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68화 (68/243)

# 68

<블랙홀>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났던 마스터는 꽤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었다.

사실 현실에서의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시 최치우는 갓 환생한 처지였고, 이 세상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게다가 여러 차원을 거치며 얻은 능력을 제대로 회복하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베일에 싸인 파이트 클럽의 마스터를 만만치 않은 인물로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마스터는 호락호락한 인간은 아니다.

법의 촘촘한 그물을 피해 거물급 스폰서들을 모으고, 무제한 룰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파이트 클럽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평범한 일은 절대 아니다.

세계적 명망가로 우뚝 선 지금의 최치우도 마스터의 저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3년 전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을 수는 없다.

그때는 마스터 옆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경호원도 제법 강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최치우가 마음만 먹으면 눈 한 번 깜빡하기 전에 쓰러트릴 수 있다.

절정에 다다른 금강나한권이나 6서클의 마법을 일반인에게 펼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최치우가 마스터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처럼 마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었다.

마스터가 기억하는 최치우는 어린 괴물이었다.

데뷔전에서 칠성파 행동대장을 쓰러트리더니, 갑자기 나타나 한국 최강 리키 김을 이겼다.

그러고는 스폰서 중 가장 미친놈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한영 그룹 임동혁을 만났다.

마스터는 그 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뉴스를 보고 알게 됐다.

최치우는 한영 그룹의 투자를 받아 독도 해저 자원 개발을 성사시켰고,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게 끝이 아니다.

올림푸스라는 회사를 세우더니, 갑자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스타가 됐다.

펜타곤이라는, 상상도 못 할 상대와 기술 제휴를 맺으며 혜성처럼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한 것이다.

한때 온종일 매스컴을 장식하던 최치우를 바라보며 마스터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싹수를 알아보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엄청난 인물이 될 줄은 몰랐던 까닭이다.

“부탁한 준비는 다 끝났겠죠?”

최치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을 했다.

그는 임동혁을 통해 마스터를 찾아내고, 요구 사항을 전달해 뒀다.

오늘은 대답을 들을 시간이다.

만약 마스터의 준비가 미흡하다면, 최치우가 그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마스터는 깍듯한 존댓말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기민하고 영악한 사람이다.

그의 그러한 성향이 파이트 클럽을 오래도록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임동혁은 파이트 클럽에서 손꼽히는 주요 스폰서다.

그리고 눈앞에 앉아 있는 최치우는 임동혁의 단순한 동업자가 아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최치우가 지시에 가까운 부탁을 임동혁에게 하고, 임동혁은 그 ‘부탁’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 같았다.

마스터는 파이트 클럽의 신인 괴물 파이터 최강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대신 올림푸스의 대표 최치우만 남겼다.

최치우는 180도 달라진 마스터의 태도 변화를 비웃지 않았다.

누구나 각각의 생존 방식이 있는 법이다.

마스터에게는 마스터의 생존법이 있다.

그 자체를 비웃을 필요는 없다.

최치우는 마스터와 그의 경호원을 번갈아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임상 실험을 위해 꽤 많은 숫자의 지원자가 필요합니다. 물론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지만, 수를 맞추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원하시는 숫자의 실험 지원자를 확보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파이트 클럽에 잔뜩 몰려 있다는 것…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죠. 거긴 그런 곳이니까.”

최치우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파이트 클럽에서 두 차례나 싸움을 했었기 때문이다.

진짜 목적이 따로 있었어도 최강이란 이름을 걸고 싸웠던 사실은 변함없다.

최치우는 파이트 클럽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어둠의 세계에서 피 흘리며 싸워야만 하는 이유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

물론 최치우는 처음부터 그곳에 머물 사람이 아니었다.

파이트 클럽에 발을 내딛은 지 고작 2년도 지나지 않아 파이트 클럽의 마스터를 하수인처럼 부리게 됐다.

“법적인 문제가 없게끔 처리를 깔끔하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법무 팀도 같이 검토를 하겠지만, 중간 소개료는 충분히 책정했으니 혹시라도 장난칠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감히 어떤 분들의 일인데 장난을 치겠습니까.”

