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로열 로드>
“최 대표님, 기분 좋게 샴페인이나 한번 터트립시다.”
임동혁이 지나가는 말투로 최치우를 초대했다.
프로메테우스의 개발부터 출시 기자회견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건 최치우 혼자만이 아니다.
올림푸스에 합류한 직원들도 전쟁 같은 시간을 견뎌냈다.
물론 그만큼의 보상이 뒤따르지만, 한 번씩 숨을 돌리며 쉬어줄 필요가 있다.
특히 불이 난 전화통을 붙들고 시달린 홍보팀 직원들에게는 특히 휴식이 절실했다.
최치우는 직원들에게 특별 휴가를 선물했고, 업무에 공백이 없도록 백승수가 나서서 스케줄을 짰다.
S대의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서 백승수와 이시환을 데려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백승수는 최치우가 놓치기 쉬운 자질구레한 일들을 꼼꼼하게 챙기며 살림꾼 역할을 했다.
이시환은 조금만 더 경험을 쌓으면 최치우가 없는 곳에서 리더 역할을 맡겨도 될 만한 사람이다.
두 사람의 합류로 인해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직원들이 늘어남에도 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최치우는 임동혁의 파티에 백승수, 이시환, 그리고 리키와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
정작 초대를 받은 최치우는 무덤덤했지만 동행하게 된 세 명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티를 팍팍 냈다.
특히 이시환과 리키는 호흡이 아주 잘 맞았다.
약속 시간에 맞춰 옷을 쫙 빼입고 나타난 그들은 기대감을 숨기지 못했다.
“임 이사님이 여는 파티면 스케일이 장난 아니겠지? 어쩌면 연예인들도 올 거 같은데!”
“연예인? 무비 스타? 와우!”
“영화배우보단 아이돌이지! 리키는 누구 좋아하는 연예인 없어요?”
“나는… 소녀시대!”
“오, 역시 보는 눈이 있단 말이에요. 소녀시대도 왔으면 좋겠다.”
최치우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는 백승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저 두 사람은 떼놓고 오고 싶더라니. 선배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승수만은 평정을 지키고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 역시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 역시 말을 많이 하지 않을 뿐, 커다란 안경을 치켜올리며 잔뜩 상기된 얼굴로 실실거리고 있었다.
“아……. 진짜 소녀시대 보면 소원이 없겠다, 소원이 없겠어.”
“선배까지…….”
최치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빨리 걸어갔다.
하지만 세 사람의 추태 아닌 추태가 싫지만은 않았다.
이렇게라도 올림푸스의 핵심 멤버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약간의 부끄러움은 얼마든지 용납 가능하다.
“대충 다 온 것 같은데.”
최치우가 고개를 높이 들었다.
파티에서 술을 마실 게 뻔하기 때문에 일부러 차를 놔두고 왔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멤버들과 함께 움직이는 기분도 색달랐다.
몇몇 사람들이 최치우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 같았지만, 다른 멤버들이 자연스레 시선을 차단해 줬다.
마치 연예인과 매니저들이 지하철을 이용할 때 나오는 모습과 흡사했다.
그렇게 지하철역에서 나와 10분 정도 걸었고, 임동혁이 알려준 빌딩이 보이는 것 같았다.
“와-! 완전 높다.”
이시환이 탄성을 흘렸다.
잠실에 우뚝 선 LS 그룹의 123층 타워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임동혁은 파티 장소로 청담동에 들어선 최고급 호텔의 라운지를 통째로 빌렸다.
하루 대관료와 술, 음료, 음식 등 케이터링 비용을 합하면 억대를 훌쩍 넘긴다.
보통 강남에서는 돔 페리뇽 한 병에 70만 원, 아르망디 한 병에 200만 원 정도를 받는다.
임동혁은 아르망디만 100병을 진열해 놓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럼 다른 술을 제외하고 아르망디에만 2억을 쓰는 셈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식 밖의 파티다.
하지만 임동혁에게는 그리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벤트였다.
올림푸스 안에서는 최치우에게 구박을 받는 캐릭터지만, 그는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 한영 그룹의 후계자다.
백승수와 이시환도 최치우 덕분에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파티에 초대를 받고 나서야 새삼 임동혁이 재벌 2세라는 걸 체감했다.
“들어가죠.”
최치우는 넋 놓고 호텔을 둘러보는 일행들을 이끌었다.
