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타닥, 타다닥!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최치우의 눈이 빛나고 있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제껏 쉬이 볼 수 없던 열기가 감돌았다.
이중삼중으로 방호벽이 설정된 지구자원학과의 전산망을 해킹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숨을 죽이고 컴퓨터에 몰입한 최치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사실 누가 도쿄대 안방, 그것도 수석 교수의 연구실에서 해킹을 할 생각을 하겠는가.
그렇기에 건물 보안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보안이 허술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게 CCTV를 무력화시키고 문고리를 부수는 최치우가 비상식적일 따름이다.
반면 전산망 보안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최치우도 서울에서 충분히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았다면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뻔했다.
평범한 해커가 아닌, 전투형 로봇을 설계하고 인공지능을 만지던 엔지니어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해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도가 문제가 아니었어.”
최치우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해저의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시추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은 이미 확보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도쿄대 지구자원학과는 아시아 1위답게 엄청난 기밀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지의 자원과 에너지에 대한 정보가 넘쳤다.
한편, 왜 이런 정보가 극비 기밀인지도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자원 개발권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서만은 아닌 게 분명했다.
현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한 정보도 많았기에 섣불리 공개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도쿄대에서 이러한 자료들을 취급한다는 게 알려지면 논란에 휩싸일 것이다.
“브라질의 광산에서 발견됐다는 미확인 금속… 이건 아무리 봐도 미스릴 같은데.”
최치우는 아슬란 대륙에서 황금의 100배 가치로 거래되었던 미스릴을 떠올렸다.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품은 환상의 금속이 어쩌면 지구에도 묻혀 있을지 모른다.
도쿄대 지구자원학과의 데이터가 방대했기에 일일이 모든 파일을 살펴보진 못했다.
남미의 미스릴로 추정되는 광물 말고도 최치우의 흥미를 자극할 기밀 자료들이 많을 것이다.
최치우는 시추 기술을 비롯해 관련 자료를 모조리 복사해 웹하드로 보냈다.
이 작업 역시 보안을 뚫는 것만큼 만만치 않게 힘들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료를 카피해서 전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해커들은 다 안다.
그 어려운 일을 20분을 넘기지 않고 해낸 최치우는 뭉그적거리지 않았다.
야마시타 교수의 PC를 사용한 흔적을 지우고 최대한 빨리 건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겉보기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게 안전하고 한가해 보이지만, 실상은 주먹이 오가는 파이트 클럽에서의 격투보다 더 치열한 승부였다.
도쿄대 전산망 보안 시스템과의 한 판 승부를 끝낸 최치우는 마지막 과정까지 잊지 않았다.
그는 건물 전체 CCTV의 기록을 날려 버리는 것으로 도쿄에서의 승부를 마무리 지었다.
“됐다!”
최치우는 짧게 환호성을 터트렸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프로그래밍 코드를 입력하는 매 순간이 일촉즉발의 위기나 다름없었다.
키보드 하나만 잘못 눌러도 보안망이 가동되며 해킹을 시도한 흔적이 남게 된다.
그렇게 되면 조교를 때려눕힌 최치우가 의심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해킹에 성공했기에 걱정이 무의미해졌다.
야마시타 교수는 자신의 PC를 확인해도 자료가 유출된 것조차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연구실을 지키다 최치우에게 기절을 당한 조교가 이상한 소리를 해도 물증이 없다.
대도(大盜)가 되어 도쿄대 지구자원학과의 심장을 빼앗은 최치우는 유유히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최치우는 바다 건너 일본 땅에서 독도의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채취하기 위한 실마리를 얻었다.
당장의 가치로 따지면 핵심 기술을 확보한 게 최고의 수확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어찌 보면 연구 자료로서 큰 가치가 없는 미확인 에너지와 자원에 대한 자료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이미 독도 이후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
“리키? 왜 그래? 진정해! 컴 다운!”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이시환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대학원생 멤버들도 어찌할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김도현 교수는 한 발짝 물러서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리키는 도쿄대의 경비 인력을 모조리 끌어모을 기세였다.
“내 몸에 돈 터치! 오케이? 돈! 터! 치!”
그는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소란을 피웠고, 제지하기 위해 달려온 경비원들을 쩔쩔매게 만들었다.
죄 없는 경비원들을 때리거나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
그저 넘치는 힘으로 제압당하지 않으며 계속 소란을 피울 따름이었다.
“아, 조, 조또마떼!”
몰려든 경비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리키의 양팔을 붙잡았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매달린 모양새다.
최치우가 나타나기 전까지 비공식 한국 격투 최강자이던 리키의 힘을 평범한 경비원들이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리키는 주짓수 마스터이다.
파이트 클럽에서도 주짓수 기술로 최치우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굳이 많은 힘을 쓰지 않고도 기술을 이용해 요리조리 빠져나오는 게 가능했다.
스윽-
또다시 경비원에게 붙잡힌 오른팔을 빼낸 리키가 목소리를 높였다.
“컴 다운! 말로 하자니까 왜 흥분해?”
그는 오히려 도쿄대 경비원들에게 진정하라고 외쳤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이었다.
경비원들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벌써 네 명이 모였는데 한 사람을 제압하지 못하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김 교수님, 저 친구, 대체 왜 저러는 겁니까?
