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3화 (23/243)

# 23

그의 설명처럼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고체 상태로 심해에 매장돼 있었다.

드라이아이스처럼 생겼는데 엄청난 양의 가스가 농축되어 있어서 불을 붙이면 타오른다.

그래서 불타는 얼음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1리터만 채취해도 200리터의 가스를 얻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바다 밑의 다이아몬드이다.

일본이 독도를 포기하지 않고 탐내는 것도 메탄 하이드레이트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을 정도였다.

“오늘 저녁에는 해저 시추와 관련된 전문 교육을 실시하겠십니다. 그리고 내일 기상 상황이 좋으면 독도로 갑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

정기석이 어깨를 덩실거리며 노랫말을 읊조렸다.

해저 시추라는 전공 분야만큼 독특한 성격을 지닌 캐릭터였다.

“독도를 그냥 가느냐? 아입니다. 유람선 타고 독도 관광하러 온 거 아니지 않습니까. 미래 에너지 탐사대, 아이고, 길다. 그냥 F. E라고 부르겠십니다. F. E 여러분은 초음파 탐사선을 타고 독도로 갈 겁니다.”

“오오-!”

대학원생들이 저도 모르게 환호했다.

탐사대에게 주어진 여건이 당초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미리 말을 해주지 않은 김도현 교수는 부드러운 미소로 제자들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탐사선을 타면 독도에 내릴 수는 없십니다. 그거는 다음에 관광하러 와서 하면 되고, 우리는 독도의 동도 옆으로 항해하며 해양지층을 초음파로 볼 계획입니다. 그리고 어디에 시추 기계를 박아 넣으면 좋을지 생생하게 보고 토론을 하겠십니다.”

이야기만 들어도 재밌을 것 같았다.

독도는 작은 섬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동도와 서도가 작다는 뜻이다.

바다 아래 이어진 암석과 지층의 크기는 엄청나다.

그곳을 초음파로 탐사하며 메탄 하이드레이트의 흔적을 쫓는 것이다.

내일 제시하는 의견이 언젠가 독도 인근에 세워질 시추 기계의 위치를 조정할 수도 있다.

‘6억 톤의 불타는 얼음, 그 안에 1,200억 톤의 가스가 잠자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2의 산유국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어.’

최치우는 가슴 깊이 원대한 야망을 불태웠다.

스무 살의 여름은 열아홉 여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스케일로 그를 덮쳤다.

거대한 파도가 그의 앞길을 밝히며 몰아치는 것 같았다.

***

초음파 탐사선은 겉보기엔 일반 유람선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탐사선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아주 작고 빠른 탐사선도 있고, 반대로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 탐사선도 존재한다.

그러나 가스 하이드레이트 사업단의 초음파 탐사선은 외관상 특이점이 없었다.

어쩌면 정치적 고려가 반영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한국 정부가 독도 인근을 탐사하는 게 알려지면 일본에서 난리를 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해에서 정당한 탐사 활동을 하는 것이지만,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국제 정세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미래 에너지 탐사대 멤버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배에 올라탔다.

하지만 정기석 단장이 곧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울릉도 올 때까지 멀미 심했십니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여기도 설마…….”

지독한 뱃멀미에 시달린 이시환과 대학원생 멤버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기석 단장은 그들을 쳐다보며 크게 웃었다.

“와하하하! 보아하니 다들 고생 좀 할 것 같십니다. 김 교수님만 멀쩡하시겠네.”

“치우 군도 뱃멀미를 전혀 안 했어요.”

김도현 교수가 최치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울릉도까지 오면서 오직 두 사람만 멀쩡했기 때문이다.

정기석은 의외라는 듯 최치우를 유심히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잘되는 팀은 막내가 에이스라는 거 아입니까.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치우는 자신을 향한 칭찬에 들뜨지 않았다.

그는 배울 게 훨씬 많았다.

어제저녁 해저 시추 전문 교육 시간에도 대학원생들의 전공 지식에 감탄했다.

아무리 예습을 많이 했어도 아직은 학부생 수준이었다.

그는 자만하지 않고 하루하루 성장하고픈 생각뿐이다.

“자, 가입시다!”

초음파 탐사선이 항구를 벗어나 바다로 나아갔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파도가 평소보다 높은 편이었다.

