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52화 (52/243)

# 52

<펜타곤과 나사>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펜타곤과 나사에서 하루라도 빨리 미쓰릴을 직접 보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심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먹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영 그룹의 후계자가 직접 보증한 미쓰릴의 특성은 너무 놀라웠다.

만약 그러한 특성이 사실이라면, 미쓰릴을 확보하는 건 펜타곤과 나사의 고위층까지 관여하는 중대한 프로젝트가 될 터였다.

최치우는 주먹 크기의 미쓰릴을 가방에 넣고 길을 나섰다.

그는 최소 1,0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미쓰릴을 배낭에 넣고 다녔다.

감히 누구도 최치우로부터 그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을 수 없다.

‘슬슬 차를 한 대 사야겠어.’

최치우는 원활한 이동을 위해 자동차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는 24시간 택시가 다니지만, 언제든 운전할 수 있는 자차에 비하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임 본부장님에게 추천해 달라고 해야지.’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은 펜타곤에서 파견 나온 사람을 먼저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는 경기도 모처에 위치한 한영 그룹의 연구실이다.

미쓰릴의 특성을 제대로 시험하기 위해선 연구 장비가 필요하다.

임동혁은 본부장으로서 직권을 발휘해 그룹 연구실 직원들에게 통째로 휴가를 줬다.

덕분에 텅 빈 연구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임동혁이란 존재는 최치우와 올림푸스에 쏠쏠한 도움이 됐다.

파이트 클럽을 통해 임동혁을 알게 되고, 반쯤 미친 그와 즉흥적으로 의기투합한 것도 운명인지 모른다.

물론 최치우 스스로 개척해서 만든 운명과 인연이다.

‘이제 구박을 좀 덜해야겠군.’

최치우는 올림푸스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임동혁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경비원들마저 휴가를 받아 썰렁한 한영 그룹 연구실 건물로 들어갔다.

경기도에서도 외곽 지역에 위치한 연구실에 다른 사람이 찾아올 일은 없다.

넓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는 단 3대뿐이었다.

임동혁과 김도현 교수, 그리고 펜타곤에서 온 손님들의 차량이었다.

‘드디어… 시작이군.’

최치우가 짙은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미쓰릴을 거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뻐하는 게 아니었다.

펜타곤과 나사는 현재 인류의 정점에 위치한 집단이다.

한 곳은 지구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지녔고, 나머지 한 곳은 지구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최치우는 7번째 환생을 하는 순간, 신의 아바타를 다시 만났었다.

아바타는 세상을 구하는 기쁨을 깨달으라는 미션을 줬다.

그 미션 때문이 아니더라도 최치우는 가장 복잡한 차원인 현대의 지구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뭘 알아야 지구를 구하든, 파괴하든, 지배하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디어 세계의 진실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을 펜타곤과 나사의 사람들을 조우하게 됐다.

올림푸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미팅이다.

최치우가 이렇듯 깊은 생각을 하는 걸 아는 사람은 없다.

그는 마음 속 보이지 않는 검의 날을 벼리고 있었다.

딸칵-

연구실 건물의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평소에는 까다로운 잠금장치로 보안이 유지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최치우는 미리 언질을 받은 장소를 곱씹었다.

‘3층, A 실험실이라고 했었지.’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연구실 건물 3층에 내렸다.

문이 열리고, 복도에서 걸음을 옮기니 금방 A 실험실이 보였다.

각종 연구 장비와 안전장치를 갖춘, 한영 그룹 연구실 건물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실험실이다.

최치우의 예민한 감각은 안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A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이지만, 몇 명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네 명? 생각보다 적은데.’

두 명은 김도현 교수와 임동혁이다.

그렇다면 펜타곤에서는 두 명을 한국으로 보냈다는 뜻이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적은 숫자였다.

하지만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펜타곤에서도 극비리에 미쓰릴을 확인하러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을 보내면 동선이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펜타곤은 두 명만 보내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임동혁 본부장의 말대로 최고의 정예들이니 자신감을 보이는 것이군.’

최치우는 짧은 시간에 꽤 많은 정보를 얻어냈다.

