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5화 (25/243)

# 25

최치우는 김도현 교수와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극적으로 구조된 최치우는 우선 자신보다 더 놀란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이시환을 구해낸 장면도 초현실적이었다.

어디서 그런 스피드와 균형 감각, 괴력이 나왔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바다에 빠진 다음은 더했다.

거칠고 차가운 바다에서 무사히 구조됐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런데 최치우는 저체온증 현상도 보이지 않았다.

유유히 수영을 하면서 나타났다.

5분이나 시야에서 사라졌는데 말이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 멤버들과 초음파 탐사선 직원들은 최치우의 실종부터 귀환까지 너무 놀라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오직 한 사람, 조용한 방에서 마주 앉은 김도현 교수의 눈빛만 달라졌을 뿐이다.

“치우 군, 내게는 솔직히 말해줬으면 해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평범한 사람이… 아니죠?”

간단하게 넘길 질문이 아니었다.

그냥 떠보는 말도 아닌 것 같았다.

최치우는 김도현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뿔테 안경 너머 그윽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름 확신을 가지고 말을 꺼냈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흔들리는 갑판에서 시환 학생을 구한 것, 그리고 풍랑이 이는 바다에 빠졌다가 돌아온 것……. 운동선수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을 두 번이나 연달아 해냈으니까요.”

“위기 상황에서 사람의 잠재력이 발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습니다. 평범한 주부가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를 번쩍 들기도 하는 것처럼 저 역시 일시적으로 그런 힘을 발휘한 것 같습니다.”

흠잡을 구석 없는 대답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든 수긍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도현은 달랐다.

“치우 군, 나는 경험이 있어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경험이.”

심상치 않은 말이다.

최치우는 김도현의 생각을 읽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전에 말씀하신…….”

“맞아요. 우리 할아버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지요.”

최치우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도현의 조부는 전설적인 고고학자 김도훈이다.

김도훈은 백제 계백장군의 칼을 찾아내며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도약했다.

꽤 먼 과거의 인물이지만 김도훈이 활약하던 당시의 유명세는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김도현 교수는 최치우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나도 설명은 잘 못하겠어요. 아무튼 할아버지는 특별한 재능을 갖고 계셨지요. 치우 군도 어쩌면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가신 김도훈 회장님과 비교되기엔 제가 너무 부족합니다.”

“분명한 건 평범하지 않다는 게 절대 나쁜 점이 아니라는 거예요.”

김도현 교수가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그는 고개를 들고 최치우를 마주 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고를 당하고 놀랐을 텐데 내가 괜한 이야기를 꺼낸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무척 많아요.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또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서도 신기한 현상을 여러 번 목격했지요. 내가 미래 에너지에 집중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과학이 증명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인류를 구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거든요. 치우 군이라면 언젠가 내 믿음을 이뤄주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가 드네요.”

엄청난 말이다.

김도현은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공대 교수임에도 초현실적인 현상을 믿고 있었다.

게다가 최치우에게 무궁무진한 기대를 품은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오늘 해주신 말씀 기억하면서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지만, 그조차 어려운 탐사 환경에 대한 공부로 남겠지요.”

확실히 김도현 교수는 남달랐다.

다른 교수들 같았으면 사고가 터지자마자 전전긍긍 앓아누웠을 것이다.

학교 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혹시 이슈가 되지 않을까 등 자기 안위부터 챙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도현 교수는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 같았다.

이쯤 되니 그가 미래 에너지 탐사대를 만든 진짜 이유가 궁금해졌다.

과연 대중들의 관심을 고취시키고 공대에서 인재를 키워내는 것 정도로 만족할 사람일까.

어쩌면 F.E는 김도현 교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초석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더 잘된 일이지.’

최치우는 짧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독도와 동해는 그에게 많은 선물을 안겨줬다.

위험한 사고 순간은 아찔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시환을 구했고 자신은 깨달음을 얻었다.

김도현 교수의 진의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에 대한 확신과 단서도 생겼다.

최치우는 비밀스러운 자신만의 목표를 세웠다.

‘1년 안에 독도의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채취하도록 만든다. 무조건!’

가스 하이드레이트 개발 사업단이 10년 넘게 매달렸어도 쉽게 풀지 못한 숙제이다.

그렇지만 10년 동안 충분한 준비와 기반은 닦아놓았다.

최치우는 사업단이 만든 토대 위에서 기적을 보여줄 작정이다.

동해 바다와 하나가 되었던 깨달음의 순간, 정확히 어느 지점에 시추 기계를 세워야 할지 감을 잡았다.

무위자연을 체험한 경험 덕분에 앞으로도 대자연에 묻힌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전생에서도 가져본 적 없는 특별한 능력을 키운 것이다.

‘내 손으로 역사를 만들 수 있어.’

최치우는 주먹을 살짝 쥐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점점 더 무서운 잠재력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

“치우야, 너…….”

김도현 교수와 면담을 마치고 나오니 이시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죽을 위기에 처한 이시환은 패닉에 빠져 있었다.

최치우가 바다에 빠지자 가장 크게 비명을 지른 사람도 이시환이었다.

