되는 것이다.
재벌 2세인 임동혁조차 모르는 이야기다.
최치우는 한 글자라도 놓칠새라 정신을 집중했다.
“반면 일루미나티는 말 그대로 세계의 그림자 정부를 꿈꾸는 집단이었어요. 그들은 세상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프리메이슨을 비판했고, 결국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였지요.”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의 전쟁…….”
“맞아요. 듣고 있어도 믿기 힘든 이야기지요? 나도 그랬습니다. 허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들의 실체를 체감하게 되었어요.”
“그들이 누구입니까?”
최치우가 정곡을 찔렀다.
유영조 대통령의 얼굴에는 더 이상 미소가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오메이슨.”
“네오… 메이슨?”
“전쟁은 커다란 상처를 남겼지요. 프리메이슨은 사라졌고, 일루미나티도 기반의 절반 이상을 잃은 채 그림자 속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일루미나티의 후예들이 다시 발호하였고, 그들은 숙적 프리메이슨의 이름을 뺏어 새로운 세계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더군요. 그들이 바로 네오메이슨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프리메이슨을 멸망시킨 일루미나티의 후손들이 네오메이슨이다.
일루미나티를 계승한 이상 그들 역시 선조들처럼 세계를 지배할 야욕을 품고 있을 게 분명했다.
최치우는 대통령으로부터 기대하지 못한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다.
적이 누군지 알아야 싸우고 이길 수 있다.
어쩌면 이제까지 이 차원에서 가장 강력한 적을 존재조차 몰랐던 것이다.
동시에 강렬한 의문도 떠올랐다.
“왜 이런 말씀을 제게 해주시는 겁니까, 대통령님.”
“최 대표님은… 너무 지나치게 특별해서 말이지요. 단기간에 글로벌 기업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100미터 달리기 신기록을 세울만한 육체 능력까지……. 계속해서 불가해한 모습을 보인다면, 반드시 네오메이슨이 그 마각을 드러낼 것 같아 미리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들이 정말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면, 네오메이슨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허허허허, 네오메이슨이 영화 속 악당들처럼 티 나게 세계 정복 같은 걸 추구하지는 않겠지요. 이를테면… 미국 대통령은 네오메이슨이 아니지만, 상원의 국방위의장은 네오메이슨이 확실합니다. 이라크 전쟁 역시 네오메이슨이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게 정설이지요. 은밀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세계의 질서를 주무르는 세력인 건 분명해 보였습니다.”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온갖 일을 다 책임진다.
밖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바쁜 자리다.
또한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극비 정보들을 다루게 된다.
유영조 대통령의 말은 허언이나 과장이 아니었다.
최치우는 생각보다 거대한 숙주가 있음을 깨달았다.
“서구 사회는 철저히 그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편입니다. 한때 급성장하던 중국도 결국 벽에 막혀 있는 형국이지요. 최 대표님이 아프리카에서 활로를 찾은 것은……. 어쩌면 네오메이슨에게 무엇보다 위협적인 도전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뜻하지 않았지만,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이 누구이건, 얼마나 강력하건 저와 올림푸스는 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개척하겠습니다.”
최치우는 겁을 먹지 않았다.
대통령에게서 엄청난 비밀을 들었지만, 오히려 피가 뜨겁게 끓는 기분이었다.
환생한 차원 중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현대의 지구에 네오메이슨 같은 적수가 없었다면 너무 시시했을 것이다.
서양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세계 질서를 갖고 노는 세력.
올림푸스가 언젠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자 깨부숴야 할 대적임이 분명했다.
변방에서 불어온 바람으로 세계를 바꾸겠다는 최치우의 목표와 네오메이슨의 이념은 정면으로 대치된다.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대란 뜻이다.
“허허, 최 대표님이라면 그리 말할 줄 알았습니다.”
유영조 대통령이 굳었던 안색을 풀었다.
그는 세계의 권력자들이 모이는 최전선에서 여러 번 한계를 경험했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전 세계에서는 서양에 비해 뒤진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최치우라면 한강의 기적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왠지 모를 기대감이 대통령의 미소를 회복시켰다.
최치우는 벌써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적을 아는 게 모든 싸움의 시작이다. 네오메이슨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야겠군.’
지구라는 차원에 환생한 지 4년.
최치우는 드디어 네오메이슨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다.
진짜 게임이 시작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