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연금술사>
“써, 왓 워스 댓?”
밀림을 벗어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베네투가 입을 열었다.
기름을 넣기 위해 외딴 휴게소에 차를 세운 그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갱스터들이 상주하는 밀림 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 사건이 터졌다는 걸 베네투도 느끼고 있었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베네투의 어깨를 두드렸다.
“미스테리.”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베네투의 영어 실력으로는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미스테리가 산재해 있다.
환생을 거듭하며 현대에 다시 태어난 최치우도 그러한 미스테리의 일부다.
그는 또 하나의 미스테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풀?”
“예스, 써.”
기름을 다 채운 베네투가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프로드에서 보여주는 그의 운전 실력은 최치우도 놀랄 정도로 대단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밀림 지대에서 지프는 진흙에 빠져 골골거렸을 것이다.
베네투도 갱스터들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밀림을 빠져나오는 데 역할을 한 셈이었다.
‘일을 마치고 상파울루로 돌아갈 때는… 뭐, 그땐 덤비는 갱스터들을 전부 소탕해도 되겠지.’
최치우는 베네투가 알면 기겁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생각을 얼마든지 실현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렛츠 무브, 베네투.”
당장은 광산까지 가는 게 먼저다.
최치우는 다시 지프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
이제 정말 목적지가 머지않았다.
베네투는 믿음직스럽게 지프를 몰았다.
아침 일찍 상파울루 공항에 도착해 차량과 운전기사를 섭외하고, 곧장 길을 달려 나섰다.
어느새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며 밤을 불러오고 있었다.
최치우는 무너진 광산 마을 근처에 적당한 숙소를 구할 계획을 세웠다.
부지런히 남은 거리를 달려 휴식을 취하고, 내일의 태양과 함께 무너진 광산으로 들어갈 것이다.
브라질에서의 로드 무비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
날이 밝았다.
어제의 노을보다 더 붉은 태양이 떠오르며 사위를 환하게 밝혔다.
최치우와 베네투는 무너진 광산 마을에서 30㎞쯤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다.
물론 근처의 지리를 잘 아는 베네투가 주선한 곳이다.
이름만 호텔일 뿐, 허름하고 낡은 숙소였지만 하룻밤을 쉬기엔 나쁘지 않았다.
최치우는 일찍 일어나 남미의 태양이 떠오르는 걸 바라보며 운기조식을 취했다.
기분 탓일까.
브라질의 아침 해는 유독 강렬하게 이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쁘지 않은데.”
운기조식을 마친 최치우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단전에 들어찬 내공이 평소보다 뜨겁게 전신을 휘감고 돌아왔다.
악명 높은 브라질 밀림의 갱스터들을 바보로 만든 마법도 건재하다.
무너진 광산에서 돌발 사고가 일어나도 자신을 지키는 데 문제가 없을 듯했다.
따뜻한 물로 온몸을 적신 최치우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놀랍게도 베네투는 그보다 먼저 준비를 마치고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고객보다 늦으면 안 된다는 철칙을 가진 듯 했다.
남미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는 편이다.
그렇기에 베네투의 철저한 태도는 더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일이 되려니까 드라이버도 잘 골랐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베네투가 일어나길 기다리려던 최치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굿 모닝, 베네투.”
“굿 모닝, 써.”
“두 유 워너 헤브 어 브렉퍼스트?”
“얼레디 갓 잇. 히어.”
베네투가 뜨문뜨문 짧은 영어로 대답했다.
그는 일정을 서두르는 최치우를 위해 미리 아침을 챙겨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크루아상 한 조각과 커피가 보였다.
숙소에서 내주는 아침을 포장해서 차에 가져다둔 것이다.
능숙한 운전 실력에 성실성, 게다가 이런 센스까지.
가능하다면 베네투를 한국에 데려가 운전기사로 쓰고 싶을 정도였다.
최치우는 그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차에 올라탔다.
단출한 식사지만 허기를 채우기엔 그만이었다.
부우우웅!
하루 사이 정이 든 지프가 기지개를 켜듯 엔진음을 토해냈다.
최치우는 정성이 담긴 빵과 커피를 먹으며 또다시 광산을 향해 나아갔다.
남은 거리가 대략 30㎞이기에 1시간이면 충분했다.
태양을 등지고 달린 최치우는 심장의 박동을 거세게 느꼈다.
아직 무엇도 확인하지 못했다.
무너진 광산에서 허탕을 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과연 아슬란 대륙에서도 귀하디귀했던 미쓰릴이 현대의 지구에 존재하고 있을까.
섣불리 자신하기 힘든 문제다.
그러나 최치우는 브라질까지 날아왔고, 우여곡절 끝에 광산 마을을 앞두고 있다.
이제 두 눈으로 결과물을 받아드는 수밖에 없다.
“써.”
그때 베네투가 최치우를 불렀다.
최치우는 고개를 돌려 까무잡잡한 베네투의 얼굴을 쳐다봤다.
“텐 미닛 프롬 히어.”
차로 들어갈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
여기서부터 10분이면 무너진 광산 마을이 나온다.
최치우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시야를 확인했다.
진흙으로 혼탁해진 강 건너 폐허가 되어버린 광산 마을의 형태가 보였다.
예기치 못한 대폭발이 일어나고, 광산이 무너지며 난리가 나기 전에는 수많은 광부들이 이곳에서 땀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진흙과 잿더미에 뒤덮여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식스 어클락. 오케이?”
“오케이, 써.”
최치우는 오후 6시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점심은 한국에서 챙겨온 전투식량으로 해결할 것이다.
