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41화 (41/243)

# 41

난리가 난 건 일본만이 아니었다.

한국 국민들은 도발을 일삼던 일본의 낭패에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다들 마음 편히 즐거워할 수 있었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오죽하면 천벌을 받겠어?”

“기상청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라고 하던데. 갑자기 엄청 센 파도가 일본 놈들 배만 주구장창 때려서 뒤집은 게 불가사의하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천벌이래도, 천벌.”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던 최치우는 아저씨들의 수다에 미소를 지었다.

천벌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나서서 파도를 일으켰다는 걸 누가 믿어줄까.

굳이 사람들에게 자랑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일본의 도발을 약화시키게 됐고, 독도에서 고생하는 사람들과 울릉도 주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 국민들에게 통쾌한 선물을 준 것 같았다.

그동안 독도 문제뿐 아니라 동해의 일본해 표기 문제로 한국 국민들은 속이 많이 상했다.

하지만 외교적 마찰에는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독도 문제도 국제적 분쟁이 되지 않도록 무 대응이 정부의 최선이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답답함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찰나, 독도 해저 자원 개발에 딴지를 걸며 또다시 도발을 하고 나선 일본 측 배가 파도에 뒤집혔다.

한국 국민들은 꽉 막힌 속에 사이다를 마신 기분을 느꼈다.

아직 개발 프로젝트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전 국민의 응원을 받는 사업으로 다시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다음 내리실 역은 낙성대, 낙성대역입니다.”

최치우는 학교 캠퍼스 근처의 역에서 내렸다.

지하철뿐 아니라 버스를 타도, 식당이나 카페에 가도 많은 사람들이 독도 자원 개발과 일본 연구함 침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느껴졌다.

수면 아래에서 그 모든 것을 이끌어간 장본인으로서 요즘처럼 기분이 좋을 때가 없었다.

이제 정말 화룡점정(畵龍點睛), 용의 눈동자만 그리면 끝난다.

바다 속 깊이 묻혀 있는 메탄 하이드레이트 실물을 채취하기만 하면 축배를 높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지.”

최치우는 너무 초조해하지 않기로 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다음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

물론 이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진짜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 하늘이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달랐다.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

10년 넘게 진척이 없던 독도 해저 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맨손으로 우뚝 세웠다.

이만큼 해낸 다음에야 감히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치우야-!”

그때 맞은편에서 들려온 맑은 목소리가 최치우의 상념을 깨웠다.

여자친구 유은서가 활짝 웃고 있다.

그녀를 본 최치우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더 짙어졌다.

오늘은 개강을 앞두고 에너지자원공학과 OT가 있는 날이다.

새로 입학할 신입생과 선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리 먹고 마시는 날이다.

최치우도 2주 뒤 개강하면 어느새 2학년이 된다.

그렇게 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비실비실한 약골 빵셔틀로 눈을 뜨자마자 욕을 얻어먹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최치우는 벌써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중이다.

괄목상대, 상전벽해라는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했다.

무력만으로 지배자가 될 수 있던 다른 차원보다 훨씬 복잡한 세상이지만, 최치우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했다.

오직 자신밖에 모르고, 강해지는 것밖에 모르던 전생과 달리 이제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중이다.

“먼저 들어가 있지. 오래 기다렸어?”

최치우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OT 장소에 들어가지 않고 지하철역에서 자신을 기다린 유은서가 귀엽기 그지없었다.

유은서는 자연스레 최치우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조금이라도 일찍 보고 싶어서. 너 독도 다녀오는 바람에 못 봤잖아.”

“어디 학원 다녀?”

“응? 무슨 학원?”

“말 예쁘게 하는 학원.”

“에이, 아냐. 진짜 진심이라 그래.”

최치우의 칭찬에 유은서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스무 살을 함께 보내고 나란히 2학년이 된 최치우와 유은서는 풋풋한 청춘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비록 최치우가 워낙 바쁜 바람에 자주 만나진 못해도 한결같았다.

공대 여신으로 S대 커뮤니티에도 사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유은서가 최치우를 엄청 좋아하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그녀의 마음은 이성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최치우도 감동시킬 정도였다.

둘은 지하철역에서부터 식당과 술집이 즐비한 번화가까지 함께 걸었다.

유은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독도 인근 해역에서 일본 연구함이 파도에 휩쓸린 이야기를 꺼냈다.

“진짜 독도에 있는 용왕님이 화가 난 거 아닐까?”

