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69화 (69/243)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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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하지만 그렇게 요란하고 정신이 없지는 않았다.

미리 지정한 2개 신문사와 1개 방송국만 현장에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올림푸스 대표 최치우의 S대 특별장학금 전달식을 취재하러 왔다.

보통 성공한 선배들이 모교에 장학금을 쾌척하거나 재단을 세우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의 장학금 기탁은 취재 가치가 높았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카메라 앞에 나서지 않았던 최치우를 취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최치우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뉴스거리였다.

게다가 최치우는 졸업생도, 선배도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S대 1학년을 마치고 휴학했으며 나이도 이제 22살에 불과하다.

선배보다는 아직 까마득한 후배인데, 무려 10억이라는 거액을 모교에 기부한 것이다.

최치우는 단발성 장학금 기부로 생색만 낼 생각이 없었다.

그는 10억을 시작으로 차곡차곡 금액을 누적시켜 재단을 만들 계획이었다.

장학 재단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환생한 직후의 최치우처럼 어려운 형편의 후배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서다.

물론 이게 근본적인 이유라면, 보다 현실적인 계산도 존재한다.

장학금을 받고 성장한 인재들은 훗날 최치우의 자산이 될 것이다.

최치우는 벌써부터 미래의 인재들에게 투자하고 있었다.

싹수를 보이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건 일종의 투자다.

게다가 세금 부분에서도 혜택을 볼 수 있고, 올림푸스와 최치우의 이미지도 좋아진다.

그는 장학금을 전달하며 자신의 철학도 담아냈다.

단지 가정 형편이 불우하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장학금을 주도록 설정하지는 않았다.

최치우는 S대에 거액을 기부하며 자신이 원하는 장학금 지급 조건을 분명히 제시했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장학금은 비교적 공평하게, 그러나 찔끔찔끔 소액으로 주어졌다.

최고로 많이 줘봐야 학비를 전액 내주면서 용돈을 얹어주는 정도다.

그러나 최치우의 장학금은 달랐다.

전액 학비는 물론이고,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충분한 생활비도 주어진다.

그야말로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장학금이다.

대신 S대에 들어올 만큼 재능을 가지고, 장학금을 받는 내내 최선을 다해 공부할 각오를 한 학생들만 선별할 것이다.

최치우가 S대와 함께 만들어 나갈 올림푸스 장학재단은 가장 풍족한 동시에 가장 깐깐한 기준을 가진 장학금이 될 것 같았다.

“이것으로 본교 동문, 올림푸스 최치우 대표님의 장학금 전달식을 마치겠습니다. 올림푸스와 본교는 앞으로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올림푸스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더 많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히는 데 힘쓰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교무처 직원이 마무리 멘트를 했다.

S대 김동연 총장은 한 번 더 최치우와 악수를 하며 만면에 미소를 띠웠다.

그의 입장에선 최치우가 보물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졸업생도 아닌 휴학생이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거액의 장학금을 기부하며 총장의 체면을 확실히 살려줬기 때문이다.

사실 김동연 총장이 직접 도움을 준 부분은 딱히 없다.

그러나 최치우 덕분에 그의 업적도 쌓이게 됐고, 최치우 역시 장관급 인사인 김동연 총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나쁠 게 없었다.

“대표님, 질문 몇 가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장학금 전달식은 소강당에서 몇몇 귀빈들만 모은 채 비공개로 진행됐기에 번잡하지 않았다.

초청을 받은 2개 신문사와 1개 방송국 기자들은 최치우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천금처럼 여겼다.

최치우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초청을 한 세 곳의 언론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하다.

그들에게 취재 기회를 주고, 다시금 최치우 자신과 올림푸스를 향한 대중의 우호적 관심을 높일 타이밍이다.

이 모든 것은 최치우의 철저한 계획 아래 컨트롤되고 있다.

해독제를 발표하기에 앞서 분위기를 달궈놓으려는 것이다.