이시환과 백승수는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올림푸스의 핵심 멤버지만, 아직 학생 티를 못 벗었다.
리키는 말할 것도 없이 갓 상경한 촌사람처럼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 아, 죄송합니다.”
라운지 입구에는 경호원과 안내 스텝들이 명단 체크를 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초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파티였다.
하지만 최치우 일행은 일일이 이름을 불러줄 필요가 없었다.
안내 스텝과 경호원들 모두 금방 최치우의 얼굴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임 이사님은 왔어요?”
“네? 아, 네. 본부장님께서는 2층 VIP룸에 계십니다. 대표님께서 오시면 모시라고 특별히 당부하셨습니다.”
입구를 총괄하는 여직원은 모델 뺨치는 기럭지와 미모를 자랑했다.
돈 쓰는데 일가견이 있는 임동혁은 작은 부분 하나도 허투루 선택하지 않았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안내를 받았다.
그와 함께 온 세 명도 프리 패스였다.
쿵! 쿵! 쿵! 쿵-!
흥겨운 음악이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이미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파티를 즐기는 중이었다.
복층으로 이뤄진 라운지는 최치우의 생각보다 더 넓었다.
“저거다!”
그때 이시환이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와우- 어메이징! 안 그래요, 사부?”
리키는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을 외치며 눈을 크게 떴다.
백승수도 놀란 표정이었다.
DJ가 음악을 트는 부스 옆으로 황금색 아르망디 100병이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무려 2억에 달하는 술이다.
아르망디 100병을 한 번에 보는 것 자체가 진풍경이었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남기고 싶은 광경이었으나, 임동혁의 파티에서는 사진을 찍는 게 금지돼 있다.
초호화 파티가 알려지면 괜한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고, 참가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올라가서 임 이사님부터 만나고, 그다음에는 알아서들 놉시다.”
최치우는 예상보다 더 화려한 파티 면면을 지켜보며 걸음을 옮겼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또 다른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파티에 초대를 받았어도 VIP룸이 있는 2층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물론 널리 알려진 최치우의 얼굴은 어디든 통과할 수 있는 입장권이나 다름없다.
임동혁은 혹시라도 경호원들이 최치우를 못 알아볼까 봐 미리 신신당부를 해놓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입구에서부터 여직원이 안내를 했다.
2층에 올라서니 1층 라운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위에서 아래로 각양각색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월감을 느끼기 딱 좋은 장소였다.
임동혁의 VIP룸을 제외하고도 2층에는 바(bar)를 포함해 춤을 추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승수 형, 저기 영화배우 이지연 맞죠?”
“그 옆에는 원오원 장다니엘이잖아. 임 이사님 클래스가 다르다, 진짜…….”
이시환과 백승수는 2층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연예인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굴만 봐도 알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2층에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들도 1층에서 올라온 최치우 일행을 의식했다.
누구든 오늘 파티 라운지의 2층에 올라왔다는 것은 자기 영역에서 최고로 잘나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안에 계십니다.”
여직원은 라운지를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는 VIP룸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상석에 앉아 있는 임동혁이었다.
룸 안에는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절반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연예인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임동혁의 재계 인맥인 것 같았다.
“어, 우리 최 대표님! 언제 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임동혁은 벌떡 일어서 최치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파티의 호스트이자 재계 서열 10위권의 후계자 임동혁으로부터 이런 환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설령 오성그룹의 이지용 부회장이 와도 지금처럼 대우를 받진 못할 것이다.
다들 최치우를 주목했고, 그의 얼굴을 알아본 이들은 일반인이 연예인을 봤을 때처럼 눈을 크게 떴다.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러나 인지도로 따지면 어느 한류 스타와 붙어도 꿇리지 않는 국민 영웅.
올림푸스의 최치우가 진짜 나타났기 때문이다.
“화려하네요. 아무튼, 돈 쓰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최치우는 평소처럼 임동혁을 대했다.
하지만 룸 안에 있던 사람들, 특히 연예인들은 최치우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임동혁에게 저런 식으로 말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임동혁은 시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우리 최 대표님도 돈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주는 것 같아 기쁩니다. 사실 맨해튼에서 갔던 파티보다 무조건 더 나으려고 신경 좀 썼습니다.”
“확실히 파티에서는 우리가 이긴 것 같군요.”
“하하하, 파티로 시작해서 전부 다 잡아먹고 싶습니다. 싸가지 없는 양놈들.”
