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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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제휴는 아주 민감한 단어다.
특히 펜타곤처럼 보안을 생명으로 여기는 단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무려 미국 국방부다.
세계 최강대국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면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
미군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전 세계 어디서도 두 발 뻗고 자기 힘들다.
실제로 아프리카나 제3국을 전전하며 도망 다니는 국제적 범죄자들이 꽤 있다.
최치우는 스스로 내뱉은 말의 무게감을 모르지 않았다.
말이 좋아 기술 제휴이지, 자칫 미국으로부터 스파이 취급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다.
그렇기에 김도현 교수나 임동혁과도 미리 상의를 하지 않았었다.
두 사람과 의논을 하면 현실적인 이유로 만류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기술 제휴를 조건에 넣었다.
단순히 돈만 받고 팔기엔 미쓰릴이 너무 아까웠다.
펜타곤에서 온 에디 존슨과 잭 앤더슨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단 물러섰다.
직접 실험을 한 잭은 미쓰릴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 듯 아쉬워했지만, 아무리 천재 연구원이라 해도 마음대로 결정을 내릴 순 없다.
에디가 펜타곤 상부에 보고를 올리고 결재를 맡기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것이다.
그사이 최치우가 이끄는 올림푸스는 나사와 별도의 미팅을 잡았다.
나사도 펜타곤 못지않게 미쓰릴의 진가를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이번에도 한영 그룹의 연구실 건물에서 비밀스러운 만남이 성사됐다.
나사에서는 두 명의 경호원과 세 명의 연구원을 보냈다.
세 명의 연구원은 각각 우주과학과 신소재 공학, 물리학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이다.
완전히 다른 전공이지만, 인류가 이룩한 과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실험실 A에서 잭이 그랬던 것처럼 미쓰릴의 특성을 알아봤다.
준비된 장비를 통해 갖가지 방식으로 미쓰릴을 탐구하려 들었다.
펜타곤의 잭 앤더슨이 미쓰릴의 강도와 에너지 반발력 테스트에 집중했다면, 나사에서 온 연구원들은 조금 더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미쓰릴이 우주에서 온 금속은 아닌지, 또한 대기권 밖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최치우는 펜타곤 때와 마찬가지로 통 크게 1시간을 내줬다.
하지만 한번 실험에 몰입하면 며칠 밤을 새는 연구원들에겐 짧은 시간이었다.
1시간이 지나고, 최치우는 거래 조건을 묻는 나사의 연구원들에게 원하는 바를 말했다.
“합당한 금액, 그리고 기술 제휴.”
반응은 비슷했다.
펜타곤의 베테랑 에디도 놀람을 숨기지 못하고 동공이 흔들렸었다.
평생 공부만 해온 나사의 연구원들은 표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기술 제휴? 어떤 걸 뜻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간단합니다. 나사에서는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미쓰릴을 가지면 됩니다. 대신 내가 원하는 분야의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겠죠.”
최치우가 생각하는 기술 제휴 조건은 나사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어떤 분야의 기술을 제휴할지 선택하는 권한도 최치우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나사에서 그런 조건으로 기술 제휴를 맺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게다가 정부도 아닌 민간단체와는…….”
나사의 선임 연구원이 말끝을 흐렸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뉘앙스가 충분히 전해졌다.
과학자 입장에서 미쓰릴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보물이다.
그렇지만 소유주인 최치우가 원하는 조건은 맞춰주기 어려울 것 같았다.
당연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최치우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든 첫 번째 케이스가 있게 마련이죠. 나는 미쓰릴을 확인시켰고, 원하는 조건을 말했습니다. 이제 나사의 대답을 기다릴 차례입니다. 물론, 다른 경쟁자들이 내 조건을 받아들이기 전에 대답을 해야 할 겁니다.”
그는 나사가 아닌 다른 기관에도 미쓰릴을 보여줬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경쟁심을 발동시켜야 거래가 쉬워지는 법이다.
어차피 답은 하나밖에 없다.
한국에 온 연구원들이 나사 상부를 죽어라 설득해서 최치우의 조건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그들이 미쓰릴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은 0%다.
이로서 최치우는 펜타곤과 나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붙였다.
만약 두 단체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조건을 가져 오면 미쓰릴을 절반으로 나눠도 된다.
그는 독점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쓰릴의 실체를 확인하기 전까지 펜타곤과 나사는 자신들이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치우는 펜타곤과 나사의 정예 요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전세를 역전시켰다.
순식간에 갑을 관계가 뒤바뀐 것이다.
최치우는 무리하다면 무리한 조건을 내걸었지만, 여유롭게 대답을 기다리는 입장이 됐다.
반면 세계 최강의 무력 집단 펜타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 나사는 최치우와 미쓰릴을 놓고 고민에 빠지게 생겼다.
아직 공식적으로 출범을 하지도 않은 올림푸스라는 회사, 그리고 21살의 휴학생 대표 최치우가 세계를 움직인 셈이다.
