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천외천(天外天)>
대통령이 올림푸스를 챙기고 있다.
이런 소문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관가와 재계에 슬금슬금 퍼지고 있었다.
청와대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권력의 축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대기업 오너들도 청와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최치우는 비밀리에 유영조 대통령과 홍석진 외교안보특보를 만났었다.
그 자리에서 정부와 올림푸스는 서로 협조하는 관계가 되기로 약속했다.
이후 청와대로 복귀한 대통령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비수이자 청와대 실세로 알려진 홍석진 특보가 국무위원 회의에서 가볍게 한마디 툭 던졌을 뿐이다.
“올림푸스라는 기업이 국제적으로 아주 큰 성과를 냈다. 나아가 국방 안보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 이런 혁신 기업들이 늘어나도록 각 부처가 지원을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투로 가볍게 흘린 말이다.
하지만 홍석진의 말은 곧 대통령의 뜻으로 통한다.
한창 화제인 올림푸스를 굳이 언급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청와대 수석과 각 부 장관 등 국무위원은 잔뼈가 굵은 여우들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대통령의 의중을 캐치했다.
대통령은 펜타곤과 기술 제휴를 맺은 올림푸스와 우호적 관계를 맺기로 결정했다.
즉, 각 부처에서는 알아서 올림푸스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 좋다.
홍석진이 내뱉은 말에는 이토록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당연히 공식적인 지시는 아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일은 언제나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는 법이다.
국무회의를 통해 각 부처 장관들에게 전달 된 은근한 메시지는 머지않아 각계각층의 거물들에게도 입에서 입으로 알려졌다.
세상을 놀라게 한 올림푸스의 리스크는 다름 아닌 정부와의 관계였다.
외교 안보를 이유로 정부와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기업을 바탕에 두고 있어도 신생 기업이 정부와 관계를 푸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올림푸스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최상의 결과를 얻어냈다.
이제 그들은 국내에서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종횡무진 뛰어다닐 기반을 마련했다.
펜타곤과 기술 제휴를 맺었으니 해외에서도 미국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올림푸스를 건드리지 못 할 것이다.
그러한 효과를 고려하면, 나사가 아닌 펜타곤과 제휴를 맺은 게 득이 됐다.
하늘이 돕는다.
올림푸스의 행보를 보면 천운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 쉽다.
하지만 천운(天運)을 얻기까지, 무모한 도전을 불사했던 최치우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또 다른 천운을 위해 다시 땀 흘릴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
“이야… 이건 우리 영감 정도는 되어야 받을 수 있는 특혜입니다.”
임동혁이 탄성을 흘렸다.
최치우는 외교관들처럼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공항 내부로 들어왔다.
국내 공항을 이용하는 경우, 그는 외교관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됐다.
출입국 심사도 빨라지고, 다른 사람들과 섞여 대기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세관이나 검색 절차가 간소화된다.
미쓰릴처럼 은밀하게 운반해야 할 물건을 다루기 쉬워진 것이다.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절차를 밟고 출국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임동혁은 부러운 눈빛이었다.
임동혁의 아버지처럼 대기업 총수에 해당되면 특혜를 받을 수 있다.
그들이 외국에서 거액의 계약을 맺어오면 국내 경제에 도움이 되기에 서로서로 예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져 대기업 오너들도 섣불리 특혜를 누리기 힘들었다.
자칫 구설수에 오르면 여론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달랐다.
그가 이끄는 올림푸스는 전국민적 지지와 응원을 받는 독특한 기업이다.
최치우는 마음의 부담 없이 특혜를 누렸다.
대신 그만큼, 또는 그 이상의 이익을 대한민국에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그는 수도승처럼 청렴결백하게만 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나저나 차를 안 타고 다니는 이유는 뭡니까? 운전면허, 아직입니까?”
“이번에 돌아오면 따려고 합니다. 본부장님은 참 궁금한 게 많군요.”
최치우는 질문이 많은 임동혁에게 면박을 줬다.
이제 완전히 익숙해졌는지, 임동혁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다.
“최 대표의 첫 번째 차는 내가 골라주겠습니다. 자동차에도 안목이 필요합니다. 똑같은 슈퍼카를 타도 페라리는 뭘 좀 아는 사람들의 선택이고, 람보르기니는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졸부들 스타일이랄까. 아무튼 그런 게 있습니다.”
“그때 가서 이야기하죠.”
최치우는 임동혁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사실 21살 남자라면 누구든 가슴이 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자동차 싫어하는 남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최치우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를 일시불로 살 수도 있다.
슈퍼카를 7대 사서 요일별로 바꿔 타고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임동혁이 준 블랙카드 때문만은 아니다.
펜타곤과의 제휴를 성사시키며 1,200억 원 가량을 벌었고, 산술적으로 올림푸스가 거둔 수익의 70%는 최치우의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상장도 안 했지만 올림푸스의 기업 가치는 천문학적 수준으로 치솟고 있었다.
최치우가 마음만 먹으면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를 색깔별로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차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이번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면허를 따고, 차를 사긴 살 생각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좋은 차로 폼 잡고 드라이브 하는 상상보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뒤흔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더 즐거웠다.
어느 차원에서든 최강의 남자가 되면 가장 좋은 말을 탈 수 있다.
무림에서도, 아슬란 대륙에서도, 첫 번째 삶을 살았던 링스 월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말 대신 차를 타는 현대라도 다를 건 없다.
