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진격의 올림푸스>
올림푸스는 남아공 정부로부터 무려 20개 광산의 채굴권을 양도받았다.
그러나 당장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수면 아래에서 모든 준비를 갖추고, 때가 됐을 때 확실하게 터트리는 것이 최치우의 방식이다.
미리 설레발을 치며 관심을 끌어 모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프로메테우스의 개발과 남아공 난민 수용소를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관심은 흘러넘칠 지경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최치우는 삼인회의를 소집했다.
따로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안건을 의논할 때만 모이는 세 사람이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최치우와 임동혁, 그리고 S대의 김도현 교수.
전설적인 고고학자 김도훈의 손자이자 최치우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길을 열어준 은사, 김도현 교수는 못 본 사이 더욱 눈빛이 깊어져 있었다.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갈색 눈동자는 마치 마법의 정수를 깨달은 현자 같았다.
최치우는 7번의 환생을 거친 영혼의 소유자지만, 김도현 교수를 진심으로 존중했다.
그처럼 깊은 사유와 성찰을 해내는 지식인은 어느 세계에나 무척 드물다.
스승이라고 부르기에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는 인물이었다.
“20개의 광산이면 정말 엄청난 결실인데… 이게 끝이 아니라고 했었지요?”
김도현 교수는 최치우가 남아공 재무부 장관에게서 받아온 비공개 계약서를 살펴보고 있었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했다.
“향후 성과에 따라 추가로 더 많은 광산의 개발권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꽤 많은 국제 자본이 남아공의 광산 개발을 시도하고 있지만, 후발주자인 우리가 1위로 치고 올라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광산 개발에는 막대한 초기 비용이 소요되는 편이에요. 현지에서 인부들을 구하는 것부터, 장비와 베이스캠프 구성까지…….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남아공 정부도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 아니겠어요?”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역시…….”
김도현 교수는 최치우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하고 있었다.
비즈니스 파트너인 임동혁도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최치우가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뉴욕 증시에 올림푸스를 상장할 계획입니다.”
결국 올 것이 왔다.
기업공개와 상장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남아공의 광산 개발을 위해 소요될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선 상장이 최선의 방법이다.
사실 올림푸스는 다른 기업에 비해 상장이 늦은 편이었다.
웬만한 회사 같았으면 펜타곤과 기술 제휴를 발표하자마자 상장을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초유의 히트작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올림푸스의 기업 가치를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기업공개 절차를 거쳐 상장을 하게 되면 올림푸스의 주가는 비상장 상태에서 거론되는 것보다 훨씬 비싸지게 될 것이다.
“치우 군, 단번에 한국이 아닌 세계의 젊은 갑부로 뛰어오르겠네요.”
김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앞날을 내다봤다.
최치우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만으로도 그는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밑그림을 그려놓고, 남아공의 광산 개발권을 확보했다고 알리면서 기업공개 절차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상장을 하게 되면 외부 투자도 더 자유롭게 받을 수 있으니 초기 비용은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어디 초기 비용뿐이겠어요. 치우 군이 그리는 일들을 추진하는 데 있어 든든한 날개가 되겠지요.”
“그래도 제 지분은 50% 이상으로 유지할 생각입니다.”
“그건 무척 이례적이네요. 보통 오너들은 10%를 넘기는 경우도 드물잖아요.”
“최후의 순간, 무슨 일이 벌어져도 올림푸스는 제가 지킬 수 있게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고 싶습니다. 어차피 기존에 보유한 20% 가량을 내놓고, 증자까지 거치면 자금은 모자라지 않을 테니까요.”
최치우는 일반적인 경영 상식을 따르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개인이 5% 안팎의 지분만 가져도 대주주 소리를 듣는다.
오너들 역시 10%가 못 되는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정하다.
창업 공신 스티브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났던 것도, 오성그룹이 해외의 펀드에게 잡아먹힐 뻔 했던 것도 모두 오너의 지분 보유량이 낮기 때문이었다.
최치우는 막대한 세금을 내는 등 다른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지분 보유량을 50% 이하로 떨어트릴 생각은 없었다.
올림푸스는 온전히 그의 회사다.
상장 이후에도 주주들의 눈치를 보는 일 따윈 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행보지만, 올림푸스의 성장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김도현 교수도 최치우의 결정을 이해하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 이왕 판을 벌이는 거 제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임동혁이 입을 열었다.
안하무인 제멋대로인 그가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 딱 두 명 있다.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최치우와 김도현이다.
그는 김도현 교수를 바라보며 최치우와 의논한 내용을 말했다.
“한영 그룹에는 광산 개발 경험이 있는 계열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그룹과 손을 잡고 밥을 떠먹여 주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올림푸스의 힘만으로 남아공 광산 개발을 시행하겠다는 생각이네요.”
“맞습니다. 최 대표님의 강한 의지이기도 합니다.”
임동혁이 최치우를 가리켰다.
김도현은 두 사람 사이에 대충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런 경우 광산 개발 경험이 있는 다른 기업과 손을 잡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독자적 행보를 주장했을 것이다.
김도현 교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치우 군이 마음을 먹었다면, 반드시 그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겠지요. 그래서 내가 어떤 부분을 도와주면 될까요?”
“최고의 팀을 만들 수 있게 인재들을 영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교수님의 안목과 네트워크라면, 광산 개발의 적임자들을 수월하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업계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겠습니다. 헤드 쿼터만 한국에서 꾸려지면, 현장의 실무 인력은 남아공에서 채우면 됩니다.”