마스터가 두 손을 내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그는 최치우의 신뢰를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최치우는 마스터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필요한 만큼 불러도 좋아요. 대신 깔끔하고 문제없는 일 처리를 원합니다. 내게 중요한 건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입니다. 몇 푼의 돈이 아니라.”

“저희 파이트 클럽의 스폰서로 임동혁 본부장님을 오래 모셔왔습니다. 비록 어둠의 세계에서 피값을 버는 놈이지만, 그동안 본부장님을 비롯한 스폰서분들을 실망시킨 적은 없습니다. 이번에도 반드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최치우는 마스터가 딴짓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최치우로부터 믿음을 얻을 필요가 있다는 걸 알 만큼 똑똑한 사람이다.

만약 최치우와 임동혁이 분노하면 파이트 클럽의 존재를 지워 버릴 수도 있다.

반면 최치우를 만족시키면 우선 엄청난 액수의 돈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파이트머니 아니고는 마땅한 수입이 없는 선수들도 임상 실험으로 돈을 벌 수 있다.

마스터는 선수들에게 고액의 알바를 소개해준 생색을 내면서 파이트 클럽 관리에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꿩 먹고 알 먹는 일석이조의 일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럼 다음에는 임상 실험에 자원한 선수들, 아니 지원자들과 함께 만나죠.”

“알겠습니다, 대표님.”

마스터가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대표실 밖으로 나가고, 바톤 터치를 하듯 임동혁이 들어왔다.

임동혁은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땠습니까? 선수와 마스터였다가 이제는 지시를 내리는 관계로 다시 만난 기분이 궁금합니다.”

그는 최치우가 최강이라는 이름으로 파이트 클럽에서 뛰었던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마스터와의 재회를 재밌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치우는 임동혁의 장난에 말려들지 않고 핀잔을 줬다.

“그저 상황이 바뀌었을 뿐, 특별한 기분이 들 이유가 뭐 있겠어요. 애들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최 대표님, 지금 순식간에 나를 애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군요.”

“하여간… 은근히 입담이 강해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나저나 일은 맡기기로 했습니까?”

“기회를 줬으니 지켜보려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손쓰기 귀찮은 일들이 있을 때, 파이트 클럽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치우의 이야기를 들은 임동혁이 안색을 바꾸며 대답했다.

그는 파이트 클럽에 대해 최치우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파이트 클럽,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조직입니다. 마스터에게 듣기로 일본, 미국, 유럽 각 국에도 파이트 클럽이 운영된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필요해서 쓰지만, 너무 깊게 관여하는 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불법 격투기 조직이라… 더 재밌는데요.”

최치우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임동혁의 말을 들으니 없던 흥미가 생겨날 것 같았다.

그런 최치우를 보며 임동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잠시 깜박했습니다. 우리 최 대표님이 나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아무튼 당장은 임상 실험에 집중하죠. 마스터가 자기 역할을 잘해내면, 그 뒷일은 다음에 생각하는 걸로.”

최치우는 간단하게 현안을 정리했다.

하루 빨리 2차 임상 실험을 마무리 짓고, 해독제를 상용화시키는 게 당면 과제다.

이미 최치우 스스로 1차 임상 실험을 통해 안정성을 확인했다.

그렇기에 2차 실험에서도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실험이 진행되면 올해 안에 해독제를 발표할 수 있다.

이제는 사천당문의 해독제에 어떤 이름을 붙여서 세상에 공개할지 고민할 시기가 됐다.

최치우는 현대의 역사에 전무후무한 해독제를 선보일 날을 기대하며 즐거운 상상을 했다.

***

반가운 얼굴이 올림푸스 사무실을 찾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온 그는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감탄을 흘렸다.

“와우, 원더풀! 아웃 스탠딩 뷰!”

버터 냄새가 진하게 느껴지는 발음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레게 머리를 한 남자는 올림푸스 사무실 좌우로 펼쳐진 한강과 여의도 전망에 넋을 잃었다.

한때 비공식 한국 최강이었던 남자, 리키 김을 알고 있는 직원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함께 일본에 갔었던 이시환과 백승수는 리키가 사고뭉치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리키가 무슨 행동을 하든 신경도 안 쓰고 자기 일에 열중했다.

