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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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저희 대표님이 아끼는 기계니까 특별히 조심해 주세요.”
백승수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최치우의 커피 머신을 가리켰다.
포장이사를 하는 업체 직원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짐을 날랐다.
덕분에 모처럼 사무실이 분주했다.
오늘은 한영 그룹 본사 빌딩을 빌려 쓰던 올림푸스가 새 둥지를 트는 날이다.
올림푸스는 한영 그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분의 3할을 가진 이사 임동혁이 한영 그룹의 후계자인 동시에 전략본부장이다.
독도 해저 자원 개발을 시작으로 한영 그룹은 최치우가 하는 일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해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림푸스가 한영 그룹의 자회사나 계열사인 것은 절대 아니다.
지분의 7할은 온전히 최치우 소유이며 경영권 역시 그가 갖고 있다.
사실상 올림푸스는 최치우의 개인 회사라 해도 무방하다.
단순히 지분 때문은 아니다.
모든 의사 결정과 프로젝트 추진 등에 있어서 최치우의 역할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아무리 커져도 최치우의 존재감이 줄어들 리는 없다.
애초에 올림푸스는 최치우가 아니면 생기지도 않았을 회사다.
더군다나 오직 최치우만 갖고 있는 특별한 능력 없이는 존속이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은 다르다.
올림푸스가 계속 한영 그룹 본사 빌딩에 머무르면 쓸데없는 오해를 받기 좋다.
기자들은 없는 말도 지어낸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이름이 구설수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았다.
어차피 독립적인 사무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직원이 없어서 한영 그룹 홍보팀의 도움을 받을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본사 빌딩을 같이 쓰는 게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시환과 백승수를 비롯해 여러 명의 직원들을 뽑았다.
소수 정예를 지향하기에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홍보팀과 재무팀 등 최소한의 필수 구성을 갖췄다.
그렇기에 별도의 사무실에서 100% 독립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감회가 새롭군요.”
“나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입니다. 드디어 영감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이사를 지켜보던 임동혁은 유독 신이 나 보였다.
최치우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임 이사님은 계속 한영 그룹 본사로 출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쨌든 한영 그룹 전략본부장 직함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무슨 살벌한 소리를…….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그룹에는 사표 냈습니다. 올림푸스에서 업적을 더 쌓고, 때가 되면 그룹을 통째로 접수하면 됩니다.”
임동혁은 이참에 사표를 내버렸다.
누구보다 엄한 아버지인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올림푸스를 키우는 데 집중하려는 것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최치우를 만난 건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말했다.
한영 그룹에 계속 남아 있으면 아무리 일을 잘해도 후계자 딱지를 떼기 어렵다.
그러나 한영 그룹 외부에서 업적을 쌓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다른 재벌 2세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임동혁은 이미 최치우 덕을 톡톡히 봤다.
독도 개발을 통해 한영 그룹에 막대한 이익을 안겼고,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악명 높은 재벌가의 망나니에서 순식간에 가장 기대되는 후계자로 평판이 180도 바뀌었다.
그가 대기업인 한영 그룹의 전략본부장 대신 올림푸스의 이사 자리를 선택한 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올림푸스에서 성과를 거둘수록 임동혁이 한영 그룹을 물려받는 시기도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켜보겠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이사라도 자를 거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최치우가 팔짱을 끼고 농담을 했다.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진지하게 말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임동혁은 뒷목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 안 되기 위해 대표님 비위를 잘 맞추겠습니다.”
“아주 좋은 태도군요. 아무튼, 우리는 먼저 이동하죠. 그쪽에서 준비할 것도 있을 테니까.”
“대표님 차로 가는 거 어떻습니까. 굳이 차를 두 대 움직일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죠.”
최치우는 현장 정리를 백승수와 이시환에게 부탁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찾는 건 너무 쉬웠다.
푸른색이 오묘하게 감도는 짙은 색 레이스의 존재감은 단연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임동혁은 자신이 직접 골라준 자동차의 조수석에 가뿐히 올라탔다.
어느덧 롤스로이스 레이스를 운전하는 데 익숙해진 최치우는 자연스레 시동을 걸었다.
우렁차지만 요란하지 않게 울리는 배기음이 최치우를 반겼다.
최치우와 임동혁은 올림푸스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곳으로 이동했다.
21살에 불과한 최치우는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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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푸스의 새로운 사무실은 여의도에 위치하고 있다.
여의도는 크게 금융 기관이 잔뜩 몰린 동여의도와 국회의사당 부근의 서여의도로 나뉜다.
최치우는 여의도의 동서를 나누는 중심에 우뚝 선 빌딩을 골랐다.
지금은 예전보다 파워가 약해졌지만, 그래도 한때는 대한민국을 이끌던 전국경제인연합 빌딩에 입주한 것이다.
햇빛을 받으면 투명하게 반짝이는 전경련 빌딩은 63빌딩만큼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50층이 넘는 건물 고층부에서는 한쪽으론 빌딩 숲과 한강이, 반대쪽으론 초록색 지붕을 덮은 국회가 내려다보인다.
그야말로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빌딩이다.
올림푸스는 44층을 통째로 임대했다.
사실 올림푸스의 직원 숫자를 생각하면 44층 전부는 너무 넓었다.
더구나 최치우는 소수 정예를 지향하기에 무작정 직원 수를 늘릴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층을 임대한 것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올림푸스의 사원증이 없는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4층에 내려도 아예 진입을 못하도록 보안장치를 설치했다.
