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46화 (46/243)

# 46

<브라질>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을 하나만 꼽으라면, 누구든 석유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무리 대체 에너지와 미래 에너지, 재생 에너지 등 이른바 신(新) 자원이 각광 받는다고 해도 석유를 대체하기엔 이르다.

중동의 산유국은 기름 하나로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고, 때로는 전쟁의 주요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석유는 현대의 인류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기름이 처음부터 막대한 가치를 창출하는 자원으로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석유를 사용해서 에너지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을 때, 인류에게 기름은 그저 머나먼 고대 공룡들의 시체가 만들어낸 못 쓰는 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술 개발과 산업 혁명 열풍이 번지며 기름은 없어선 안 될 인류의 근간이 돼버렸다.

이렇듯 보물처럼 여겨지는 자원은 처음부터 가치를 인정받는 게 아니다.

자원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것을 활용할 기술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보물이 된다.

독도 해저에 묻혀 있던 메탄 하이드레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최치우가 시추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빼내고, 프로젝트의 기틀을 잡았기에 본연의 가치가 살아난 것이다.

그 덕에 한영 그룹이 천문학적 수혜를 입고, 한국 증시가 살아나며 국가 경제가 오랜만에 호조를 보였다.

이렇게 묻혀 있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자원이 어디 독도의 메탄 하이드레이트 하나뿐일 리 없다.

최치우는 자신이 직접 사명(社名)을 지은 올림푸스를 흙 속의 진주를 찾아내는 기업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남들이 다 아는 자원을 발굴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누구도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자원을 찾아내 인류의 미래를 바꾼다.

무려 7번의 환생을 거듭하고 지구에 자리를 잡았으니 이만한 야망은 품는 게 당연하다.

더불어 신의 대리인 아바타가 선사한 미션, 세상을 구하는 기쁨을 깨달으라는 대목과도 부합된다.

최치우는 망설이지 않고 보폭을 넓히기로 결심했다.

휴학과 동시에 올림푸스를 설립하고, 곧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갔다.

그는 김도현 교수와 임동혁을 앞에 두고 미쓰릴을 발굴하겠다고 선포했다.

미쓰릴에 대한 단서는 도쿄대의 기밀 자료에서 얻었다.

절대 디테일한 자료는 아니었다.

최치우가 아니라면 누가 봐도 단서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브라질 광산 지대에는 리튬(Lithium)과 니오븀(Niobium) 등 희소 자원이 묻혀 있다.

전세계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브라질의 광산에 투자하고 있다.

스마트폰 배터리 등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리튬은 현대의 다이아몬드로 불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광산에서 미확인 금속이 발견됐고, 진로를 확보하기 위해 여느 때처럼 폭파 작업을 시도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다.

광물 채취 작업에서 흔히 나오는 사례였다.

정밀 폭파로 미확인 금속을 제거하고, 원활하게 광물 채취를 계속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평범한 케이스가 도쿄대의 기밀 자료에 수록됐을 리 없다.

광산 내부에서 엄청난 반작용이 일어나 폭발력이 예상보다 몇 배 커진 것이다.

결국 광산은 무너지고, 근처의 댐이 붕괴되어 수해(水害)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그로인해 광부들의 숙소는 물론, 광산 주위의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

적지 않은 희생자를 낳은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크게 주목을 받진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제3세계의 사건 사고는 세계인의 관심을 받기 힘들다.

최치우는 폭발의 반작용이 일어나 광산을 무너트렸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밀 폭파 기술의 안정성은 상상 이상으로 발전 돼 있다.

설령 미확인 금속 제거에 실패해도 광산이 무너질 정도로 폭발력이 배가 될 일은 없다.

그런데 당초 예상보다 화력이 급증해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이다.

폭파 기술이 발전한 이후 이런 케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쿄대의 조사원들도 이상한 점을 느꼈기에 기밀 자료에 체크를 해둔 것 같았다.

단서는 오직 하나, 미확인 금속뿐이다.

최치우는 광부들의 진로를 방해한 미확인 금속이 폭발의 반작용을 일으켰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게 아니면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만약 최치우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미쓰릴이 현대의 지구에도 존재하는 셈이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 아슬란 대륙에서 미쓰릴은 드래곤 슬레이어(Dragon Slayer)의 금속으로 불렸다.

태고의 생명체 드래곤을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금속이라는 뜻이다.

절대 부서지지 않고, 쏟아진 화력을 몇 배 이상으로 튕겨내는 반발력이 바로 미쓰릴의 특징이다.

‘미쓰릴을 정제하기 위해선 순수한 마나가 필요해. 그걸 모르고 폭발을 시도했으니…….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겠지.’

물론 미쓰릴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드러나지 않은 폭발의 원인이 존재할지 모른다.

아슬란 대륙에서도 아주 귀해서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미쓰릴이 지구에 묻혀 있을 확률은 무척 낮다.

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딱 들어맞는 단서였다.

최치우의 본능적인 감각도 브라질행을 부추기고 있었다.

만약 폐허가 된 광산에 여전히 미쓰릴이 묻혀 있다면, 정말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자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구에서 마나를 운용할 줄 아는 사람은 최치우밖에 없다.

그는 자연히 미쓰릴이라는 신이 내린 최고의 광물을 독점하게 된다.

‘아슬란 대륙에서는 주로 왕가의 무기를 만드는데 쓰였지만… 여기선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어.’

최치우는 벌써 미쓰릴을 얻은 듯 기분 좋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과학이 발전한 현대 사회에서 미쓰릴의 효용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우주선을 만드는 실험에도 쓰일 수 있고, 고농축 에너지와 입자 실험, 레이저 빔 테스트 등 각 분야에서 미쓰릴를 구하기 위해 난리가 날 것 같았다.

