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한국의 아이언맨>
“세계를 열광시킨 헐리우드 영화 마블에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미국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토니 스타크는 영화 속에 있지만, 한국에는 현실 속 아이언맨 최치우가 있기 때문이다.”
임동혁은 신문을 펼치고 사설을 읽어내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신문인 조국일보 사설에 최치우가 등장했다.
단순히 언급된 게 아니라 조국일보 논설이원이 대놓고 최치우 찬가를 불렀다.
항상 무게를 잡으며 대한민국 최고의 정론지를 자처하는 조국일보에서 무척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최치우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했다는 뜻이다.
21살의 청년 최치우는 일약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물론 이러한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하지만 요 며칠 동안 최치우의 인기는 유명 영화배우와 한류 스타를 능가했다.
“민망하군요.”
최치우는 일부러 조국일보 사설을 소리 내어 읽은 임동혁을 노려봤다.
적의가 담긴 눈빛은 아니었다.
늘 그렇듯 티격태격 하는 것이다.
임동혁은 크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하하! 덕분에 상장하지도 않은 올림푸스의 지분을 사고 싶다고 전화가 얼마나 왔는지 모릅니다. 오성 그룹의 이지용 부회장도 투자하고 싶다고 따로 연락을 했습니다. 내 평생 이지용 부회장에게 이런 전화를 받을 날이 올 줄이야……. 모두 최치우 씨, 아니 우리 최 대표님 덕분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한영 그룹도 재개 서열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지만, 오성 그룹은 차원이 다르다.
외국인들은 코리아라고 하면 곧바로 오성 그룹을 떠올린다.
재계 2위와 3위의 시가총액을 합쳐도 1위인 오성 그룹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런 오성 그룹의 후계자인 이지용 부회장이 임동혁에게 전화를 걸어 아쉬운 소리를 한 것이다.
평생 천방지축 개망나니 소리를 들었던 임동혁은 최치우를 만난 이후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명실상부 국내 대기업 후계자, 즉 재벌2세와 3세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됐다.
임동혁은 파이트 클럽을 통해 최치우를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임동혁은 가만히 앉아서 기연을 만난 셈이다.
아드레날린 중독으로 파이트 클럽의 VIP가 되고, 황당한 최치우의 제안에 덜컥 30억 원을 투자한 게 그의 인생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었다.
기자회견 이후 임동혁은 사석과 공석에서 한영 그룹 본부장이란 직함보다 올림푸스 이사라는 직함을 즐겨 쓴다.
언제나 그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한영 그룹 회장 역시 이제는 외동아들을 인정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것 역시 임동혁에겐 꿈같은 일이었다.
“참, 우리 영감이 조만간 식사 한번 하자고 합니다.”
“한영 그룹 회장님이 말이죠?”
“그 영감 말고 또 다른 영감이 누가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최치우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한영 그룹에서는 최치우가 원하는 만큼의 자금을 올림푸스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 대가로 지분의 30%를 임동혁이 가졌고, 최치우와 한영 그룹은 같은 배를 탄 사이가 됐다.
한영 그룹의 미래가 임동혁이라면, 현재의 주인은 그의 아버지다.
당연히 안면을 트고 좋은 사이를 맺을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대기업 오너 레벨의 인물들과 네트워크를 맺어서 나쁠 게 없다.
그들과 사석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최치우는 대기업 회장이 먼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나저나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은 어떻게 할 겁니까?”
임동혁이 화제를 돌렸다.
현재 공식적인 올림푸스의 직원은 최치우와 임동혁밖에 없다.
대표와 이사만 존재하는 회사인 것이다.
물론 한영 그룹의 홍보실과 실무진이 업무를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체제를 유지할 수는 없다.
신금속 발견과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를 밝히며 화려하게 비상을 시작했으니 그에 어울리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일단 인터뷰를 추가로 하진 않을 겁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것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어렵고, 무작정 관심을 쫓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봐서요.”
최치우는 유명세에 흔들리지 않았다.
보통 그 나이대의 사람이 갑자기 인기를 얻으면 들뜨기 쉽다.
