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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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우는 과감하게 움직였다.
보통 첫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금방 두려움에 빠진다.
어렵게 이룬 성공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두려움을 모르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선봉장 같았다.
그는 회사의 오너이자 CEO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시환과 백승수를 포함해 다른 직원들도 막대한 금액을 남아공에 투자하는 것을 염려한 게 사실이다.
최치우는 남아공의 광산을 얻을 거란 목표를 다른 직원들에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푸스의 분위기는 차차 달라졌다.
20살에 독도 해저 자원 개발을 성사시키고, 21살에 올림푸스를 일으켜 펜타곤의 VVIP가 된 사람이 최치우다.
22살의 그는 수많은 제약회사들을 바보로 만들며 신개념 해독제를 개발했다.
그런 최치우가 남아공의 난민 수용소에 대대적인 투자를 한다면 분명 남모를 뜻이 있을 것이다.
올림푸스에 인생을 건 직원들은 최치우가 낭만적인 성인군자일 리 없다고 믿었다.
수백억 원을 쓰는 이면에 또 다른 큰 그림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직원들이 불안감을 극복하고 하나로 뭉치자 일은 더 빨리 진행됐다.
정부의 공식 지원도 결정 났고, 임동혁도 한영 그룹 주도로 기금을 조성했다.
올림푸스에서 남아공에 쓸 실탄, 현금을 확보하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지원식을 체결할 수 있다.
최치우는 홍보팀을 통해 국내외 언론에 남아공 난민 수용소 지원 소식을 알렸다.
곧 케이프타운 현지에서 지원식이 열릴 예정이며, 올림푸스와 한국 및 남아공 정부의 주요 인물들이 참석할 거라는 정보를 퍼트린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창의적인 회사로 성장한 올림푸스의 첫 번째 대규모 자선사업이다.
국내외 언론은 남아공의 특파원들에게 미리 준비를 시켰다.
최치우는 주머니 속 용돈을 꺼내듯 은행으로부터 수백억 원을 대출받았다.
비상장 상태이긴 해도 천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올림푸스의 지분을 담보로 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금리 또한 최저 수준으로 설정할 수 있었다.
최치우, 그는 이제 은행의 지점장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하며 수백억 원을 마치 몇 만원 빌려주듯 내어주는 존재가 됐다.
임동혁을 데리고 케이프타운을 다녀온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한국의 날씨는 추워지고 있지만, 최치우는 1년 내내 뜨거운 대륙 아프리카로 다시 날아갔다.
이번에는 임동혁과 둘이 떠나는 출장이 아니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외교부 장관이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짐을 꾸렸다.
올림푸스에서도 최치우와 임동혁, 그리고 리키와 이시환이 함께 비행기를 탔다.
재계의 기금 조성을 주도한 한영 그룹에서도 사장급 임원을 보내 격을 맞췄다.
최치우의 추진력 덕분에 한국과 남아공이 갑작스레 대규모 교류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올림푸스는 동떨어진 두 대륙을 잇는 다리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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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와 식수 지원 체결식을 난민 수용소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남아공 정부는 수용소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점 도시인 케이프타운에 행사장을 마련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난민 수용소는 남아공의 오랜 골칫거리다.
더군다나 지속적으로 식수 오염 환자들이 발생하고,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부담도 점점 커졌다.
그런데 최치우가 나서서 해결책을 들고 온 것이다.
단순히 식수 오염만 해결해 준 게 아니었다.
한국 정부와 여러 기업을 움직여 깨끗한 식수와 생필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해줬다.
남아공 정부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선물 보따리를 주고 간 격이다.
천사들을 몰고 온 대천사는 다름 아닌 최치우였다.
그는 체결식 행사에서도 한국의 외교부 장관보다 더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남아공 정부에서도 실제로 일을 주도하는 사람은 최치우란 걸 알고 있었다.
한국 외교부 장관은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바보다.
물론 한국 외교부 장관도 나름 어깨에 힘을 줬다.
그 역시 최치우 덕분에 톡톡한 성과를 얻게 됐다.
남아공과 한국의 관계가 돈독해졌고,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오랜만에 리더 역할을 하며 본을 보였다.
어쩌면 이번 체결식이 그의 장관 재임 중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을지 모른다.
최치우를 바라보는 외교부 장관의 시선이 훈훈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외국에서 공식 행사를 치르려니 피곤하네.”
체결식이 무사히 끝나고, 호텔로 돌아온 이시환이 한숨을 쉬었다.
리키는 비행기에서 한잠도 안 자더니 이내 뻗었다.
