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67화 (67/243)

# 67

***

‘이거다!’

최치우가 눈을 부릅떴다.

잠깐의 고통을 참아낸 그의 눈동자에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그는 오랜 기간 던전을 탐험하다 마침내 전설의 무기를 발견한 헌터가 된 기분이었다.

사천당문의 해독제 샘플이 최치우가 원하는 강도로 정확히 작용한 것이다.

샘플 NO.44에 이르러 드디어 해답을 찾은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올림푸스가 입주한 44층과 같은 44번째 샘플에서 느낌이 왔다.

징크스를 극복하겠다는 최치우의 다짐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후우우-.”

최치우는 길게 숨을 내쉬며 마비 상태에 빠졌던 몸을 진정시켰다.

혈도가 마비되는 강도를 포함해 통증과 지속 시간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무림에서 사천당문의 해독제를 복용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전반적인 약효는 사천당문의 해독제 원형보다 약하게 설정됐다.

평생 무공을 수련한 무림인들에게 주로 쓰였던 해독제와 현대의 일반인들에게 쓰일 해독제의 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해독제를 먹고 먼저 쓰러지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여러 차원을 경험해본 최치우는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순수 계산 능력은 로봇 군단으로 전쟁을 하는 기계화 차원이 가장 높다.

뼈대와 근육은 무림이 제일이고, 마나를 느끼는 자연친화력은 아슬란 대륙을 따라갈 차원이 없다.

최치우도 처음에는 각 차원마다 다른 사람들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차원에 환생하자마자 그 세계와 인류의 특성을 헤아리게 됐다.

그를 만족시킨 샘플 NO.44는 이처럼 복잡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최치우는 만독불침의 권능이 몸을 회복시킨 걸 느꼈다.

이윽고 밝은 얼굴로 전화를 걸었다.

“어르신.”

그가 성공의 기쁨을 느끼자마자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허철후였다.

최치우의 요청대로 해독제를 재구성한 허철후는 누구보다 간절히 성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최치우와 허철후는 서로 부담이 될까봐 연락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 놓고 기쁨을 나눠도 될 것 같았다.

“자네인가?”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그게 정말이야?”

“어르신과 제가 함께 만든 해독제로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암! 자네라면 귀히 쓸 걸세. 내 모자란 힘을 보탠 보람을 느껴주게 할 거라 믿네.”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오늘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임상 실험을 거쳐야 하니까요.”

“나야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 결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도 되는 것이겠지?”

“네.”

최치우는 짧지만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그것으로 됐다.

산신령 허철후는 오랜만에 두 다리를 쭉 뻗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최치우가 한 번 말한 내용은 반드시 지키는 남자라는 걸 믿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은 최치우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당장 제약회사에 연락을 취해 일정을 서두를 작정이다.

샘플 NO.44를 기반으로 다시 한번 정밀한 안정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 다음 순서로 일반인들에게 임상 실험을 할 수 있다.

일반인 임상 실험이 무사히 끝나면 비로소 꿈에 그리던 상용화다.

그때부터는 사천당문의 해독제가 현대의 지구를 살아가는 거물과 부호들의 필수품이 될 것이다.

원래 사람은 가진 게 많을수록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부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중독의 위험에서 병원까지 갈 시간을 벌어주는 해독제를 구입할 게 분명하다.

설령 만일을 대비한 약값으로 억만금을 치르고서라도 말이다.

최치우는 그들에게서 번 돈으로 한층 보편적인 해독제를 만들어 제3세계에 제공할 계획이었다.

부자들의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지구라는 차원에서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수단 중 하나다.

최치우는 자신이 발 딛은 차원에 대해 파악을 마쳤다.

해독제 개발은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올림푸스의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 관문의 끝자락이 최치우의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

최치우는 오랜만에 모교를 찾았다.

S대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신입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처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롤스로이스를 지하 주차장에 세우고, 캠퍼스 위로 올라오자마자 여기저기서 그를 알아봤다.

“어? 저 사람 최치우 아냐?”

“설마… 가 아니라 맞는 거 같은데! 우리 학교 출신이잖아!”

“야, 대박이다! 진짜 올림푸스 대표 최치우네!”

수군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인기 연예인이 뜬금없이 나타났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S대 학생들은 최치우를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강렬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는 하버드나 스탠포드를 때려치우고 창업을 해 전설이 된 사람들의 무용담이 흔하다.

그에 비해 S대는 얌전한 모범생만 배출한다며 비교당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최치우가 휴학을 한 다음 올림푸스를 만들어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동안 S대 역사에 있어 가장 부족했던 부분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셈이었다.

특히 공대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최치우는 완벽한 롤 모델이 됐다.

기껏 공대를 나오고도 현실적인 이유로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

아니면 국책연구소나 대기업 연구소에 취직하는 게 그나마 잘 풀린 케이스다.

그들에게 최치우는 희망을 선사했다.

창업으로 세계에서 우뚝 설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됐다.

당연히 아무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롤 모델이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은 천지차이다.

최치우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S대 공대생들에게 살아 있는 전설이자 희망으로 남을 것 같았다.

“치우야, 안녕.”

