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31화 (31/243)

# 31

<도쿄대의 심장을 노려라>

미래 에너지 탐사대가 일본에 도착했다.

최치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고, 외국에 발을 디뎠다.

그렇지만 특별히 설레지는 않았다.

여행을 온 게 아니라 비밀스러운 미션을 이루기 위해 바다를 건넜기 때문이다.

반면 F.E의 진짜 목적을 모르는 다른 멤버들은 약간 들떠 보였다.

도쿄대와의 학술 교류라는 큰 기회를 맞이한 대학원생 세 명도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시환과 리키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느새 죽이 착착 잘 맞게 된 두 사람은 나리타공항에 내리자마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역시 듣던 대로 일본은 진짜 깨끗하다.”

“시환, 룩 엣 댓! 라멘집, 맛있겠다.”

“그만해. 리키 때문에 나도 배고파지잖아.”

사실 공항의 시설과 청결도는 인천공항이 한 수 위다.

그럼에도 이시환은 마냥 탄성을 터트렸고, 리키는 라멘집과 카레집을 가리키며 입맛을 다셨다.

둘의 대화 내용만 듣고 있으면 만담을 하는 개그 콤비 같았다.

“다들 주목해 주세요. 우리 일정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아요. 짐들 잘 챙겨서 공항 리무진로 이동한 다음 숙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겠어요. 오후에는 도쿄대 지구자원학과와 첫 세미나를 가질 예정이고, 내일은 하루 종일 학술 교류가 있을 거예요.”

“교수님, 혹시 자유 시간은 없나요?”

이시환이 용기를 내서 질문했다.

학구열로 똘똘 뭉친 대학원생들도 내심 가장 궁금해하던 내용이다.

김도현 교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모레 오후 비행기니까 아침과 점심에 잠깐 시간을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상황을 봐야 하겠지만 우선은.”

“네, 감사합니다!”

찰나의 자유 시간이라 해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희망을 얻은 이시환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학술 교류에 아무 관심이 없는 리키는 물론이고 대학원생들도 안심한 기색이다.

이윽고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각자 캐리어를 들고 리무진에 탑승했다.

나리타공항에서 도쿄 시내의 숙소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멤버들은 창밖으로 변하는 풍경을 쳐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세미나에서 발표할 내용을 생각하는 멤버도 있고, 모레 자유 시간에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 멤버도 있었다.

반면 도쿄에서의 진짜 미션을 아는 최치우와 김도현 교수의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2박 3일의 학술 교류 일정은 꽤 타이트하게 짜여졌다.

오늘 오후 상견례를 시작으로 세미나가 열리면 외부로 빠져나가기 힘들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학술 관련 행사가 이어진다.

결국 내일 안에 도쿄대 지구자원학과의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야 된다는 뜻이다.

모레 아침이 밝으면 손쓸 도리가 없다.

오늘과 내일 도쿄대 내부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밖에 기회가 없다.

최치우는 학부생이고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막내이기에 비교적 운신이 자유로울 것이다.

도쿄대에서도 굳이 최치우를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이진 않을 확률이 높다.

김도현 교수와 대학원생들, 그리고 이시환이 주의를 끌어주면 최치우는 조용히 사라질 계획이다.

그래봤자 제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최치우가 너무 오래 안 보이면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오늘이 중요하다.’

창밖을 바라보던 최치우는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로드맵을 그렸다.

오늘 오후 도쿄대에서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D-day인 내일 원활하게 기밀 장소에 침투해서 해킹을 할 수 있었다.

스윽-

최치우가 고개를 돌렸다.

다른 멤버들은 버스에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교수님.’

고개를 돌린 그가 김도현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김도현 교수 역시 최치우처럼 복잡한 생각으로 편하지 않을 터였다.

도쿄대에서의 미션은 대학 교수이자 학자로서의 연구 윤리를 위반하는 일이다.

만약 발각이라도 된다면 김도현 교수의 국제적 명성은 쓰레기통에 처박힐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도현 교수는 결단을 내렸다.

평생 간직해 온 꿈을 위해, 그리고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꼭 해낼 겁니다.’

‘반드시 해내야만 해요, 치우 군.’

최치우와 김도현 교수는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두 사람은 같은 버스가 아닌, 같은 운명의 열차에 올라탄 채 도쿄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

“독도, 독도에서도 탐사를 한 결과 국내의 제반 환경이 기대 이상으로 갖춰져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시환은 굳이 독도라는 글자를 힘주어 말했다.

도쿄대 지구자원학과와 인사를 마친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첫 번째 세미나를 진행하는 중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식사를 하는 과정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최치우는 지구자원학과 교수진과 학생들의 얼굴 표정을 살펴봤다.

독도 영유권 문제는 아주 민감한 이슈이다.

그러나 미래 에너지 탐사대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기 위해서는 독도를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포커페이스, 역시.’

최치우는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통역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번역하지 않았다.

이시환의 말을 원문에 가깝게 옮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대 지구자원학과 교수진과 학생들은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독도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일본인답게 외부로 드러나는 감정 조절을 잘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만만히 볼 보통내기들은 아닌 것 같았다.

짝짝짝짝짝!

이시환의 발표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물론 의례적인 박수였다.

곧이어 지구자원학과의 학부생이 세미나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첫날 상견례에 이은 세미나는 이를테면 탐색전이다.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와 도쿄대 지구자원학과의 막내에 해당하는 학부생이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

F.E의 막내는 최치우지만 신입생이 나설 자리는 아니었다.

