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44화 (44/243)

# 44

<선택의 기로>

최치우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국민훈장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다양한 학술 분야에서 공로를 쌓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훈장이다.

그중에서도 무궁화장은 가장 높은 1급에 해당된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 국민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훈장은 1등급부터 5등급까지 격차가 존재하고, 그다음으로 포장이 있다.

포장 다음이 대통령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이다.

만약 어떤 대학생이 국무총리 표창만 받아도 언론 기사가 날 확률이 높다.

살면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최치우와 미래 에너지 탐사대 멤버들이 받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단순하게 계산했을 때 국무총리 표창보다 무려 7단계나 높은 상이다.

불순한 생각일 수 있지만, 스펙으로 따지면 끝판왕을 획득한 셈이었다.

대학생, 대학원생이 이력서에 쓸 수 있는 수상 경력은 뻔하다.

이런저런 공모전에서 우승한 게 고작이다.

그러나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적는 순간, 이력서의 레벨이 달라진다.

게임이 끝나 버리는 것이다.

최치우는 미래 에너지 탐사대 멤버들에게 평생 남을 선물을 줬다.

두고두고 자랑스러울 가문의 영광을 직접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로 찾아와서 고마움을 표시했던 백승수를 비롯해 다른 선배들도 최치우를 은인으로 여겼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김도훈 교수와 최치우 두 명만 훈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아낌없이 1등급 훈장을 수여할 명분은 충분했다.

독도의 해저 자원 개발은 수십 년 전부터 대한민국의 숙원 사업이었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실현 가능성을 끌어 올리지 못했다.

그토록 어려운 일을 S대 미래 에너지 탐사대가 주축이 되어 현실로 만든 것이다.

레임덕 위기에 빠졌던 정부의 지지율이 높아진 건 부수적인 결과였다.

한국의 경기 회복세와 투자 증가, 그로인한 내수 활성화 및 국민 여론 등 여러 효과를 따지면 수치로 환산이 불가능할 정도다.

더구나 해저 자원 개발로 독도와 인근 영해에 대한 한국의 주권이 더욱 공고해졌다.

울릉도와 독도 해역의 시추 기계에 상시로 인력이 머물게 됐고,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도발을 지속하면 메탄 하이드레이트에 욕심을 내는 걸로 보이게 된다.

당연히 국제 여론이 일본에 우호적이지 않은 쪽으로 돌아설 터였다.

결과적으로 최치우는 오랜 시간 지속된 독도 분쟁에 쐐기를 박아버린 것이다.

그가 이룬 성과에 비하면 국민훈장 무궁화장도 약소해 보일 지경이었다.

“앞으로 더 큰일을 해주길 바랍니다.”

대통령은 유독 최치우에게 훈장을 수여하며 덕담을 건넸다.

어쩌면 해수부 차관보 혹은 청와대 비서진으로부터 최치우가 루키 중의 루키임을 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훈장을 받으면서 독도 프로젝트에서 최치우의 역할은 일단락됐다.

메탄 하이드레이트 실물 채취에 성공한 사업단은 꾸준히 연구를 지속하며 대량 채취를 시도할 것이다.

대량 채취까지는 적게 잡아도 몇 년 이상이 걸릴 것 같았다.

이후에는 해저에서 채취한 하이드레이트를 상용화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전 세계에 한국의 기술력을 입증하며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적지 않았다.

그 지난한 과정은 정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이겨내야 할 숙제다.

최치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밑그림을 그리는 크리에이터(Creator)가 어울렸다.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른 뒤 마무리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모두들 축하해요.”

훈장 수여식이 끝나고, 따로 자리를 마련한 김도현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는 상기된 표정의 미래 에너지 탐사대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모두가 최선을 다해준 덕분에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최고의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 같네요. 다들 각자의 계획을 가지고 있겠지만, 우리가 함께 이루어낸 결과를 기억하며 서로를 응원하기로 해요.”

김도현 교수는 이별을 암시했다.

하지만 누구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독도 프로젝트 후 멤버들이 다른 진로를 선택한다고 해도 1기 F.E의 명성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이별이 될 게 분명했다.