“어? 안녕!”

간간히 최치우와 함께 강의를 듣던 동기들도 보였다.

최치우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학교 밖으로 나가서 엄청난 성공을 했지만, 목에 깁스를 하고 다닐 필요는 없다.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낸 동기들에게는 여전히 편한 친구로 남고 싶었다.

다른 학생들은 최치우와 인사를 나눈 에너지자원공학과 동기들을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올림푸스의 대표 최치우와 친구라는 것, 그보다 더 빵빵한 인맥을 찾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자신에게 따라붙은 선망의 시선들을 헤치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당연히 김도현 교수를 만나기 위해 S대로 온 것이다.

“교수님.”

“치우 군, 오랜만이에요.”

연구실에 앉아 있던 김도현 교수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최치우는 학교를 떠나고, 올림푸스를 키우는 데 집중하면서 꽤 오래 김도현 교수를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김도현 교수에게 있어 최치우는 학자로서 발견한 세계의 미스테리를 풀어낼 유일한 주인공이다.

최치우는 김도현 교수를 멘토로 여기고 있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반가움을 느끼며 악수를 주고받았다.

이제는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악수가 아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함께 개척하는 동료로서 손을 맞잡는 것이다.

“20분 뒤에 총장님께서 오실 거예요.”

“그 전에 교수님과 하고픈 이야기가 많습니다.”

“나도 그래요.”

김도현과 최치우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오늘은 S대 총장을 만나기 위해 성사된 자리였다.

최치우는 국내 최고의 명문대인 S대의 총장이 만나고 싶어 애쓰는 인물이 됐다.

국제적 위상으로 따지면 S대 총장보다 최치우의 명성이 훨씬 더 높다.

S대 총장은 아마 최치우에게 여러 특혜를 제시할 것 같았다.

특별 규정을 만들어 최치우가 S대를 그만두지 않고 졸업할 수 있게 배려해 줄 확률이 높았다.

어떻게든 최치우를 S대 사람으로 붙잡는 게 총장의 미션이다.

대신 최치우는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신설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독제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총장이 오면 올림푸스의 프로젝트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하나같이 극비사항이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김도현 교수의 눈동자를 마주봤다.

“1차 임상 실험이 끝났고, MOU를 맺은 제약회사에서 안정화를 거친 후 최종 임상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하지만 2차 임상이 더더욱 어려울 텐데……. 우선 중독이 되어야 해독제의 효능을 입증할 수 있잖아요.”

김도현 교수가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치우는 스스로 실험을 하며 해독제의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했다.

하지만 일반인 실험 대상자를 중독시키고, 해독제를 투여해 효과를 봐야만 상용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중독과 해독 실험을 자처할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최치우의 도전으로 개발 기간을 단축시켰지만, 2차 임상이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의 얼굴에서는 여유가 묻어나왔다.

분명 확실한 정답을 찾은 기색이었다.

“뭔가요, 치우 군. 해법이 있다는 얼굴이네요.”

최치우를 오래 지켜본 김도현은 그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파이트 클럽이란 곳이 있습니다, 교수님.”

최치우는 뜬금없이 파이트 클럽을 언급했다.

거액의 대전료를 받고 스폰서들 앞에서 싸우는 비밀스러운 공간.

독도 해저 자원 개발에 돌입하기 전, 최치우는 파이트 클럽을 통해 돈을 벌고 임동혁을 만났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최강자인 리키도 파이트 클럽에서 부딪친 후 최치우의 제자 아닌 제자가 됐다.

파이트 클럽에는 정상적인 인생을 포기한, 돈만 주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목숨을 걸고 무제한 룰로 싸우는 파이트 클럽 선수들이 해독제 실험을 무서워할 리 없다.

최치우는 파이트 클럽을 이용해 해독제의 2차 임상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미 임동혁을 통해 파이트 클럽 마스터와 연락을 취했다.

바로 내일, 고3이던 최치우를 스카웃했던 파이트 클럽 마스터를 만날 예정이다.

최치우는 이런 식으로 파이트 클럽의 마스터와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었다.

물론 파이트 클럽의 마스터는 더더욱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이 있다니……. 놀랍군요, 놀라워요.”

파이트 클럽에 대해 설명을 들은 김도현 교수가 탄식을 흘렸다.

최치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원래 사람들이 아는 세상보다 모르는 세상이 훨씬 더 넓은 법이죠.”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올림푸스 역시 사람들이 모르는 세상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도현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일반인들이 꺼릴 수 있는 실험 대상자를 모집하는 일이니…… 파이트 클럽이든 무엇이든 큰 문제는 없겠지요.”

“네.”

최치우는 이미 법적인 자문을 받았다.

파이트 클럽은 불법적인 단체다.

실상이 알려지면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파이트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을 임상 실험 대상으로 활용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해독제 개발을 비롯해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 공식적으로 장관급인 S대 총장이 들어와 최치우에게 온갖 특혜를 주며 학교에 남아달라고 부탁할 시간이 됐다.

완전히 달라진 인생이란 이런 것일까.

최치우는 처음 환생했을 때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하늘 위의 하늘에서 세계의 정점을 놓고 다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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