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70화 (70/243)

# 70

<프로메테우스>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올림푸스에서 대규모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문이었다.

원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는 여의도 증권가에서 가장 빠르게 돌아다닌다.

오죽하면 증권가 찌라시를 돈 주고 사서 받아보는 사람들도 있다.

올림푸스의 대표 최치우는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를 발표한 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 해가 바뀌고, 모교인 S대에 10억을 기부하며 올림푸스 재단을 만들 거라는 인터뷰를 몇몇 매체와 했다.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장학재단을 만들려는 최치우에게 환호했다.

안 그래도 국민적인 영웅으로 한번 인정을 받았으니 인기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열기와 관심이 완전히 식기 전, 올림푸스의 기자회견과 관련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의도된 스케줄이라면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밍이다.

여의도에는 근거 없는 소문도 찌라시가 되어 숱하게 돌아다닌다.

하지만 이번 소문은 정확했다.

실제로 올림푸스는 한여름 태양이 이글거리는 7월, 서여의도의 대형 컨벤션 홀을 빌렸다.

예전처럼 매체를 선별하지 않고, 관심을 보이는 모든 언론사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려는 것이다.

증권가 찌라시가 돌고나서 며칠이 지났다.

이제 올림푸스가 컨벤션 홀을 예약한 사실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알려졌다.

기자들은 물론이고, 국회의원부터 공무원들까지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했던 최치우가 과연 무슨 일로 대규모 기자회견을 여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어중간한 일을 발표하기 위해 올림푸스가 기자회견을 열 리는 없다.

올림푸스는 언론의 관심을 좇는 회사가 아니다.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로 모든 언론이 최치우만 쫓아다닐 때도 모든 인터뷰 제의를 거절했었다.

그랬던 최치우가 컨벤션 홀까지 예약하며 기자회견을 준비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기자들은 어마어마한 발표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국내 언론뿐 아니라 서울에 거주하는 외신 기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올림푸스는 내수용 기업이 아닌, 국제적 인지도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비상장 회사 중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이 올림푸스일지 모른다.

국민 호감도로 따지면 시가총액 압도적 1위를 자랑하는 오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오성전자나 현기자동차그룹보다 올림푸스가 더 나을 것이다.

“올림푸스에서 연다는 기자회견, 대체 뭘까?”

“약품 쪽이라는 찌라시가 있던데.”

“약품? 제약?”

“그렇다고 하더라고. 근데 정확히는 관계자 아니면 알 수가 없으니까.”

“펜타곤이랑 기술제휴 맺고 두 번째로 발표하는 프로젝트가 설마 제약 쪽이겠어? 무슨 만능 회사도 아니고. 이번에도 무기나 신소재 개발, 이런 분야겠지.”

“아무튼 펜타곤만큼 임팩트 있는 발표면……. 기업 가치는 하늘을 뚫고 올라가겠구만.”

“페이스북이나 알리바바가 상장하기 전 분위기로 가는 거지. 우리나라에도 이제 그만한 회사가 나올 때가 됐잖아?”

정장을 빼입고 여의도를 활보하는 금융권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최고 화제는 단연 올림푸스였다.

온라인 세계를 장악한 페이스북, 중국 대륙을 사로잡은 알리바바는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기업공개 절차를 밟았다.

두 회사의 주식은 뉴욕 증시를 마비시킬 정도였고, 지금은 모두가 알다시피 세계에서 손꼽히는 회사가 됐다.

올림푸스는 페이스북이나 알리바바 같은 초거대 글로벌 기업이 걸었던 길을 뒤따르고 있었다.

단순히 후발주자로 답습하는 게 아니다.

이제껏 어떤 회사도 도전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성과를 내는 중이다.

심지어 오성그룹의 후계자인 이지용 부회장도 임동혁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올림푸스의 지분을 사고 싶다고 말했었다.

지금 올림푸스의 지분을 확보해 놓으면, 설령 아무리 비싼 값을 치렀어도 상장이 됐을 때 어마무시한 이익을 얻을 게 뻔하다.

물론 회사 지분의 70%를 혼자 소유한 최치우는 0.1%도 팔 생각이 없었다.

그도 언젠가는 기업공개와 상장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때를 대비해 틈틈이 주식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올림푸스의 프로젝트들이 빛을 볼수록 지분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최치우는 자신을 믿었고, 현대 사회에 주식이라는 게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며 상장을 할 작정이었다.

누가 들으면 망상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치우는 올림푸스를 이끌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중이었다.

전무후무한 해독제인 프로메테우스를 발표하고 나면 아무도 그의 야망을 비웃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고, 위대한 리더들은 빈털터리 시절부터 원대한 야망을 품었다.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대한민국 회사 올림푸스가 전 세계 주식시장과 자본주의 역사를 새로 쓰는 대사건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수면 아래에서 모두 숨을 죽이며 올림푸스와 최치우를 주시하고 있었다.

올림푸스가 기자들을 초청한 약속의 날, 7월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을 따름이다.

***

해가 떴다.

최치우는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운기조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단전에 응축된 내공을 천천히 끌어내 온몸 구석구석 한 바퀴 돌린다.

이를 대주천이라고 부른다.

대주천을 마치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놀랍도록 가벼워진다.

잠을 많이 못 잤어도 피로는 남 이야기가 된다.

내공을 평생 수련한 무림 고수들은 100세가 넘어서 젊었을 때보다 더욱 정정했었다.

불노불사(不老不死)는 아니지만, 내공 덕에 세월을 거스른 체력과 정신력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에 환생을 한 최치우는 금강나한권을 중심으로 무공을 수련했다.