임동혁은 최치우를 대신해 외교부 장관 등 한국의 귀빈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최치우와 이시환만 방이 여러 개 딸린 호텔의 스위트룸에 남게 된 것이다.
“아직 피곤하면 안 되는데. 시환이 형, 지금부터 훨씬 중요한 일이 남았어.”
최치우는 둘만 남게 되자 이시환을 편하게 불렀다.
모든 일정이 끝난 줄 알았던 이시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시간에 또 일정이 있다고?”
“우리가 체결식이나 하자고 남아공까지 온 줄 알아?”
“그럼……. 아!”
말끝을 흐리던 이시환이 뭔가 떠오른 듯 탄성을 터트렸다.
최치우가 이시환과 백승수에게 설명을 하며 해준 말을 기억한 것이다.
“내가 말했잖아. P-2와 식수를 지원하는 날, 우리는 남아공의 광산들을 얻게 될 거라고.”
“그래도 정말 이렇게 당일? 난 시일을 두고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지.”
“형, 내가 하나 알려줄게. 남아공 정부 관계자들은 지금 우리 때문에 기분이 최고조로 좋아졌어. 기회다 싶으면 무조건 치고 들어가는 거야. 망설이는 사람에겐 문이 열리지 않아.”
최치우의 말을 들은 이시환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인생의 교훈을 얻은 듯 했다.
최치우는 옷을 갈아입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해둬. 우리가 아프리카에 진출하게 되면, 현장 책임자로 형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응? 나를?”
“승수 선배는 사무실이 더 어울리는 것 같고, 내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 중에서 형이 적응력 하나는 최고잖아.”
최치우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아프리카 진출의 선봉장으로 이시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누구라도 외국에서 적응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유쾌한 성격에 친화력을 두루두루 갖춘 이시환은 금방 현지인들과 어울릴 것 같았다.
“싫다고 하면 안 보낼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말고. 힘들겠지만 그만큼 큰 기회일 거야. 팀장이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를 책임지는 본부장급으로 승진하는 셈이잖아.”
이시환은 첫 직장이 올림푸스인 사회 초년생이다.
이십 대 후반이 됐지만, 최치우에 비해 나이가 많은 것일 뿐 일반 기업에선 신입 사원 연차다.
그런데 올림푸스에서는 벌써 팀장이라는 중책을 맡았고, 한 지역을 책임지는 본부장 인선까지 거론되고 있다.
최치우를 믿고 인생을 건 만큼 확실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올림푸스라는 로켓에 올라탄 이시환의 용기 덕분이기도 하다.
“일단 알겠어.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나도 고민은 하고 있을게, 치우야.”
이시환은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이다.
낯선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말에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최치우가 얼마나 큰 기회를 주려는 것인지 바로 이해했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옷을 마저 갈아입었다.
정장 재킷을 벗고, 얇은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그는 여행을 온 대학생처럼 보였다.
사실 나이로 따지면 아직도 대학생이어야 정상이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억이 아닌 조 단위로 평가받는 회사를 일으켜 세운 게 비정상이다.
물론 몸은 22살이지만, 영혼에는 7개 차원에서 8번의 삶을 살아오며 쌓인 경험과 능력이 각인돼 있다.
그렇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대의 사람들이 보기에 최치우는 불가사의한 괴물인 게 당연했다.
“갖다 올게. 좀 쉬고 있어.”
“잘하고 와. 하긴, 언제나 뭐든 잘해서 무서울 정도지만.”
“우리 형 본부장 만들려면 내가 잘하고 와야지, 하하.”
최치우는 농담을 던지며 걸어갔다.
스위트룸이 워낙 넓어서 문을 열고 나가려면 기다란 복도를 통과해야 했다.
이시환은 최치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더 이상 어떤 의심도 들지 않았다.
오늘 밤 최치우는 그가 말한 대로 남아공의 광산을 얻고 돌아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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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국토는 한반도의 5.5배에 달할 정도로 광활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도시는 한정적이다.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 등을 제외하면 국토의 대부분이 미개척지라 해도 과장이 아닌 것이다.
특히 국토 곳곳에 광산들이 넘쳐난다.
금, 망간, 백금, 알루미늄 등 다양한 광물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는 나라가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이토록 많은 광물들을 갖고 있지만, 남아공 정부는 모든 광산을 관리하지 못한다.
그만한 기술도, 돈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부터는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왔다.
국제적인 광산 회사들이 남아공의 광물을 노리고 합작을 맺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에는 외국 자본에 넘겨주지도, 자체적으로 개발하지도 않은 광산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과거 남아공 정부가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폐광산이 된 곳도 허다하다.
