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36화 (36/243)

# 36

<숨은 실세>

최치우는 몸에 딱 붙는 정장을 입었다.

옷이 날개인지, 아니면 균형 잡힌 몸이 패션을 완성시킨 것인지 최치우의 태는 남달랐다.

딱 봐도 명품 정장을 입은 게 분명했다.

사실 평범한 대학생들은 명품은커녕 백화점 브랜드의 정장도 입기 쉽지 않다.

하지만 최치우는 달랐다.

어머니에게 무려 4억 원을 드렸지만, 그의 주머니 사정은 넉넉한 편이었다.

웹툰 리얼 헌터의 시즌 1 유료 결제로 인한 수익이 꾸준히 들어오기 때문이다.

곧 문지유가 시즌 2를 연재하게 되면 수익은 또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더 이상 파이트 클럽에서 뛸 필요는 없었다.

실전 감각 측면에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비공식 한국 최강자가 되며 얻을 건 전부 얻었기 때문이다.

한영그룹 임동혁과 못 말리는 리키를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다.

게다가 이제는 차원이 다른 액수의 자금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독도 자원 개발을 위해 한영그룹이 투자한 수천억 원, 그리고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임동혁이 얻게 될 막대한 이익을 최치우도 함께 공유하게 될 것이다.

그는 어느덧 수억의 돈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물로 성장했다.

물론 아직 개인 자산이 엄청나게 늘어난 건 아니지만 노는 물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명품 정장을 쫙 빼입고 참석한 오늘의 행사는 최치우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국을 넘어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독도 해저 자원 개발 프로젝트 발족식에는 내로라하는 귀빈들만 초대를 받았다.

최치우는 일부러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미래 에너지 탐사대원 자격으로 당당하게 발족식에 참석했다.

민(民), 관(官), 학(學) 세 분야가 모두 힘을 모아 독도 해저 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발족하게 됐다.

민간은 한영그룹, 관은 정부 산하의 가스 하이드레이트 사업단, 그리고 학계에서는 서울대 공대의 미래 에너지 탐사대가 주축이다.

발족식 이전까지 치열한 회의와 미팅을 통해 각각의 역할도 나눠졌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가 머리 역할을 하고, 가스 하이드레이트 사업단은 손발이 되어 실제 시추를 맡는다.

한영그룹은 머리와 손발이 쉬지 않고 일할 수 있게 지원하는 폐와 근육 역할이다.

1년에도 수십, 수백 개의 민관 협력 프로젝트가 발족하지만 독도 해저 자원 개발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독도의 자원을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그렇기에 잡음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실무진 차원에서 호흡이 척척 맞았다.

김도현 교수는 가스 하이드레이트 사업단과 잘 아는 사이였고, 임동혁은 최치우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랐다.

최치우가 양지와 음지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다툼이 발생할 여지를 죽여 놓은 것이다.

원래라면 중요한 고비마다 훼방을 놓기 일쑤인 공무원과 고위 관료들도 찍소리를 못했다.

독도 자원 개발에는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다.

여기서 실수를 하거나 어설픈 모습을 보이면 분노한 여론이 불처럼 타오를 것이다.

때문에 장관, 차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이 알아서 몸을 사렸다.

그들이 나서지 않으니 일이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높은 자리의 관료들은 가만히 있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된다.

핵심 기술과 노하우, 열정, 그리고 든든한 자금줄이 있으니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탔다.

서울대 공대 대강당에서 열리는 발족식은 사실상 중간 성과 보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발족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상당 부분 프로젝트가 진척 중이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주형곤 장관님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공중파 TV 아나운서 출신의 사회자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어느 행사나 그렇듯 장관의 축사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최치우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이시환을 비롯해 미래 에너지 탐사대 멤버들이 나란히 앉았고, 김도현 교수도 함께했다.

김도현 교수 역시 행사에서 주목을 받는 자리를 사양했다.

사실 그는 대외적으로 독도의 해저 자원 개발을 이끄는 중심인물이다.

그렇기에 장관 옆자리에 앉고 축사에 답사로 화답하며 카메라 세례를 받아도 절대 오버가 아니었다.

하지만 김도현 교수는 신문에 사진이 실리는 데 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기자들도 다 알고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서울대 공대 학과장 등은 저물기 직전의 태양이라는 것을.

이제 막 떠오르거나 중천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람들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실제로 일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이 모두 그들의 몫이다.

“분위기 좋네요, 교수님. 기자들도 많이 왔고.”

최치우가 김도현 교수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김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대답했다.

“한영그룹 주가도 이틀 사이 많이 올랐다고 하더군요.”

