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71화 (71/243)

# 71

***

핀 조명이 한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단상에 선 최치우의 검은 눈동자가 좌중을 압도했다.

사회자의 소개를 받아 등장한 그는 아직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리에 앉은 200여 명의 기자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최치우를 주시했다.

혹시 그가 하는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까 봐 서로에게 말을 걸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넓은 컨벤션 홀이 최치우의 등장으로 일시에 조용해진 것이다.

이전까지의 순서는 오프닝에 불과했다.

국내외 기자들은 오직 최치우의 프리젠테이션을 보기 위해 여의도로 모였다.

과연 최치우가 어떤 발표를 할지, 다들 눈을 빛내며 정신을 집중했다.

“안녕하세요. 올림푸스의 대표, 최치우입니다.”

최치우는 짤막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어차피 여기 모인 기자들 중 최치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자리를 빛내줘서 감사하다는 등 허례허식을 차리지도 않았다.

쓸데없는 미사여구로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자기 페이스대로 발표를 시작했다.

“작년 올림푸스는 신금속을 찾아냈고, 펜타곤과 기술 제휴를 성사시켰습니다. 여전히 펜타곤에서는 연구 개발이 한창이며 올림푸스는 몇몇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최치우는 먼저 올림푸스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첫 번째 프로젝트의 현황을 알려줬다.

식사로 따지면 에피타이저 샐러드를 제공한 셈이다.

이제는 메인 디쉬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파스타가 등장할 차례다.

“그 후, 수많은 문의와 취재 요청이 있었지만 올림푸스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말이 아닌 결과로 증명하는 것이 기대와 성원을 보내준 국민들에게, 올림푸스의 팬들에게 진짜로 보답하는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올림푸스는 말이 아닌 결과로 증명한다.

내일 자 신문 헤드라인으로 뽑기 딱 좋은 멘트였다.

최치우는 기자들에게 적절한 먹잇감을 던져주며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두 번째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순간, 기자들은 일제히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최치우가 이 자리에서 올림푸스의 두 번째 프로젝트를 발표한다는 게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먼저 화면을 보시죠.”

최치우는 단산 중앙에서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걸이에 맞춰 대형 화면에 그래픽 이미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불과 문명을 선물합니다. 그 대가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며 고문을 받게 되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오염된 식수를 마셔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미개한 인간들에게 불을 선물했던 것처럼, 우리는 분쟁 지역의 사람들에게 오염된 식수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약을 선물해야 합니다.”

화면에는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그래픽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동시에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분쟁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 난민들이 겪는 참상이 재생됐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살펴볼까요? 국가의 지도자와 정치인들, 국제적인 부호들은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다니지만… 경호원이 많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화면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규모 경호단을 대동하고 다니는 유명 인사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나왔다.

최치우가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벌써 좌중을 쥐락펴락 자유자재로 갖고 놀고 있었다.

“그들도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유명하고 영향력이 클수록, 불시에 찾아오는 중독의 위협은 더 높아지겠죠. 게다가 언제 어디서 오염된 음식물을 먹고 위험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알의 해독제로 목숨을 구할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아무리 지독한 독을 먹었어도 최고의 의료진을 만나기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해독제가 있다면!”

“…….”

기자들 중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들 최치우의 다음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의 리더들은 중독의 위험에서 해방되게 될 겁니다. 적어도 독이나 오염으로 급사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아지겠죠. 올림푸스에서 개발한 프로메테우스 원, P-1은 해독제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습니다. 또 P-1의 성능을 조절하여 개발한 P-2는 가난한 사람들이 오염된 식수로 인해 사망하는 치사율을 급격히 떨어트릴 겁니다. P-1과 P-2, 올림푸스가 세상에 내놓은 두 번째 신화적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를 소개합니다!”

지금까지와 달리 다소 복잡한 수식과 전문 용어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프로메테우스의 성능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실험 결과였다.

“와아-!”

“이, 이건… 미친 거 아냐?”

“말도 안 되잖아.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 제약회사들 다 뒤집어 놓은 걸 들고 나오다니…….”

그제야 기자들이 참았던 감탄과 탄식을 여기저기서 터트렸다.