버려진 폐광산을 다시 개발하면 어떤 광물들이 쏟아질지 모른다.
최치우는 남아공에 대해 조사하면 할수록 보물 지도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수백억 원을 투자해 난민 수용소를 돕고, 올림푸스의 국제적인 이미지를 한껏 끌어 올린 건 100% 남는 장사다.
그것을 바탕으로 최치우는 수조 원의 이익을 얻어낼 거라고 확신했다.
“확실히 젊어도 너무 젊단 말이지. 대단한 사람이란 건 잘 알고 있지만은.”
최치우의 맞은편 소파에는 뚱뚱한 흑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몸을 반쯤 파묻고 거만하게 고개를 까닥거리는 남자는 남아공의 재무부 장관이다.
전통적으로 남아공 대통령은 최측근을 재무부 장관에 앉힌다.
사실상 재무부 장관이 승인을 하면 남아공에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봐도 된다.
최치우는 약 한 달 전 난민 수용소를 다녀간 후 꾸준히 작업을 했다.
남아공 재무부 장관을 움직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체결식에는 참석하지 않은 재무부 장관이 최치우와 은밀한 독대를 하게 됐다.
“제 나이 때문에 불안하십니까?”
최치우는 여유로운 얼굴로 남아공의 최고 권력자를 상대했다.
그의 물음에 재무부 장관인 마사투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광산 개발은 우리의 국책 사업이지. 외국 기업에게 맡기면, 그만큼 확실한 이익을 남아공에게 돌려줘야만 해. 그러니 경험이 없는 어린 사람을 믿어도 될지 고민스럽네. 물론 난민 수용소에 지원을 해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니겠나?”
마사투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지원만 받고 입을 싹 닦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최치우 역시 순진한 성인군자는 아니다.
그는 세계를 바꾸고 사람들을 돕는 데 관심이 있지만, 수백억을 써가며 만든 기회를 허무하게 날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체결식에서의 최치우가 성인(聖人)이었다면, 지금은 철저히 상인(商人)이 되어 거래를 터야 한다.
그는 마사투의 눈을 마주보며 대답했다.
“경험이 없었지만 펜타곤이 손을 내밀게 만들었습니다. 경험이 없었지만 어느 제약회사도 만들지 못한 해독제를 개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경험이 없지만, 남아공의 광산에서 어떤 기업보다 더 빛나는 가치를 창출해 내겠습니다.”
최치우와 올림푸스의 경력은 말이 필요 없는 보증수표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장본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은 마사투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기 그 해독제 말인데… 혹시 하나 구할 수 있다면…….”
“알고 계시겠지만, P-1은 100만 달러에 초도 물량 50개가 모두 판매됐습니다. 2차 물량도 생산되면 과정을 거쳐 판매자를 선정할 계획입니다.”
프로메테우스1은 돈이 많다고 살 수 있는 해독제가 아니다.
마사투는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때 최치우가 표정을 살짝 풀면서 미끼를 던졌다.
“그러나 판매는 어려워도 친구에게 선물은 할 수 있죠. 광산 개발권을 올림푸스에게 준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더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림은 아주 좋아서 말이네. 난민 수용소를 지원한 올림푸스가 남아공의 광산 개발, 즉 경제 개발도 함께한다라…….”
마사투의 말투가 달라졌다.
어린 최치우를 슬쩍 떠보려 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페이스에 말린 것이다.
최치우는 P-1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럴 때 힘 있게 쓰기 위해 일부러 판매 수량을 제한했던 것이기도 하다.
“저도 P-1을 마음대로 구하기 힘들지만, 특별히 2개를 준비하겠습니다. 올림푸스와 남아공이 친구가 되는 것을 기념하며.”
순간 마사투가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혹시 P-1을 받으면 대통령에게 진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개를 받는다면 그중 하나는 자신이 가질 수 있다.
물론 단순히 프로메테우스 때문에 광산 개발권을 넘길 수는 없다.
그러나 최치우가 내건 P-1이라는 미끼는 마사투가 빠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올림푸스를… 믿어도 되겠지?”
“남아공은 최고의 친구를 얻게 될 겁니다.”
“듣던 것 이상이야. 나이를 믿을 수 없단 말이지.”
마사투는 최치우의 화술에 감탄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
최치우는 대어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올림푸스는 남아공의 광산을 개발하며 아프리카에 교두보를 세울 것이다.
또한 광산 개발로 수익을 얻으면 지분을 팔지 않고도 충분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올림푸스는, 그리고 최치우는 매번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며 덩치를 키워갔다.
“자! 친구가 되어 보지.”
마사투가 크고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최치우는 그와 악수를 나누며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