임동혁이 거친 말을 쏟아냈다.
그 역시 맨해튼의 파티에서 느낀 바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최치우만 에릭 한센과 기 싸움을 한 게 아니었다.
임동혁은 한국의 대기업을 옆 동네 구멍가게처럼 여기던 뉴욕의 신흥 재벌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었다.
확실히 최치우와 함께하면서 임동혁의 스케일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뉴욕과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을 경쟁 상대로 여길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올림푸스와 함께 차원이 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
기업 규모만 따지면 올림푸스는 여전히 다윗이고, 한영 그룹은 골리앗이다.
하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린 것처럼, 올림푸스는 새로운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다.
임동혁이 한영 그룹에서 후계자로 확실히 인정을 받게 된 것도 최치우와 올림푸스 덕분이다.
그렇기에 아드레날린 중독으로 악명이 자자하던 임동혁은 최치우를 각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 오늘 같은 날에는 일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냥 놀아야지 않겠습니까. 시환 씨랑 승수 씨, 그리고 리키도 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얼굴입니다.”
임동혁이 최치우 뒤에 서 있는 셋을 가리켰다.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마음껏 놀아요. 밑에 있는 아르망디인가? 그거 한 10병씩 마시고.”
“이따 내가 멋지게 테이블마다 아르망디 다 돌리려 했는데, 그냥 시환 씨나 승수 씨가 해도 됩니다. 스텝에게 말해놓겠습니다.”
임동혁은 아르망디 100병을 이시환과 백승수에게 넘겼다.
2억 어치 술을 마치 소주 한 병 넘기듯 알아서 하라고 맡긴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그럼 재밌게 놀게요!”
“나중에 뵙겠습니다.”
“씨 유, 브라더스!”
기다렸다는 듯 세 사람이 룸 밖으로 나갔다.
임동혁 덕분에 오늘 밤을 활활 불태우며 스트레스도 날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표님은 여기 앉아서 조용히 마시는 게 더 편하지 않습니까?”
“그러죠. 밖은 너무 시끄러워서.”
최치우는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의 끝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VIP룸 안에 먼저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임동혁이 최치우를 정식으로 소개시켜 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파티에서 가장 핫한 사람은 다름 아닌 최치우다.
한류 스타, 아이돌, 재벌 2세 등은 프라이빗 파티나 사교 모임을 통해 끼리끼리 안면을 트고 지낸다.
반면 최치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뒤흔든 슈퍼 루키다.
한국 사회에서 만나기 힘든, 그야말로 상식의 틀을 파괴한 존재인 것이다.
“최 대표님, 여기 이쪽은 얼굴이 명함이라 소개 안 해도 누구인지 알 거라 생각합니다.”
임동혁은 연예인들을 먼저 가리켰다.
드라마와 극장을 지배하는 남자 배우 두 명과 인기 걸그룹 멤버 세 명, 그리고 CF 한 번에 수십억을 받는 여배우 두 명은 짐짓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최치우에게 시선이 향하는 걸 숨기지 못했다.
최치우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임동혁의 손님들이고, 편한 마음으로 온 파티다.
그도 파티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그리고 여기, 얼굴이 명함이 아닌 분들은 태성 건설과 유림 증권, 대신 투자신탁에서 오셨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올림푸스의 최치우 대표님입니다.”
최치우는 임동혁의 재계 인맥들과도 인사를 했다.
파티가 한창인 라운지의 공기는 뜨겁지만, VIP룸 안에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를 띄우는 건 임동혁의 전문이다.
최치우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자타공인 재계 최악의 미친놈으로 불렸었으니까.
타악-!
“자, 그럼 최 대표님도 왔고… 한번 죽어라 마셔들 봅시다!”
임동혁이 얼음 버킷에서 샴페인 한 병을 꺼냈다.
아르망디보다 더 귀한 러시아 황제의 샴페인, 루이 레더러 크리스탈이었다.
펑!
시원한 소리와 함께 샴페인이 열렸다.
독도, 미쓰릴과 펜타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최치우는 임동혁이 건네는 샴페인 한 잔을 마시며 가죽 소파에 몸을 묻었다.
방음벽을 거쳐 적당한 사운드로 들리는 음악도 마음에 들었다.
‘음?’
그때, 최치우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인기절정의 걸그룹, 트웬티즈의 나윤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최치우가 자신을 마주보자 아주 살짝 미소를 지었다.
최치우의 파티도 비로소 시작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