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4화 (24/243)

# 24

<동해의 선물>

고오오오오오-!

심연에서 끓어오른 소리가 전신을 에워쌌다.

푸르고 거친 동해의 파도에 휩쓸린 최치우는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도 몰랐다.

그저 끝을 모르는 바다에 잡아먹혔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보통 바다에 빠지면 익사하기 이전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

하지만 그럴 염려는 없었다.

단전에 쌓인 일 갑자의 내공이 차가운 바다에서도 체온을 유지시켜 주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무공과 마법이 뛰어나도 마냥 숨을 참을 수는 없었다.

평범한 사람은 숨을 참고 최대 2분에서 3분 정도를 버틸 수 있다.

훈련을 받았다면 5분까지도 가능하다.

무공과 마법을 익힌 최치우의 한계 시간은 10분 너머일 것이다.

그러나 무척 짧은 시간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바다 깊이 집어삼켜진 그의 몸은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심해(深海)의 손길이 최치우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 해!’

의식이 깨어나고 있었다.

그는 절대자의 선택을 받을 정도로 의지가 강한 인간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렇게는 아니었다.

번쩍!

감겨 있던 두 눈을 떴다.

차가운 바닷물이 눈동자를 찔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눈을 감고 어둠에 몸을 맡기는 순간 영혼까지 바다에 잡아먹힐 것이다.

최치우는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위로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순식간에 깊은 바다로 빨려들었다는 뜻이다.

확실히 오늘 독도 인근의 동해 바다는 이상했다.

파도가 거세게 치는 수면보다 수중의 상황이 훨씬 더 안 좋았다.

원래 서도 옆으로는 수심이 2,000미터에 달하고 기후도 변화무쌍했다.

반면 초음파 탐사선의 항로인 동도 옆은 수심 300미터 지대이기에 잠잠한 날이 더 많은 편이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대자연의 변화를 모두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시환이 갑판에서 위기에 처하고 그를 구한 최치우가 바다에 빠진 것 또한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우연이 하나둘 모이면 섭리가 되는 것이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최치우는 현실을 냉정하게 자각했다.

점점 숨이 막혀오고 있었다.

마치 몸에 쇳덩이이라도 달린 것 같았다.

어두컴컴한 바다 깊은 곳에서 미증유의 중력이 작용하는 것일까.

‘몸이 식으면 끝난다.’

아직까지는 단전의 내공으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버틸지는 장담하기 힘들었다.

최치우는 더 늦기 전에 내공을 격발시키며 두 팔을 저었다.

후우욱-!

원래라면 몸이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심해에서 혼자 헛손질을 하는 기분이다.

일 갑자의 내공, 4서클의 마법.

비현실적인 힘을 가졌지만 대자연과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최치우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라이팅(lighting)-!’

먼저 그는 밝은 빛을 소환하는 2서클 마법을 펼쳤다.

칠흑을 걷어내는 게 급선무였다.

번쩍!

심해 중심에 하얀 섬광이 나타났다.

평소 같았으면 섬광은 최치우가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주위를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선 아니었다.

아주 잠깐 사방을 밝힌 흰색 섬광은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심해의 어둠은 2서클의 마법도 단숨에 무위로 돌리는 힘을 지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벌써 바다에 빠진 지 3분은 지났을 것이다.

‘스퀄(squall)!’

이번에는 돌풍을 일으키는 4서클 마법을 캐스팅했다.

현재 최치우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이기도 하다.

캐스팅이 끝나면 돌풍이 치솟아 몸을 수면까지 밀어 올려주길 바랐다.

후르르륵!

살짝 일어나는 듯하던 바람은 미풍에 불과했다.

수중에서는 어떤 마법도 제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마법은 무턱대고 기적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자연의 힘을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무한정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라이팅!’

그는 입안에서 혀를 세게 깨물었다.

정신을 차리고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서이다.

2서클의 라이팅은 이번에도 찰나의 섬광만 남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시야를 확인했다.

꽤 깊이 빠진 것 같지만, 위쪽으로 초음파 탐사선이 떠 있는 게 보였다.

거리를 정확히 가늠하긴 힘들어도 수면이 아예 안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최치우는 희망을 품고 두 팔을 움직였다.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바다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느라 내공이 급격히 소모되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호흡의 한계가 오기 전에 수면 위로 올라가야 했다.

쿠구구구구궁-!

그 순간, 불길한 소리가 최치우의 귓가를 때렸다.

발 아래쪽에서 지축이 흔들리는 굉음이 수중으로 전파되고 있었다.

최치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내렸다.

라이팅을 펼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기파(氣波)는 눈이 아닌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해저 지진!’

해저 심층부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강도가 높으면 육지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약한 강도의 해저 지진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약한 해저 지진의 영향으로 파도가 거세지기도 한다.

하지만 바다 안에서는 아무리 약한 해저 지진이라 해도 엄청난 작용을 일으킨다.

물살이 요동치며 수중에서 급류가 형성된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도 길을 잃고 우왕좌왕 휩쓸릴 정도이다.

쏴아아아아아아아-!

거센 급류가 최치우의 몸을 때리고 지나갔다.

해저 지진이 발생한 직후 바다 속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된다.

물살에 맞서 중심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대로… 끝인가?’

최치우는 지진의 여파를 정통으로 맞았다.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일곱 번째 인생을 접고 싶지 않았다.

