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55화 (55/243)

# 55

***

미국 국방부 장관은 단순히 한 사람의 장군이나 고위 관료가 아니다.

그의 행방 자체가 미국의 국가 안보 기밀 사항이다.

최치우는 사방이 하얀색으로 칠해진 넓은 방에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움직이는 장본인, 루이스 고어를 처음 만났다.

반백의 머리를 한 루이스 고어는 미군의 전설이다.

육해공 3군은 물론, FBI와 CIA에서도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최치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최치우는 자신을 뚫어져라 주시하는 루이스 고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백전노장도 최치우의 심연을 읽을 순 없다.

“올림푸스의 대표, 치우 최?”

루이스 고어는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최치우의 이름을 불렀다.

보통 미국인들이 치우 초이라 부르는 것과는 달랐다.

최치우는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장관님.”

“엄청난 물건을 가져왔다고. 잭 앤더슨이 그렇게 흥분하는 건 처음 봤네.”

루이스 장관은 잭을 언급했다.

하얀 방 안에는 한국에서 만났던 잭과 에디도 자리하고 있었다.

잭 앤더슨은 생각보다 더 중요한 연구원이었다.

국방부 장관이 직접 거론할 정도이니 말 다 한 셈이다.

최치우는 다시 만난 잭의 얼굴을 슬쩍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저도 놀랐습니다. 장관님을 만나게 될 줄은.”

“놀란 것 치고는 너무 여유로운 태도군. 하긴, 그 어린 나이에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고 대기업의 투자를 받아 자기 회사를 만들고, 또 신금속을 발견했으니 보통은 아니어야지.”

루이스 고어 장관은 최치우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다.

“상파울루에 다녀왔더군. 그 직후 우리와 나사에게 신금속에 대해 알렸고. 미쓰릴이라는 금속, 브라질에서 찾아낸 건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펜타곤은 최치우의 출입국 기록까지 샅샅이 뒤져봤다.

그러나 최치우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미쓰릴의 출처를 알려주게 되면 브라질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어차피 확실한 물증은 없다.

루이스 고어는 다 알겠다는 듯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이 협상에 한가한 라틴 놈들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네. 아무튼, 테스트 결과는 잭에게 질리도록 들었고. 내 눈으로 한 번만 신금속의 성능을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물론입니다. 레이저 빔, 준비되어 있습니까?”

“당연하지.”

루이스 장관이 뒤로 도열한 부하들에게 눈짓을 줬다.

펜타곤 지하의 하얀 방은 폭탄이 터져도 멀쩡할 내구성을 갖추고 있다.

최치우는 특이한 구조의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테스트를 할 거란 사실을 예상했다.

지이이이이- 철커덕!

하얀색 벽에서 뭔가 툭 튀어 나왔다.

눈으로 구분하기 힘들도록 모두 하얗게 칠해진 벽에는 온갖 특수 장비가 설치돼 있었다.

저벅저벅.

최치우는 루이스 장관과 펜타곤 장성들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벽에서 튀어나온 기계가 자동으로 최치우를 따라 움직였다.

스윽-

최치우가 기계를 향해 왼손을 들었다.

그의 약지에는 투명한 미쓰릴 반지가 있었다.

“여기 네 번째 손가락에 있는 반지로 레이저 빔을 쏘면 됩니다.”

최치우는 당당하게 테스트를 요구했다.

하지만 신무기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레이저 빔은 초정밀 타격이 가능한 고도의 최신 무기다.

0.1㎜보다 작은 목표물을 타격해 완전히 녹이거나 뚫어버린다.

강철로 만든 반지라고 해도 레이저 빔을 막을 순 없다.

반지는 물론이고, 착용자의 손가락까지 순식간에 뚝 끊어질 것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망설임 없이 왼손을 내밀고 있었다.

펜타곤도 국방부 장관이 서 있는데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곧바로 기계 끝 부분에 붉은 빛이 모이더니 레이저 빔이 쏘아져 나왔다.

소리도 없었다.

레이저 빔의 궤적을 눈으로 쫓는 건 불가능하다.

이래서 레이저 빔이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일이 연달아 터졌다.

우웅-

슈우우우우!

레이저 빔이 미쓰릴 반지를 초정밀 타격한 순간, 고막을 때리는 공명음이 울렸다.