그는 지독한 멀미와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최치우가 돌아올 때까지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다 최치우가 수영을 하며 나타나서 배에 오르자 참고 있던 긴장을 풀고 기절해 버렸다.

과대이자 많은 학생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인 이시환은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이었다.

“대체 왜 그랬어, 인마! 나 때문에 네가 얼마나 위험해진 거야!”

“그래도 형을 그냥 두고 볼 순 없잖아요. 결국 둘 다 멀쩡하니 잘된 겁니다.”

“너 정말… 정말… 고맙다, 최치우. 평생 잊지 않고 생명의 은인으로 모실게.”

이시환은 아무 말이나 내뱉는 성격이 아니었다.

쾌활하고 유쾌하지만 자기가 한 말은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큰 결심을 한 듯 최치우를 쳐다봤다.

“어차피 형이라고 부르는데 말도 편하게 해. 우리 진짜 격식 없이 친형제처럼 지내자. 그래도 괜찮지?”

최치우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환이 형. 다친 데는 없어?”

“니가 너무 세게 던져서 여기저기 멍이 들었지만 괜찮아.”

“설마 지금 생명의 은인을 원망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이시환이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최치우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을 얻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얻는 게 곧 천하를 얻는 일이라는 뜻이다.

최치우는 독도에서의 사건을 통해 이시환이라는 전도유망한 인재를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함께 걸어갈 미래가 환하게 열리는 것만 같았다.

***

여름방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독도를 다녀온 최치우는 제법 많은 일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우선 웹툰 리얼 헌터의 시즌 1이 막을 내렸다.

리얼 헌터는 네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얼마나 반응이 좋은지 윤영국 팀장이 제발 휴재만 하지 말라고 사정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치우는 그림 작가 문지유를 위해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처음 해보는 정기 연재로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정상적인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치우는 문지유라는 소중한 재원을 무작정 밀어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멍청한 짓이다.

최치우와 문지유는 웹툰으로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시즌 2를 준비하며 몇 달을 푹 쉬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스토리는 최치우의 머릿속에 다 있다.

문지유가 체력을 회복하고 새롭게 시즌을 시작할 준비를 마치면 된다.

최치우를 만나 인생 역전의 꿈을 이룬 그녀는 생애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애니메이션의 성지인 일본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며 충전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반면 최치우는 문지유처럼 마냥 쉴 수 없었다.

원래부터 웹툰 스토리를 짜는 데 투자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1년 안에 독도에서 메탄 하이드레이트 시추가 가능하도록 판을 짜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밀하면서도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박살 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남 좋은 일만 시킬 수는 없었다.

성공의 열매를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판을 주도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

한편, 이 와중에 파이트 클럽 운영자가 연락을 취해왔다.

칠성파 행동 대장 김인철을 무참히 꺾으며 파란을 일으킨 게 벌써 1년 전이다.

그동안 몇 차례 접촉이 있었지만 최치우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강자가 아니면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연락한 걸 보면 제대로 된 대진을 맞춘 것 같았다.

“이번에는 진짜 강한 사람입니까?”

최치우는 운영자의 전화를 받자마자 도발적으로 물었다.

파이트 클럽은 그의 관심 순위에서 뒤로 밀린 지 오래이다.

그렇기에 운영자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설득을 위해서였네. 자네가 단번에 김인철을 쓰러트린 특급 유망주지만 S급 파이터들과 싸우기에는 레퍼런스가 너무 부족해서 어려웠지.”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아주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성사시켰네. 한국 국적을 가진 파이터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보증하지.”

“누구입니까?”

한국에서 가장 강한 파이터를 섭외했다는 말에 살짝 흥미가 돋았다.

최치우의 피에 깃든 전사의 본능은 숨길 수 없었다.

“미국 파이트 클럽에서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을 쓰러트린 주인공이네. 참고로 흑인 혼혈이지. 어때? 이만하면 움직이겠나? 자네에게 배정된 파이트머니는 1억. 만에 하나 승리를 거둔다면…….”

“어마어마한 보너스가 쏟아지겠군요.”

“바로 그거지.”

최치우는 파이트 클럽에 깊게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내공과 마법을 쓰지 않고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한국의 최강자를 쓰러트리고픈 마음이 생겼다.

최강이라고 지은 닉네임이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참에 한국 파이트 클럽을 평정해 버리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지.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께 번듯한 가게를 차려 드리자.’

기본 파이트머니 1억과 승리 보너스, 거기에 웹툰을 연재하며 얻은 수익을 더하면 작은 가게를 차리기엔 충분할 것이다.

독도 프로젝트에 몸을 던지기 전, 무조건 아들을 믿어준 어머니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합시다. 대신 내가 이기면 돈 말고 다른 부탁도 하나 들어주는 조건으로.”

“어떤 부탁을 하려고 그러지?”

“그건 이긴 다음에 말하죠.”

“좋아, 최고의 파이트로 VVIP들만 모시겠네.”

최치우는 싸움만 하고 말 생각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며 끝없이 진화 중인 그의 승부수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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