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75화 (75/243)

# 75

***

최치우와 임동혁은 남아공 정부로부터 국빈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다.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첫날은 비공식 일정이었다.

자유롭게 현지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하루의 여유를 둔 것이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는 달랐다.

남아공 정부는 기사와 보디가드가 딸린 관용차량을 두 사람이 머무는 호텔로 보냈다.

당연히 최고 수준의 통역 실력을 갖춘 외교관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 정부의 외교관들도 최치우와 임동혁에게 신경을 기울였다.

최치우는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정부와 협력을 하고 있다.

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홍석진 외교안보특보가 남아공 대사관에 언질을 준 것 같았다.

올림푸스의 대외 활동은 한국 정부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남아공과 한국, 양 측 정부의 케어를 받으며 현장으로 이동했다.

케이프타운은 식수 오염을 걱정할 필요 없는 대도시다.

그러나 남아공에는 케이프타운과 요하네스버그 같은 대도시만 있는 게 아니다.

지명조차 생소한 도시와 마을들은 야생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남아공의 사정이 이럴 정도면,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은 얼마나 열악할지 불 보듯 뻔했다.

최치우는 창밖으로 점점 황량해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케이프타운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 방금 전까지 유럽 느낌을 받았던 거 맞습니까?”

임동혁이 반대쪽 창문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알록달록 예쁜 건물들이 늘어선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에서 예외적인 장소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극한의 환경이야말로 아프리카의 본모습에 가깝다.

“남아공 정부에서 우리에게 보여줄 지역을 고심하고 골랐을 겁니다.”

최치우는 지금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듣지 못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식수 오염에 노출된 장소라고만 전달받았다.

케이프타운을 벗어나면 남아공의 치안은 급격히 나빠진다.

그래서 남아공 정부는 안전을 위해 이동 경로와 목적지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최치우는 점점 삭막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실망하지 않았다.

당연히 열악한 환경일 거라 예상을 했다.

‘아프리카를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최치우는 각오를 다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은 험로를 돌파하며 멀리, 더 멀리 나아가고 있었다.

“대충 다 온 것 같습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임동혁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두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최치우도 고개를 들었다.

임동혁의 말대로 낯선 건물이 시야에 잡혔다.

대지를 가로지른 철조망과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간이 건물들.

그리고 완전 무장한 채 철조망 앞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까지.

처음에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장소였다.

최치우는 앞자리에 앉은 통역 겸 외교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도 식수 오염원입니까?”

그의 질문을 받은 남아공 정부의 외교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수 오염 문제가 심각한, 그로인해 매달 수십 명이 사망하는 곳입니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겉보기에는 식수 오염이 심각한 지역으로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상하지만, 군인들이 경계를 서며 지키는 곳이다.

어쨌든 정부의 관리와 감독이 기능하고 있는 장소 같았다.

하지만 남아공 외교관은 고개를 저으며 진실을 알려줬다.

“이곳은 남아공, 아니 아마도 아프리카 남부에서 가장 큰 난민 수용소입니다.”

“아-!”

최치우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탄식을 흘렸다.

단번에 상황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임동혁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민 수용소, 정확히 말하면 난민 지원자 수용소라고 표현할 수 있다.

아프리카 곳곳에서 발생한 내전과 자연재해, 기아를 피해 난민이 된 사람들은 여권도 없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나든다.

국제사회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 그나마 살길이 열린다.

하지만 각 국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난민의 수는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이런 수용소를 세우고, 몰려드는 난민들에게 최소한의 의식주만 제공하는 것이다.

“음식과 의복, 의료품이 부족한 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으나 물이 부족한 건 견디기 힘든 모양입니다. 지원되는 식수의 양은 턱 없이 적고, 결국 생활 반경 안에서 난민들이 물을 길러 쓰고 있습니다.”

“물이 부족하니 알아서 식수를 구하는 걸 통제하기 어렵겠군요.”