곧이어 미쓰릴 반지에서 두 배는 굵어진 빔이 뿜어졌다.

쾅-!

콰지지직!

미쓰릴의 특성대로 레이저 빔은 원래보다 더욱 강력하게 튕겨졌다.

반발력이 더해진 빔을 정통으로 맞은 기계는 그대로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다.

레이저 빔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이고, 따라서 기계값만 100억이 넘는다.

방금 최치우는, 아니 그가 착용한 미쓰릴 반지는 미군의 재산 100억을 순식간에 날려 버린 것이다.

“…….”

장내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루이스 장관을 비롯해 하얀 방에 모인 장성들은 잭과 에디의 극비 보고서를 이미 읽었다.

그렇지만 눈으로 직접 보면 누구든 충격을 받는 게 당연하다.

최치우는 왼손을 내리고 루이스 고어를 쳐다봤다.

미군의 지휘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무표정, 포커페이스. 역시 짬밥을 그냥 먹은 건 아니란 말이군.’

루이스는 놀란 기색을 완벽히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최치우는 세계 최강대군의 지휘자를 놀래켰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더 이상의 증명은 불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치우는 루이스 고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미국 국방부 장관과 펜타곤이 선택을 할 차례다.

미쓰릴을 구하기 위해 협상에 임할 것인지, 아니면 강제력을 동원해 최치우를 억류하려 들 것인지.

물론 후자를 선택하게 되면 최치우는 그들에게 재앙이 무엇인지 보여줄 작정이었다.

고오오오오-!

단전에 모여 있는 내공이 활화산처럼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최치우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절정에 이른 금강나한권을 펼칠 수 있다.

동시에 6서클 마법이 이적을 일으켜 펜타곤의 최신식 보안 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결정의 순간, 루이스 고어의 목소리가 울렸다.

“미스터 최를 VIP 테이블로 모시게. 내가 직접 협상을 해야겠네.”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최악의 경우 체포하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국방부 장관과 1 : 1 단독 협상을 하게 됐다.

최치우는 루이스 고어를 쳐다보며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백전노장의 감을 무시해선 안 된다.

어쩌면 루이스 장관은 최치우를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된다는 본능적 신호를 느낀 게 아닐까.

이유가 무엇이든, 최치우는 펜타곤의 정점에서 협상을 이끌게 됐다.

올림푸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확실한 성과를 낼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짧은 보도 자료가 주요 언론사 기자들에게 배포됐다.

올림푸스라는 낯선 이름의 회사에서 발송한 보도 자료였다.

기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곳의 기업과 출입처에서 보도 자료를 받는다.

그렇기에 E-메일을 읽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올림푸스에서 보낸 한 장의 보도 자료는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CNN과 BBC 등 세계적인 외신에서도 같은 내용을 뉴스로 다뤘다.

한국 언론이 뒤집어지고, 국제 뉴스로도 다뤄질 만큼 보도 자료 첫 줄의 임팩트가 강렬했다.

미국 국방부, 한국 자원개발 회사 올림푸스와 기술 제휴.

단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펜타곤은 이따금 민간 기업과 기술 제휴를 맺어왔다.

하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경우는 드물었고, 파트너도 거의 대부분 미국 회사였다.

그런데 미국도, 유럽도 아닌 대한민국의 신생 기업과 기술 제휴를 맺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처음에는 보도 자료를 받은 국내 기자들도 반신반의했다.

올림푸스라는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서 무슨 수로 기술 제휴를 따냈는지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 홍보실은 보도 자료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인해줬다.

게다가 발 빠른 외신에서 먼저 국제 뉴스로 보도를 했다.

한국 언론은 한발 늦게 관련 기사를 쏟아내며 올림푸스라는 회사를 추적했다.

최근에 법인을 개설한 비상장 회사로 세세한 정보를 캐내긴 힘들었다.

하지만 공개된 정보만으로 2차, 3차 뉴스를 풀어내긴 충분했다.

대표이사 최치우, 등기 이사 임동혁.

한영 그룹의 후계자 임동혁이 참여해서 만든 회사라는 것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거기에 취재력을 총동원한 기자들은 대표이사 최치우가 독도 해저 자원 개발에 참여해 훈장을 받은 S대 학부생이라는 걸 확인했다.