잘나가는 연예인들의 인성이 망가지는 것도 인기를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달랐다.
그는 우쭐하지 않고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지금 인터뷰를 하면 신금속이 어떤 건지 물어볼 겁니다. 어차피 대답을 해줄 수 없고, 적당히 신비감을 유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최치우는 펜타곤과 기술 제휴를 맺으며 미쓰릴의 특성에 대해 비밀을 유지하기로 했다.
지금 단계에서 미쓰릴의 특성이 알려지면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펜타곤은 나사에도 협조 공문을 보내 비밀 유지를 약속받았다.
망설이다 미쓰릴을 놓친 나사는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최치우로선 잘된 일이었다.
펜타곤은 미쓰릴의 에너지 반발력을 연구해 새로운 차원의 대량 살상 무기 방어 시스템을 개발 할 계획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올림푸스도 참여해 주요 기술과 개발 방향을 공유할 예정이다.
한참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개발이 성공하면 테러에 취약한 민간인들의 생존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특히 화약고나 다름없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
최치우는 그의 포부대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 명성과 함께 막대한 수익도 확보했다.
올림푸스는 브라질에서 찾은 미쓰릴 원형의 절반을 펜타곤에 제공했다.
나머지 절반도 다른 연구 기관에 넘기지 않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 대가로 올림푸스는 딱 1억 달러를 지급받기로 했다.
현재 환율을 적용하면 약 1,200억 원이라는 거금이다.
대기업의 해외 거래 금액으로 따져도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게다가 미국 국방부와의 기술 제휴라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조건까지 추가시켰다.
따지고 보면 아이언맨이라는 찬사가 부족할 정도로 입지전적 성과를 거둔 셈이다.
“당분간 언론사의 취재 요청은 한영 그룹 홍보실에서 적당히 넘겨주세요. 나는 우선 해야 할 일부터 풀어나가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리 최 대표님 말대로 하겠습니다.”
임동혁은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시에 날카롭고 차가운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치우 앞에서는 늘 구박을 받으면서도 웃는 얼굴을 보이는 일이 잦았다.
올림푸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대대적 성공을 거두며 두 사람의 케미 역시 물이 오르고 있었다.
***
최치우는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세워뒀다.
펜타곤에서 지급받은 1,200억 원의 거금, 국내외 주요 언론의 취재 요청,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폭발적인 인기도 그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했다.
그는 묵묵히 밭을 가는 황소처럼 뚝심 있게 자신의 행보를 이어나갔다.
21살의 육체 안에 여러 차원의 경험이 쌓여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최치우는 가장 먼저 사람을 얻으려 했다.
사람을 얻는 게 만사의 기본이다.
이전까지 환생을 거듭하면서 그는 늘 혼자 세상과 맞서 싸웠었다.
그러나 이번 차원에서는 달라지고 싶었다.
혼자가 아닌 팀으로 싸울 때, 믿기 힘든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해져도, 혈혈단신으로 제국을 멸망시킬 정도가 되어도 그 끝은 좋지 않았었다.
오죽하면 멸망의 인도자라는 칭호가 붙었지만, 혼자 파국(破局)을 맞이할 때마다 영혼이 상처 입는 느낌이었다.
이번 생은 아바타로부터 특별한 미션을 부여받았고, 해보지 않았던 실험과 도전을 마음껏 펼치는 무대다.
“다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택시에서 내린 그는 외딴 골목에 위치해 사람이 드문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구석 자리에는 익숙한 얼굴 두 명이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왔어?”
이시환이 손을 흔들었다.
평소 같았다면 큰 목소리로 최치우를 반겼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회견 이후 최치우의 유명세가 지나치게 높아져 이시환도 조심을 했다.
거리감을 느껴서일 리는 없다.
다만 주위의 이목을 끌게 되면 최치우가 불편해할까 봐 배려를 하는 것이다.
이시환 옆에는 백승수가 함께 있었다.
최치우는 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시환이 형, 승수 형님, 모두 잘 지내고 있었죠?”
