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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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혁은 최치우가 유명인들이 대거 모인 파티에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맨해튼의 파티에서도 최치우는 별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물론 에릭 한센이라는 적수를 만나 설전을 나누느라 파티에 집중할 틈이 없었지만, 노는 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임동혁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있었다.
최치우는 대리석 테이블 위에 놓인 루이 레더러 크리스탈과 아르망디, 돔페리뇽 등 값비싼 샴페인을 물처럼 마셨다.
단순히 혼자서 과음하는 게 아니었다.
자연스레 분위기를 주도하며 샴페인을 땄고, 과하게 나서지 않으면서도 주어진 대화를 이끌었다.
VIP룸 바깥의 음악 소리는 점점 커졌고, 최치우의 얼굴도 살짝 붉어졌다.
내공을 이용하면 순식간에 알콜을 다 태워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즐기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취기를 내버려 뒀다.
어차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주독(酒毒)이 오르면 만독불침의 기운이 알아서 정화를 해버릴 것이다.
“최 대표님, 펜타곤에 협상하러 갔을 땐 무섭지 않았어요?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펜타곤? 거기도 사람 사는 동네고, 다들 월급 받는 직장인들이죠. 굳이 무섭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야……. 역시! 그러고 보면 펜타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퇴근하고 집에 가면 마누라에게 바가지 긁히겠지?”
최치우는 펜타곤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그는 알려줄 수 있는 부분만 언급하며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어느새 시크한 표정을 짓던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태성 건설과 유림 증권의 후계자들도 최치우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테이블 중앙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동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치우는 너무 사기 캐릭터 같았다.
상식을 초월하는 능력으로 올림푸스를 일으킨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파티 같은 사교 모임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경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못 하는 게 뭐란 말이지…….’
임동혁은 최치우를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질투나 시기심이 드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런 감정 따위를 느낄 단계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
임동혁은 단 한 번도 최치우를 경쟁 상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진면목을 알아갈수록 괴물이라고 여길 따름이었다.
그저 신기했다.
도저히 풀 수 없는 미스테리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셈이다.
최치우가 입을 열 때마다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콧대 높기로 유명하다.
한류 스타에 아이돌에 재벌 2세에, 어디를 가도 주인공으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최치우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며 들러리가 되길 마다하지 않고 있다.
특히 트웬티즈의 나윤과 영화배우 김수연은 최치우를 노골적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임동혁은 묘한 기류를 금방 눈치챘다.
물론 당사자인 최치우도 두 명의 톱스타가 자신과 더 가까워지길 원하는 걸 모르지 않았다.
누구를 선택할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대화의 주제가 바뀔 때 쯤, 최치우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샴페인 말고, 나가서 칵테일 마실래요?”
최치우가 말을 건 상대는 다름 아닌 트웬티즈의 나윤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고, 반대로 영화배우 김수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중국에서 CF 한 편에 50억 원을 받는 한류 스타 김수연이 밀린 것이다.
최치우의 선택을 받은 나윤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안 그래도 좀 답답했어요.”
“그럼.”
최치우가 일어섰다.
그는 끝자리에 앉았기에 걸거칠 게 없었다.
테이블 안쪽에 앉아 있던 나윤은 미니스커트를 손으로 가리며 걸어 나왔다.
임동혁은 최치우를 바라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재밌게 놀라는 뜻이다.
최치우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임동혁은 모르지만, 그에게 이런 파티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현대에서는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무림에서 후기지수들과 대륙 최고의 미녀들이 모이는 회합을 수차례 경험했다.
아슬란 대륙에서는 왕실과 귀족들의 연회에 지겹도록 불려 나갔었다.
무대와 음악만 달라질 뿐, 각양각색의 파티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최치우였다.
쿵! 쿵! 쿵! 쿵-!
VIP룸 밖으로 나오니 비트가 고막을 때렸다.
음악이 크게 들리는 만큼, 1층에서 몸을 흔드는 사람들의 열기가 뜨거운 만큼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미 룸에서 샴페인을 많이 마셔서인지 나윤의 새하얀 얼굴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파티 오면 회사에서 뭐라고 하지 않아요?”
최치우는 그녀의 귓가 가까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음악 소리 때문에 귓속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속사요? 신인 시절에는 심했죠. 지금은 다른 멤버들도 공개 연애 중이고… 예전처럼 터치하진 않아요.”
나윤 역시 까치발을 들고 최치우의 귀 옆에서 입술을 달싹였다.
귓속말을 주고받으니 분위기가 금방 야릇해졌다.
“하긴, 트웬티즈는 나왔다 하면 1위하는 걸그룹 탑이니까. 회사에서 터치하긴 너무 컸죠.”
“겸손해야겠지만, 최 대표님 말이 맞아요.”
나윤이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걸그룹 중에서도 청순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새하얀 피부와 살짝 처진 눈, 그리고 긴 머리는 데뷔 후 몇 년이 지나도록 팬들을 몰고 다닌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보니 청순한 외모 안에 반전의 매력을 감추고 있었다.
최치우는 그녀와 함께 2층 바(bar)로 걸어갔다.
얼굴이 팔릴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 마음이 편했다.
적어도 이 파티 라운지, 특히 2층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보드카 오렌지로 두 잔, 부탁합니다.”
최치우는 마시기 쉽지만 독한 술을 주문했다.
샴페인에 익숙해졌던 몸에 보드카가 들어가면 취기가 훅 올라올 것이다.
나윤은 바텐더가 건넨 보드카 오렌지를 받고, 잔을 살짝 들었다.