한나절 내내 무너진 광산을 탐험하고, 해가 떨어질 때쯤 베네투와 함께 숙소로 돌아가면 된다.
“테이크 케어, 써.”
베네투는 걱정스러운 인사를 남기고 차를 돌렸다.
최치우는 지프가 멀어진 것을 확인한 다음 내공을 일으켰다.
걸어서 10분이지만, 경공을 펼치면 1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진흙과 폐자재로 험로(險路)가 형성됐지만 문제없었다.
타앗-!
최치우의 두 발이 땅을 박찼다.
이역만리 브라질의 외딴 지역에서 경공이 펼쳐졌다.
파바바박!
최치우는 거침없이 험로를 가로질렀다.
질척질척한 진흙도, 광산에서 쓰이던 폐자재와 장애물도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총알처럼 맹렬한 속도로 지형지물을 돌파한 그는 60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멈춰 섰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미쓰릴이 묻혀 있을지 모르는 브라질의 무너진 광산.
죽음의 기운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최치우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은 무너진 광산 마을에 혼자 있는 것만으로 극심한 공포를 느낄 것이다.
태양이 빛나는 아침이지만, 음침한 분위기가 피부로 와 닿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진흙과 잿더미 아래 수많은 광부들, 그리고 그들을 도우며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던 사람들의 시신이 깔려 있다.
브라질 정부와 광산 업체는 사고가 일어난 직후 마을을 방치했다.
비극적인 대형 사고였지만, 시신을 찾기 위해 거액을 쏟을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선진국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시신 수색 작업을 했겠지만, 이곳은 브라질에서도 외딴 광산 마을 중 하나다.
유족들 역시 정부와 광산 업체에서 지급하는 보상금을 받고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제3세계에 속하는 국가에선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억울하게 죽은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이곳에 미쓰릴이 있다면 정말 귀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최치우는 아무도 없는 폐허 위에서 담담하게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휘이이잉-
광산과 함께 묻혀버린 그들이 최치우의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어디선가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최치우를 스치고 지나갔다.
최치우는 죽은 자의 영혼, 즉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이제껏 8개의 서로 다른 차원에서 자신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영혼의 상태로 현세에 남아 있는 존재를 본 적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도 없이 묻힌 땅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자기 할 일만 하긴 꺼림칙했다.
예전의 최치우였다면 희생자들을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7번째 환생을 통해 분명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인지, 혹은 부정적인 변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최치우 자신이 스스로 달라진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 여기서 미쓰릴이 있는지 알아낼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군.”
짧은 추도를 마친 최치우가 주위를 돌아봤다.
광산 하나가 통째로 무너졌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최치우가 아무리 초인이라도 무작정 발굴을 하며 미확인 금속을 찾을 순 없다.
만약 힘겹게 찾아냈는데 미쓰릴이 아니라면 너무 뼈아픈 헛수고다.
그는 광부들로 하여금 폭파 작업을 시도하게 만든 미확인 금속이 미쓰릴인지, 만약 미쓰릴이 맞다면 어디에 있는지 한 번에 알아낼 방법을 갖고 있다.
물론 상식을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이다.
최치우가 아니면 감히 시도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무지막지한 해결책이었다.
고오오오!
최치우가 단전에 깃든 내공을 두 손으로 집중시켰다.
그의 양 손바닥 위로 무형의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브라질의 뜨거운 태양처럼 강력한 기운이 최치우의 손을 덥혔다.
그가 현대에서 수련한 금강나한권은 절정에 이르러 대성을 바라보고 있다.
소림사 궁극의 무예로 알려진 백보신권의 위력을 상회하는 금강나한권의 절기, 금강파천(金剛破天).
지고무상한 수호자 금강이 분노하면 하늘을 깨트리기도 한다.
수호무예라 할 수 있는 금강나한권에서 가장 파괴적인 초식이 바로 금강파천이다.
우웅- 우우웅-
최치우의 두 손에 맺힌 무형의 기운은 어느새 뚜렷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황금빛 광채가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최치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두 팔을 휘두르며 무너진 광산을 향해 하늘을 깨부수는 금강의 분노를 던졌다.
쐐애액-
두 줄기 황금빛 화살이 광산이 있던 지형으로 날아갔다.
금강파천을 펼친 최치우는 가만히 서 있지 않았다.
곧바로 남아 있는 모든 내공을 끌어 모아 전신을 덮었다.
내공을 방패로 사용하는 호신강기였다.
만약 미쓰릴이 묻혀 있다면 금강파천을 튕겨낼 것이다.
그 엄청난 반발력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호신강기로 몸을 꽁꽁 둘러싸는 수밖에 없다.
퍼퍼퍼퍼펑-!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줄기 금강파천이 무너진 광산의 잔해를 강타했다.
폭파 작업에 쓰이는 정밀 다이너마이트보다 훨씬 강력한 충돌이 일어났다.
쿠쿵! 쿠쿠쿠쿵!
광산과 마을이 있었던 자리를 뒤덮은 진흙 더미가 움푹 파였고, 온갖 잔해가 높이 치솟았다.
말 그대로 엄청난 화력의 소형 폭탄이 무너진 광산을 때린 것 같았다.
위이이이이잉-!
바로 그 때, 광산의 잔해 밑바닥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곧이어 최치우가 펼친 금강파천에 필적할 에너지가 뿜어졌다.
‘미쓰릴이다!’
최치우는 확신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미쓰릴이 존재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제 어마어마한 반발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파파파파팍!
금강파천을 고스란히 튕겨낸 에너지 폭풍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최치우는 전력을 다해 펼친 호신강기를 믿었다.
그는 자신이 펼친 최강의 절기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험난한 브라질 여정의 끝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