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54화 (54/243)

# 54

<절대 반지>

나사는 망설이고, 펜타곤은 적극적이다.

당초 예상과는 반대였다.

우주 탐사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나사가 미쓰릴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릴 줄 알았었다.

그런데 먼저 연락이 온 쪽은 펜타곤이다.

한국에서 최치우를 만나고 돌아간 잭 앤더슨과 에디 존슨은 상부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구체적인 조건은 계약서 도장을 찍을 때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최치우는 원하는 바를 확실히 밝혔고, 펜타곤에서도 어느 정도 수용할 의사가 있기에 다시 연락을 한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비공식적으로 올림푸스, 정확히 말하면 최치우를 초청했다.

당연히 원형의 미쓰릴을 들고 미국에 갈 수는 없다.

물론 최치우는 미군 특수부대가 떼로 덤벼도 미쓰릴을 뺏기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굳이 불필요한 모험을 감수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직접 미쓰릴을 테스트한 잭은 손톱 크기의 원석만 들고 미국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미쓰릴의 특성을 눈으로 확인하면 펜타곤 수뇌부도 화끈하게 결정을 내릴 거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최치우는 흔쾌히 미국행을 약속했다.

어떻게 보면 사자 굴로 들어가는 셈이나 다름없다.

미국 정부는, 특히 네오콘의 본산인 펜타곤은 정의로운 곳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사실을 은폐할 힘도 가지고 있다.

과연 그들이 최치우를 동등한 거래 파트너로 생각할까.

아니면 막강한 힘을 이용해 압박하고 억누를 상대로 여길까.

보장된 것은 없지만, 최치우는 펜타곤이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할 마음을 먹었다.

올림푸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히 최치우의 손에 달린 것이다.

“음, 이거 생각보다 예쁜데?”

최치우는 마나를 주입해 손톱만큼의 미쓰릴을 떼어내어 반지 모양을 만들었다.

가운데를 뚫어버리고 남은 미쓰릴은 다시 원형에 붙였다.

그는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미쓰릴을 마치 점토처럼 자유롭게 갖고 놀았다.

마나를 다루는 사람, 즉 마법사에게만 부여된 특권이다.

스윽-

최치우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미쓰릴 반지를 꼈다.

마나를 주입하지 않은 상태의 미쓰릴은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투명한 금속이다.

유심히 살펴보면 흔하지 않은 금속이라는 게 티가 난다.

하지만 얼핏 보면 조금 특이한 재질의 반지일 따름이다.

미쓰릴 반지는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위급한 상황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최치우는 자신이 만든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공항에서도 귀찮을 일이 없겠어.”

이제 미국으로 떠날 준비는 끝났다.

김도현 교수와 임동혁은 최치우 혼자 펜타곤으로 가는 것을 불안해했다.

그러나 올림푸스의 최종 결정권자는 최치우다.

그가 작심한 이상 누구도 결정을 뒤집을 순 없다.

어머니와 여자 친구인 유은서는 최치우가 브라질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미국으로 가는 걸 안쓰러워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유은서는 유은서대로 최치우가 하는 일을 발목 잡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일만 잘 풀리면 올림푸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세상에 공개할 수 있다.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신금속을 발견하고, 펜타곤과 기술 제휴를 맺었다고 발표하면 상장도 하지 않은 올림푸스의 기업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최치우는 인류의 미래를 변화시킬 올림푸스의 앞날을 기대하며 미국행을 준비했다.

사실 준비랄 것도 없다.

미쓰릴 반지와 맨몸이면 충분하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그의 얼굴엔 불안감 대신 자신감이 태양처럼 떠올라 있었다.

***

미국에 도착한 최치우는 국빈 대우를 받았다.

그가 펜타곤과 접선하기 위해 미국에 간 건 한국 정부에서도 모르는 극비 사항이다.

한국 정부가 최치우의 동행을 일일이 감시하고 추적할 리는 없다.

그는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젊은 인재지만, 정부에서 특별 관리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최치우의 진가를 더 잘 아는 쪽은 오히려 미국 정부였다.

그들은 단지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만 제공한 게 아니었다.

최치우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은 입국 심사가 끝난 다음에야 가이드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펜타곤의 대우는 남달랐다.

정장을 쫙 빼입고 최치우를 기다린 안내원은 미국 국방부 소속 요원이다.

그가 미리 조치를 취한 덕분에 최치우는 입국 심사도 곧바로 통과했다.

외교관들이 입국 심사를 받는 통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미국의 입국 심사가 얼마나 깐깐한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국빈 대우를 받은 셈이다.

퍼스트 클래스를 탑승했으니 최치우의 캐리어는 당연히 가장 먼저 따로 나와 있었다.

게다가 공항 입구에는 육중한 크기의 최고급 SUV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대기했다.

최치우는 요원의 안내를 받아 가장 편한 자리에 탑승하며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흑인 드라이버가 그의 짐을 싣는 사이 운전석을 엿볼 수 있었다.

보통 차에는 달려 있지 않은 버튼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방탄은 기본으로 돼 있을 테고, 비상 상황을 대비해 특수 장치를 달아둔 것 같군.’

그는 자신이 예사 차량에 올라탄 게 아님을 직감했다.

이동 중 전투가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는 특수 차량에 탑승한 것이다.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최치우는 국빈 대우에 버금가는 펜타곤의 영접이 얼마나 무서운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이 잘 풀리면 국빈 대우, 그러나 잘못되면 언제든 소리 소문 없이 나라는 존재를 지우려 할지 모른다. 자기들 홈그라운드에 들어왔다, 이거지.’

그는 공항에서부터 이어진 최고의 대우에 흥분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다.