휴학을 했기에 매일 같이 캠퍼스에서 보던 시절과는 달랐다.
더구나 최치우의 위상도 그때와 비교할 수 없었다.
“잠깐만, 커피 좀 시키고 올게요.”
최치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돌아왔다.
테이블에 마주 앉은 그는 어색한 기류를 느꼈다.
이시환과 백승수, 두 사람은 마치 전공 교수님을 밖에서 만난 것처럼 불편해 보였다.
“뭐야, 형들 왜 그래요? 오랜만에 봤는데 반가운 티도 안 내고.”
“그, 그게…….”
가장 선배인 백승수가 머뭇거렸다.
그는 최치우 덕분에 국민훈장을 받게 된 후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
그런데 최치우가 하루아침에 너무 유명한 거물이 되자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다.
괜히 친한 척을 하면 공연히 잘나가는 사람에게 빌붙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스러운 것이다.
세상 이치가 원래 이렇다.
누군가 성공하면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대놓고 친한 척을 한다.
정작 진짜 가까운 사람들은 부담을 줄까 봐 오히려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시환과 백승수도 마찬가지였다.
최치우는 둘이 왜 쭈뼛거리는지 금방 파악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시환이 형, 승수 형님. 난 올림푸스라는 회사의 대표가 됐고, 예전보다 유명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막내인 건 변함없어요. 한 번 F.E는 영원히 F.E.다, 맞죠?”
최치우가 먼저 격의 없이 자신을 열어보였다.
그가 콧대 높게 변하지 않았음을, 또한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확인한 이시환과 백승수는 그제야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야, 좀 어색했지? 미안해. 너 부담 줄까 봐 그랬어.”
이시환이 먼저 팔을 뻗어 최치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백승수는 한 손으로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치우, 너 덕분에 훈장을 받게 된 은혜도 아직 못 갚았는데… 엄청 바쁜 와중에 우리까지 만나러 온다니 자꾸 신세만 지는 거 같아서…….”
“우리끼리 얼굴 보는 게 무슨 신세예요.”
최치우는 두 사람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렇기에 더욱 고마웠다.
주위 사람이 유명해지면 친한 척을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써 조심하는 이들이 진국이다.
최치우는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보자고 했어요.”
“응?”
사뭇 진지한 그의 태도에 이시환과 백승수가 눈을 크게 떴다.
최치우는 빙빙 돌리지 않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
“형들만 괜찮다면, 우리 올림푸스에서 함께 일하면 좋겠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의였다.
이시환은 만화 캐릭터처럼 입을 떡 벌렸고, 백승수는 떨리는지 말을 더듬었다.
“어… 어…….”
물론 두 사람은 국내 최고인 S대에서 공부를 했고, 얼마든지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
게다가 국민훈장 무궁화장 덕분에 가산점도 빵빵하게 받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푸스 합류는 차원이 다른 제안이다.
이미 우주로 날아오르기 시작한 로켓에 탈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나 정부 산하 연구소, 또는 대학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자리다.
그러나 평생 비슷한 일을 반복하며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최치우는 그들에게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동아줄을 내려준 셈이다.
더구나 독도에 이어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로 최치우의 동아줄은 무엇보다 튼튼하다는 게 증명 됐다.
“할게! 무조건 할게! 너 마음 변하기 없기다!”
이시환이 본래의 유쾌한 모습으로 돌아와 목소리를 높였다.
백승수도 이에 질세라 얼른 대답했다.
“나, 나도. 어떤 직책이든 상관없이 같이 일하면 좋겠어.”
이로서 최치우는 좌청룡 우백호를 얻었다.
아직은 세상이 이시환과 백승수의 진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올림푸스 안에서 최치우와 함께 엄청나게 성장하며 든든한 기둥이 될 것이다.
우선순위 첫 번째 리스트를 가뿐하게 해결한 최치우는 환하게 웃으며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에게 페퍼 포츠와 자비스가 있다면, 최치우에게는 백승수와 이시환이 생겼다.
그는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할 다음 일을 떠올렸다.
최치우에게 훈장을 수여했던 장본인,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을 설득하는 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