하지만 리키를 처음 보는 올림푸스의 신입 직원들은 경계심을 감추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키와 덩치의 혼혈 남성, 그것도 레게 머리에 걸레처럼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사람이 건들건들거리는 광경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특히 여직원들은 리키를 약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그때 최치우가 대표실 문을 열고 나왔다.

“리키.”

“헤이- 사부! 롱 타임 노 씨!”

최치우를 발견한 리키가 활짝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두 팔을 쫙 펼치고 최치우를 포옹하려 했다.

하지만 최치우는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어 리키를 제지했다.

자연스레 리키를 멈춰 세운 그는 악수를 하는 것으로 재회의 반가움을 표했다.

최치우는 너무도 쉽게 리키를 컨트롤하고 있었다.

“수련은 끝난 거죠?”

“자신 있습니다, 사부!”

리키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는 최치우로부터 금강나한권의 초식을 전수받았다.

내공이 없기에 무공의 온전한 위력을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초식만으로도 리키에게는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됐다.

원래도 평범한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던 리키는 폐관 수련을 통해 한층 더 강해졌다.

아마 특수부대 요원 몇 명이 달려들어도 맨몸으로 제압이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최치우처럼 이질적이고 독보적인 존재를 제외하면 사실상 인류에서 리키와 맨몸으로 붙어 이길 만한 사람은 거의 없는 셈이다.

“제대로 수련을 했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텐데, 그렇지 않습니까?”

최치우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리키는 그의 의도를 안다는 듯 하얀 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강나한권 초식을 수련하며 한계를 넘어선 리키는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최치우는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위해 리키를 대표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강함을 체험하고 싶다면 계속 싸워도 됩니다. 한국에는 적수가 없을 테니 미국이나 중국으로 가서 강자를 찾아도 되고.”

“오, 노우……. 사부, 이제 무의미한 싸움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럼 싸움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한 일에 도전하는 건 어떻습니까?”

“사부, 길을 알려주면 따라가겠습니다.”

리키는 최치우를 완전히 믿고 있었다.

최초로 그를 쓰러트린 장본인이고, 경이적인 무공 초식까지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말로만 ‘사부’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부터 최치우를 ‘사부’로 여기고 있었다.

“올림푸스에서 나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개척합시다. 그게 리키한테도 가장 어려운 도전이 될 겁니다.”

“그런데 사부, 나 아무것도 모르는데 도움이 되겠습니까?”

“내 말만 믿고 따라오면 됩니다. 가끔 심심하면 내가 스파링해 줄게요.”

“오우, 굿! 무조건 합니다, 무조건!”

최치우가 스파링을 해준다는 말에 리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리키는 천생 무인이다.

세상에 얼마 없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의 비무는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어차피 그는 올림푸스 사무실에 왔을 때부터 최치우를 따르기로 결심한 바였다.

오직 최치우만이 자신에게 한계를 뛰어넘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최치우에게도 리키의 올림푸스 합류는 천군만마와 같다.

매번 위험한 지역에 최치우가 따라갈 수는 없다.

이시환이나 백승수, 또는 다른 직원들을 파견 보낼 때 리키를 동행시키면 무척 든든할 것이다.

올림푸스가 커질수록, 관여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질수록 리키의 존재는 빛을 발할 게 분명했다.

“오늘 저녁에 체육관 가서 수련의 성과를 체크해 봅시다.”

“스파링?”

“안 봐줄 겁니다.”

“오우, 예스!”

리키는 최치우와 스파링을 할 생각에 들떴다.

물론 그는 최치우가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인간의 상식을 초월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나 설령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더라도 최치우에게 예전보다 강해졌다는 인정을 받으면 기쁠 것이다.

이로써 최치우는 어둠 속 최강자 리키 김을 확실한 동료로 얻었다.

최치우와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언젠가 그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돼 있다.

블랙홀처럼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최치우는 이전의 삶과 다른, 군주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올림푸스 군단 또한 내실을 다지며 점점 강성해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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