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20화 (20/243)

# 20

<새내기는 에이스>

“다음은 교장 선생님께서 자랑스러운 금성인 상을 시상하시겠습니다.”

이상기온으로 날씨가 갑자기 온화해져 전교생이 운동장에 서서 졸업식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거의 일천 명에 달하는 금성고 학생들이 단상을 바라보고 있다.

“자랑스러운 금성인 상, 3학년 1반 최치우!”

사회를 맡은 학생주임이 최치우의 이름을 불렀다.

미리 수상자 대열에 서 있던 최치우는 성큼성큼 단상 위로 올라갔다.

교복을 입는 마지막 순간, 전교생 앞에서 졸업생 대표로 상을 받게 됐다.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졸업식에 온 어머니는 감동의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

“본 학생은 평소 모범적인 학습 태도로 귀감이 되었으며, 특히 3학년이 된 후 성적을 올려 수능 만점이라는 쾌거를 이룬바 동급생과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사하였기에 자랑스러운 금성인 상을 수상한다. 금성고등학교 교장 김정훈 대독!”

짝짝짝짝짝-!

결코 형식적이지 않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실제로 최치우는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2학년 때까지 바닥을 기는 성적이었지만, 3학년에 들어서 수능 만점과 서울대 입학이라는 성취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든 최치우처럼 3학년 때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를 하거나 갑자기 수능 만점을 받긴 힘들다.

그러나 먼저 해낸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게는 희망이 되는 법이다.

상장을 받은 최치우는 환하게 웃었다.

지난 1년, 금성고 교복을 입고 많은 것을 이루었다.

사실 학교가 그에게 해준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는 울타리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불평보다 감사가 앞선다는 것은 최치우의 정신이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뜻이다.

“계속해서 우리 학교를 빛내줄 거라 믿으마.”

교장 선생님의 덕담에 최치우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뺑뺑이 돌려서 고등학교를 배정받는 것이지만, 이 모든 게 운명이고 인연이다.

그는 몸을 돌려 박수를 보내준 전교생에게도 허리를 숙였다.

짝짝짝짝!

그의 인사를 받은 후배들이 다시 박수를 쳐줬다.

최치우는 새삼 멋진 선배, 멋진 형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들 해서 사회로 나와라. 내가 제대로 이끌어줄게.’

최치우는 상장을 들고 내려오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약속을 했다.

나쁜 의미로 금성고 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같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인연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뜻이다.

한 손에 상장을 들고 3학년 1반 맨 앞줄에 선 최치우의 모습은 무척 듬직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쳐다봤다.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활짝 웃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는 다짐을 어느 정도는 지킨 것 같았다.

‘벌써 너무 감동하면 안 돼요. 이제 시작입니다, 어머니.’

최치우는 어머니와 눈을 맞추며 새로운 각오를 불태웠다.

졸업장을 받았으니 정말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성인이 된 셈이다.

그의 20대는 파란만장한 열아홉 살 1년보다 더 찬란하게 빛날 것 같았다.

***

최치우는 서울대 공대에 합격했다.

보통 공대라고 하면 컴퓨터 공학과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는 생소한 학과를 선택했다.

다름 아닌 에너지 자원 공학과다.

신입생 중에서 에너지 자원 공학과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점수에 맞춰서 턱걸이를 한다.

그러나 최치우는 달랐다.

그는 공대를 가기 위해 이과로 전과를 했고, 여름방학 즈음부터 에너지 자원 공학과를 목표로 삼았다.

고1, 고2 내신이 좋지 않았지만 그의 고3 내신과 수능 만점이라는 성적은 독보적이었다.

게다가 논술과 면접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시험관들은 고3때 갑자기 성적을 올린 최치우의 집념을 높게 평가했다.

또 에너지 자원 공학에 대한 확고한 의지도 남다른 부분이었다.

만약 최치우가 욕심을 부렸다면 공대에서 더 인기가 높은 컴공과에 충분히 합격할 수 있었다.

기계화 군단의 엔지니어로 살던 경험을 활용하면 컴공과 수석은 누워서 떡 먹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가 에너지 자원 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프로그램이나 앱 개발은 굳이 컴공과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 개발과 자원 탐사는 전공이 아니면 도전하기 힘든 과제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의 미래가 에너지에 달려 있다고 확신했다.

