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66화 (66/243)

# 66

<독이 든 성배>

“괜찮은 거 맞습니까?”

“한번 보세요. 괜찮은지, 아닌지.”

평소답지 않게 임동혁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심하게 대답한 최치우는 작은 알약을 삼키기 직전이었다.

사천당문의 해독제를 산신령 허철후가 현대에 맞게 수정했고, 올림푸스와 MOU를 맺은 제약회사에서는 비율을 달리 하며 다양한 샘플을 만들었다.

곧 최치우가 삼킬 알약은 샘플 NO.17이다.

벌써 17번째 샘플이라는 뜻이다.

재료는 같지만, 비율이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에 매번 임상 실험을 해야 한다.

최치우는 자신의 몸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어떤 샘플의 부작용이 가장 적은지 실험을 이어갔다.

실험 장소는 여의도에 새롭게 둥지를 튼 올림푸스의 사무실이다.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드넓은 사무실은 훌륭한 실험실이 된다.

오늘은 특별히 임동혁이 함께했다.

그가 해독제 개발 과정을 궁금해했고, 직접 살펴보고 싶다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임동혁은 최치우가 스스로 임상 실험을 하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실험 광경을 보여줘도 상관이 없었다.

“다른 안전장치는 없습니까?”

“내 몸이 안전장치입니다.”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 뒤 알약을 삼켰다.

뜸을 들이고 말 것도 없었다.

이미 16번이나 실험을 했고, 이번이 17번째인데 뜸을 들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는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자연스레 알약을 넘겼다.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

몇 번 실험을 해보니 물 없이 알약을 삼키는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다.

꿀꺽-

그의 목을 타고 알약이 몸 안으로 들어갔다.

임동혁은 해독제가 단순한 약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몸 내부를 마비시키는 독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게다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실험용 샘플이라면 마비 성분이 훨씬 강할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알약을 삼킨 최치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음.”

그는 짧게 숨을 내쉬며 입술을 깨물었다.

만독불침이라고 해서 어떤 독을 먹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중독과 동일한 증상을 겪는다.

하지만 이후 혈도를 타고 흐르는 몸속 독기가 외부의 독을 제압하며 금방 멀쩡해지는 것이다.

해독제 샘플을 먹은 최치우는 짧게는 1분, 길게는 3분 가까이 마비로 인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17번째 실험이지만, 스스로 독성을 지닌 약을 먹고 통증을 참아내는 건 고역이었다.

“괜찮습니까?”

임동혁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진심으로 최치우를 염려하고 있었다.

임동혁은 최치우가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한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눈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처억!

그러나 최치우는 오른손을 들어 임동혁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 과정은 누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롯이 최치우 혼자 이겨내야 한다.

최치우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문 채 통증을 감내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3년 이상이 걸릴 신약 개발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기 위해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인생의 진리다.

커다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번 샘플은 효능이 너무 과해. 일반인에게 쓰면 마비 증세가 풀리지 않겠어.’

최치우는 통증을 느끼면서도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머리에 각인시켰다.

단순히 고통을 참기만 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각 샘플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만 임상 실험으로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쿵-!

순간, 그의 심장 부위에서 충격이 일어났다.

샘플이 너무 강하게 혈도를 마비시키며 기운을 억누른 탓이다.

과도한 마비 증상 때문에 일시적으로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최치우 씨!”

최치우의 몸이 들썩이는 걸 본 임동혁이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더 이상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호흡을 고른 최치우가 식은땀을 닦아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괜찮습니다. 이번에 먹은 샘플 NO.17은 효능이 과하네요. NO.18은 전체적으로 약효를 다운그레이드시키라고 알려줘야겠습니다.”

최치우은 원래의 안색을 되찾았다.

그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호령독삼의 기운이 해독제 샘플의 독기를 잡아먹은 것이다.

임동혁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잃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고통스러워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통증을 느끼는 게 연기였다면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감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최치우가 일부러 과장된 연기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진짜… 괜찮아진 거 맞습니까?”

“맞습니다.”

최치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움직였다.

그는 실험 데이터를 입력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생생한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17번째 임상 실험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거 대체……. 아니,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 다릅니다. 이런 식으로 정말 해독제 개발이 완료될 수 있는 겁니까? 통증이 누적되면 최 대표님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임동혁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최치우를 바라보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머리로 막연히 상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미친 짓으로 따지면 임동혁도 누구 못지않지만, 최치우는 지금 완전히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답을 하는 최치우의 목소리는 너무 담담했다.

“해독제의 개발 가능성을 걱정하는 겁니까, 아니면 내 안위를 걱정하는 겁니까?”

“그거야 당연히-!”

임동혁은 최치우의 건강을 더 걱정한다고 말 하려다 말았다.

자기 자신도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혼란스러워졌다.

최치우는 임동혁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실험 기록을 남기는데 열중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겁니다. 정상적인 방법만 쓸 수는 없겠죠. 길은 내가 열 테니 이사님은 따라오면 됩니다.”