어떤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최치우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올림푸스가 열어나갈 미래를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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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혁과 김도현 교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술 제휴를 요구한 건 다 된 밥에 코를 푼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충동적으로 기술 제휴라는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그는 미쓰릴을 통해 만만치 않은 액수의 돈을 벌 계획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면 단순한 장사치가 되고 만다.
올림푸스는 돈을 많이 버는 회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최치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곳에만 미쓰릴을 넘기려 했다.
하지만 펜타곤과 나사가 미쓰릴을 연구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다면, 또는 전혀 엉뚱한 실험에 사용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나 기술 제휴를 하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우선 미쓰릴을 이용해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게 되고, 최악의 경우 무공과 마법을 펼쳐 미쓰릴을 되찾을 수도 있다.
또한 특정 분야의 최첨단 기술을 배울 기회를 얻게 된다.
말이 좋아 기술 제휴이지, 사실상 펜타곤과 나사의 기술을 알려달라는 뜻이다.
최치우는 펜타곤의 살상 로봇 기술, 나사의 무인 우주 탐사 기술을 살펴보고 싶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현대의 지구에서 삶을 시작하기 전, 그는 다른 차원에서 기계화 군단의 로봇 엔지니어로 살았었다.
전생의 기술력을 접목시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살상 로봇 개발과 무인 탐사선 개발이다.
최치우가 살상 로봇이나 무인 탐사선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세계의 최전선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관여하고 싶었다.
아바타로부터 받은 미션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복잡한 차원인 현대의 지구에서 모든 분야에 걸쳐 정점에 오르는 것.
불가능한 목표지만 최치우라면 해낼지 모른다.
그렇게 다양한 층위에서 세상을 발전시켜야 비로소 세계를 구하는 기쁨을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염려하는 임동혁과 김도현 교수를 안심시키며 중심을 잡았다.
“곧 올림푸스의 설립을 알리며 중대 발표를 하게 될 겁니다.”
자신만만한 최치우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불안함이 완벽히 가시지 않았지만, 이제까지 최치우는 입 밖으로 내뱉은 모든 말을 지켜왔다.
과연 이번에도 그의 말대로 펜타곤이나 나사가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고 백기를 들지 지켜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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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우는 김도현 교수와 임동혁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최치우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동료가 됐다.
특히 김도현 교수는 어려운 문제를 앞두고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는 멘토이기도 하다.
임동혁 역시 만날 때마다 날선 말을 주고받지만, 서로가 서로를 200% 인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바로 최치우가 7번의 환생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둘은 21살 최치우를 하늘이 낳은 천재이자 괴물로 여기고 있다.
실은 그가 무려 8번째 차원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최치우의 눈높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최치우는 보통 사람들의 사고방식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단순히 더 똑똑하고 능력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아예 상식을 초월해 궤를 달리하는 생각과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최치우의 몸은 현대의 지구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의 영혼에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과 사고방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펜타곤과 나사를 상대로 기술 제휴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제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감히 펜타곤과 나사를 상대로 배짱을 부리진 못한다.
그게 지구인의 상식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지구인이면서 동시에 지구인이 아닌 특별한 존재다.
앞으로 최치우의 독특한 면모는 더더욱 빛을 발하며 주머니 속 송곳처럼 튀어나올 것이다.
그로인한 오해도 많겠지만, 최치우는 모두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상식대로 움직이면 세상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계를 극복하고 룰을 파괴하며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서기 위해선 상식을 뛰어넘어야 한다.
째깍, 째깍, 째깍-
최치우는 시곗바늘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거실 소파에 혼아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일찍 가게에 일을 하러 나가셨다.
그는 켜지도 않은 TV 화면을 응시하며 생각을 발전시키는 중이었다.
‘이번 주 안에는 반드시 연락이 온다. 보고를 받은 상부에서 그냥 넘어갈 리 없어.’
최치우는 무려 펜타곤과 나사의 상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추측하고 있었다.
한국에 온 연구원들은 미쓰릴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상부를 설득해서 미쓰릴을 구하고 싶어 했다.
그만한 반응을 접하면 상부의 결정권자들도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체 미쓰릴이 어떤 물건인지, 또 기술 제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제시한 올림푸스가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최치우에 대해 찾아보면 나오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S대 공대 출신의 휴학생이며 독도 해저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훈장을 받았다.
CIA라고 해도 더 이상 다른 정보를 캐낼 순 없다.
결국 펜타곤과 나사의 수뇌부는 최치우를 직접 만나보고 판단을 내리려 할 것이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우우웅-
그때였다.
부엌 식탁에 올려둔 스마트 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최치우는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걸어갔다.
폰 액정에는 전혀 모르는 번호가 떠있었다.
070으로 시작하는 스팸 번호는 아니다.
최치우는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부터 짙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초대장이 날아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