‘에너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자원을 개발하는 건 아슬란 대륙으로 치면 던전에서 미스릴를 채취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고.’

최치우는 갓 스무 살이 됐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은 누구보다 깊었다.

실리콘밸리가 급부상하며 너도나도 프로그래밍과 코딩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레드 오션에서는 먹을 게 많지 않았다.

그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뚜렷한 확신이 있기에 에너지 자원 공학과라는 비인기 학과를 과감히 선택한 것이다.

‘40년, 길어야 50년이면 석유의 시대가 끝나. 세계의 위기는 누군가에겐 기회가 된다. 그 기회, 내가 잡아야지.’

최치우는 대학 입학 전에 주어진 자유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았다.

전공 서적을 미리 구입했고, 구글을 통해 원서를 번역하며 지식을 쌓았다.

한번 몰입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빛을 봤다.

금강나한권을 수련하고 마나와 친해지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공 공부를 위해 썼다.

입시에서 해방됐기 때문에 마음 가는 대로 꼭 필요한 지식을 흡수할 수 있었다.

아직 대학 1학년 1학기도 시작하지 않은 신입생이 3학년, 4학년이 읽는 원서를 탐독한다는 걸 누가 믿을까.

이런 속도라면 머지않아 대학원생들이 공부하는 원서를 분석하게 될 것 같았다.

물론 최치우에게도 고민이 없는 게 아니었다.

신입생 OT는 대충 다녀왔지만 내키지 않는 MT 날짜가 잡혔다.

MT를 빠지고 시작부터 아웃사이더가 되느냐, 아니면 고등학생 때와 달리 두루두루 친하게 지낼지 선택해야 했다.

더 심각한 고민은 따로 있었다.

에너지 자원 공학과는 크게 네 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었다.

에너지 자원 개발 시스템,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인프라 및 건설 기반, 그리고 지구 환경 및 인간 생활환경이다.

1학년이 끝날 때쯤 학생들은 심화 전공으로 네 파트 중 하나를 선택한다.

이미 1학년 레벨을 넘긴 최치우는 고민을 빨리 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에도 미스릴이나 아다만틴 같은 신금속과 에너지가 존재하고 있을 거야. 다만 그걸 알아보고 활용할 사람이 없었겠지. 어쩌면 나는… 지구의 역사를 바꾸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군.’

최치우가 어떤 길을 걸어갈지 아직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포부는 명확했다.

누군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닌,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연과 행복이라는 소중한 가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새내기 MT를 앞둔 최치우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꿈은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중이었다.

***

결국 최치우는 신입생 MT에 참석했다.

개강을 했지만 이제 겨우 첫 강의에서 교수님들과 상견례를 마쳤을 뿐이다.

대부분 MT를 다녀와야 비로소 대학 생활이 시작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최치우는 그런 이유 때문에 MT에 참석한 건 아니었다.

그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될 용의도 있었다.

1박 2일 내내 술을 마시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만나게 된 인연을 처음부터 소홀히 여길 순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대학에서는 사람다운 교류를 나눠볼 작정이다.

자신의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고 싶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 에너지 자원 공학과에 모인 학생들은 나름 전국에서 한가락 하던 수재들이다.

이들이 나중에 어떤 인물로 성장할지 모른다.

순진한 대학 신입생 때의 인연이 훗날 비장의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잘한 선택이겠지?’

최치우는 단체 버스 뒷자리에 앉아 남몰래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친해지기 전이라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교성 좋은, 혹은 나대기 좋아하는 놈들과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부여받은 2학년 선배들이 그나마 쉬지 않고 떠드는 중이다.

‘일단 지금은 잠이나 자야겠다.’

최치우는 미련 없이 두 눈을 감았다.

개강 전부터 전공 공부에 몰두하느라 잠이 부족했다.

운기조식으로 피로를 풀어서 크게 무리는 없지만, 역시 진짜 잠을 자는 것보다는 못했다.

그런데 옆자리에서 들려온 수다가 그가 잠드는 걸 방해했다.