최치우는 흐뭇한 얼굴로 멤버들과 함께 뒤풀이를 즐겼다.

물론 그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큰 파도를 타고 넘긴 지금, 반드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된다는 사실을.

순간의 성공에 안주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걸 최치우가 모를 리 없었다.

***

우우우우웅-

잘 빠진 슈퍼카 한 대가 커다란 엔진소리를 내며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슈퍼카를 쳐다보며 눈길을 줬다.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청담동에서는 슈퍼카를 보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곳은 슈퍼카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여서 더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여어-! 최치우 씨!”

슈퍼카에 타고 있던 주인이 창문을 내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다름 아닌 임동혁이었다.

최치우는 임동혁과 그의 차를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좀 얌전한 차를 타고 오면 안 됩니까? 병무청 앞인데.”

“하하하, 약속 장소가 병무청이라 일부러 전투적인 차를 몰고 왔습니다.”

둘은 대방역에 위치한 서울병무청 입구에서 만났다.

최치우는 그동안 미뤄둔 신체검사를 뒤늦게 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뭘 어떻게 되겠어요. 당연히 1급이지.”

“하긴, 한국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데 1급이 아니면 비정상이겠군요.”

임동혁이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최치우가 혜성처럼 나타나 한국 파이트 클럽을 평정한 최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실 발군의 신체 능력을 가지지 않았어도 웬만하면 1급이 나온다.

병무청으로부터 건강한 남자라는 걸 인증 받은 최치우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이었다.

보통 남자들은 현역 판정을 받고 나면 아주 약간이라도 심란해 한다.

1급을 예상하고 있었어도 마찬가지다.

임동혁은 조수석에 앉은 최치우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다 질문을 던졌다.

“너무 멀쩡해서 좀 실망스럽습니다.”

“울기라도 할 줄 알았습니까?”

“아니, 그래도 약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본부장님, 성격 이상하다는 소리 많이 들으시죠?”

최치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면박을 줬다.

독도 개발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한영 그룹의 후계자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최치우밖에 없을 것이다.

임동혁은 피식 웃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최치우 씨, 그러고 보니 1등급 훈장에 이어 신체검사 1급까지… 여러모로 1이랑 인연이 많습니다.”

“늘 1등을 추구한다는 것도.”

최치우는 임동혁의 말장난을 능숙하게 받아쳤다.

곧이어 슈퍼카의 배기음이 고막을 때렸다.

부와아아앙-!

사납게 도로를 가로지른 임동혁은 강남으로 향했다.

단골 레스토랑에 멈춰선 그가 차에서 내렸다.

점심과 저녁 사이 브레이크 타임이라 레스토랑 안에는 손님이 없었다.

원래는 영업을 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임동혁이 온다기에 특별히 문을 열어준 것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본부장님.”

TV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스타 쉐프가 임동혁을 맞이했다.

임동혁은 그와 악수를 나누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았다.

확실히 재벌 2세의 삶은 달랐다.

기분따라 차를 바꿔 타고, 콧대 높은 스타 쉐프의 쉬는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하지만 딱히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최치우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화려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

이미 임동혁은 최치우와 함께하기 위해 모든 조건을 맞춰줄 기세였다.

세상은 재벌 2세를 갑으로 모신다.

그런 재벌 2세가 최치우를 갑으로 대우해준다.

보통 사람들은 알기 힘든 또 다른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 파스타가 서울에서는 최고입니다. 어린 전복을 잘 다루더군요.”

“알아서 골라주세요.”

최치우는 자랑하듯 메뉴를 설명하는 임동혁에게 무심히 대답했다.

임동혁은 어떻게든 최치우의 환심을 사려 노력했고, 그에 비해 최치우는 무덤덤해 보였다.

“그때 이야기했던 건…….”

결국 임동혁이 참지 못하고 본론을 먼저 꺼냈다.

최치우는 고개를 돌려 임동혁의 눈을 쳐다봤다.

“독자적인 사업부, 하겠습니다.”