지난 인생들과 다른 점이 많았기에 더더욱 애착이 가는 삶이었다.

환생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인 후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어도 어차피 다른 차원에서 살아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최치우라는 이름으로 1년 넘게 살아온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잃고 싶지 않았고, 죽고 싶지 않았다.

낯설지만 순수한 생(生)의 의지가 그의 영혼에 깃들었다.

‘흐르는 물처럼… 마나는 순리에 머물고 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슬란 대륙에서 9서클 현자 클래스를 넘었을 때도 느끼지 못한 깨달음이 불현듯 찾아왔다.

바다 속 물살에 떠밀리던 최치우는 두 팔을 좌우로 넓게 뻗었다.

생사의 고비에서 최치우는 영혼으로 바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오각성의 순간이 그에게 찾아온 것 같았다.

***

육신은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빚어진 몸에 영혼이 깃든 것뿐이다.

인간의 몸은 시작도 대자연이고 끝도 대자연이다.

경계를 두어 억지로 구분하려는 모든 시도가 무의미하다.

그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자연과 동화될 따름이다.

마법의 최고 경지는 9서클 현자 클래스도, 미지의 10서클도 아니었다.

마법은 인간이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이적을 행하는 행위이다.

1서클이든 9서클이든 온전히 자연과 동화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마법(魔法)이다.

이것은 무공의 깨달음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상승무공의 최고 경지는 심검(心劍)이다.

하지만 심검 너머에 물아일체(物我一體), 나아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가 있다고 전설로 전해진다.

동해 바다에 빠진 최치우는 잠깐이나마 무위자연을 체험하고 있었다.

심해의 정기가 그의 몸을 오롯이 관통했다.

호흡을 참을 필요도 없었고 허우적거릴 이유도 없었다.

이 순간 그는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몸을 대자연에 맡기면… 육신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마나 그 자체가 된다.’

최치우는 죽음의 고비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 한 자락을 뇌리에 새겼다.

그는 거대한 에너지가 어디에 잠들어 있는지 저절로 알게 됐다.

어둡고 아득해 절대 보이지 않는 해저 300미터의 사정이 느껴졌다.

보이거나 이해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육체가 어디쯤 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도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재난영화에 나올 법한 해일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간과 공간, 물질 법칙 모두 초월하여 최치우의 의지가 바다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돌아가자.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로.’

깨달음은 달콤했지만 마냥 현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었다.

최치우는 초음파 탐사선에 혼비백산해 있을 F.E 멤버들을 떠올렸다.

이러한 깨달음의 순간은 언제 다시 찾아올지 기약이 없다.

바로 직전의 전생까지 그는 무조건 경지를 높이는 데 급급했다.

더 강한, 더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당연히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최치우는 마음을 주고받는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다.’

마음을 정리했다.

최치우의 의지가 성립되자 바다가 움직였다.

슈우우우-

수중에서 물살이 요동치고 있었다.

다시금 최치우의 육신이 뚜렷한 경계를 띠기 시작하며 물살에 밀렸다.

급류가 수중에서 수면 위로 용솟음쳤다.

최치우는 여전히 힘을 전부 뺀 상태였다.

깊고 캄캄한 심해에서 태양이 비치는 수면 위까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공간을 도약했다.

마법으로도, 내공을 가득 채워 팔을 저어도 안 되던 일이다.

푸확-!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며 최치우의 얼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초음파 탐사선의 후미가 저만치 보였다.

최치우는 심해의 손길에 붙잡혀 죽다 살아난 사람 같지 않았다.

너무 침착하고 편안하게 수영을 하며 탐사선으로 다가갔다.

오늘따라 난폭한 동해의 파도도 더 이상 그를 방해할 수 없었다.

마나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바다 그 자체가 되던 무위자연의 깨달음은 사라졌다.

신기루처럼 흩어진 순간은 어쩌면 영영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각성의 흔적은 최치우의 영혼에 남아 있었다.

그는 내공이나 마법으로 파도를 거스르려 들지 않았다.

부드럽게 몸을 맡기고 거친 풍랑의 흐름을 타면서 탐사선으로 나아갔다.

바다라는 대자연에 담긴 마나가 이전보다 훨씬 명확하게 감지됐다.

‘이런 느낌이라면 6서클 마법도 캐스팅할 수 있겠어. 그보다 중요한 건… 서클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는 법을 조금이라도 배웠다는 것이지만.’

최치우는 단숨에 4서클에서 6서클의 벽을 넘어서게 된 것 같았다.

6서클부터는 소규모 자연재해 수준의 마법을 펼칠 수 있다.

환생한 지 겨우 1년을 조금 넘겼을 뿐인데 내공은 일 갑자에 마법은 6서클이다.

그러나 경지가 높아졌다고 기쁜 게 아니었다.

자연과 동화되는 게 진정한 의미의 마법이라는 실마리를 얻은 것이 훨씬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바다와 일체화되었을 때 아주 소중한 발견도 할 수 있었다.

‘독도가 지키고 있는 보물을 캐낼 수 있다. 머지않아 분명히!’

최치우는 압도적 에너지원인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생생하게 느꼈다.

미래 에너지 개발은 더 이상 막연한 꿈이 아니었다.

파도의 흐름을 타고 탐사선을 향해 가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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