“What the… this is bloody amazing!(이게 무슨… 이건 진짜 미칠 정도로 놀라운 일이야!)”

“Unbelievable project, unbelievable corporation, and what an unbelievable CEO CHOI!(믿기 힘든 프로젝트, 믿기 힘든 회사, 그리고 진짜로 믿기 힘든 CEO 최치우잖아!)”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도 잔뜩 격앙된 반응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올림푸스는 불과 작년에 첫 번째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등장한 회사다.

첫 번째 프로젝트도 성공적이었는데 2년도 지나지 않아서 획기적인 해독제를 개발한 것이다.

신금속 발견과 해독제 개발.

첫 번째 프로젝트와 두 번째 프로젝트 사이의 갭이 너무 컸다.

대체 올림푸스는 뭐 하는 회사인지, 최치우의 한계는 무엇인지 짐작도 안 갈 정도였다.

최치우는 경악에 빠진 기자단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런 반응을 원했다.

이 순간을 위해 스스로 독이나 다름없는 해독제 샘플을 집어삼키며 인고의 시간을 겪었던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은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의심하는 이야기가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약효는 공식적인 인증을 받았고, 당장 시판해도 문제가 없다.

최치우는 술렁거리는 기자단을 향해 쐐기를 박았다.

“P-1의 초기 수량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따라서 올림푸스 내부의 검증 절차를 통과한 고객에게만 우선적으로 판매할 예정입니다. P-2를 분쟁 지역에 배포하는 로드맵은 차차 밝혀 나가겠습니다.”

쉽게 말해 돈이 있어도 아무에게나 프로메테우스를 팔지 않겠다는 뜻이다.

베테랑 기자들은 프로메테우스의 가격이 얼마나 천문학적으로 뛰어오를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올림푸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즉각적으로 세상을 바꾸진 않았다.

펜타곤에서 미쓰릴을 이용한 연구 개발이 끝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하지만 두 번째 프로젝트는 당장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됐다.

제약회사들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이 올림푸스의 프로메테우스만 쳐다보게 될 것이다.

22살의 최치우는 자신의 계획대로 세상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

“올림푸스 홍보팀 김지연 대리입니다. 네? 삼양건설 오 회장님 비서실이라구요? 아… 죄송합니다, P-1은 전화로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메일을 보내주시면 초도 물량을 배정할 예정입니다. 네? 오 회장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냐구요? 알고 있죠. 재계서열 20위 안에 드는 삼양건설 회장님이신데요. 그런데 외람되지만, 애플 아시죠? 애플의 티미 쿡 CEO도 메일로 접수하셨어요. 예외를 두지 말라는 저희 대표님 특별 지시가 있어서 다시 한번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김지연 대리는 전화를 끊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벌써 1주일이 넘도록 밀려드는 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프로메테우스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 오너, 국회의원, 장관 등 힘 좀 쓰고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프로메테우스를 구입하려 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그들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동아줄이니,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판매 물량을 철저히 통제하겠다는 최치우의 선언이 사람들을 더욱 안달 나게 만들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가격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 알에 억이 넘을 거라는 말이 무성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액수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는 굳이 프로메테우스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평범한 일상에서 중독의 위험을 느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올림푸스 홍보팀은 마치 CS팀이 된 것처럼 하루 종일 전화를 받아야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백승수가 적극적으로 건의해서 별도의 CS 대행업체를 고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푸스 사무실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최치우와 임동혁은 대표실 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더 심해집니다. 수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만.”

임동혁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최치우는 방금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지연 대리가 다시 전화를 받는 모습을 봤다.

“예상은 했지만, 열광적인 반응이군요. 특히 한국 재벌과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미친 듯이 프로메테우스를 사려고 할 줄은 몰랐습니다.”

“몰랐습니까? 우리나라 부자와 정치인들이 자기 몸 지키는 건 세계 제일입니다.”

임동혁이 자조적인 어조로 말하며 웃음을 흘렸다.

그 역시 우리나라 부자에 속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재벌과 정치인들의 속성을 잘 아는 것이다.