“아!”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던 임동혁이 탄성을 흘렸다.

그는 혹시라도 최치우가 제안을 거절하면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임동혁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사업부 이름은 올림푸스. 인력 구성부터 이후의 운영까지 일체의 개입은 받지 않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지분은 내가 7, 본부장님이 3으로 정했습니다.”

순간 임동혁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명색이 대기업의 후계자다.

상인의 피가 흐르기에 계산이 빨랐다.

“하지만 모든 투자금을 우리가 제공하는데…….”

“그럼 안 하겠습니다.”

“아아,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투자금을 우리가 제공하는데 30%나 인정해 줘서 고맙다는 뜻입니다.”

임동혁은 곧장 안색을 바꾸며 능청스레 말을 틀었다.

그는 최치우가 어떤 유형의 인물인지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절대 어설픈 협상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아쉬운 쪽은 임동혁과 한영 그룹이다.

최치우의 손을 잡고만 있으면, 그의 날개가 되어 줄 수 있다면 한영 그룹은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독도 프로젝트를 통해 최치우의 진가를 경험한 임동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적어도 그의 미친놈스러운 결단력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았다.

“지분율 7 대 3을 포함해 자잘한 사항들을 정리해서 계약서로 만들겠습니다.”

“본부장님 인생 최고의 선택을 한 겁니다.”

“10개의 프로젝트가 다 성공하길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중 하나만 독도 프로젝트처럼 성공하면 됩니다. 그럼 우리는 서로의 날개가 되어 저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겠죠.”

“올림푸스라는 이름은 어때요?”

“마음에 듭니다. 신들의 세계 아닙니까?”

“역시 아시는군요.”

“내가 아무리 망나니로 유명하지만, 멀쩡한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 정도쯤은…….”

“전 아직 졸업 전이라 고졸인데, 대졸이라고 자랑하는 건가요?”

“아, 그게 아니라.”

최치우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임동혁과의 대화를 주도했다.

농담 따먹기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두 사람의 위치는 사뭇 달라졌고, 또 그만큼 친해지기도 했다.

마침 TV에 나오는 스타 쉐프가 직접 에피타이저를 가져왔다.

최치우는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낯선 요리를 먹었다.

앞으로는 이런 식사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는 분식집 떡볶이와 라면도 좋아하고, 동시에 최고급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제 어떤 환경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

“블랙 카드는 잘 쓰고 있습니까?”

식사가 이어지던 중 임동혁이 질문을 했다.

최치우는 무제한 한도를 지닌 블랙 카드를 받아놓고 아직 쓰지 않았다.

남들이라면 블랙 카드를 받자마자 눈이 뒤집어져 돈을 펑펑 썼을 것이다.

최치우는 돈의 중요성을 잘 알고, 돈을 싫어하지 않지만 절대 돈에 지배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쓸 생각입니다. 우선 어머니와 함께 살 집부터 사려고 합니다.”

카드로 아파트를 사는 게 말이 안 되지만, 블랙 카드를 가졌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차는 안 삽니까?”

“면허부터 따야 됩니다.”

“하하, 최치우 씨는 매번 내 예상을 벗어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면허가 없다는 말에 임동혁이 웃음을 터트리며 새삼 감탄했다.

최치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았다.

“올림푸스의 문을 언제 정식으로 열지는 고민을 좀 더 해보겠습니다. 학교생활과 병행이 가능할지, 또 군대는 어떻게 할지, 스스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우리 그룹은 독도 개발 덕택에 밀려드는 사업 수주를 처리하는데 정신이 없으니 괜찮습니다.”

“맛있네요, 음식은.”

자기 할 말을 마치고, 파스타를 맛본 최치우가 순수하게 칭찬을 했다.

스타 쉐프는 이름값에 어울리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끝없이 나오는 코스 요리를 감상하며 생각을 거듭했다.

임동혁에게 말한 것처럼 스스로 진로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최치우가 무슨 선택을 하든, 일대 파란이 일어날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는 올림푸스를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전무후무한 팀으로 만들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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