“요즘 연예인들끼리 모여도 최 대표님 이야기를 엄청 많이 해요. 사실 나보다 두 살 어린데… 이렇게 대단한 분을 만나서 영광이에요.”
최치우는 나윤의 나이가 24살이란 걸 처음 알았다.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임동혁 이사님한테 고마울 일이 잘 없는데, 오늘은 고마워해야겠군요.”
“파티 때문에 나를 만나서? 맞죠?”
“왜 아니겠어요.”
잔을 부딪친 최치우는 보드카 오렌지를 원샷했다.
나윤도 마찬가지로 단숨에 잔을 비웠다.
오렌지 덕분에 목 넘김은 달콤해도 곧이어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올라왔다.
최치우는 잔을 들지 않은 손을 과감하게 움직였다.
나윤의 얇은 허리를 끌어당긴 것이다.
힘을 주지 않았기에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윤은 가만히 최치우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1층에서 DJ가 트는 음악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고, 최치우는 뭇 남성들이 선망하는 걸그룹 센터 나윤의 입술을 훔쳤다.
밤은 아직도 길게 남았다.
***
최치우는 거실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운기조식을 했다.
임동혁의 파티에서 과음을 했지만, 컨디션은 최고였다.
새벽쯤 내공을 일으켜 술기운을 태웠고, 운기조식까지 마치니 당장 한바탕 싸움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몸이 팔팔해졌다.
오랜만에 마음 편히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최치우는 미리 내려둔 커피향을 음미했다.
더 바랄 게 없는 아침이었다.
“으음…….”
그때 침실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최치우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여의도의 최고급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하지만 어젯밤을 함께 보낸 손님이 있었다.
그녀가 일어난 것 같았다.
“잘 잤어?”
최치우는 침실 문을 열고 나온 손님을 향해 아침 인사를 했다.
걸그룹 트웬티즈의 나윤은 부스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방금 막 일어났지만, 그녀의 미모는 여전했다.
침실에 걸려 있던 최치우의 하얀 셔츠만 걸치고 나온 나윤의 모습은 남자들의 로망 그 자체였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놓네요?”
“이제 그래도 되는 사이잖아.”
최치우는 가볍게 웃으며 계속 반말을 했다.
나이로 따지면 나윤이 두 살 연상이다.
물론 풍기는 분위기로 보면 최치우가 오빠라 해도 믿을 만했다.
둘은 임동혁의 파티에서 처음 만나 뜨거운 밤을 보냈고, 말보다 몸으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몸이 가까워지면 마음도 열리는 법이다.
나윤도 말끝에서 요 자를 빼버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그녀의 질문을 받은 최치우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짓으로 나윤을 불러 소파 옆자리에 앉게 만들었다.
“모닝커피, 어때?”
“좋아.”
최치우는 자신이 반쯤 마신 커피 잔을 그대로 건넸다.
여전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편한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나눠 마시는 두 사람은 영락없는 커플 같았다.
사실 최치우도 나윤이 싫지 않았다.
아직 그녀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여자 아이돌이라는 사실을 제외해도 매력이 넘친다.
이미 밤을 같이 보냈다고 해서 매몰차게 외면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최치우는 S대에서 만난 유은서를 떠올렸다.
이번 삶에서의 첫 번째 여자 친구인 그녀를 아직 잊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구를 만나도 유은서와 같은 이유로 헤어지게 될 것 같았다.
“연예인이니까 설명하기 쉽겠네. 내가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나도 웬만한 연예인보다 훨씬 바빠. 어제는 특별한 경우였고, 평소엔 잠시 짬을 내기도 쉽지 않아. 외국에 갈 일도 많고.”
“한류 스타랑 만난다고 생각할게. 그거 알아? 나 이때까지 연예인이랑 사귄 적 한 번도 없어. 나보다 바쁜 남자 싫거든.”
“그러니까, 괜히 어설프게 시작해서 힘들어지지 말고 편하게 만나면서 서로를 지켜보자.”
“쉽게 말하면 쿨하게 즐기자는 거잖아?”
“같은 말이라도 격조 있게 하면 더 좋겠지.”
최치우는 나윤의 물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당장 그녀와 사귀는 사이가 되는 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여자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윤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너, 나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 너보다 누나라구. 질척거리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내가 보고 싶어지면 연락해. 나도 너 생각날 때 전화할게.”
최치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뭇 남성들이 실물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난리인 트웬티즈의 나윤을 밤새도록 안았다.
그러고는 부담스러운 연인이 아닌, 언제든 편히 볼 수 있는 사이로 관계를 정리했다.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종종 벌어질지 모른다.
최치우는 지난 차원들에서 여색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쑥맥인 것도 아니었다.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게 최치우의 일관된 원칙이다.
자신만의 왕도(王道)를 걸어가는 최치우는 당분간 한 여자에게 마음을 전부 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억지로 금욕 생활을 할 필요도 없다.
화려한 금자탑을 쌓으며 질주하면 가만히 있어도 미녀들이 모여들 것이다.
최치우는 자신의 셔츠를 입은 나윤을 바라보며 화제를 바꿨다.
“아침 먹을래? 차려줄게.”
“요리도 할 줄 알아?”
“어머니가 주신 반찬이랑 찌개 있으니까, 데우기만 하는 거지.”
“너 점점 갖고 싶어져. 나중에 나한테 매달리게 만들 거야, 최치우.”
“하하! 열심히 노력해 봐.”
최치우는 웃음을 터트리며 나윤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아침을 먹기 전에 또 한 번 서로를 깊이 알아갈 것 같았다.
22살.
최치우는 또 다른 도전을 앞두고 모두가 꿈꾸는 순간을 현실에서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