“그렇습니다. 주기적으로 식수 오염에 의한 중독 환자와 사망자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 정부에서도 관여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수용소에서 살아가는 난민들은 엄밀히 말해 남아공 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아니다.

특정 국가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전까지, 그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붕 뜬 존재다.

남아공 정부는 국제사회의 관례에 따라 그들을 보호할 뿐이다.

어쩌면 지구라는 넓은 세계에서 가장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이 수용소의 난민들인지 모른다.

최치우는 바로 그 곳에 당도한 것이다.

“내리시면 수용소 담당자가 자세한 설명을 해줄 것입니다.”

말을 마친 외교관이 먼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최치우가 타고 온 검은색 고급 리무진과 난민 수용소의 현실이 너무 대비됐다.

‘낯설지 않아. 어느 차원에나 바닥은 있으니까. 달라진 게 있다면, 나의 태도겠지.’

최치우가 살아온 차원들에는 난민 수용소보다 더 끔찍한 곳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아슬란 대륙 노예들의 검투장만 해도 수용소보다 훨씬 열악하고 처참하다.

과거의 최치우는 세계의 밑바닥을 신경 쓰지 않았었다.

자신의 복수, 자신의 성공,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최치우는 조금 다른 존재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를 바꾸고, 또 세계를 구하는 즐거움을 서서히 깨닫는 중이다.

대책 없이 멍청하게 이타적인 사람은 되려야 될 수도 없지만,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구하는 게 짜릿한 일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또 그렇게 얻은 명성과 인기는 최치우를 더 높은 곳으로 밀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단순한 자선 활동이 아닌, 거대하고 큰 그림을 완성시키는 선순환 싸이클이 형성되는 것이다.

최치우는 황량한 벌판 가운데 외딴 섬처럼 세워진 난민 수용소 앞에 섰다.

철조망 건너편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공허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을 전부 구원할 수는 없지만, P-2를 이용해 허무하게 스러지는 목숨이나마 구하러 여기까지 왔다.

시작은 미약해도 계속 걷다 보면 창대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최치우는 단순히 돈만 버는 장사꾼이 아닌, 시대의 거인이 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

수용소 책임자는 최치우와 임동혁을 직속상관처럼 극진히 모셨다.

남아공 정부의 외교관이 동행했고, 윗선에서 엄중한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올림푸스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는 신생 기업이다.

최치우 역시 한국인이지만 실리콘밸리의 라이징 스타들을 제치고 어마어마한 명성을 쌓은 장본인이다.

그가 직접 투자를 하기 위해, 그것도 남아공 정부 입장에서 가장 골치 아픈 난민 수용소를 돕기 위해 아프리카까지 날아왔다.

어찌 보면 국빈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남아공 정부의 고위직들은 또 다른 이익도 바라고 있었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는 P-1, 차원이 다른 해독제 프로메테우스를 한 알이라도 받길 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100만 달러가 없을 리 없다.

다만 1차로 P-1를 구입한 50명 안에 들지 못했다.

만약 최치우와 친분을 쌓아 P-1을 한 알이라도 받는다면, 그래서 남아공 대통령에게 진상이라도 한다면 출세는 따 놓은 당상이다.

보이지 않는 이유까지 더해져 남아공 외교관과 공무원들은 최치우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려 애썼다.

“난민 수용소에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첫 째가 식수 오염으로 인한 사상자 발생. 이건 우리가 P-2를 풀어서 해결하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켜 깨끗한 식수 지원을 늘리면 됩니다.”

수용소의 현실을 보고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온 최치우는 임동혁과 머리를 맞댔다.

늘 그렇지만 둘의 대화는 일반적인 회의와 다르다.

최치우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임동혁이 지원 방안을 내놓는 방식이다.

