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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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우와 임동혁은 미국 공항에 내리자마자 최고의 귀빈 대우를 받았다.
공식적으로 펜타곤과 기술 제휴를 체결한 기업의 대표와 임원이다.
국빈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예우를 갖추는 게 당연하다.
미쓰릴을 보여주기 위해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많은 게 달라졌다.
그때도 펜타곤의 대우는 극진했지만, 언제든 납치나 감금으로 상황이 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최치우는 세계 최강의 무력을 가진 펜타곤조차 어렵게 여기는 사람이 됐다.
미쓰릴을 제공했다고 해서 그의 역할이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미쓰릴을 정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최치우다.
펜타곤에서 연구 등의 이유로 미쓰릴을 조각내거나 분할하고 싶을 때, 반드시 최치우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
거액을 제공하고, 기술 제휴라는 조건까지 받아들인 펜타곤 입장에선 최치우를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다양한 방식으로 미쓰릴을 활용하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아예 없었다.
사실상 최치우는 미쓰릴 원석의 절반을 독점적으로 내준 대신 펜타곤을 인질로 잡은 셈이었다.
“그런데 최 대표님.”
임동혁은 최치우에게 꼬박꼬박 대표라는 호칭을 붙였다.
둘은 펜타곤에서 제공해준 육중한 방탄차량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최치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직 올림푸스의 두 번째 프로젝트로 구상한 해독제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아마 임동혁은 그 질문을 하려는 것 같았다.
“미쓰릴 원석의 절반을 펜타곤에 제공했는데,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쓰실 겁니까?”
하지만 임동혁은 최치우의 예상과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여전히 최치우의 머릿속에 있는 두 번째 프로젝트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치우가 스스로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절대 말을 해주지 않을 거란 사실도 알았다.
임동혁도 최치우와 손발을 맞춘 시간이 적지 않다.
대신 다른 호기심을 해소하려 화제를 돌린 것이다.
최치우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굳이 임동혁에게까지 비밀로 남겨둘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 조각은 이 반지로 만들었고, 나머지 원석은 비수처럼 다듬으려 합니다.”
“비수?”
뜻밖의 대답이었다.
임동혁은 눈을 크게 뜨고 몸을 기울였다.
자동차 안이지만 내부가 워낙 넓어 운신이 자유로웠다.
최치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어차피 독점 계약을 맺었기에 남은 원석을 다른 기관에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그냥 내가 써야죠.”
“미쓰릴로 비수를 만든다……. 그거 정말 엄청난 무기가 될 것 같습니다.”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왼손 약지에 자리 잡힌 반지도 미쓰릴로 만들어졌다.
위급한 상황에서 모든 에너지를 튕겨낼 수 있는 절대 반지다.
그런데 만약 미쓰릴로 비수를 만든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무기가 될 것이다.
최치우는 남아 있는 미쓰릴 원석으로 손가락 두 개 크기의 비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작은 크기지만,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가 될지 모른다.
미쓰릴은 적수를 찾을 수 없는 금속이다.
무엇으로도 미쓰릴을 부술 수 없다. 즉, 미쓰릴을 이용하면 어떤 금속도 파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쏟아진 에너지를 몇 배 더 강하게 튕겨내는 속성을 지녔다.
만약 미쓰릴로 만든 비수를 대공포에 투척한다면?
포탄이 쏘아짐과 동시에 엄청난 재앙이 일대를 뒤덮게 될 것이다.
미쓰릴의 특성을 알고 있는 임동혁은 어깨를 움츠렸다.
그는 아드레날린 중독으로 웬만한 일에는 자극조차 못 받는다.
하지만 최치우와 미쓰릴 비수의 조합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임동혁은 저도 모르게 최치우가 미쓰릴 비수를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사실 최치우는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저 남는 미쓰릴로 만들 수 있는 게 비수(匕首) 정도일 따름이다.
다른 차원에서도 기사와 마법사, 무림인들은 자신만의 무기나 보호구를 만드는 걸 즐겼다.
최치우도 마찬가지였다.
신병이기에 대한 욕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는 미쓰릴로 만들 비수에 어떤 이름을 붙여줄지 고민했다.
임동혁의 걱정대로 언젠가 그 무기를 쓰며 대재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미증유의 힘을 휘두를 최치우가 아니다.
지금부터 미리 걱정하며 스스로를 검열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
미쓰릴을 매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둘 사이가 조용해졌다.
임동혁도 걸출한 인물에 누구 못지않은 미친놈이지만, 최치우와는 존재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7번의 환생을 거치고 8번째 차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최치우를 누가 감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끼익-
이윽고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잠시 멈춰선 후 펜타곤의 성채 안으로 진입했다.
계약을 마무리하고, 기술 제휴 현황을 확인하는 방문이기에 마냥 순조로울 것이다.
최치우 덕분에 임동혁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한 발 앞서 보게 된다.
최치우는 펜타곤이 신기한 듯 연신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임동혁을 쳐다보며 웃음을 흘렸다.
이제 그에게 있어 펜타곤 방문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적 출장이다.
21살 최치우는 하늘 위의 하늘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
예상대로 펜타곤에서의 일정은 무난하게 끝났다.
당초 맺었던 계약의 세부적인 조건을 세세하게 다듬고, 법적 효력을 확인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이미 전자우편을 통해 수차례 합의한 내용이기 때문에 올림푸스와 펜타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이번에는 루이스 고어 국방부 장관을 만나지는 못했다.
대신 미쓰릴 연구 개발에 참여하게 된 펜타곤 실무진과 핵심 고위층을 두루두루 만나며 이야기를 나눴다.