“용왕? 그런 거 믿어?”

“당연히 안 믿지, 근데 너무 신기해서.”

그러고 보면 최치우는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동심까지 회복시킨 셈이다.

다들 어릴 때 이후로 꺼내지 않던 천벌이나 용왕과 같은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었다.

“용왕이라… 그것도 괜찮네.”

“응?”

“아냐. 나도 신기해서.”

최치우는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자신이 파도를 일으켜 일본 연구함을 뒤집었다고 밝힐 순 없었다.

믿지도 않겠지만 설령 믿어버려도 문제다.

‘비밀이 많아서 미안하다.’

최치우는 유은서의 커다란 눈을 마주 보며 속으로 사과를 전했다.

그녀가 즐겨 보는 웹툰 리얼 헌터의 스토리 작가 최강이 자신이라는 점도,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내는 힘을 지녔다는 점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다.

비공식적으로 한국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미래 에너지 탐사대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숨은 리더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알려줄 수 없었다.

그러나 유은서를 대하는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진면목을 숨긴 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도 그녀가 최치우의 일상에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분명했다.

최치우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유은서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

“저긴 거 같은데?”

“바로 들어가자. 우리가 좀 늦었네.”

캠퍼스 근처의 호프집이 OT 장소였다.

호프집이 위치한 3층으로 들어서니 이미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에너지자원공학과는 공대 안에서 정원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래도 1학년이 될 신입생들이 많이 참석했고, 선배들과 복학생들도 새 학기를 앞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신입생 중 누가 누가 예쁜지 확인하려는 늑대들의 본능도 한몫을 했다.

덕분에 이른 시간이지만 호프집은 북적거리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 은서다!”

“치우도 왔네!”

최치우와 유은서 커플을 알아본 동기들이 소리를 질었다.

선배들도 손을 흔들며 두 사람을 반겨줬다.

유은서는 예쁘지만 깍쟁이 과는 아니어서 두루두루 인기가 좋았다.

반면 최치우는 같은 과 사람들과 우르르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작년 과대이던 이시환과 함께 학부생으로 미래 에너지 탐사대 멤버가 됐고, 한창 화제인 독도 해저 자원 개발에도 참여하는 바람에 학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인사였다.

그를 질투하는 무리도 있었지만, 대체로 에너지자원공학과의 에이스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이리 와!”

최치우는 동기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신입생 OT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던 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런데 2학년이 되어 후배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우스웠다.

“치우야, 독도 갔다 왔다면서? 너도 일본 배 뒤집어지는 거 봤어?”

“나 그때 현장에 있었어. 카메라가 아니라 눈으로 직접 봤지. 일본 연구함 뒤집어지는 거.”

“우오오, 대박이다, 대박!”

“완전 쩔어! 야, 치우가 일본 배 뒤집히는 거 눈으로 직접 봤대!”

최치우가 앉자마자 예상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2학년 동기들은 물론이고 복학생과 선배들도 관심을 보였다.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이 같은 과 학생이라는 건 신기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프로젝트가 잘 되면 S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전체의 평이 높아질 수도 있었다.

2학년 이상 선배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신입생들도 대놓고 최치우를 쳐다봤다.

그들도 뉴스를 통해 독도 프로젝트를 여러 번 접했다.

어쩌면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비인기 학과인 에너지자원공학과에 진학한 신입생도 있을지 모른다.

아직 전공 수업도 못 들은 신입생들에게 있어 최치우는 까마득한 톱스타처럼 보였다.

고작 1년 차이지만 대학생이라는 한계를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들었어? 저기 저 선배가 학부에 딱 두 명 있는 미래 에너지 탐사대 멤버라는데?”

“독도 개발에 참여한다는 그거?”

“어, 그거. 완전 부럽다. 2학년인데 벌써 국가적으로 인정받는 거 아냐?”

“근데 옆에 여자친구도 진짜 예쁘다. 우리 과 선배인가본데.”

“들어보니까 CC인 거 같아. 역시 무조건 에이스가 돼야 한다니까.”

남자 신입생들은 최치우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봤다.

그의 옆에 딱 달라붙은 유은서까지 모든 게 부러울 따름이다.

여자 신입생들은 아쉬움이 담긴 눈빛으로 최치우가 앉은 테이블을 쳐다봤다.

가서 말이라도 걸어보며 친해지고 싶었지만, 최치우의 옆자리를 차지한 유은서가 너무 강적이다.