최치우는 언론을 다루고 이용하는 법까지 터득했다.

7번째 환생을 한 8번째 차원, 현대의 지구에서 살아가는 법을 확실하게 깨우친 것 같았다.

“먼저 장학금 기부와 장학재단 설립에 대한 플랜까지, 대단하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그런데 올림푸스는 작년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 이후 다른 소식이 없는데요, 혹시 추진 중인 사업이 있습니까?”

기자들의 관심은 올림푸스의 행보에 집중 돼 있었다.

장학금 전달과 관련된 내용은 행사에서 전부 들었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미소를 유지한 채 여유롭게 대답했다.

“다각도에서 여러 사업을 검토 중입니다.”

“혹시 공개하실 수 있는 사업이 있으실까요?”

“많은 국민들이 올림푸스에게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섣불리 말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신중하게 공개하겠습니다.”

원론적이지만 빈틈없는 답변이다.

의외로 대기업 CEO 중에서 언론 인 터뷰를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에 비해 최치우는 나이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능수능란하게 질문을 받아넘겼다.

주요 일간지와 공영 방송국에서 나온 베테랑 기자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펜타곤과의 제휴는 원활히 이뤄지고 있습니까?”

“신기술 개발이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1학년 때 참여했던 독도 해저 자원 개발도 뚜렷한 성과를 냈지만, 실제 효과를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펜타곤과의 제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펜타곤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이 개발될 때, 그 영광을 우리나라와 올림푸스도 함께 누릴 거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이렇게 멋있게 표현하기도 힘들 것이다.

똑같은 말이지만, 최치우는 듣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만들 줄 알았다.

영광의 순간을 우리나라도 함께 누릴 것이다.

이 한 문장으로 언론사의 헤드라인은 정해졌다.

신문 기사를 읽고, 방송 뉴스를 보는 국민들의 가슴도 덩달아 함께 뛸 것 같았다.

최치우는 이후로도 이어진 몇 가지 질문을 더 받아주고 움직였다.

그가 의도한 대로 해독제가 공개되기 전 분위기는 충분히 뜨겁게 달궈질 것이다.

더불어 최치우는 20대 초반부터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리더로 한층 호감도가 높아지게 됐다.

그는 당장을 충실하게 살아가지만, 동시에 먼 미래를 바라보며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렇게 군주의 길을 걸어본 것은 7번의 환생을 통틀어 처음이다.

최치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진심으로 현대에서의 인생을 즐기게 된 것 같았다.

***

“해독제의 이름을 정했어.”

최치우는 결정을 내리기 전부터 이리저리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는 해독제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 머릿속으로 숱한 후보들을 세우며 고민해 왔다.

그런데 드디어 입 밖으로 말을 꺼낸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여의도 사무실에는 이시환만 남아 있었다.

“진짜? 임 이사님이 엄청 궁금해 하던데, 너한테 말은 못 하고.”

이시환은 둘만 있기에 편하게 반말을 썼다.

최치우는 한결같이 밝은 에너지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이시환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회사 이름이 올림푸스잖아.”

“그치. 엄청 멋진 이름이지.”

“요즘 시대에는 브랜딩이 중요해. 일관된 컨셉과 이미지로 우리 회사를 전 세계에 각인시키면, 뭘 해도 응원해 줄 팬덤이 생기게 될 거야.”

최치우는 이시환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자원공학을 전공했다.

비록 학부 1학년만 마치고 휴학을 했지만, 어쨌거나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공부한 적은 아예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딩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일할 때, 그리고 무공과 마법을 수련할 때 빼고는 어마어마한 양의 웹 서핑을 한다.

누가 보면 인터넷 중독자로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단순히 노는 게 아니었다.

구글과 웹의 바다를 서핑하며 전 세계의 수많은 지식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것이다.

환생을 하자마자 현대에 대해 알기 위해 시작했던 웹 서핑은 최치우를 박학다식한 만물박사로 만들어놓았다.