실무진 중에는 한국에서 미쓰릴을 테스트한 잭 앤더슨도 포함돼 있었다.
그래도 구면(舊面)이라고 잭과 최치우는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펜타곤의 천재 요원인 잭은 미쓰릴 연구에서도 중책을 맡은 모양이었다.
최치우는 연구와 기술 제휴 방향에 대해 긴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기자회견을 통해 알린 것처럼 펜타곤은 미쓰릴의 특성을 연구해 대량 살상 무기 방어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미쓰릴의 에너지 반발력을 분석하고, 아주 약간이라도 그러한 특성을 구현하게 되면 그야말로 혁신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습 공격이 쏟아지는 중동 지역에서 군사부대와 민간인을 보호하는 데 새로운 기술이 사용 될 것이다.
그로인해 목숨을 구하게 될 사람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할 터.
펜타곤과 최치우의 올림푸스는 미쓰릴 연구에 거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물론 하루아침에 성과가 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다.
최소 몇 년 이상은 꾸준히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최치우가 미쓰릴이라는 신금속을 제공하면서 실마리가 생겨났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닌, 최초의 디딤돌이 있는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수십 년의 시간을 단축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치우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류와 기술 제휴를 위한 일정을 정하고 펜타곤에서 나왔다.
처음부터 펜타곤 방문 일정은 하루면 충분했다.
하지만 미국 출장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최치우와 임동혁은 워싱턴 D.C의 호텔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캐리어는 풀지 않았다.
해가 뜨면 곧바로 이동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솔직히 말하면 최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그것도 하나 같이 말 한마디로 세계를 움직이는 거물들인데 말입니다.”
임동혁은 자신 있게 말하며 미국 출장 일정을 짰다.
펜타곤 방문이 최치우의 주관 아래에 이뤄졌다면, 남은 스케줄은 임동혁의 몫이다.
최치우는 뉴욕에서의 일정도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임동혁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미쓰릴이라는 떡밥을 던져서 펜타곤과 나사의 요원을 한국까지 불러낸 당사자도 임동혁이었다.
그의 인맥과 영향력은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경이다.
한국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한영 그룹의 후계자이니 당연한 일이다.
최치우와는 살아온 세계와 존재의 그릇이 다를지 몰라도,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임동혁은 단연 발군인 인재다.
짧은 휴식을 마친 최치우는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디를 가든 퍼스트 클래스를 타는 게 당연해져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아침 일찍 활주로에서 떠오른 비행기에는 승객이 거의 없었다.
특히 퍼스트 클래스 객실에는 최치우와 임동혁이 전부였다.
최치우는 창밖으로 떠오른 붉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임동혁이 말을 걸어왔다.
“이제 슬슬 말해줄 때가 안 됐습니까?”
“본부장님치고는 오래 참았군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올림푸스의 두 번째 프로젝트, 유일한 임원이자 이사인 나도 알아야겠습니다.”
말투는 차가웠지만 실상 읍소에 가까웠다.
최치우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거의 이틀을 참았으니 임동혁도 어지간히 인내 한 셈이다.
곧이어 최치우의 입에서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허철후, 심마니들 사이에서는 산신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분입니다.”
“산신령……. 예사롭지 않는 별명 같습니다.”
“그분과 인연이 깊습니다. 덕분에 어떤 독도 통하지 않는 몸이 됐고.”
최치우는 스스로 만독불침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 정도 레벨의 이야기는 임동혁에게 해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임동혁은 깜짝 놀라면서도 구구절절 묻지 않았다.
그는 최치우가 상식을 초월한 인간이란 사실을 옆에서 지켜본 당사자다.
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대신 임동혁은 해독제 프로젝트 자체에 집중했다.
“그럼 우리의 두 번째 프로젝트는 그분과 함께 진행하는 겁니까?”
“허철후 어르신을 마지막으로 본 게 거의 1년 전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다시 세상에 나설 준비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최 대표님이 말한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해독제를 만드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임동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의아함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허철후의 직업은 심마니 또는 땅꾼이다.
산에서 약초를 캐고, 뱀을 잡아 우려내는 사람인 것이다.
심마니들 사이에서 산신령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지만, 사회에서는 비과학적인 민간치료법의 전파자일 뿐이다.
임동혁은 최치우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최치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정도의 정보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최치우는 임동혁의 생각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본부장님.”
“네?”
“뉴욕에 가면 보통 사람들은 알기 힘든 세상이 펼쳐지겠죠. 타임스퀘어와 센트럴파크를 내려 보는 초고층 빌딩에서 국제적 거물들만 모인 파티, 이런 것들.”
“맞습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마찬가지로, 본부장님이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합니다. 미쓰릴도 그런 세상의 경계에서 발견한 금속이었습니다. 산신령 허철후 어르신과 내가 함께 만들 해독제 또한 본부장님이 알고 있는 세상의 상식으로 이해하긴 어려울 겁니다.”
하늘 위에는 언제나 또 다른 하늘이 있다.
내가 아는 세상을 전부라고 여기는 순간, 누구든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된다.
최치우는 임동혁에게 날카로운 깨달음을 선사해 줬다.
올림푸스는 신들의 세계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수장으로서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젖히는 인물이다.
다행히 명석하고 눈치 빠른 임동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꾹 닫았다.
그는 어리지만 살아 있는 전설이 되고 있는 최치우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았다.
최치우가 두 번째 프로젝트로 상식 밖 해독제를 만든다면 만드는 것이다.
“잠시 눈을 붙이겠습니다.”
뉴욕으로 가는 하늘 위에서 최치우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는 세계 최고의 도시 뉴욕에서 한껏 거들먹거릴 거물들에게도 천외천이 있음을 보여줄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