딱 봐도 눈에 띌 정도로 예뻐서 감히 도전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같은 과 학생들만 모인 OT지만 최치우, 유은서 커플은 핫해도 너무 핫했다.

여기가 아니라 어디를 가도 비슷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때 4학년이 된 이시환이 맥주잔을 들고 최치우에게 다가왔다.

“여어! 왔어?”

“시환이 형, 이제 4학년인데 OT에 나오는 건 민폐 아닌가?”

최치우가 장난스럽게 농담을 했다.

이시환과는 워낙 친한 사이라 허물이 없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시환이 지지 않고 반격 카드를 꺼냈다.

“조용히 해, 인마. 넌 곧 군대 가야지?”

“뭐야? 오랜만에 보는데 시환이 오빠, 완전 별로야.”

최치우 대신 유은서가 욱했다.

남자친구의 입대를 걱정하는 건 20대 초반 모든 여자친구들의 공통 사항이다.

최치우는 아직 입대 시기를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물한 살이 된 남자들에게 군대는 숙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은서야, 그래도 갈 건 가야지. 너 고무신 거꾸로 안 신을 거지?”

“절대, 절대, 절대! 오빠는 기다려 줄 여자친구도 없으면서.”

“으윽……!”

아픈 곳을 찔린 이시환이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최치우는 웃음을 터트리며 맥주잔을 들었다.

“됐고, 건배나 합시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위하여!”

아까부터 다들 최치우가 건배사를 외쳐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최치우는 딱히 나서지 않았는데도 대내외적으로 에너지자원공학과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위하여!”

많은 동기들이 기다렸다는 듯 최치우의 건배사를 따라 외쳤다.

과에서 가장 인망이 높은 이시환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4학년이자 전직 과대인 이시환은 복학생들도 어려워하는 선배이다.

성격은 좋지만 아니다 싶으면 확실하게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최치우는 그런 이시환에게 반말을 썼고, 둘이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최치우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잘난 척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뒤에서 욕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최치우는 에너지자원공학과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도 결코 거만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진짜 바쁘고 잘나가는 사람들은 굳이 거드름을 피울 이유가 없다.

그러기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기도 하다.

꼭 어설프거나 속이 빈 사람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법이다.

과하게 나대지 않으면서도 시원시원하게 할 말 다 하는 최치우는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다 같이 마시니까 더 시원하다.”

단숨에 생맥주를 들이켠 최치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은서도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지 500㏄ 맥주를 원샷으로 끝내 버렸다.

흥겨운 음악이 흐르고, 치킨과 노가리가 맥주와 함께 밀린 수다의 흥을 돋웠다.

최치우는 원래 고등학교에서 빵셔틀로 무시만 당하고 어느 누구와도 친구가 되지 못했다.

환생을 하게 되면서 복수를 하고 괴롭힘에선 벗어났지만, 절대 즐거운 학창 생활은 아니었다.

대학에 와서 모든 게 달라졌다.

일도 일이지만 학과의 에이스가 되어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어 뿌듯했다.

“치우야, 치우야!”

그때 동기 한 명이 다급하게 최치우를 찾았다.

잔뜩 상기된 표정과 높아진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왜? 무슨 일 있어?”

최치우가 맥주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근처에 앉은 다른 학생들도 관심을 기울였다.

주의를 끄는 데 성공한 동기가 손에 든 스마트폰을 거꾸로 들었다.

최치우가 화면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속보 떴어! 독도에서 메탄 하이드레이트 실물 채취에 성공했다는 뉴스야!”

순간 짜릿한 전율이 최치우의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잠시 뉴스 속보를 읽은 최치우는 자신의 폰을 확인했다.

마침 폰으로 김도현 교수와 정기석 단장의 메시지가 날아와 있었다.

소량이긴 해도 드디어 메탄 하이드레이트의 실물 채취에 성공한 것이다.

최치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골든 벨-! 오늘 끝까지 내가 전부 쏩니다!”

“우와아아아!”

호프집이 함성으로 뒤덮였다.

단지 최치우가 골든 벨을 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독도 해저 자원 개발 프로젝트가 실물 채취라는 성과를 냈고, 이것은 에너지자원공학과를 비롯해 S대 역사에 길이 남을 자랑거리였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쾌거이기도 하다.

개강 전 OT가 축제로 변했다.

최치우는 기어코 푸른 바다 밑에서 보석을 건져냈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질 새로운 역사가 요동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