최치우의 낮은 음성이 울렸다.

임동혁은 대꾸하지 못하고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최치우를 말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임동혁은 그저 최치우를 지켜보며 세상이 모르는 비밀 한 조각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

몇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최치우가 새로운 샘플을 테스트하고, 개선점을 알려주면 제약회사에서는 다음 샘플을 만든다.

그렇게 소요되는 시간이 최소 1주일이다.

최치우는 벌써 샘플 NO.32까지 자기 몸으로 테스트를 마쳤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흘러 새해가 밝았다.

그는 한국 나이로 22살이 됐고, 올림푸스를 향해 쏟아지던 세상의 관심도 약간은 잦아들었다.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 이후 이렇다 할 빅뉴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면 아래에서 올림푸스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주기적으로 펜타곤과 보고서를 주고받으며 미쓰릴을 이용한 연구를 지속했고, 해독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올림푸스의 세 번째, 또는 네 번째 프로젝트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검토하는 작업도 한창이다.

도쿄대에서 가져온 기밀 자료 외에도 세계에는 작은 단서만 주어진 미스테리가 무수히 많았다.

백승수와 이시환은 상상력을 총동원해 전 세계의 미스터리를 검토하고 분석했다.

심지어 전설 속 해저도시인 아틀란티스를 찾아내는 것도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

그만큼 한계를 두지 않고, 상식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채 백지 상태에서 다음 프로젝트를 검토하는 것이다.

백승수와 이시환이 주기적으로 보고서를 올리면 최치우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

아직은 해독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올림푸스는 또 다른 미스테리를 발굴하기 위해 성큼 걸음을 내딛을 터였다.

“정식으로 법인이 설립된 지 아직 1년도 안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시피 서울의 중심부에 울타리를 만들었고, 여러분처럼 우수한 인재들과 한 팀이 됐습니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전 직원을 돌아보며 힘주어 말했다.

여의도 사무실에 모인 사람들, 이들과 함께 역사를 창조할 것이다.

새해를 기념하는 시무식은 다시 한번 올림푸스의 전열을 정비할 기회였다.

“지난해 올림푸스는 신금속을 찾아내고,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를 성사시켰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반드시 개발 중인 해독제의 상용화를 성공시킬 겁니다.”

최치우는 공식적으로 올림푸스의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해독제를 개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상용화까지 일시에 성공시킨다.

그것이 올해의 첫 번째 목표다.

그는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듣는 직원들의 심장박동은 빨라졌다.

다들 올림푸스라는,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의 회사에 매료되어 지원한 인재들이다.

적당히 편안한 직장 생활을 바라고 들어온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세상을 바꿀 프로젝트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자기 일처럼 흥분하는 것이다.

최치우는 20명에 못 미치는 전 직원을 빼놓지 않고 한 명씩 쳐다봤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림푸스와 언제까지 함께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올림푸스에 몸담았던 것이 여러분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되도록 대표인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진심을 담아 말을 마친 최치우가 허리를 숙였다.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하는 대표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아래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설교하는 걸 좋아하게 된다.

설령 열린 모습을 보여도 가식적인 태도를 완전히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최치우는 진심이었다.

그는 조직을 이끄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이전 차원에서는 항상 혈혈단신으로 세상과 맞서 싸워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걸고 올림푸스호에 승선한 것 자체가 고마웠다.

혼자만 잘 사는 게 아니라 올림푸스라는 배를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거대한 함선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실 최치우는 중대한 결정을 혼자 내리고, 혼자 책임지는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올림푸스라는 회사를 이끌며 리더십에 대해서도 눈을 뜨고 있었다.

백승수나 이시환에서 다음 프로젝트 검토를 맡긴 것도 예전이라면 상상 못 할 일이다.

그만큼 중요한 일을 믿고 맡기는 것 또한 리더의 능력이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하는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챙기는 군주는 절대 승리하지 못한다.

과거의 최치우가 압도적으로 강한 한 명의 전사였다면, 현대의 최치우는 군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인연의 소중함을 알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 최치우는 이전 어느 차원에서보다 더 굳세고 위대한 존재로 거듭날지 모른다.

극강의 무력을 자랑했던 첫 번째 차원 링스 월드의 치우는 제국을 멸망시킬 수는 있어도, 나라를 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7번째 환생을 거친 현대의 최치우는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며 세계를 멸망시키는 대신 구하는 훨씬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매번 고통을 참아내며 독이나 다름없는 해독제 샘플을 기꺼이 먹는 것도 예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미친 짓이다.

나날이 새롭게 달라지는 최치우는 올림푸스 직원들에게 말한 것처럼 역사를 다시 쓰려 했다.

절대 허무맹랑한 도전이 아니다.

해독제 샘플이 안정화되는 순간, 최치우의 스토리는 히스토리가 될 것이다.

그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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