최치우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후계자를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일단 우리 한영 그룹에서도 사회 공헌 예산을 난민 수용소에 깨끗한 식수를 지원하는 걸로 좀 돌리겠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나서는 분위기는 임 이사님이 주도해 주세요. 나는 유영조 대통령이나 홍석진 외교안보특보를 만나서 한국이 중심이 되어 국제사회의 공조를 이끌어내게 해보겠습니다.”

“우리 정부가 선뜻 나서겠습니까? 국내 문제도 아니고, 돈도 꽤 드는 일인데 말입니다.”

“한국도 어엿한 선진국입니다. 그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죠. 이런 일을 계기로 영향력을 확대해서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근시안적으로는 돈을 쓰는 일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의 리더가 되기 위한 투자라고 봐야 합니다. 유 대통령이나 홍 특보라면 이해할 겁니다.”

최치우는 한국 정부를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전쟁의 아픔을 극복한 대한민국은 더 가난한 나라들에게 도움을 베풀 책임이 있다.

그렇게 책임을 다하면 존경을 받게 되고, 영향력도 강해진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지금, 국내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왕따가 되어 고립되기 쉽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와 함께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를 아프리카에 각인시킬 계획이었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상이 바탕이 될 때, 올림푸스도 더욱 환영을 받으며 마음껏 활개칠 수 있을 것이다.

“P-2는 P-1의 약효를 한참 떨어트린 마이너 버전이지만, 식수 오염으로 인한 중독 정도는 충분히 막아내겠죠. 난민 수용소의 사망자 수가 줄어들면, 올림푸스는 또 한 번 세계의 찬사를 받게 될 겁니다.”

“대표님과 내가 어느새 아프리카에서 이러고 있다니, 눈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다 스케일이 엄청나게 커지는 느낌입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최치우는 아프리카에 첫 발을 내딛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검은 대륙을 기반으로 삼아 전 세계를 휘어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가 화제를 돌렸다.

남아공 난민 수용소의 첫 번째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보인다.

예정대로 예산을 투입해 P-2를 배포하고, 깨끗한 식수까지 지원하면서 올림푸스의 이름을 드높이면 된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난민을 끊임없이 만들어내 수용소로 보내는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경 지대의 반군들은 손을 쓰기 힘듭니다.”

임동혁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남아공 정부군도, UN의 평화유지군도 아프리카의 악명 높은 반군들을 완전히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게릴라에 특화 된 방식으로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아공과 나미비아, 보츠와나 국경 지대의 반군들은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들 때문에 나미비아, 보츠와나 등지에서 수많은 부족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난민이 되는 것이다.

몇 개의 반군 군단만 처리할 수 있다면 남아공으로 유입되는 난민의 수는 대폭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고양이 목의 방울 달기처럼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문제였다.

“일단 두고 보죠. 어차피 아프리카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반군들과 계속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최치우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는 마치 아프리카의 반군들을 직접 해결할 것처럼 이야기했다.

임동혁도 눈을 크게 뜨고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우선 난민 수용소에 얼마만큼의 P-2가 필요할지, 물량 체크부터 하고 돌아갑니다. 또 P-2와 식수 지원을 위해 1년간 소요될 예산도 가능한 정밀하게 계산해야겠군요.”

“내일까지 남아공 정부에서 자료를 주기로 했습니다.”

“좋아요.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난민 수용소에 도움을 주는 것, 그리고 두 번째 목표는 지금부터 찾아보죠. 남아공에서부터 올림푸스가 어떻게 진지를 쌓을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 봅시다.”

목표를 제시하는 최치우의 목소리는 깊은 울림을 담고 있어 듬직했다.

나이와 배경 모두 윗줄인 임동혁은 어느샌가 진심으로 최치우의 리더십을 따르고 있었다.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대륙에 첫발을 내딛은 최치우는 한국에서처럼 바짝 속도를 낼 것이다.

머지않아 올림푸스가 어떤 방식으로 아프리카를 감동시킬지.

그리고 또 얼마나 놀라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최치우는 늘 그래왔듯 상식을 초월한 행보를 남아공에서도 보여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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