출항을 못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탐사대 멤버들에게 시련이 주어질 것 같았다.

“치우야, 나 아침을 괜히 먹었나 봐.”

“내가 조금만 먹으랬잖아요, 형.”

이시환이 벌써 앓는 소리를 했다.

최치우는 부쩍 친해진 그의 등을 두드려 주며 고개를 저었다.

현재 4서클에 오른 마법으로는 파도를 잠잠히 만들 수 없다.

아슬란 대륙에서처럼 9서클 현자 클래스에 도달했다면 거친 파도도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뱃멀미에 고생하는 이시환과 탐사대 선배들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촤아아아악-!

탐사선이 파도를 가르며 전진했다.

정기석 단장이 탐사선 내부를 보여주며 전문적인 설명을 계속했다.

슬슬 상태가 안 좋아진 이시환은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이다.

하지만 대학원생들은 확실히 뭔가 달랐다.

그들 역시 뱃멀미를 느끼면서도 정기석이 말을 꼼꼼히 메모하고 있었다.

이래서 몸에 밴 습관이 무서운 법이다.

‘나도 질 수 없지.’

최치우도 핵심적인 내용을 메모하며 정기석의 설명을 통째로 외우려 했다.

돈을 주고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강의와 체험이다.

이런 순간이 훗날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란 사실이다.

“이렇게 초음파로 측정한 1차 데이터가 화면에 떠오르고 있십니다. 물론 정밀 데이터 분석은 시간이 좀 걸리지만… 2005년부터 우리 사업단이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시추 기계를 세울 위치를 찾으신 건가요?”

“아직 최종 확정은 못했십니다. 다만 어느 정도 범위는 설정을 했고, 지속적으로 정부에 보고서를 올리는 중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일본과의 외교 갈등을 감수할 의지가 있느냐, 그리고 시추 기계를 세운 다음 진짜로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채취할 기술을 얻느냐, 이 두 가지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외교 문제는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

역시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채취하는 기술적 문제가 더 컸다.

“시추 기계 세울 위치를 선정하고 핵심 기술 딱 하나만 있으면 가능한 일인데… 아쉽긴 합니다.”

정기석 단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틀 사이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은 건 처음이다.

관련 분야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짙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핵심 기술은 미국과 일본이 가지고 있죠?”

최치우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예상 못한 물음에 정기석 단장과 김도현 교수가 눈을 크게 떴다.

“우와, 우리 막내 학생이 공부를 진짜 많이 한 게 티가 납니다. 맞십니다. 미국은 1980년대 초에 심해에서 메탄 하이드레이트 실물을 채취했고, 일본도 89년에 근해 채취에 성공했십니다. 그게 벌써 20년도 더 전입니다. 만약 지금 독도가 일본 손에 들어간다? 그럼 아마 당장 채취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깁니다.”

“일본이라… 일본…….”

최치우는 남들 모르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지금 스무 살 대학생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최치우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 일대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 충분히.’

최치우는 자신의 상상을 갈무리했다.

당장은 미래 에너지 탐사대 활동에 집중할 때였다.

그때 마침 정기석이 손을 들어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보입니까? 우리의 독도입니다.”

“진짜 독도네요!”

“저게 말로만 듣던 독도구나.”

탐사대 전원이 독도를 바라봤다.

다들 독도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김도현 교수 역시 흥미를 보이며 창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좀 더 큰 게 서도이고 작은 게 동도입니다. 탐사선은 현재 동도에서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십니다. 곧 시추 기계 예상 설치 범위에 진입합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수심 몇 미터쯤 묻혀 있습니까?”

“대략 300미터 이하 지대에서 감지되고 있십니다. 수심 200미터 대에 존재하는 해양심층수도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 가능한 자원입니다.”

300미터라고 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평지에서 300미터는 조금만 빨리 걸어도 금방 도달하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닷속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심해(深海)는 아직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인류는 달나라에 발을 딛고 태양계 끝까지 인공위성을 보냈지만 바다는 정복하지 못했다.

그만큼 위험하고 일반적인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깊은 바다였다.

“거의 다 왔습니다. 파도가 평소보다 높지만 그래도 안에서만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정기석이 김도현 교수를 쳐다보며 허락을 구했다.

초음파로 해저 지형을 관측하는 건 충분히 지켜봤다.