사회 경험이 없는 21살이라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펜타곤의 정성에 감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산전수전 공중전은 물론, 로봇대전까지 겪으며 별꼴을 다 본 사람이다.

특히 천하제일검 이세민으로 살았던 무림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노인과 아이, 여자를 가장 조심하라.

겉보기엔 약해보이는 대상이 실은 가장 무섭다는 강호의 구전이다.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선 항상 여러 각도에서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극진한 대우를 해주는 건 그만큼 바라는 게 많다는 뜻이다.

특히 지금처럼 최치우의 행방이 펜타곤에 의해 은폐된 상황은 가장 위험한 경우다.

최치우는 편안하고 넓은 좌석에서 긴장을 풀지 않았다.

언제든 내공을 일으키고, 마나를 모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잠깐의 방심으로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절대 오버하는 게 아니다.

설령 오버라고 해도 조심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다.

“얼마나 가야 합니까?”

최치우는 목적지를 묻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딱히 비밀스러운 장소로 데려가는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만약 목적지를 감추고 싶었다면 차 안에서 밖이 안 보였어야 한다.

그러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방탄과 특수 장치가 돼 있을 뿐, 창밖으로 도로가 훤히 보였다.

“금방 도착합니다.”

공항에서부터 최치우를 안내한 요원은 정확한 소요 시간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금방이라는 단어에서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워싱턴 국제공항과 펜타곤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최치우를 태운 차량은 외부인의 방문과 견학이 금지된 펜타곤으로 향하는 게 분명했다.

‘일단 좋은 징조다.’

최치우는 펜타곤이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관계자들을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그를 공식적인 기관으로 데려간다는 건 협상이 원활히 진행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지만.’

최치우는 주어지는 소소한 정보들을 취합하며 쉬지 않고 두뇌를 회전시켰다.

펜타곤은 지하 2층부터 지상 5층까지 있는, 세계에서 수용 인원이 가장 많은 거대한 건물이다.

그렇기에 접근 금지 구역이 많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깥에선 절대 알 수 없다.

단순히 미국에 방문한 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초청받은 것이다.

“짐은 숙소로 보내놓겠습니다.”

최치우가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던 중, 딱딱한 돌덩이 같은 요원이 입을 열었다.

캐딜락은 호텔 대신 곧장 펜타곤으로 향했다.

마침 차창 너머로 압도적 위용을 자랑하는 육중한 건물이 보였다.

펜타곤은 이름 그대로 오각형 모양의 건물이지만, 도로에서는 오각형 형태를 유추하기 어려웠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건물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드디어… 왔다.’

최치우는 눈을 크게 뜨고 펜타곤의 측면을 주시했다.

2만 3천명의 군인과 민간인 직원, 그리고 3천명의 지원 인력이 상주하는 철옹성.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지탱하는 무력의 심장부.

공개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게 훨씬 더 많은 펜타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최치우는 S급 몬스터가 지키는 던전에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헌터로 살았던 차원의 두근거림이 오랜만에 느껴졌다.

그는 느낌만이 아니라 결과도 과거 차원과 똑같기를 바랐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S급 몬스터를 갈기갈기 찢었던 것처럼, 펜타곤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에서 원하는 바를 100% 이뤄가야 한다.

최치우는 왼손에 낀 미쓰릴 반지를 바라보며 각오를 다졌다.

협상을 하러 왔지만 전의(戰意)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

펜타곤으로 들어서는 절차 역시 간소했다.

최치우는 기본적인 엑스레이 검사만 마치고 펜타곤 내부로 들어섰다.

펜타곤은 IS의 테러가 기승을 부린 이후 외부인의 방문과 견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부의 보안은 더더욱 강해졌다.

최치우는 오각형 철옹성 안에서 수많은 무장 병력을 감지했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그의 예민한 감각이 레이더처럼 사방을 탐지하고 있었다.

‘복마전이 따로 없군.’

미국 내 국방부의 본거지임에도 무장 병력이 곳곳에 포진한 것 같았다.

눈에 뛰진 않아도 최치우의 감각을 속일 순 없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면 제법 골치는 아프겠어.’

최치우는 만에 하나 협상이 틀어지고, 펜타곤이 강제력을 동원하려 들면 혼자서 탈출할 계획이었다.

물론 무공과 마법을 펼치면 탈출이 아니라 펜타곤을 쑥대밭으로 만들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적당히 능력을 감추다간 큰 코 다칠지 모른다.

펜타곤 내부의 경비 태세는 상상 이상으로 삼엄했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공항에서부터 최치우를 안내한 요원은 점점 인적이 드문 복도로 걸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복도를 오가는 군인과 직원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삐빅!

지이이잉-

요원은 앞을 가로막는 유리벽이 나올 때마다 지문과 홍채를 인식시켰다.

벌써 몇 번의 유리벽을 통과하고, 긴 복도를 지나쳐 지하로 내려왔다.

최치우는 펜타곤 내부 구조를 모르지만 보안이 철저한 금지 구역에 입장한 게 분명했다.

지하로 들어선 다음 드물게 복도에서 마주친 군인들의 모자에는 딱 봐도 높은 계급을 상징하는 문양이 붙어 있었다.

처억.

곧이어 요원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복장을 체크하고 돌아서 최치우를 쳐다봤다.

“장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미국의 육해공 3군을 통솔하는 최고 지휘관.

대통령이 상징적 의미의 군 통수권자라면 국방부 장관은 실권을 장악한 지휘관이다.

놀랍게도 최치우는 펜타곤에 도착하자마자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게 됐다.

올림푸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미쓰릴을 찾아낸 최치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눈덩이가 되어 굴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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