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45화 (45/243)

# 45

***

“요즘 이만한 아파트도 잘 없어요. 매물이 나오기 무섭게 사라진다니깐.”

부동산 아줌마는 눈을 크게 뜨고 집을 칭찬하기 바빴다.

하지만 마냥 업자의 호들갑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여러 조건이 훌륭한 아파트였다.

“남향에, 공원 가깝지, 도서관 있지, 마트 있고 교통 편하지, 지하철역 바로 앞이지.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딨겠어요?”

“그렇긴 하네요, 정말.”

최치우의 어머니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아파트가 상당히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최치우는 어머니와 함께 서대문 독립문 공원 인근의 브랜드 아파트를 구경하러 왔다.

마음 같아선 강남의 아파트를 사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가게가 원래 살던 홍제동 근처라 강남은 너무 멀다.

평생 처음 연 가게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은 남달랐다.

다른 지역에 더 크고 화려한 가게를 오픈해 준다고 해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최치우는 차로 30분 이내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를 찾았다.

“다 좋은데 너무 비싸긴 하네요.”

한창 아파트를 둘러본 어머니가 말끝을 흐렸다.

요즘 서울 시내 아파트의 가격은 천장을 모르고 치솟는 추세다.

강남이 아니라도 완벽한 입지 조건에 편의성을 갖춘 고급 브랜드 아파트, 게다가 로얄층은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대로 거래된다.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는 들지, 그런데 너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구나.”

최치우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얼마든지 일찍 이사를 할 수 있었는데 너무 무신경했다.

“이 집으로 계약하겠습니다.”

“정말? 이야-! 이 집은 아드님이 엄청 출세했나 봐. 어려 보이는데 아파트를 척척 사드리고.”

부동산 아줌마도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집을 계약하는 데 어머니가 아닌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주도적으로 계약을 결정하고 아파트를 사는 게 놀라웠던 것이다.

“7억 2천이라고 했죠? 오늘 계약금부터 넣을게요.”

“그래요, 그래요. 나랑 내려가서 계약서 쓰고, 마침 빈집이니 잔금이랑 이사 날짜는 언제든 편하게 결정하시면 되고.”

계약을 성사시킨 부동산 아줌마는 싱글벙글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듯 하나뿐인 아들을 쳐다봤다.

“치우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지?”

“아닙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우리 아들 믿지만……. 혹시라도 무리 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단다, 알지?”

“네, 어머니.”

어머니는 최치우가 특별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변모하며 성적을 올려 S대에 입학한 것부터 대사건이었다.

웹툰으로 돈을 벌어 가게를 차려준 것은 이제 약과다.

독도 개발이라는 국민적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참여해 훈장까지 받았다.

그렇기에 아들이 갑자기 7억이 넘는 비싼 아파트를 산다고 해도 놀랍지만은 않았다.

다만 만에 하나라도 아들에게 부담을 줄까 걱정스러운 것이다.

효도를 받으면서도 자식 걱정이 앞서는 것, 그게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다.

“어휴, 부러워 정말. 우리 아들놈의 새끼는 맨날 천날 게임이나 하고 자빠졌는데, 복 많이 받아서 좋겠어요.”

부동산 아줌마가 최치우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어머니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제가 아들 복은 타고났어요. 힘들게 살았더니 하늘이 선물을 주셨나 봐요.”

“그 선물 나한테는 왜 안 오나 몰라.”

최치우의 어머니와 부동산 아줌마는 마치 원래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수다를 떨었다.

매끄럽게 계약이 맺어졌고, 나이도 비슷해서 공감대가 맞는 듯했다.

최치우는 흐뭇하게 웃으며 속으로 부동산 아줌마의 아들을 위로했다.

아마 당분간 최치우라는 강력한 엄친아의 등장으로 구박을 엄청 받게 될 것 같았다.

누구 집 아들은 S대 다니면서 7억짜리 아파트를 사주는데, 넌 대체 왜 집구석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어?

보지 않아도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눈에 선했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게 됐군. 미안해, 얼굴도 모르는 친구.’

최치우는 부동산 아줌마의 아들에게 전해지지 않을 사과를 했다.

그도 평소보다 기분이 좋았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을 때도 이만큼 기쁘진 않았었다.

다른 사람들이 몰라줘도 어머니가 기뻐하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뿌듯했다.

“뭐 마실래요? 커피, 홍차, 녹차?”

최치우와 어머니가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다시 들어서자 대접이 달라졌다.

사무실에 있는 다과는 모조리 꺼내올 것 같았다.

최치우가 처음 집을 보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여자 사장님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원하게 계약을 해버렸다.

순식간에 VIP 고객이 된 것이다.

단순히 아파트 한 채 팔고 끝이 아니다.

망설이지 않고 7억이 넘는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대학생 아들이라면 두고두고 알아둬서 나쁠 게 없다.

여사장으로 잔뼈가 굵은 부동산 아줌마는 최치우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호호호, 여기 계약서예요. 찬찬히 읽어보고 모르는 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고맙습니다.”