이제 갑판에 나가 현장감을 느끼며 해저 시추의 어려움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좋아요. 여기까지 왔으니 정 단장님께서 편하게 리드하세요.”

김도현 교수의 허락이 떨어지자 정기석이 주의를 줬다.

“혹시 모르니 다들 떨어지지 말고 붙어서 설명을 들어야 합니다. 너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깁니다.”

미래 에너지 탐사대는 정기석 단장을 따라 갑판으로 나갔다.

부서지는 파도가 만들어낸 물방울이 이리저리 튀고 진한 바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갑판에 나와서인지 이시환과 대학원생 셋은 멀미 기운을 더 세게 느끼는 듯했다.

“파도가 참 지랄 맞십니다. 이보다 더할 때도 많은데, 여기다 정확한 위치를 설정해서 시추 기계를 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울릉도에서 이 부근까지 매일 전문 인력이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을 지속해야 합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작업일지 몸으로 느껴지십니까?”

확실히 갑판에서 설명을 들으니 해저 시추 작업의 어려움이 피부에 와 닿았다.

그 순간, 유독 큰 파도가 탐사선을 때렸다.

철썩-!

탐사선이 기우뚱 흔들렸다.

그러나 해일도 아닌 파도에 뒤집어질 탐사선이 아니었다.

하지만 갑판에 나와 있는 이시환의 컨디션은 매우 안 좋았다.

“우우욱!”

꾹 참고 있던 이시환이 오바이트를 하려 했다.

속에서 토가 올라오는 걸 보통 인간의 의지로는 막을 수 없다.

마침 그가 허리를 숙일 때 또 한 번 강한 파도가 탐사선을 치고 지나갔다.

“우웍!”

“어, 어! 시환아!”

손을 쓸 틈도 없었다.

토하느라 균형을 잃은 이시환이 넘어진 채 주르륵 미끄러졌다.

초음파 탐사선은 원활한 연구 활동을 위해 갑판 칸막이가 다른 배보다 낮다.

순식간에 칸막이 경계까지 밀려간 이시환이 자칫하면 높이 치솟은 파도에 휩쓸릴 수도 있었다.

정기석이 움직이려 했지만 탐사선이 계속 흔들려 여의치 않았다.

하필이면 거센 파도가 연달아 배를 때리고 지나갔다.

“형, 여길 봐!”

위기의 찰나, 최치우의 목소리가 사자후처럼 크게 울렸다.

최치우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렸다.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쿠오오오오!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높은 파도가 이빨을 드러냈다.

저만한 파도는 갑판 위까지 덮칠 것이다.

‘슬립!’

최치우는 1서클 마법인 슬립(slip)를 사용했다.

캐스팅을 마치자 그의 몸이 문워크를 하는 것처럼 이시환에게 미끄러졌다.

신묘한 방법으로 거리를 좁힌 최치우는 내공을 터트렸다.

꽈악-

팔을 뻗어 이시환의 목덜미를 잡았다.

‘됐다!’

건장한 성인의 몸이지만 내공이 들어찬 팔뚝은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했다.

후우욱!

최치우는 마치 가벼운 테니스공을 던지는 것처럼 이시환을 갑판 끝에서 중앙으로 던져 버렸다.

이 모든 게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쿠당타타탕!

이시환은 여기저기 부딪치면서도 안전한 곳에 떨어졌다.

그러나 최치우는 그를 구하느라 여전히 갑판 구석에 서 있었다.

너무 급하게 내공을 팔에만 집중시켜 이시환을 던졌고, 바닥을 미끄럽게 만든 마법 슬립의 효과도 남아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서 파도가 내리쳤다.

꾸웅!

거대한 파도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탐사선과 갑판 중앙은 크게 흔들리는 정도이지만, 끄트머리에서 파도에 휩쓸리면 답이 없다.

대비를 하고 있었으면 모를까, 최치우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온몸을 내주고 말았다.

쏴아아아!

파도가 지나간 자리.

갑판 구석에는 물만 흥건할 뿐 최치우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김도현 교수와 정기석 단장, 탐사대 멤버들은 물론이고 안에서 창밖으로 갑판을 보던 탐사선 직원들, 그리고 죽다 살아난 이시환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창백하게 질려 아무 말도 못했다.

독도의 바다가 최치우를 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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