“이만하면 국내와 해외의 주요 인물들이 P-1을 사려고 충분히 줄을 섰고……. 슬슬 가격을 공개하고, 초기 구매자 선별에 들어갈 타이밍이네요.”

최치우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

전 세계의 거물들을 차고 넘치도록 안달이 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알고 있겠지만, 무작정 P-1을 찍어낼 순 없습니다. 허철후 어르신이 최대한 구하기 쉽고 저렴한 약재 위주로 세팅을 했어도 일반 양약처럼 대량 생산이 가능한 구조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더 비싸게 받아야지 않겠습니까.”

임동혁은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최치우를 쳐다봤다.

한계를 모르는 괴물이 과연 프로메테우스 한 알에 얼마의 가격을 책정할지 궁금했다.

“초도 물량은 50개로 한정하겠습니다. 이후 다시 50개를 풀고, 내년까지 총 300개 정도를 생산해서 판매할 예정입니다. 300개를 만든 다음에는 다시 약재를 구하면서 숨을 골라야죠.”

“우선은 딱 적당한 수량 같습니다. 그런데 가격은……?”

“임 이사님은 얼마를 예상했어요?”

최치우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임동혁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크게 질렀다.

“상식적이진 않지만, 우리 최 대표님이라면 개당 1억은 받겠다고 나설 것 같습니다. 음, 아닌가? 역시 해독제 한 알에 1억은 좀 너무한 겁니까?”

임동혁은 대답을 해놓고 지레 찔리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아무리 대단한 해독제라고 해도 한 알에 1억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글로벌 기업이니까, 이왕이면 달러로 가격을 정해야죠.”

“그럼……?”

“깔끔하게 100만 달러. 양보 할 생각은 없습니다.”

“100만 달러!”

임동혁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해독제 한 알에 100만 달러, 우리 돈 12억은 말이 안 되는 액수다.

“아니, 100만 달러라니…….”

“안 살 것 같죠? 장담하는데 50개의 초도 물량은 우리가 구매자를 선별해서 의사를 물어보면 하루 안에 다 팔릴 겁니다.”

최치우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임동혁 이상으로 상류층들이 자신의 목숨에 집착하는 본성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 차원을 거치며 귀족과 왕족들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위기의 순간, 프로메테우스는 결정적으로 생명을 구해줄 수 있다.

그렇다면 100만 달러는 절대 아까운 돈이 아니다.

“50개만 팔아도 600억 원을 벌게 되는 겁니다.”

계산을 마친 임동혁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600억 원은 시작에 불과하다.

최치우의 계획대로 내년까지 300개를 판매하면 무려 3,600억 원이다.

해독제는 만일을 대비한 것이기에 한번 구매한 사람이 다시 사는 일은 드물 게 뻔하다.

그렇기에 점차 판매는 줄어들겠지만, 적어도 300개는 팔아치울 자신이 있었다.

시간이 꽤 흘러도 꾸준히 수요는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프로메테우스의 특허권 자체가 값을 따지기 힘든 가치를 지녔다.

제약회사가 이만한 신약을 개발하면 주식이 미친 듯이 폭등한다.

올림푸스는 비상장 기업이지만, 그 가치는 물밑에서 펄펄 끓어오르며 폭발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내가 말한 대로 100만 달러에 50개를 순조롭게 팔아치우면, 그다음부터는 P-2를 만들어 분쟁 지역의 식수 오염을 해결하는 데 나서도 되겠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임동혁은 농담을 섞어 말했지만, 실현 불가능한 일은 전혀 아니었다.

최치우와 올림푸스가 P-1으로 번 돈을 투자해 분쟁 지역의 치사율을 떨어트리면 노벨 평화상을 받지 말라는 법도 없다.

최치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수상하죠? 재밌겠네요.”

이토록 대수롭지 않게 노벨상을 언급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최치우는 뉴욕에서 만났던 에릭 한센이 노르웨이 출신임을 기억했다.

그의 조국 노르웨이로부터 가장 영광스러운 상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었다.

‘곧 다시 만나자, 에릭 한센.’

22살의 나이로 세계를 움직이기 시작한 최치우는 천외천을 향해 비상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세상의 정점에서 진짜 괴물들과 치열한 싸움을 시작하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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