도쿄대 지구자원학과의 교수도 통역을 대동해 김도현 교수에게 SOS를 쳤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에서 데려온 인원이니 통제해 달라는 뜻이다.
김도현 교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슬쩍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시환 학생이 시간을 잘 끌었고, 리키가 소란을 피운 지 5분이 넘었는데… 어쨌든 치우 군이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버텨야겠지.’
그는 머릿속으로 타임 라인을 그리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혼혈이다 보니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게 아닐까요? 저는 짐작이 안 갑니다만, 어느 부분에서 저 친구의 신경을 건드렸다든가……. 곧 진정하겠지만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김도현은 교묘한 화술을 구사했다.
그는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학계의 선두 주자로 주목받으며 온갖 음해와 루머를 견딘 이력이 있었다.
방금도 은근슬쩍 도쿄대에도 책임이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격식을 차리며 사과를 했지만, 리키가 아무 이유 없이 저렇게 날뛰겠냐고 말한 것이다.
통역을 통해 김도현 교수의 말을 전달 받은 지구자원학과 교수는 딱딱한 표정으로 야마시타 교수를 돌아봤다.
수석 교수인 야마시타 역시 리키의 돌발행동에 난처해하고 있었다.
평생 연구실과 대학교에서 예의 바른 모범생들만 접하던 야마시타 교수에게 이런 일은 무척 낯선 것이었다.
“호우!”
그때 리키가 산뜻한 기합을 내질렀다.
그는 175㎝쯤 되는, 결코 작지 않은 경비원을 가볍게 들어 저만치 떨어트려 놓았다.
리키 한 명 때문에 네 명의 장정이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나마 리키가 아무도 안 다치게 하려고 애를 쓰기에 이런 것이다.
작정하고 싸웠다면 경비원 네 명은 진작 의식을 잃고 기절했을 게 확실하다.
“더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교내 경비원이 아니라 경찰을 부르도록 하지요.”
지구자원학과 교수가 최후통첩을 전했다.
자신이 모시는 야마시타 교수의 창백한 낯빛을 보니 어떻게든 사태를 끝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까지는…….”
김도현 교수가 그를 만류하려는 찰나, 낯익은 얼굴이 조용히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최치우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대학원생 멤버들 옆에 서 있었다.
그가 잠시 사라졌다 돌아온 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일부러 존재감을 죽였고, 이시환의 질문 공세와 리키의 난동에 모두의 관심이 몰렸기 때문이다.
‘치우 군!’
김도현 교수는 속으로 소리를 삼켰다.
최치우는 남들 몰래 리키를 바라보며 윙크를 했다.
‘미션 성공.’
사인이 떨어졌다.
최치우를 본 리키가 거짓말처럼 동작을 멈췄다.
“어?”
“난데……?”
끙끙거리던 경비원들도 놀랐다.
통제 불능의 힘을 자랑하던 리키가 얌전히 팔을 늘어놓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리키라고 좋아서 사고를 친 게 아니었다.
사부로 모시기로 한 최치우의 지시를 받고 마뜩치 않은 임무 수행을 했을 뿐이다.
“저 친구가 이제 조금 진정이 된 것 같네요. 다시 한번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원활한 학술 교류를 위해 한 번만 양해하고 넘어가 주시면 안 되겠는지요.”
리키는 잠잠해졌고, 30억 원의 연구비를 기부하기로 한 서울대의 책임 교수가 고개를 숙였다.
경찰을 부르거나 별도의 조치를 취해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기도 애매했다.
“후우, 일단 저 친구는 격리를 좀…….”
“따로 떼어내서 왜 그랬는지 알아봐야겠지요. 남은 기간 동안 이런 소동이 재발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김도현 교수가 마무리를 했다.
그는 야마시타 교수를 바라보고 한 번 더 사과의 뜻을 표시했다.
리키 때문에 깜짝 놀란 야마시타 교수는 마지못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와 지구자원학과는 예정대로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막내인 최치우는 자초지종을 듣고 리키를 진정시킨다는 명목으로 교내 경비원들과 함께 따로 떨어졌다.
학술 교류 일정은 오늘 오후까지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30억을 쓰며 도쿄대에 온 목적을 달성했다.
지금으로선 김도현 교수만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미래 에너지 탐사대 전원이, 그리고 대한민국이 최치우의 덕을 보게 될 것이다.
최치우는 마냥 떳떳하지만은 않은 일을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후회할 시간에 무슨 수를 쓰든 앞으로 나아가며 목표를 이룬다.
일곱 차원을 거치며 많은 게 달라졌지만, 최치우의 영혼에 각인된 본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조용하면서 다이내믹한 모험을 마친 그의 심장이 펄떡거리고 있었다.
최치우는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 김도현 교수와 함께 자료를 살펴보고 싶었다.
독도 인근 해역에 시추 기계를 세운다는 게 더 이상 허황된 꿈만은 아니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 채취에 성공하면 최치우는 머지않아 세계를 누비게 될 것이다.
‘임동혁 본부장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군.’
최치우는 선뜻 30억 원을 내놓은 한영그룹의 후계자 임동혁을 떠올렸다.
재계의 미친놈으로 악명이 자자한 임동혁과의 내기에서도 이긴 것이다.
서울에서는 더 재밌는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