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49화 (49/243)

# 49

***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흐를 지경이었다.

그만큼 온몸을 덮친 에너지의 파동은 강렬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금방이라도 쪼개질 것 같았다.

최치우는 범인이라면 1초도 버티기 힘든 고통을 맨몸으로 감내하고 있었다.

내공을 불살라 만들어낸 호신강기가 없었다면 뼈와 살이 조각조각 갈라졌을 것이다.

그가 펼친 금강파천은 금강나한권에서 가장 위력적인 초식이지만, 냉정히 말해 이 정도 파괴력을 지니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압도적인 에너지 파동이 뿜어져 나온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바로 전설의 금속, 미쓰릴의 특성 때문이다.

미쓰릴은 오직 순수한 마나로만 다스릴 수 있다.

그 외의 기운이 가해지면 불가사의한 반발력으로 원래보다 더 강한 에너지를 튕겨낸다.

그렇기에 아슬란 대륙에선 드래곤 슬레이어의 금속이라고도 불린 것이다.

드래곤이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화염을 튕겨내고, 강철보다 단단한 발톱도 썰어버리는 금속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다.

최치우는 뼛속까지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미쓰릴을 찾아냈다는 확신이 통증을 이겨내게 해줬다.

후화아아악-

한바탕 에너지의 파도가 사방을 쓸고 지나갔다.

꿋꿋하게 홀로 선 최치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힘들다, 힘들어.”

그는 단전의 내공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일시적으로 탈진에 가까운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최치우가 굳이 금강파천이라는 가공할 위력의 초식을 쓴 이유가 있었다.

아슬란 대륙과 현대의 지구는 여러모로 환경이 다르다.

그렇기에 미쓰릴로 추정되는 금속이라도 똑같은 성질을 지녔다는 보장이 없다.

금강파천이라는, 지금의 최치우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공을 튕겨낸다면 아슬란 대륙의 미쓰릴과 동급이라 믿어도 될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금강파천의 반발력으로 사방을 파헤쳐야 손쉽게 미쓰릴을 얻을 수 있다.

산사태의 여파로 진흙더미에 뒤덮인 광산을 일일이 파낼 수는 없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로운 일이다.

대신 최치우는 보다 빠른 지름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실제로 땅 밑에 묻혀 있던 미쓰릴이 금강파천의 기운을 튕겨내면서 위를 덮은 진흙과 폐기물을 일시에 쓸어버렸다.

“참 오랜만이다.”

최치우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듯 혼잣말을 읊조렸다.

아슬란 대륙 이후 지구에서 눈을 뜨기 전까지 2번의 환생을 더 거쳤다.

그렇기에 아슬란의 현자 제로딘으로 살았던 것은 수십 년 전의 기억이다.

아슬란 대륙에서도 미쓰릴은 쉽게 구경하기 힘들었다.

오랜만이라는 최치우의 말은 진심이었다.

미쓰릴을 현대의 지구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그는 아슬란에서의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추억이 현대에서도 달콤한 결실을 맺게 해줄 것 같았다.

완전히 파헤쳐져 속살을 드러낸 땅 밑에서 아스라한 빛을 발하는 투명한 금속이 보였다.

미쓰릴은 싸구려 보석처럼 쓸데없이 강한 빛을 내뿜지 않는다.

투명하고 은은한 색을 지녔고, 미쓰릴을 정제할 수 있는 순수한 마나가 주입될 때만 빛깔을 바꾼다.

그렇기에 순수한 마나를 지닌 마법사들은 평생 단 한 번이라도 미쓰릴을 소유하길 원한다.

전설의 금속이 지닌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떠나서 마나에 반응하는 미쓰릴의 광채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성큼성큼 걸어가 고개를 내렸다.

“역시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군. 교묘하게 광부들의 진로를 막아섰던 모양이야.”

그는 광산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짐작했다.

매장된 미쓰릴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작은 창문 하나만한 크기였고, 순수하게 정제해서 쓸 수 있는 부분은 그보다 더 작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크기라도 광부들에겐 철옹성처럼 느껴졌을 터였다.

진로를 방해하는 정체불명의 금속을 무슨 수로도 제거할 수 없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광부들은 정밀 폭파라는 카드를 꺼냈고, 미쓰릴의 특성으로 인해 재앙이 일어나고 말았다.

누군가의 비극으로 인해 최치우는 미쓰릴의 존재를 알게 됐다.

따지고 보면 돌고 도는 세상의 인연 앞에서 인간은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일부터 끝내야지.”

최치우는 밀려드는 감상을 접고 어깨를 풀었다.

미쓰릴은 지면에서 3m 정도 아래에 박혀 있었다.

훌쩍 뛰어내리기 힘든 높이지만, 최치우에게는 아무 방해가 안 된다.

그는 고민 없이 갈라진 땅 사이로 몸을 던졌다.

아래로 내려오니 음습한 기운이 더 강했다.

금강파천과 미쓰릴의 반동으로 온갖 폐기물은 물론, 폭파 사고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골까지 휩쓸려 나왔다.

흡사 공포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치우의 시선은 오직 투명한 미쓰릴에만 고정돼 있었다.

수만 명의 목숨을 직접 앗아가기도 했던 멸망의 인도자가 겨우 이 정도 분위기에 겁을 먹을 리 없다.

스으윽-

그는 허리를 숙여 손끝으로 미쓰릴를 만졌다.

까끌까끌한 표면의 느낌이 싫지 않았다.

그냥 봐서는 평범한 금속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고, 가해지는 모든 에너지를 부풀려 튕겨내는 초월적 금속인 것이다.