어차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최치우는 기회가 주어져도 발표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메마시떼.”

깍듯하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 도쿄대 학생이 발표를 시작했다.

꼼꼼하게 준비한 PPT 화면을 띄우고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잠깐 발표를 지켜보던 최치우는 시선을 돌려 장내 분위기를 파악했다.

영어 통역이라는 직함을 달고 따라온 리키는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이다.

그러나 리키를 제외한 다른 참석자들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 멤버들, 그리고 도쿄대 지구자원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은 발표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학부생의 발표는 모두 익히 아는 기본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쟁쟁한 교수들까지 집중하는 모습에서 도쿄대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맨 앞에 앉은 사람이 지구자원학과 수석 교수 야마시타 히로시. 메탄 하이드레이트의 해저 시추를 가능케 한 핵심 기술과 극비 기밀 자료들을 관리하는 키맨이다.’

야마시타 히로시 교수는 전형적인 일본의 학자처럼 생겼다.

절반 정도가 하얗게 변한 머리, 무테안경, 마른 체구에 매사 진지하고 조용한 태도까지.

이따금 노벨상을 수상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일본 학자들은 대부분 야마시타 교수 같은 스타일이었다.

‘개인적인 유감은 없습니다. 도쿄대에서 가지고 있어도 활용할 수 없는 기술, 인류를 위해 나눈다고 생각해 주시기를.’

최치우는 야마시타 교수의 옆얼굴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들리지 않을 말을 전했다.

일본은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시추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갖고 있지만 정작 자원이 없다.

그렇기에 호시탐탐 독도를 노리며 끈질기게 들러붙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빠진 연결고리인 핵심 기술만 확보하면 당장이라도 자원 개발을 시작할 수 있다.

최치우는 연구자로서는 부정한 방법이지만 자신만의 길을 뚫기로 결심했다.

학자가 되느냐, 아니면 정글의 맹수가 되느냐.

답은 당연히 후자일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라는 전쟁터에서 그는 비정한 장수가 되어 미래 에너지 탐사대와 대한민국을 이끌 것이다.

‘야마시타 교수가 들고 다니는 랩탑, 그리고 수석 교수 연구실. 두 가지 루트 중 어디가 나을까.’

최치우는 도쿄대 학부생의 발표에는 신경을 껐다.

오늘 주어진 탐색의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지구자원학과의 극비 데이터는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허점이 없지는 않았다.

도쿄대는 그들의 안방이기에 여기서 누가 감히 자료를 탐낼 거라는 생각을 하기 힘들 것이다.

최치우는 사전에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음을 파악했다.

첫 번째는 야마시타 교수가 항상 들고 다니는 랩탑 컴퓨터이다.

그의 랩탑을 사용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평소 야마시타 교수가 접속하던 데이터 저장고에 들어가 모조리 카피해 낼 수 있다.

두 번째는 수석 교수 연구실에 잠입하는 것이다.

연구실에서 야마시타 교수가 사용하는 컴퓨터를 해킹하면 된다.

둘 다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온 학술 교류단의 막내가 무슨 수로 도쿄대 수석 연구 교수의 랩탑을 쓸 수 있겠는가.

연구실에 들어가 PC를 사용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거라면 일본까지 오지도 말았어야 한다.

최치우는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 것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는 차원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격언을 곱씹으며 머리를 굴렸다.

‘이것저것 재면서 안전한 방법을 찾으려 하면 답이 없다. 일단 부딪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면 빈틈은 생기게 돼 있어.’

실패하게 되면 따라올 대가가 어마어마하겠지만 최치우는 겁먹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순간 게임은 끝날 것이다.

무모한 미션일수록 과감하게 덤벼들어야 한다.

최치우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수만 명의 대군과도 맞서 싸운 기억을 갖고 있다.

탐색은 끝났다.

서울대와 도쿄대는 학부생의 발표를 통해 서로의 연구 역량을 탐색했다.

같은 장소에서 최치우는 어떤 방식으로 도쿄대 지구자원학과의 심장을 뺏어올지 탐색을 마쳤다.

‘연구실에 들어가 야마시타 교수의 PC를 해킹한다. 이게 최선이야.’

최치우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랩탑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수석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는 쪽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식하게 가자. 진짜 무식하게. 내일 오전 마지막 세션에서 시환이 형에게 시간을 끌게 하고… 연달아 리키가 사고를 친다. 그 틈에 30분 정도를 만들어 연구실에서 승부를 봐야겠군.’

결정을 내리자 세부적인 계획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죽고 죽이는 싸움은 아니지만, 전투에 앞서 전략을 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전쟁터는 언제나 변화무쌍하기에 순간적인 판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

생사가 오가는 고비의 현장을 숱하게 경험한 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바로 내일, 최치우의 미션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한국 최고의 명문 서울대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게 될지, 아니면 도쿄대 지구자원학과가 아무도 모르게 심장이나 다름없는 자료를 빼앗기게 될지.

째깍, 째깍, 째깍.

세미나실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평소처럼 움직이고 있다.

최치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20시간 안에 독도의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채취하기 위한 팔부 능선을 공략하게 될 것이다.

전투를 앞뒀을 때처럼 최치우의 심장이 기분 좋게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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