“국민뿐 아니라 외국 투자기관도 이번 프로젝트에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시작만큼 끝이 좋아야 할 텐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교수님. 끝까지 잘될 겁니다.”

“그래요. 난 치우 군만 믿고 있어요.”

행사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깜짝 놀라 뒤집어질 대화였다.

김도현 교수는 까마득하게 어린 학부 신입생 최치우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막내가 실세이자 인재라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졌지만, 이 정도 위상일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 해수부 장관과 서울대 공대 학과장에 이어 한영그룹을 대표해 임동혁이 단상에 올랐다.

그는 마이크 앞에 서서 기자들을 노려보듯 눈을 크게 떴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독도 인근 해역에 묻힌 메탄 하이드레이트 개발에 한영그룹과 저의 미래를 걸었습니다. 나아가 이번 프로젝트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디딤돌이 됐으면 합니다. 앞으로 세계는 대체 에너지와 신자원을 개발하는 국가가 주도권을 잡게 될 겁니다. 그 선두에 우리의 조국 한국이 서 있기를 바랍니다. 한영그룹은 한 알의 밀알이 되겠습니다.”

짧지만 굵고 강렬한 멘트였다.

아마 임동혁 휘하의 한영그룹 전략본부에서 최고의 두뇌들이 며칠 밤을 새우며 작성한 원고일 것이다.

임동혁은 30초 만에 좌중을 휘어잡는 데 성공했다.

미친놈이긴 해도 그의 능력과 카리스마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치우는 단상에 선 임동혁을 똑바로 쳐다봤다.

마침 임동혁도 자리에 앉아 있는 최치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언론은 임동혁의 사자후를 대서특필할 것이고, 한영그룹 후계자로서 그의 존재감은 점점 커질 것이다.

하지만 임동혁은 막상 하는 게 거의 없다.

그저 최치우라는 복권을 알아보고 호기롭게 돈을 걸었을 뿐이다.

임동혁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무대 위의 광대이고, 뒤에서 연극을 움직이는 건 고작 스무 살에 불과한 최치우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찡긋-

임동혁이 남들 모르게 최치우를 보며 한쪽 눈을 깜박였다.

나름대로 친한 척을 하며 사인을 준 것이다.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온 국민이 독도를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을 동원해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칼을 뽑은 우리 정부는 뚝심 있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정권 말기, 지지율이 떨어진 상황에서 독도의 자원 개발은 정치적 승부수가 됐다.

외교적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밀어붙일 가치가 충분했다.

게다가 정부 돈은 얼마 쓰지도 않는다.

성공의 가능성만 보여줘도 남는 장사이니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각자 다른 야망과 목표가 서울대 공대 강당을 뜨겁게 채우고 있었다.

최치우는 조용히 앉아 행사에 참석한 주요 인물들을 눈여겨보며 흐름을 살폈다.

그는 진정 국가 단위 개발 사업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가고 있었다.

***

“어땠어요, 오늘 내 연설?”

임동혁이 샴페인 잔을 들고 가까이 다가왔다.

발족식이 끝나고 서울대 공대에서는 귀빈들을 위해 만찬을 열었다.

대강당 뒤편에 호텔 출장 뷔페를 불러 제법 그럴듯하게 연회 분위기를 낸 것이다.

물론 한영그룹의 자금으로 서울대 공대가 생색을 내는 것이다.

최치우는 임동혁을 쳐다보고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같이 서 있던 이시환과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대학원생 선배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시환이 형, 선배님들, 잠깐 이야기 좀 나누고 오겠습니다.”

“어? 어, 그, 그래.”

이시환과 대학원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프로젝트의 자금을 지원하는 물주인 임동혁을 어려워했다.

재벌 2세이자 대기업 후계자이니 보통 사람은 쉽게 생각하기 힘든 게 당연했다.

그런데 임동혁이 최치우에게 살갑게 굴고, 최치우는 마치 그를 귀찮다는 듯 대하는 모습이 놀라운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F.E 멤버들도 최치우의 진가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가 단순히 운 좋게 합류한 막내 신입생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체감하는 중이다.

“연설이라기엔 너무 짧지 않았습니까?”

최치우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임동혁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최치우 씨에게 칭찬받는 거, 우리 영감한테 칭찬받는 것만큼 어렵군요.”

임동혁이 언급한 영감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이자 한영그룹의 회장이다.

최치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한영그룹 주가가 많이 올랐으니 회장님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영감들한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회사 주가니까. 덕분에 나도 어깨에 힘 좀 들어갔고.”

“다행이네요.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려면 한영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리고… 알고 있겠지만, 절대 나 혼자 열매를 따먹지는 않겠습니다.”