절대 부서지지 않으며 주입 된 에너지를 증폭시켜 뿜어내는 금속.

과학자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탐낼 게 너무 뻔했다.

‘만약 미쓰릴이 아니라면… 브라질 여행이나 다녀왔다고 생각해야지. 3할 타율만 지켜도 대박이다.’

최치우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올림푸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기에 부담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자원을 찾는 올림푸스의 사업 특성 상 10번의 시도 끝에 1번만 성공해도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다.

물론 최치우가 10%, 또는 3할의 성공 확률에 만족할 사람은 아니다.

“시작이다.”

최치우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했다.

스스로 혼잣말을 한 것이다.

그는 이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올림푸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개척해 세상에 내보이고 싶었다.

세상을 바꾸는, 세상을 놀래키는, 그리고 세상을 구하는 첫 걸음.

최치우는 아무도 가지 않은 전인미답의 길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서운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최치우는 고개를 살짝 숙인 유은서를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뭔가 하나에 꽂히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임동혁의 제의를 받고 올림푸스를 설립한 건 중대한 결심이었다.

그렇기에 여자 친구인 유은서와 시시콜콜 상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유은서는 평범한 학부생이고, 최치우는 사실상 재벌 2세에게도 갑 대우를 받는 슈퍼 루키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의논을 하려 해도 대화가 통하기 어렵다.

같은 시공간에 있지만, 서로 보고 듣고 경험하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절대 유은서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녀 역시 똑똑하기로 소문이 났기에 S대 공대에 합격한 것이다.

게다가 물이 오르는 미모에 귀여운 행동, 최치우를 향한 마음까지 빠지는 게 없었다.

다만 일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절한 상대가 아닐 따름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좋아하는 사람과 모든 것을 공유하길 원한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들고, 사회 경험을 하게 되면 그런 기대가 부질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제 21살에 불과한 유은서는 상의 없이 올림푸스 설립과 휴학, 브라질행을 결정한 최치우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내가 너무 나만 생각했어. 미안해.”

최치우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유은서에게 쩔쩔매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었고, 이미 지나간 일이다.

동시에 유은서가 서운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진솔하게 사과를 하고, 그녀가 받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나 너한테 징징거리는 여자 친구 되고 싶지 않아. 그냥 결정하기 전에 이야기를 해주는 거, 그거면 충분해.”

“그럴게.”

최치우는 짧지만 확실하게 대답하며 유은서의 눈을 마주봤다.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골목.

조용한 분위기.

단 둘이 마주보고 서운함을 풀어준 상황.

뒤이어진 행동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러웠다.

최치우의 얼굴이 아래로 내려갔고, 유은서는 높이를 맞추기 위해 살짝 발끝을 들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쳤다.

살짝 머뭇거리던 입술은 이내 완전히 하나가 되어 포개어졌다.

최치우는 유은서의 부드러운 숨결을 느끼면서도 마음이 복잡했다.

그는 앞으로 숱하게 세계를, 그것도 위험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최치우를 좋아하면 오랜 기다림과 인내를 갖춰야 할 수밖에 없다.

‘이기적인 일이지.’

최치우는 키스를 하면서도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전의 차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최전선에서 불가능에 도전하며 살아왔다.

때문에 아무리 마음이 깊더라도 여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최치우는 20대 초반, 누구보다 혈기왕성한 남자의 육체를 갖고 있다.

조금씩 더 적극적으로 호흡하는 유은서를 두고 다른 생각을 오래 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내어주는 여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치우야……. 나 오늘 늦게 들어갈래.”

“알겠어.”

긴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새로운 인생의 항로를 설정하고 브라질로 떠나기 전, 최치우는 유은서와 함께 잊지 못할 밤을 보내게 될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 또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이다.

최치우는 한 손으로 유은서의 하얗고 부드러운 볼을 감쌌고, 나머지 손으로 얇은 허리를 끌어안았다.

청춘의 한 페이지가 뜨겁게 넘어가고 있었다.

***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되는 거 알지?”

“네, 어머니.”

최치우는 공항 출국 게이트에서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괜찮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기어코 가게 문을 닫고 공항까지 오셨다.

가게를 차려주고, 비싼 아파트를 척척 사주는 대단한 아들이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가 생각하기에 브라질은 멀어도 너무 먼 나라였다.

비행시간만 30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이고, 치안도 썩 훌륭하지 않다.

아마 최치우가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는 밤잠을 못 이루며 기도를 드릴 것 같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건강하게 다녀오겠습니다.”

“가끔이라도 좋으니 전화하렴.”

“네. 이제 들어가 볼게요.”

최치우는 어머니의 손을 놓고 출국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애정과 염려가 듬뿍 담긴 시선을 느꼈지만, 일부러 뒤돌아보지 않았다.

‘기쁜 소식만 가득 안고 오겠습니다.’

그는 각오를 다지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임동혁은 올림푸스의 설립 준비를 모두 마쳐 놓았다.

한영 그룹이 거액을 투자해 새로운 자원을 탐사하는 회사를 세운 게 알려지면 세간이 떠들썩해질 것이다.

게다가 21살짜리 대학생이 지분의 70%와 경영권을 가졌고, 그가 바로 독도 해저 자원 개발에 참여해 대통령에게 훈장까지 받은 최치우라는 사실이 공개되면 한바탕 난리가 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최치우는 브라질에 다녀오기 전까지 모든 일을 비공개로 틀어막았다.

언론의 관심을 받고 유명해지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최치우는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 진짜로 세상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와 당당하게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의 위상은 이미 동년배에 적수가 없을 정도로 높지만, 만족하기엔 한참 멀었다.

최치우는 퍼스트 클래스 탑승객들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라운지로 걸어갔다.

더욱 커진 야망과 함께 날아오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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