천하제일검 이태민으로 살았을 때처럼 손에 잡히는 무공을 모두 배우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대신 장점도 있었다.

정파무림의 종주인 소림사의 정통 비기를 집중적으로 수련한 덕분에 내공이 한층 심후해졌다.

덕분에 무공의 영향을 받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맑고 깊어진 것 같았다.

마공을 중점적으로 익히면 패악질을 부리기 쉽다.

반대로 정종무공, 그것도 소림이나 무당 같은 정통파 무공을 익히면 나날이 무게감이 생긴다.

지금의 최치우에게는 금강나한권의 영향을 받은 게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현실에서의 나이는 고작 22살이지만, 그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왠지 모를 무게감과 깊은 연륜을 절로 느끼기 때문이다.

올림푸스라는 배경이 없어도 최치우의 존재감은 점점 독보적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금강나한권의 기세만 최치우를 덮고 있는 게 아니다.

현대에서 그의 마법은 6서클이 됐지만, 동해 바다와 동화되며 마나의 본질을 체험했다.

그로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의 축복 또한 최치우를 감싸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치우는 누구를 만나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아우라를 뿜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에릭 한센처럼 세상을 한 손에 넣고 움직이는 오만방자한 인간을 만나도, 또는 수백 명의 기자들을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몇 시간 뒷면 최치우는 호기심을 가득 안고 몰려든 국내외 기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대규모 기자회견에서 그는 최소 100명이 넘는 베테랑 기자들을 압도하며 올림푸스가 개발한 해독제,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보통 분야를 막론하고 기업이 새 제품을 발표할 때는 대표가 인사말을 담당한다.

대신 제품에 대한 설명은 전문 프로덕트 매니저의 몫이다.

그러나 작고한 애플의 전 CEO인 스티브 잡스가 깔끔한 프리젠테이션으로 세계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이제는 대표들이 직접 제품에 대해 설명하며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게 낯설지 않아졌다.

최치우 역시 대표인 동시에 올림푸스의 비전과 계획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단순히 프로메테우스라는 해독제를 설명하고 말 게 아니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신금속을 발굴하고, 두 번째 프로젝트로는 해독제를 개발한 올림푸스의 방향성과 비전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

전 세계의 사람들을 올림푸스의 팬으로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인 셈이다.

“긴장할 필요 없어. 있는 그대로… 우리의 이야기를 하면 되니까.”

최치우는 나지막히 혼잣말을 읊조렸다.

억지로 꾸며낸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올림푸스가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어떤 그림을 그리며 프로메테우스를 개발했는지 최대한 솔직하게 털어놓을 작정이었다.

뜨거운 물로 몸을 씻고 나온 그는 정장을 갖춰 입었다.

사무실 근처로 독립한 그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펜트하우스에 입주했다.

당연히 옷장에도 아톨리니나 브리오니, 키톤 같은 최고급 정장이 진열돼 있었다.

최치우가 딱히 명품을 좋아해서 비싼 옷을 고른 것은 아니다.

롤스로이스 레이스를 덜컥 가져온 것처럼 그의 옷장도 임동혁의 작품이었다.

올림푸스의 대표답게 격식을 갖추는 자리에서는 최고의 모습을 보이라는 뜻이다.

정작 최치우는 임동혁이 꾸며놓은 옷장의 가치를 일일이 알지도 못한다.

방금 꺼내 입은 체사레 아톨리니의 네이비 체크 정장 한 벌 가격이 천만 원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저 체형에 잘 맞는 수트라 제법 비싸겠구나, 짐작만 할 따름이었다.

“오늘 전투도 멋지게 끝내고 와서 맥주 한잔해야지.”

무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는 피 튀기는 전투를 밥 먹듯 겪었다.

때로는 검을 휘둘렀고, 때로는 마법을 펼쳤으며 또 때로는 로봇을 조종했다.

하지만 현대의 전투는 다르다.

여전히 군대가 존재하고, 무력이 강한 나라가 패권을 유지하지만 실질적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건 아이디어와 자본이다.

현대에서의 전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감동시키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그저 상대를 죽이면 이기는 진짜 전투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셈이다.

최치우는 명검(名劍)이나 전설적인 아티팩트, 살상병기를 탑재한 로봇 대신 몸에 딱 붙는 나폴리 수트를 입었다.

현대의 남자에게는 정장이 곧 갑옷이다.

주차장으로 내려와서는 적토마 대신 롤스로이스 레이스를 탔다.

미리 예약해둔 대형 컨벤션 홀은 같은 여의도라 그리 멀지 않았다.

최치우는 제법 일찍 도착해 차를 세우고 기자회견장을 둘러보러 왔다.

올림푸스 직원들은 그보다 더 먼저 나와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오셨어요, 대표님?”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최치우를 본 직원들이 하나 둘 인사를 해왔다.

그들에게 일일이 미소로 화답한 최치우는 컨벤션 홀을 살펴봤다.

드넓은 객석이 곧 기자들로 꽉 차게 된다.

한국어와 영어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언어로 작성 될 기사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흥분시킬 것이다.

최치우는 두 눈을 감았다.

그는 기자회견을 상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콧대 높은 부자들이 앞장서서 프로메테우스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는 광경.

그렇게 P-1을 팔아 버는 막대한 수입으로 P-2를 만들어 분쟁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면 영웅이 될 수 있다.

사람을 죽여서 영웅이 된 적은 많지만, 사람을 살려서 영웅이 된 적은 없다.

“사람을 살리는 영웅…….”

최치우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낮은 목소리를 곱씹으며 감았던 눈을 떴다.

프로메테우스를 세상에 선보일 시간이 다가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