지구에서 미쓰릴을 정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최치우밖에 없다.

순수한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최치우뿐이기 때문이다.

‘내공을 배제하고… 마나의 부름에만 귀를 기울이며 미쓰릴을 정제한다.’

최치우는 주문을 외우듯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되뇌었다.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은 마치 없는 것처럼 버려둬야 한다.

자칫 내공이 스며들면 미쓰릴이 특유의 반발력을 뿜어낼 것이다.

오직 대자연의 힘을 빌린 순수한 마나로 미쓰릴을 정제해야만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최치우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뻗어 미쓰릴의 표면에 붙였다.

작은 창문 크기의 원석이 묻혀 있지만, 실제로 정수가 담긴 부분은 주먹만 할 것이다.

최치우는 순도 100%의 미쓰릴만 가져갈 생각이었다.

우우웅!

그의 양 손바닥에 마나가 모여들었다.

6서클에 이르는 마법의 성취는 결코 낮지 않다.

게다가 최치우는 동해 바다에서 대자연의 마나와 일체화된 경험을 갖고 있다.

최치우의 몸에 깃든 마나가 대자연과 동화될 정도로 순수하다는 뜻이다.

“됐어!”

잠시 시간이 흐르고, 최치우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투명하던 미쓰릴이 푸른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대자연의 마나가 최치우의 몸을 통과해 미쓰릴에 스며든 것이다.

하늘빛을 담은 영롱한 광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나를 색으로 구현하는 아름다움 때문에 수많은 마법사들이 미쓰릴을 가지길 원했던 것이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두 손에 힘을 더했다.

금강파천을 튕겨내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던 미쓰릴이 순수한 마나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졌다.

단순한 금속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다.

뚝- 투두둑-!

유리창이 쪼개지듯 미쓰릴의 외곽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최치우는 스스로 미쓰릴을 정제하면서도 신기함을 느꼈다.

무엇으로 부술 수 없는 금속이 순수한 마나를 접하면 부드러워진다.

뚜두두둑!

불순한 부분이 떨어지고, 순도 100%의 미쓰릴 정수만 남게 됐다.

어른 주먹 크기의 금속이 마나를 흠뻑 머금고 영롱한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최치우는 몸을 일으키며 두 손으로 미쓰릴을 들었다.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크기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편이다.

하지만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수준의 높은 가치를 가졌다.

최치우는 올림푸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미쓰릴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도전해 아무도 모르는 전설을 되살린 것이다.

“미쓰릴-! 미쓰릴이다!”

감격에 겨운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미쓰릴을 떠받든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주위에 누구 하나 없지만, 이 순간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손에 쥔 미쓰릴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최치우는 세상을 바꾸는 연금술사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미쓰릴과 함께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최치우와 올림푸스는 세상을 뒤흔들 태풍의 눈이 될 것 같았다.

***

최치우는 약속 시간에 맞춰 차를 끌고 온 베네투를 만났다.

베네투는 한나절 사이 옷이 찢어지고, 진흙투성이가 된 최치우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귀찮은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무너진 광산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브라질 정부와 광산 업체가 관심을 끊은 외지이고, 설혹 먼 훗날 다시 개발된다고 해도 뭔가를 캐내기는 불가능하다.

하루를 푹 쉬고 상파울루로 돌아온 최치우는 베네투에게 넉넉한 팁을 줬다.

베네투가 몇 달을 열심히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는 너무 큰 액수의 팁을 사양하는 베네투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베네투, 나에게 준 도움을 생각하면 이것도 결코 많은 돈이 아닙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만나요. 브라질에서의 인연은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베네투는 감동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최치우가 건넨 봉투를 챙겼다.

최치우는 잠깐이라도 함께 일한 사람들의 노고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올림푸스의 몸집이 커지고, 직원들이 생겨도 같은 원칙을 지킬 것이다.

그는 이제까지 철저히 혼자였으나 그로인한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함께 하는 사람들, 즉 동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

또한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다.

저 혼자 잘난 리더는 언젠가 고꾸라지고 만다.

그때 누구도 그를 일으켜 세워주지 않는다.

하지만 튼튼하고 강한 팀을 만들면 서로가 서로의 기둥이 되어 버틸 수 있다.

6번의 환생을 거친 최치우가 최강의 낭인이었다면, 7번째 환생에서 그는 자신만의 군주론을 세우며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또 한 계단 도약할 발판을 마련한 최치우는 당당하게 귀국했다.

미쓰릴을 들고 한국에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화물 검사를 해도 공항 측에서는 미쓰릴이 뭔지 알아낼 수 없다.

이제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쓰릴이라는 이름조차 최치우 외에는 모르는 금속이기 때문이다.

주먹 크기의 미쓰릴은 그저 에메랄드의 아류쯤으로 여겨졌다.

최치우는 퍼스트 클래스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하늘을 바라봤다.

푸른 창공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 보장 없이 브라질로 날아온 게 고작 며칠 전이다.

그런데 이제는 값으로 따지기 힘든 미쓰릴을 품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자신의 회사에 신들의 세계인 올림푸스라는 이름을 붙인 게 부끄럽지 않았다.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신의 금속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공룡이 썩은 물에 불과했던 기름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에너지가 된 것처럼, 최치우는 지금은 그 누구도 가치를 모르는 미쓰릴로 어마어마한 일을 이뤄낼 것이다.

그의 포부는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만큼 높았다.

마나를 받으면 다양한 광채를 뿜어내는 미쓰릴처럼 올림푸스의 앞길이 찬란하게 빛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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