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50화 (50/243)

# 50

<남다른 스케일>

“상쾌하군, 상쾌해.”

최치우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자마자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방 책상 위에는 미쓰릴이 놓여 있었다.

창문 너머로 들어온 아침 햇살을 맞고 있는 투명한 미쓰릴이 오늘따라 더 청아해 보였다.

마나를 주입하지 않아 색이 변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오직 한 사람, 최치우 자신만 미쓰릴의 진가를 알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만약 온 세상이 미쓰릴의 가치를 안다면 최치우는 사설 금고에 보관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진가를 아는 사람이 없기에 도둑맞을 염려도 없다.

마음 편히 집 안에 둬도 되는 것이다.

“치우야, 일어났니?”

그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부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선물해 드린 독립문의 아파트는 예전 집보다 훨씬 편안했고,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난생 처음 가게와 아파트가 생긴 어머니는 최치우 덕분에 한결 여유로워졌다.

물적인 여유가 생기니 마음도 넉넉해지는 게 당연했다.

오늘도 가게를 늦게 여는 대신 브라질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있었다.

이제 예전처럼 먹고살기 급급해서 쫓기듯 일해야 하는 시절은 지나갔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식탁에 앉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침부터 갈비찜에 새우구이에 생일상 같은 진수성찬이 차려진 것이다.

“어머니, 아침부터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야, 아니야. 우리 아들이 먼 길 갔다 와서 먹는 집밥인데 신경 써야지.”

“그래도 이른 새벽부터 고생하셨어요.”

“걱정 말고 어서 먹어. 너 밥 먹는 걸 봐야 나도 가게로 나가지.”

“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최치우는 젓가락을 들고 갈비찜을 들었다.

하지만 이내 내려놓고 손을 썼다.

좀 지저분해도 갈비는 손으로 뜯어야 제맛이다.

어머니가 정성스레 차려준 음식을 하나씩 맛본 최치우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탄성을 토해냈다.

“와… 이러면 밖에 나가서 음식 사먹기 힘들어져요. 집밥이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 더 먹으렴.”

“세 그릇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이라도 고맙구나, 우리 아들.”

어머니와 최치우가 서로를 마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따뜻한 아침이었다.

돌아올 곳이 있기에 여행과 모험이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최치우는 집이 최고라는 오래된 격언을 상기하며 밥을 꼭꼭 씹었다.

오늘은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어머니의 아침상은 그에게 하루 종일 큰 힘이 되어 줄 것 같았다.

“잘 먹었습니다!”

정말 두 그릇을 비워낸 최치우가 식탁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아들이 식사를 마치는 것을 본 다음에야 가게로 나갈 채비를 했다.

“먼저 다녀올게. 오늘도 조심하고, 알았지?”

“걱정 마세요, 어머니.”

최치우는 현관문을 나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제 그도 나가야 한다.

오전부터 약속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특히 김도현 교수와 임동혁 본부장을 만나서 미쓰릴을 어떻게 활용할지 의논하기로 했다.

그는 깜짝 놀랄 두 사람의 얼굴을 기대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브라질에서는 원석을 캐냈다면, 한국에선 원석을 가공해 세계 최고의 보석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물론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최치우에게는 올림푸스라는 드림팀이 있기 때문이다.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이지만, 올림푸스는 임동혁의 막대한 재력과 김도현의 전문성을 양 날개로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최치우라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괴물이 중심을 이뤘다.

올림푸스와 미쓰릴.

최치우는 자신의 퍼즐이 딱딱 맞아가는 걸 느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그러니까, 이게 그 미쓰릴입니까?”

임동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미쓰릴을 전후좌우로 살펴봤다.

김도현 교수는 최치우가 브라질로 떠나기 전,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임동혁은 아니었다.

그는 셋이 모인 자리에서 미쓰릴의 특성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물론 최치우가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을 해주진 않았다.

핵심만 간결하게 요약해서 짚어줬기에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한번 만져봐도 됩니까?”

“그럼요. 바닥에 던져도 됩니다.”

“네?”

“아까 말했잖아요.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다고. 본부장님이 아무리 용을 써도 흠집조차 낼 수 없습니다.”

최치우는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게 피곤하다는 듯 시크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임동혁은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는 재벌 2세이자 대기업의 후계자로 누구 못지않게 넓은 견문을 자랑한다.

아드레날린 중독 증세를 보이기에 세상에서 신비하고 재밌는 것은 가리지 않고 탐닉해 왔다.

하지만 임동혁조차 미쓰릴이라는 금속은 아예 금시초문이었다.

그 비슷한 금속이 있다는 풍문도 들어본 적 없었다.

최치우는 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손가락으로 미쓰릴 표면을 만지는 임동혁을 쳐다봤다.

확실하게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터억.

자리에서 일어난 최치우가 두 손으로 미쓰릴을 잡았다.

“왜 그럽니까?”

그는 불안한 표정을 짓는 임동혁에게 미소를 날려줬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미쓰릴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어, 어!”

임동혁이 말릴 틈도 없었다.

최치우는 누가 봐도 놀랄 정도로 있는 힘껏 미쓰릴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쿠우우웅-!

바닥이 들썩이는 기분이었다.

묵직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임동혁의 개인 사무실 바닥은 단단하고 비싼 대리석으로 마감돼 있다.

그런데 원형의 미쓰릴이 대리석을 깨부수고 바닥을 움푹 파고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임동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그는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최치우의 행동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아드레날린 중독에 딱 맞는 행동이라 좋아했다.

괜히 미친놈끼리 잘 통하는 게 아니다.

“진짜 흠집 하나 안 났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이거 대단하군요. 엄청 비싸고 단단한 대리석인데 말입니다.”

“약과에 불과합니다. 공업용 절삭기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최치우 씨 말대로라면, 절삭기 날이 부서지겠죠.”