그는 한 발 앞서 생각을 마치고 실험실 A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작은 차이가 많은 것을 달라지게 만드는 법이다.

똑똑-

최치우는 문을 열기에 앞서 노크를 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춘 셈이다.

이윽고 그가 닫혀 있던 실험실 문을 열었다.

“치우 군.”

“최치우 씨.”

김도현 교수와 임동혁이 기다렸다는 듯 최치우의 이름을 불렀다.

평소에도 자주 만나는 편이지만, 두 사람은 오늘따라 최치우를 더 반겼다.

펜타곤과 주도적으로 협상을 할 수 있는 올림푸스의 대표로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낯선 두 명을 쳐다봤다.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을 닮은 흑인과 날카로운 인상의 백인이 나란히 서 있었다.

흑인은 40대를 넘긴 것 같았고, 백인은 그보다 어린 청년이었다.

두 사람도 새롭게 나타난 최치우를 주시했다.

“반갑습니다. 올림푸스의 대표, 최치우입니다.”

최치우는 능숙한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올림푸스의 대표라는 말을 실제로 써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그가 영어로 말문을 트자 펜타곤에서 온 두 사람도 화답했다.

“반갑소. 에디 존슨이오.”

“잭 앤더슨입니다.”

둘은 직함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최치우는 두 사람이 어느 정도 위치의 인물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

임동혁이 펜타곤과 은밀히 접촉하는 과정에서 확인 조치를 마쳤기 때문이다.

‘에디 존슨, 40대 중반인데 펜타곤 소속의 대령. 중동에서 혼자 IS 일개 전투조를 모조리 사살한 살아 있는 전설.’

최치우의 시선은 에디 존슨에게 오래 머물렀다.

그는 미군의 비밀스러운 전설 중 한 사람이다.

대령이면 엄청나게 높은 자리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직접 피땀을 흘릴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에디 존슨은 중동에서 IS 소탕 작전에 앞장서며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가 펜타곤의 결정권자로 은밀히 한국에 온 것이다.

에디 존슨이 움직이면 거추장스러운 호위 부대를 대동시킬 필요가 없다.

은밀한 작전에 최적화된 적임자였다.

‘기운이 남다르긴 해.’

최치우는 에디 존슨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다.

무공과 마법을 익힌 최치우에 비할 수는 없지만, 잘 갈무리 된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에디도 최치우를 유심히 바라봤다.

아마 조금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기운을 간파하려 해도 최치우에게서 무엇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거친 전장을 누빈 베테랑도 최치우 앞에선 애송이나 마찬가지다.

최치우는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이 친구가 그 유명한 천재로군.’

헐리우드 영화에 나올 것처럼 잘생긴 백인 청년, 잭 앤더슨은 펜타곤이 보유한 비밀 병기다.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인재로 펜타곤에서 각종 최신 기술 개발을 이끄는 주역이라고 한다.

‘잭 앤더슨이 미쓰릴의 가치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에디 존슨이 최종 결정을 내려 상부에 보고한다. 물론 그는 호위의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할 수 있고.’

두 사람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짐작됐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는데, 최치우는 숨 한번 들이킬 시간에 상대를 간파했다.

최치우는 이전 차원에서 1초의 선택으로 생사가 갈리는 경험을 수없이 해왔다.

그의 경륜은 미국 국방부의 전설인 에디 존슨도 쳐다볼 수 없는 높은 하늘 수준이다.

천외천(天外天)이란 말은 최치우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먼 길 왔으니 가장 궁금한 것부터 해결하고,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최치우는 에디와 잭이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다.

특히 펜타곤의 천재 연구원 잭 앤더슨은 당장 미쓰릴을 보고 싶은 눈치였다.

툭-

최치우는 가방에서 미쓰릴을 꺼내 실험실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는 잭을 쳐다보며 대담하게 말했다.

“펜타곤에서 미리 요청한 연구 장비를 모두 갖춰놓았다고 들었습니다. 1시간을 줄 테니 이 자리에서 뭐든 실험해도 좋습니다.”