임동혁이 의미심장한 약속을 했다.

최치우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서울대 공대를 대표해서 독도 해저 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이끈다.

그렇기에 메탄 하이드레이트 채취에 성공해도 F.E 몫의 상업적 이익은 서울대학교로 귀속 된다.

물론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비를 받고 만만치 않은 성과금과 커리어를 쌓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유전을 터트리는 일에 비하면 개개인에게 돌아갈 물질적 보상은 미비한 셈이다.

임동혁은 그 부분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한영그룹은 민간 투자사로서 막대한 이익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

그 외에도 그룹 이미지 개선과 각종 국가 개발 사업에서의 우선권 등 엄청난 전리품을 챙길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그렇기에 임동혁이 마음만 먹으면 최치우를 얼마든지 대우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잘되면 그걸로 만족할 생각이 없습니다. 후계자로서 지위를 확실히 인정받은 상태에서 더 심장 뛰는 일에 도전해야죠. 최치우 씨 없이는 안 됩니다.”

임동혁은 독도 개발 이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서 독도 개발의 물꼬를 트고 프로젝트를 궤도에 올린 최치우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굳이 해주지 않아도 될 보상을 약속하는 것도 최치우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함이다.

물론 독도 개발이 실패로 돌아가면 모두 없던 일이 된다.

하지만 적어도 임동혁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소인배는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단순한 돈보다 짜릿한 도박과 승부를 더 좋아하는 아드레날린 중독자이기에 계속해서 최치우와 함께 무모한 도전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최치우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나중 일은 나중에 가서 이야기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은 독도에만 집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확답을 주지 않았다.

재벌 2세가 뭐든 해주겠다며 환심을 사려 해도 적당히 거리를 뒀다.

그러면 그럴수록 임동혁은 더더욱 애가 타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이후로 최치우가 갑이고 임동혁이 을이 된 지 오래였다.

“손님이 오네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죠.”

최치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사람을 확인하고 대화를 끊었다.

임동혁의 얼굴에는 뭔가 아쉬운 표정과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 절반씩 섞여 있다.

“오! 자네가 에너지자원공학과의 최치우 학생인가?”

호방한 인상의 중년인이 대뜸 악수를 청해왔다.

최치우는 살짝 목례를 했다.

독도 해저 자원 개발 프로젝트의 발족식과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물급이다.

중년인도 나름 한가락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치우입니다.”

“김 교수님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우리 사업단 사람들한테도. 나는 해수부 차관보 김기훈일세.”

차관보라는 말에 뒤돌아서 다른 쪽으로 걸어가던 임동혁이 멈칫했다.

1급에 해당하는 차관보는 임명직과 선출직을 제외하고 일반 공무원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이다.

장관과 차관이 얼굴마담이라면 실제로 해수부를 장악하고 업무를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은 차관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기훈이 최치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우리 부서 사람들이 자네 칭찬을 닳도록 했네. 이름을 도저히 잊어먹을 수 없을 지경이야.”

“아닙니다. 해수부와 가스 사업단 선배님들 덕분에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최치우는 뜻밖의 극찬에도 우쭐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김기훈은 그런 모습이 더 마음에 든 듯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네 같은 인재야 졸업 후 뭘 해도 하겠지만, 혹시 공직에 관심이 있거든 해수부로 왔으면 좋겠네. 물론 욕심인 거야 잘 알지만. 허허.”

전국의 수많은 취준생들이 들으면 눈이 뒤집힐 소리이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1급 공무원인 차관보로부터 욕심나는 인재라는 소리를 듣는 대학생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말을 꺼낸 김기훈도 알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행시에 합격한 5급 공무원이 대단해 보여도 최치우를 담기엔 한없이 작은 그릇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김기훈이 욕심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이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프로젝트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게. 김도현 교수님을 잘 보좌하면서 말이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기훈 차관보는 최치우가 실질적으로 미래 에너지 탐사대를 이끄는 존재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주요 실무진 회의에 참석하는 핵심 인재라고 전해 들었을 뿐이다.

학부생이 국가적 프로젝트에서 중심인물로 인정받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렇기에 차관보가 이름을 기억하고 특별히 인사를 건넨 것이다.

최치우는 먼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미 주머니 속 송곳이 되고 있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진짜 인재는 어떻게든 이름이 알려지게 마련이다.

최치우는 물밑에서 주목을 받으며 알음알음 이름값을 키우고 있었다.

여전히 빙산의 일각만 알려졌을 뿐이기에 그의 진면목이 밝혀지면 세상이 뒤집힐 것이다.

전무후무한 영웅이 개척해 나갈 새로운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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