명마(名馬)와 명차(名車)는 전리품일 뿐,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최치우를 바라보는 임동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체 무엇으로 최치우의 환심을 살 수 있는지 여전히 미스테리했다.
“라운지에서 회의라도 좀 하죠. 비행기에서는 쉬어야 할 테니까.”
“가만 보면 대놓고 일중독입니다. 21살이 벌써 그러면 나중엔 얼마나 더 무서워지려고 그러는 겁니까.”
“우리 일, 재밌지 않아요? 좋아서 하는 겁니다.”
“역시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임동혁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최치우는 그가 따라오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앞서 걸어갔다.
두 사람은 당연히 퍼스트 클래스 티켓을 끊었다.
공항의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는 그 어디보다 더 조용하고 안락하며 프라이버시가 철저히 보장되는 장소다.
보안이 생명인 올림푸스 회의를 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곳을 찾기도 힘들다.
저벅저벅.
최치우는 휘황찬란한 면세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곧이어 확인 절차를 마치고 라운지에 들어선 두 사람은 프라이빗 룸을 빌렸다.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에는 쾌적하고 넓은 룸이 여럿 있었다.
이 안에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싶어 하는 승객을 위한 배려였다.
물론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하루 종일 단 한 명도 없는 때도 있다.
그러나 VIP를 대우할 때는 효율성을 따져선 안 된다.
어쩌다 들리는 그들이 수십, 수백 배의 수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최치우와 임동혁이 자리 잡은 룸 안에는 안마의자부터 최신형 PC와 대형 TV,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원탁 테이블 등 없는 게 없었다.
한영 그룹 본사의 임원 회의실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자, 이제 우리 워커홀릭 대표님의 본격적인 안건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동혁이 의자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그는 라운지 담당 승무원이 가져온 위스키를 홀짝이고 있었다.
최치우는 위스키 대신 커피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올림푸스의 다음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니, 벌써?”
임동혁은 뒤로 젖혔던 의자를 원위치로 당겼다.
두 사람은 펜타곤과의 계약 세부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려는 참이다.
올림푸스를 세상에 알린 첫 번째 프로젝트도 아직 100% 마무리가 안 됐다는 뜻이다.
게다가 미쓰릴을 이용한 연구와 기술 제휴까지, 앞으로 수 년 동안 펜타곤과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
올림푸스 내부적으로 회사의 기틀을 다지고, 조직을 정비하는 이슈 역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는 벌써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그의 속도는 보통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다.
임동혁도 절대 보통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미친놈 중의 미친놈이다.
하지만 최치우와 함께 있으니 지극히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최 대표님 마음은 알겠지만, 우리가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몇 개인 줄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치우가 숨을 골랐다.
그는 사뭇 강렬한 눈빛으로 임동혁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당면한 업무를 쳐내기 바쁘면, 세상은 언제 바꿀 겁니까? 독도 해저 자원 개발도, 미쓰릴도 모두 엄두도 못 낼 때 도전해서 해냈습니다.”
임동혁은 할 말이 없었다.
최치우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다른 사람이라면 경영 효율성과 전략 등을 내세워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최치우 앞에서는 어떤 설명도 무의미하다.
그는 이미 두 번이나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수시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상식은 지루한 편견처럼 여겨질 따름이다.
“알겠습니다. 나야 우리 최 대표님한테 묻어가는 처지고, 어디 두 번째 프로젝트가 어떤 건지 들어나 봅시다. 나한테 말을 꺼낼 정도면 이미 정리가 끝났다는 뜻일 테니.”
임동혁은 확실히 똑똑했다.
그는 최치우가 시나리오를 세운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어설픈 단계의 구상이었다면 최치우는 결코 섣불리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 않는다.
최치우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이지만, 자연스레 몸이 본능을 따르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가 한 번에 말을 끝내지 않자 임동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드라마나 웹소설 다음 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궁극의 절단마공에 당한 기분이 들었다.
최치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임동혁은 놀리는 맛이 있는 사람이다.
더 길게 뜸을 들이면 올림푸스 대표와 이사가 한 바탕 싸울지 모른다.
“해독제를 만들어 봅시다.”
“해독제? 해. 독. 제?”
“맞습니다, 해. 독. 제.”
“아니, 우리는 제약회사가 아니라 자원 탐사 회사 아니었습니까?”
“말은 바로 해야죠. 올림푸스는 비밀을 찾아내는 모험가들의 모임, 세상과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회사입니다. 단순한 자원 탐사 회사가 아니라.”
“그거야 그렇지만…….”
“단순한 약을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아래로는 오염된 식수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아이들을 구하고, 위로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국제적 부호와 거물들에게 천문학적 액수로 팔 수 있는, 바로 그런 해독제입니다.”
뜬구름 잡는 소리지만, 최치우가 말하니 듣는 임동혁의 가슴이 뛰었다.
영화 속에나 나올 해독제지만, 최치우라면 진짜 만들어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할 적임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그건 미국에 도착해서 본부장님 하는 걸 좀 보고 말해 드리죠.”
최치우는 임동혁을 애타게 만들 작정인지 웃으며 장난을 쳤다.
그렇게 올림푸스의 또 다른 프로젝트가 아주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최치우의 머릿속에는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게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세상을 구하는 기쁨을 느끼라는 아바타의 미션 때문만은 아니다.
최치우는 자신의 방식대로 7번째 환생을 완전히 새롭게 즐기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