“작은 규모의 계열사 하나를 건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할 거에요.”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저 말고 최 대표님이.”
임동혁이 웃으며 공을 최치우에게 넘겼다.
최치우는 당연하다는 듯 표정 변화가 없었다.
광산 개발팀을 따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도현 교수의 말처럼 계열사 하나를 새로 설립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최치우는 상장으로 얻게 되는 자금의 상당 부분을 남아공 광산 개발에 투자할 작정이었다.
매번 비슷하지만, 그야말로 올림푸스의 사운(社運)을 걸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다.
미쓰릴 발굴이나 프로메테우스 개발은 리스크가 크지 않았다.
그나마 프로메테우스를 개발할 때 비용을 많이 쓴 편이었다.
하지만 광산 개발은 기본 사이즈 자체가 다르다.
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면 주가가 폭락할 것이고, 올림푸스가 뿌리부터 휘청거리게 될 터였다.
“교수님.”
한동안 입을 닫고 있던 최치우가 김도현을 불렀다.
그는 몇 마디 짧은 말에 자신의 웅대한 포부를 담았다.
“아프리카와 한국, 세계사에서 언제나 변방이었습니다. 하지만 변방에서 불어온 바람이 전 세계를 바꾸게 될 겁니다.”
뿔테 안경 너머 김도현 교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듣고 그냥 넘길 수 없는, 너무도 어마어마한 선언이었다.
중세 이후 서양이 주도해 온 세계 질서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뜻이다.
그 말을 한 것이 최치우가 아니었다면 김도현 교수도 농담쯤으로 가볍게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최치우의 말이었다.
김도현 교수는 새로운 미래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치우 군의 올림푸스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는 게 목표가 아니군요.”
“시가총액 1위? 아니면 자산이나 매출 1위?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제가 늘 말하지만, 올림푸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기업입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쓰이고 있다.
그러나 최치우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으로 그 말을 사용해 왔다.
김도현 교수도 이제야 최치우가 그리는 미래의 한 조각을 엿볼 수 있었다.
“변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는 최치우가 언급한 문장을 곱씹었다.
세계사의 그늘에 자리했던 아프리카, 그리고 대한민국.
두 지역에서 불어온 바람이 미래의 역사를 새로 쓸 지도 모른다.
남아공의 광산 개발은 원대한 첫걸음이다.
김도현은 자신이 역사의 순간에 위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최치우와 올림푸스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었다.
***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올림푸스가 기업공개 절차를 거쳐 뉴욕 증시에 상장할 계획이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경제 분야와 재계의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는 상장을 할 거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아닌 뉴욕 증시를 선택한 것도 최치우다웠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모이는 뉴욕 증시에서 제대로 승부하겠다는 최치우의 집념이 엿보였다.
충격적인 소식은 따로 있었다.
올림푸스가 남아공 정부로부터 20개 광산의 개발권을 양도받았다는 뉴스였다.
최치우는 상장을 준비한다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정확히 사흘 뒤 남아공 광산 개발 소식을 알렸다.
완벽하게 계산된 타이밍이었다.
일단 화제가 되면 주가는 무조건 오른다.
남아공 광산 개발은 올림푸스가 시행하기에 여러 위험성이 있는 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곧 뉴욕 증시에 오르내릴 올림푸스의 주가는 고평가 흐름을 타고 비상했다.
사람들은 올림푸스의 시가총액이 얼마까지 올라갈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확실한 것은 모두 1조 원 이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최소 1조, 많게는 5조 이상.
직원이 50명도 안 되는 작은 기업의 시가총액으로는 엄청나게 높은 액수다.
하지만 글로벌 증시의 트렌드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2010년도 이후 주요 투자자들은 당장의 매출보다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매년 적자를 거듭하는 전기차 회사의 시가총액이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GM을 따돌린 지 오래다.
매출로 비교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미래의 가능성이 현재의 돈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셈이다.
올림푸스가 보여준 가능성과 잠재력은 역대급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상장이 완료되면 최치우는 최소 1조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갑부가 된다.
너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라 오히려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다.
처음 빵셔틀 고등학생으로 환생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웹툰과 파이트 클럽을 선택했던 때와는 천지차이다.
그는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남아공에 진지를 구축할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단순히 광산 개발 회사를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을 터였다.
최치우는 아프리카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최대 리스크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게릴라 반군 집단이다.
아프리카를 거점으로 삼아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군들을 해결해야 한다.
UN의 평화유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이지만, 최치우는 거기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변방의 바람으로 세상의 역사를 바꾸는 게 쉬울 리 없다.
사람들은 올림푸스가 주식시장에서 벌어들일 돈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최치우는 아프리카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며 금력(金力)과 무력(武力)을 함께 갖출 작전을 짜고 있었다.
기업이 독자적인 무력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오직 아프리카, 혼돈의 검은 대륙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최치우의 머릿속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도무지 짜낼 수 없는 전략이 가득했다.
그는 여러 차원에서의 경험 때문에 무력의 중요함을 절실히 알고 있었다.
아무리 현대를 움직이는 힘이 권력과 금력이라 해도 최후의 순간 무력은 빛을 발하게 돼 있다.
“남아공 광산을 개발하는 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먼저 남부 아프리카의 반군을 소탕하며 영향력을 넓힐 겁니다. 올림푸스 외인부대의 이름은 헤라클래스. 리키가 바로 헤라클래스의 리더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최치우는 리키를 따로 불러 자신의 구상을 알려줬다.
뉴욕 증시 상장이 정해진 수순이라면, 헤라클래스 창설은 역사다.
최치우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바쁘게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