“정확합니다.”

“마나라는, 설명이 불가능한 기운으로만 정제할 수 있는 금속이라는 거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사람은 직접 보고 체험해야 뭐든 빨리 깨닫는다.

임동혁은 물론, 이론적으로 미쓰릴에 대해 숙지한 김도현 교수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치우 군, 정말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강도에 주입되는 에너지를 증폭시켜 발산한다면 엄청난 연구 가치가 있겠어요.”

최치우는 단순한 임동혁을 지나쳐 말이 통하는 상대를 찾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은 주먹 크기의 미쓰릴이지만, 마나를 이용해 조각낼 수 있습니다. 손톱 크기로 조각을 내면 100개가 넘게 나오겠죠. 그 조각 하나의 가치가 어느 정도일까요, 교수님.”

“글쎄요……. 적어도 10억은 넘겠네요.”

김도현 교수는 사뭇 진지하게 추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옆에서 둘의 이야기를 듣던 임동혁은 대리석 바닥이 부서질 때보다 눈을 크게 떴다.

“작은 조각 하나에 10억? 그럼 100개면 1,000억? 김 교수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닙니까?”

그는 듣도 보도 못한 금속의 가치가 1,000억 이상이라는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최치우는 한 걸음 더 나갔다.

“만약 미쓰릴을 큰 덩어리로 넘기면 1,000억보다 더 받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치우 군의 말이 맞아요. 여러 연구기관이 아닌 한 곳에 독점적으로 제공한다면…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가겠지요.”

임동혁은 충격을 받았는데 최치우와 김도현은 1,000억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 세계 웬만한 대학에는 신소재공학과나 금속학과가 존재한다.

그들에게 이제껏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금속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구 재료다.

게다가 미쓰릴은 부서지지도 않고, 에너지를 반사하는 특징도 갖고 있다.

손톱 크기의 조각이라 해도 10억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1,000억이라니…….”

임동혁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대기업의 후계자이기에 금전적 스케일이 다르다.

하지만 최치우는 그런 임동혁의 스케일마저 초월한 성과를 가져왔다.

고작 며칠 브라질에 다녀오더니 1,000억 원 가치의 신금속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지분 70%를 가지고 있다.

세금과 비용 등을 제외하고 단순하게 계산하면 첫 번째 프로젝트로 700억 부자가 된 셈이다.

임동혁 역시 특별한 지원을 해주지 않고 300억 원 가량의 수익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최치우를 쳐다봤다.

원래부터 상식을 벗어난 인간인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알면 알수록 더 대단해 감탄을 하는 것도 지겨울 정도였다.

“역시 내가 최치우 씨와 손을 잡은 건 천재일우의 기회였습니다.”

그는 솔직한 생각을 토로했다.

남들은 최치우가 운 좋게 재벌 2세를 물어서 빵빵한 지원을 받으며 창업한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을 아는 사람들은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최치우의 날개 역할을 하게 된 임동혁이 축복을 받은 것이다.

“낯간지러운 말은 됐고, 이제 미쓰릴의 가치를 어떻게 높일지 고민해 봅시다.”

최치우는 자연스레 리더 역할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말은 꺼냈지만, 미쓰릴을 조각내서 대학교 연구실에 나눠 팔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1,000억을 벌어봐야 최치우에겐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미쓰릴이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금전적으로도 더 큰 가치를 인정받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세 사람이 머리를 모았다.

“이런 연구 재료를 위해 거액을 아끼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에서 2곳뿐이지요.”

김도현 교수가 자못 의미심장하게 운을 띄웠다.

최치우와 임동혁은 김도현이 어느 나라를 언급할지 곧장 감이 왔다.

“당연하게도 미국과 중국이에요.”

“교수님, 중국은.”

최치우는 단칼에 중국이라는 후보를 쳐냈다.

이유는 김도현 교수도 알고 있었다.

“맞아요. 아직까지 중국 정부를 신뢰할 수는 없지요. 미쓰릴을 중국과 거래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커요.”

중국은 여전히 강력한 독재국가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지만, 중국 공안이 마음을 먹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미국이라면 우리 그룹에서 네트워크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임동혁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요즘 들어 최치우 앞에서 종종 모자란 모습을 보이지만, 임동혁이 가진 자산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그의 인맥과 승부사 본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최치우는 임동혁을 쳐다보며 어려운 미션을 요구했다.

“펜타곤과 나사, 접촉 가능합니까?”

“펜타곤이랑 나사가 옆집 애 이름도 아니고…….”

임동혁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국 국방부(U.S. Department of Defense)와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은 지구에서 가장 비밀이 많은 단체다.

그렇기에 최치우의 요구는 미션 임파서블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만한 능력이 없으면 올림푸스라는 드림팀에서 활동할 수 없다.

설령 자본을 대는 임동혁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최치우의 눈빛이 싸늘해지려는 찰나, 임동혁이 눈치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우리 최치우 씨가 하라면 해야지 별수 있겠습니까. 소문나지 않게 펜타곤과 나사의 고위층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믿어도 되겠죠, 본부장님?”

“내가 공수표 날리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주겠습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최치우 씨.”

임동혁이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최치우를 쳐다봤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거면 확실하게 믿는다.

그게 사람을 쓰는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로서 브라질에서 찾아낸 미쓰릴은 펜타곤 또는 나사와의 협상 카드로 쓰이게 됐다.

최치우의 행보는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1,000억이라는 숫자에 임동혁이 놀랐었다면, 펜타곤과 나사가 등장하자 김도현 교수가 눈을 크게 떴다.

올림푸스의 주인, 최치우만 놀라지 않고 돌아가는 상황을 담담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최치우가 이끄는 신들의 세계가 온 세상에 진면목을 드러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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