빌딩을 관리하는 전경련도 흔쾌히 동의를 해줬다.
요즘처럼 공실률이 높은 시대에 전층을 임대하면 세입자가 갑이 된다.
입주할 수 있는 빌딩은 많지만, 고액의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세입자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사무실에 서 있었다.
한강 방면이 보이는 방향의 통유리 앞에 선 최치우의 옆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새로운 사무실을 구하고, 정리를 마친 직후 가장 먼저 어머니를 초대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근사하구나. 그런데 너무 비싼 건 아니니?”
“괜찮습니다. 임대료는 비용으로 처리하면 되고, 어차피 이 정도 사이즈는 되어야 당분간 이사 갈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 하긴 너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어머니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2년 동안 최치우의 어머니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갑자기 효자가 된 아들이 S대 입학한 것만 해도 하늘이 뒤집힐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덜컥 아파트와 가게를 사주더니 어느새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의 대표가 되어 뉴스를 장식했다.
평생 김밥을 말면서 어렵게 살아온 어머니의 삶도 다이나믹하게 변했다.
최치우를 키운 어머니를 인터뷰하기 위해 여러 언론이 막무가내로 달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급격한 변화도 어머니를 흔들진 못했다.
보통 가족 중 한 명이 크게 성공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휩쓸리기 쉽다.
돈을 흥청망청 쓰거나 도박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이 어렵게 번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며 용돈도 사양했다.
아직 어리다면 어린 아들에게서 아파트와 가게를 받은 것도 미안해하셨다.
사실 최치우의 어머니는 사회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먼 유형이다.
만약 최치우의 몸에 영혼이 깃들어 환생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작은 가게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김밥을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성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최치우는 평생을 묵묵히 헌신하며 맡은 일을 해온 어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이전 차원에서 그는 세계를 주름잡는 강자가 아니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7번째 환생으로 8번째 차원에서 살아가며 비로소 영혼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육체적인 능력, 즉 무공이나 마법을 쓰는 힘은 이전 차원에 비해 약해졌어도 영혼의 힘은 훨씬 단단해진 것 같았다.
“어머니, 그래서 말인데요. 아무래도 여의도 부근에 제가 머물 집을 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집을?”
“네. 우리 집에서도 사무실이 가깝지만, 아무래도 늦게 들어갈 일도 많고. 여러모로 신경을 쓰이게 해드리는 것 같아서요.”
최치우가 독립 의사를 밝혔다.
잠시 고민하던 어머니는 이내 아들의 독립을 응원해 줬다.
“나는 아쉽지만… 아들이 선택했으면 믿어야지. 대신 바빠도 자주 들렀으면 좋겠구나.”
“집밥 먹으러 자주 갈 겁니다. 오지 말라고 하셔도, 하하.”
“언제든 우리 치우가 좋아하는 불고기랑 김치찌개 차려놓고 있을게.”
“오늘 저녁도 집에서 먹을게요.”
“그럼 나야 환영이지. 아, 참. 그런데 왜 사무실이 44층인 거니?”
어머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 때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4는 동양에서 죽을 사(死)를 연상시켜 불길한 숫자로 여겨진다.
아들 일이라면 사소한 것 하나도 걱정하는 어머니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치우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일부러 44층을 골랐습니다. 이 세상 모든 징크스를 극복하겠다는 의미로.”
“참… 내 배로 낳은 아들이지만 특이해. 아니, 특별한 게 맞겠지?”
“사실 44층이 고층 중에서 임대료가 조금 싸기도 했어요.”
미소를 짓는 최치우의 얼굴은 21살답게 싱그러워 보였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올림푸스의 대표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갓 20대 초반 아들이다.
그는 어머니의 아들로 환생하게 해준 신에게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최치우는 이제껏 영원한 환생을 부여한 신을 원망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영혼의 소멸이라는 조건이 걸린 7번째 환생은 최치우에게 생소한 기쁨과 깨달음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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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아니 서울에서 가장 비싸다고 손꼽히는 고층 빌딩의 전층 사무실.
마찬가지로 여의도 중심부에서 생활환경과 프라이버시가 모두 보장되는 고급 아파트 펜트하우스.
도로 위를 지나다니면 모두 한 번씩 쳐다보는 롤스로이스 레이스.
거실 TV 옆에 걸려 있는 국민훈장 무궁화장.
평생을 써도 다 쓰기 힘든 재산과 차고 넘치는 명예.
21살 최치우는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미 손에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이만한 성공을 이루면 치열한 전장에서 물러나 인생을 즐기려 한다.
그러나 최치우는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1,000억을 버는 게 평생의 꿈이지만, 그에게는 잠시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다.
최치우는 사천당문의 해독제를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만들었다.
올림푸스는 국내 최고의 제약회사와 MOU를 체결해 테스트를 마쳤고,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수치를 얻었다.
물론 곧바로 임상 실험을 하기에는 여전히 위험성이 높다.
하지만 만독불침인 최치우는 약간의 가능성만 있으면 스스로 임상 실험을 해서 시간을 단축시킬 작정이었다.
세상을 바꾸며 세계의 정점에 서기 위해서는 그만한 고통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을 이룬 최치우는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온몸을 내던졌다.
임동혁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최치우가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짐작도 못 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아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최치우는 반드시 사천당문의 해독제를 구현해서 세상의 한 부분을 바꿔놓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마음을 먹으면 현실이 된다.
혼자서 완성되지 않은 해독제 샘플을 먹는 최치우는 두 어깨로 세상을 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