이거야말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였다.

독도 개발에 참여한 젊은 대학생이 대기업의 투자를 받아 회사를 세우고, 단번에 펜타곤과 기술 제휴를 성사시켰다.

영웅에 목말라 있던 한국 사회를 촉촉이 적시는 단비, 아니 홍수 같은 소식이다.

보도 자료가 배포된 날 오후, 올림푸스와 최치우의 이름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한영 그룹과 임동혁도 덩달아 회자됐다.

기자들은 올림푸스가 대체 어떻게 펜타곤과 제휴를 맺었는지, 정확히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용을 썼다.

그러나 디테일한 정보는 아직 오픈되지 않았다.

다만 매체력을 갖춘 소수의 언론사 담당 기자들에게 올림푸스의 초청장이 별도로 도착했을 뿐이다.

오는 금요일, 오전 10시, 한영 그룹 본사 대강당.

올림푸스의 대표이사 최치우가 직접 펜타곤과의 기술 제휴에 대해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틀 뒤에 기자회견이 열리면 최치우와 올림푸스는 대한민국과 세계를 또 한 번 경악시킬 것이다.

독도 개발에서 자신을 감추고 때를 기다렸던 최치우는 누구보다 화려한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게 됐다.

이제 세상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최치우는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격식을 차려야 할 때도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만 치중하는 건 구식이다.

애플의 전설적 CEO 스티브 잡스는 단출한 프레젠테이션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켰다.

운동화와 청바지, 폴라티만 입고 단상에서 이야기를 한 게 전부였다.

그러나 세상은 애플 행사장의 규모나 치장에 감탄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들고 나온 혁신 그 자체에 열광했을 뿐이다.

올림푸스의 첫 번째 기자회견도 마찬가지였다.

최치우는 임동혁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명 아나운서를 섭외하지 않았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아나운서에게 사회를 맡길 이유가 없었다.

회사의 자본금은 온갖 허세를 부려도 될 만큼 넉넉하다.

하지만 이유 없는데 돈을 쓰는 건 최치우의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최치우는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서 함께했던 이시환과 백승수를 올림푸스로 스카웃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직 어떤 직원도 뽑기 전이다.

따라서 한영 그룹의 홍보실 직원이 사회를 맡았다.

그래봤자 초청장을 받은 기자들을 안내하고, 행사를 순서대로 진행하는 게 전부였다.

“이제 올림푸스의 최치우 대표님께서 나오십니다.”

명색이 올림푸스라는 회사가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소개되는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인의 축사 등 일체의 허례허식을 생략했다.

홍보실 직원의 호명을 받은 최치우는 편안한 차림으로 단상 위에 올라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별 과제 발표를 하러 나온 대학생 같을 것이다.

원래는 최치우도 조별 과제 자리에 서 있어야 할 학부생이다.

차이가 있다면 학교 밖으로 나온 그는 세상을 놀라게 만든 빅딜을 성사시킨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안녕하세요, 올림푸스의 대표 최치우입니다.”

이미 조사를 마쳤지만, 막상 21살의 청년이 등장하자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그가 독도 자원 개발에 참여하여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은 대단한 인재라는 건 다들 알고 있다.

그래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미국 국방부와의 기술 제휴를 체결한 당사자라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최치우는 넋 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특유의 짙은 미소와 함께 최치우의 첫 번째 공식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훗날 역사는 이 순간을 위대한 신화의 서막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올림푸스는 회사가 아닙니다. 기업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 비밀 아래 숨겨져 있던 것들을 찾아 나서는 모험가들의 모임이 되고자 합니다. 올림푸스의 모험은 인류의 미래를 빛나게 만들 겁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한영 그룹 본사 대강당이 조용해졌다.

최치우는 주요 매체의 베테랑 기자들을 완벽히 장악하며 말을 계속했다.

“올림푸스는 첫 번째 프로젝트로 새로운 금속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국방부와의 기술 제휴를 체결해 대량 살상 무기로부터 민간인들을 지키는 기술 개발에 앞장서게 됐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그로인해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일을 해내겠습니다. 이 세계를, 인류를, 우리의 지구를 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올림푸스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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