최치우는 부동산 아줌마의 과해진 호의를 느끼며 계약서를 썼다.

계약금은 블랙 카드로 지불했다.

나머지 잔금도 블랙 카드로 낼 계획이었다.

리얼 헌터 시즌2가 연재되면서 통장 잔고가 불어나고 있었지만, 무제한 한도의 블랙 카드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그는 흥청망청 돈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손에 들어온 칼을 휘두르지 못하고 썩힐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블랙 카드라는 보검(寶劍)을 휘두를 것이다.

“어머니, 우리 이제 집도 샀는데 기념으로 외식하고 들어갈까요?”

“그러자, 우리 아들. 엄마가 집은 못 사줘도 밥은 맛있는 걸로 사줄게.”

“그럼 비싼 거 먹겠습니다.”

부동산에서 나온 최치우는 환하게 웃으며 근처의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치이이익-

최치우가 능숙한 손길로 마블링이 풍성한 한우를 구웠다.

헌터로 살던 시절에는 방금 죽인 몬스터 고기를 구워먹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고기를 굽는 것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치우야, 혹시 다른 고민이라도 있니?”

불판에 올린 고기가 익어가려는 찰나, 어머니가 질문을 던졌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눈길을 완전히 속일 수는 없었다.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은 기회가 왔는데 대학과 병행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내 나이에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며 기다리는 게 나을지, 아니면 지금 가슴 뛰는 일에 도전하는 게 나을지…….”

원래 그는 고민을 남에게 털어놓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어머니 앞이기에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다소 추상적인 말이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한 것 같았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최치우가 특별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많은 고민을 해왔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우리 아들이 잘 선택하겠지만, 나는 딱 한마디만 해주고 싶구나.”

“네.”

“뭐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렴.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단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아. 아직 젊으니까 너무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어떻게 생각하면 평범한 조언이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진심어린 조언이 최치우의 마음 깊은 곳을 흔들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후회 없이 선택할게요.”

뭔가 결심을 내린 듯 최치우의 눈동자가 빛났다.

환생한 차원마다 일대 파란을 만들었던 것처럼 마음을 먹은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직진할 기세였다.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 최치우는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힘을 얻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이토록 중요하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었다.

이제 보다 홀가분하게 새로운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의 짐을 덜어낸 최치우가 날개를 활짝 펼칠 일만 남았다.

***

S대 공대 건물의 연구실.

최근 학계와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사람이 마주앉았다.

에너지자원공학과의 김도현 교수, 한영 그룹의 임동혁 본부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은 건 바로 최치우다.

최치우가 아니었다면 둘은 애당초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교수님.”

“결정을 확실히 내린 거지요?”

“그렇습니다.”

최치우는 먼저 김도현 교수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하얀색 종이 위 단에는 휴학 신청서라는 글자가 인쇄돼 있었다.

보통 학과 조교에게 제출하면 되지만, 최치우는 김도현 교수에게 직접 신청서를 건넸다.

특별한 관계인 김도현 교수를 향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임동혁은 휴학 신청서가 오가는 광경을 만족스럽게 쳐다봤다.

최치우가 휴학을 하는 건 다름 아닌 올림푸스를 위해서다.

그는 본격적으로 올림푸스라는 역사적인 사업부를 세팅할 작정이었다.

“이거 참 마음이 복잡하네요. 치우 군의 올림푸스가 잘되기를 바라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김도현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올림푸스가 성공하면 최치우는 S대로 복학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복학을 하더라도 학과의 양해를 구해 수업은 거의 듣지 못할 것이다.

최치우를 누구보다 아끼는 김도현 교수는 복잡한 심경을 느낄 만했다.

“학교와 상관없이 교수님은 언제나 제 인생의 멘토이십니다.”

최치우는 진심을 담은 말로 김도현을 위로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김도현이 아니었다면 최치우가 특별한 능력을 드러내며 나서는 건 한참 뒤의 일이 됐을 것이다.

“훈훈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하지만, 이제 슬슬 올림푸스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잠자코 앉아있던 임동혁이 다리를 꼬며 말했다.

최치우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업적인 세팅은 본부장님이 매끄럽게 처리해 주길 바랍니다.”

“역시 귀찮은 잡일은 다 나한테 맡기는군.”

임동혁은 툴툴거리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최치우와 함께 올림푸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크나큰 기회였다.

“군대는 일단 올림푸스를 궤도에 올린 다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프로젝트는… 다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겠습니다.”

최치우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과연 그가 혼자서 도전 할 올림푸스의 첫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 프로젝트로 올림푸스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겠습니다. 그다음, 내가 생각한 최고의 팀원들을 스카웃하는 게 순서입니다.”

최치우는 스스로를 증명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건 이후의 일이다.

김도현과 임동혁은 손에 힘을 주고 최치우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렸다.

“미쓰릴을 발굴하겠습니다.”

김도현 교수와 임동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쓰릴.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절대 금속.

하지만 두 사람은, 나아가 지구의 어느 누구도 미쓰릴이 무엇인지 모른다.

최치우는 둘을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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