그는 이번 삶에서 세상을 바꾸라는 아바타의 미션을 수동적으로 이뤄가고 있지 않았다.

현대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자신의 존재가 소멸되어도 영원히 기억될 만큼의 임팩트를 남기고 싶었다.

문지유에게 전생 스토리를 제공하며 웹툰을 그리게 하는 것도 영원한 소멸의 가능성을 앞두고 자신의 존재, 자신의 영혼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올림푸스를 영원불멸의 기업으로 남기기 위해선 단순히 세상에 기여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독감 백신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잊혀지지만, 비틀즈는 수백년이 흘러도 기억된다.

한 시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팬덤을 형성해야만 역사의 흐름에 밀려나지 않고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시환은 최치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가 이해하기엔 최치우는 너무 멀고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다만 이시환도 최치우가 철저한 브랜딩을 통해 올림푸스를 더욱 빛내려 한다는 의도는 알아들었다.

“프로메테우스.”

“어? 그거 신화에 나오는…….”

“맞아.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최초로 불과 문명을 선물했고, 그 벌로 제우스에게 심판을 당했지.”

“아침에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고, 저녁이 되면 다시 간이 멀쩡해지고. 그 신화 맞지?”

“형, 제법인데.”

이시환은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

최치우의 칭찬을 들은 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중에 헤라클래스가 독수리를 죽여서 해방되잖아. 아무튼 인간들에게는 엄청 고마운 신이고. 그런데 그 프로메테우스가… 우리의 해독제 이름이 되는 거지?”

“형은 모르겠지만, 나도 해독제를 개발하면서 매일 독수리에 쪼이는 것 같은 고통을 참았어. 그렇게 만든 해독제를 부자들에게 비싸게 팔아서 가난한 지역의 오염된 식수를 정화하는 데 쓸 거고. 이만하면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을 붙여도 부끄럽지 않을 거 같아.”

최치우는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뜻을 설명했다.

이시환도 납득한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올림푸스와 프로메테우스. 세계인 모두가 아는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아귀가 딱 맞아 떨어져. 그냥 해독제를 개발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살리는 거야.”

“스토리?”

“말했잖아. 브랜딩은 곧 스토리야. 사람들은 우리가 개발한 해독제를 언급하며 그리스 신화를 떠올리게 되고, 다음에는 또 어떤 프로젝트로 신화와 연결 고리를 만들지 기대하겠지.”

“이야……. 최치우! 너 진짜 머릿속에 뭐가 있어? 그렇게 죽어라 일만 하면서 언제 또 이런 큰 그림을 그리는 거냐.”

이시환이 탄성을 터트렸다.

사천당문의 해독제를 현대에 맞춰 개발한 프로메테우스는 분명 화제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프로메테우스를 구매할 필요는 없다.

독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거물이나 부호들만 엄청난 값을 치르고 구매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최치우는 그리스 신화의 스토리를 담아 평범한 사람들도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올림푸스, 프로메테우스로 이어진 연결 고리는 전 세계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게 분명했다.

언젠가는 올림푸스에서 제우스나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않을까 지구 곳곳에서 화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개발한 해독제는 프로메테우스 원, 줄여서 P-1. 그리고 P-1의 효능을 다운그레이드 시켜 가난한 지역의 식수 오염으로 인한 중독을 막아줄 약은 P-2.”

“피원, 피투. 느낌이 확 온다, 치우야.”

“실제로 P-1과 P-2를 먹을 일이 없는 사람들마저 열광시키고 흥분시킬 테니까 두고 봐.”

원래 두고 보자는 사람 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

하지만 최치우는 달랐다.

최초로 해독제의 이름과 뜻을 들은 이시환은 팔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세계사에 길이 남을 해독제의 이름이 지어진 첫 순간을 함께한 것이다.

사천당문의 이름 대신 신화를 현실로 불러 온 최치우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전 세계를 올림푸스와 최치우의 팬으로 만들 시간이 다가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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