“정말입니까?”

“피차 바쁜 사람들인데, 농담을 하겠습니까.”

최치우는 깜짝 놀란 잭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잭은 여전히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엄청난 가치의 신금속을 1시간이나 마음껏 맡길 거라곤 상상조차 못 한 것이다.

물론 모두 함께 있는 실험실을 벗어날 수 없지만, 그래도 최치우의 배포는 감탄할 만했다.

“잭, 여기가 펜타곤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테스트해 보게.”

에디 존슨은 최치우가 마음을 바꿀 새라 얼른 잭을 타일렀다.

그의 말을 들은 잭은 고개를 끄덕이며 실험용 장갑을 착용했다.

임동혁은 펜타곤과 나사에서 원한 실험 장비를 미리 준비해 놓았다.

물론 그들이 100% 원하는 환경에서 실험을 하는 것과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미쓰릴이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확인하기엔 충분한 여건이다.

“실험 과정에서 이 금속이 파손될지 모릅니다.”

잭이 진지한 얼굴로 미리 경고를 했다.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마나를 쓰지 않고선 어떤 방법으로도 미쓰릴을 파괴할 수 없다.

최치우는 잭 앤더슨이 어떤 실험을 할지 감이 왔다.

날카로운 금속 절삭기로 강도를 테스트하고, 레이저 빔으로 에너지 반발력을 확인해 볼 것이다.

결과도 뻔하다.

1시간이 지나기 전에 잭 앤더슨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미쓰릴을 얻기 위해 안달이 날 터였다.

최치우는 다소 긴장한 임동혁과 김도현 교수 틈에서 기지개를 쭉 폈다.

“1시간 남았으니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오겠습니다.”

그는 심지어 실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 누구도 최치우의 물건을 훔쳐갈 순 없다.

그런 무모한 시도를 했다간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최치우는 정말 커피를 마시기 위해 유유히 사라졌다.

물론 그는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게 아니었다.

압도적인 우위와 여유를 보여줘 펜타곤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세계 최강의 무력 집단이라고 해도 미쓰릴 거래에 있어서는 최치우가 갑이다.

그는 은연중 누가 우위에서 거래를 진행할지 각인시키고 있었다.

이미 에디와 잭은 최치우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김도현 교수와 임동혁도 최치우의 새로운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그들이 아는 최치우의 모습도 빙산의 일각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온 손님을 맞이한 최치우는 또 다른 면모를 보이며 스스로를 키워나갔다.

그는 S대 대학생이 아닌 올림푸스의 대표답게 자기 자신을 세팅하고 있었다.

***

1시간 뒤, 최치우는 서두르지 않고 다시 3층 A 실험실로 돌아왔다.

실험실 문을 연 그는 정확히 예상대로의 광경을 보게 됐다.

다양한 방법으로 미쓰릴을 테스트한 잭 앤더슨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날카로운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신반의하며 한국까지 날아온 잭은 미쓰릴이라는 신금속의 특성에 완전히 매료됐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천재 연구원의 흥분 상태에 에디도 덩달아 들떴다.

한국까지 날아온 게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금속은 대체…….”

잭이 돌아온 최치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그의 말을 끊으며 먼저 할 말을 했다.

“미쓰릴을 원합니까?”

“다, 당연합니다.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하지만, 원하는 금액은 얼마든지 맞출 수 있을 겁니다.”

펜타곤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잭은 어떻게든 미쓰릴을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최치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돈을 받으면 물건을 넘기는 상인과는 다른 부류다.

“펜타곤에 미쓰릴을 넘길지, 나도 아직 결정을 못 내렸습니다. 거래는 서로가 만족해야 이뤄지는 것이죠. 내 마음을 움직이려면 돈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을 원하는 것이오?”

평정심을 잃은 잭을 대신해 에디가 입을 열었다.

더 많은 권한을 지닌 사람이 나선 것이다.

최치우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합당한 금액, 그리고 기술 제휴.”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에디의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최치우는 미국 국방부를 상대로 위험한 게임을 시작했다.

그는 미쓰릴을 매개로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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