“너 이거 봤어? 리얼 헌터.”

“당근이지. 요즘 볼 만한 웹툰 몇 개 없어. 네트에선 리얼 헌터가 대세잖아.”

“그치? 재밌는 것들 전부 다 휴재하고. 이거 작가, 신인이라는데 그림도 완전 예쁘고 스토리도 긴장감 대박 쩔어.”

옆자리의 신입생 동기들이 리얼 헌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치우와 문지유가 함께 만든 웹툰 리얼 헌터는 지속적으로 상한가를 쳤다.

네트에서 계약금과 선금 1억을 준 작품답게 기대를 충족시켰다.

‘보는 눈이 있군.’

최치우는 흐뭇한 표정으로 수다를 떠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귀엽게 생긴 여학생들이다.

둘 다 풋풋한 외모 덕에 복학생들의 마음을 꽤나 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딱히 이성적인 관심은 동하지 않았다.

그저 리얼 헌터의 스토리 작가로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작가에게 있어 자기 작품은 자식과 동급이다.

자식 칭찬이 제일 기분 좋은 것처럼 작가에게는 작품 칭찬이 최고이다.

최치우는 웹툰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우선 그는 상상으로 만든 이야기가 아닌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최치우의 인생 첫 번째 직업이 바로 웹툰 작가였다.

나중에 다른 직업을 더 많이 갖게 되겠지만, 각별하게 생각되는 게 사실이다.

최치우는 귀엽게 생긴 동기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눈을 감았다.

그를 태운 버스는 목적지인 춘천까지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

“자, 이제 마시고 죽는 거야!”

“먼저 쓰러지면 얼굴에 뭐가 그려져 있을지 모른다!”

어엿한 성인들이 모였지만 MT에서는 모두 유치해진다.

자기소개와 이런저런 순서를 마치고 드디어 신입생 MT의 하이라이트인 밤샘 음주 시간이 도래했다.

하루 사이 안면을 익힌 신입생과 선배들은 작은 동그라미를 여러 개 만들었다.

하나의 동그라미에 다섯 명 정도가 앉아서 술판을 벌였다.

머지않아 한 명 두 명 술에 취해 쓰러지면 각각의 동그라미가 합쳐지게 될 것이다.

“너는… 이름이 뭐라 그랬지?”

“최치우입니다.”

3학년 복학생이 최치우를 불렀다.

고학번이 신입생 MT에 참석하는 경우는 두 개로 나뉜다.

눈치가 더럽게 없거나 학과에서 정말 인기가 많거나.

최치우에게 질문을 한 3학년은 후자였다.

깔끔하고 훈훈하게 생긴 그는 에너지 자원 공학과 과대를 맡은 이시환이었다.

“그래, 치우! 부리부리하게 잘생겼다.”

“감사합니다!”

“일단 한잔 받고, 너는 왜 우리 과에 왔어?”

선배들이 으레 돌아가며 던지는 질문이다.

최치우는 맥주잔에 소주를 받으며 대답했다.

“지구를 구하고 싶어서요. 부와 명예는 덤이고.”

“뭐… 라고?”

가볍게 질문한 이시환이 벙찐 얼굴을 했다.

같이 모여 술을 마시던 신입생들도 최치우를 쳐다봤다.

그러나 최치우는 진지했다.

“재생에너지와 신자원 분야에선 약간의 가능성만 보여도 떼돈을 벌 수 있잖아요. 게다가 지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니까. 말 그대로 지구를 구하려고 에너지 자원 공학과에 왔습니다.”

“하하하하, 너 완전 사차원이다. 맘에 들어! 그래도 전공 이해도는 장난 아니게 높네.”

이시환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최치우가 마음에 든 듯 술잔을 쭉 내밀었다.

“자, 지구를 구할 사차원 최치우를 위하여!”

“위하여-!”

다른 학생들도 이시환을 따라 건배사를 외쳤다.

최치우는 맥주잔 가득 들어 있던 소주를 단숨에 마셨다.

아무리 독한 술을 마셔도 몸에 들어가는 순간 단전의 내공이 알코올을 태워 버린다.

일부러 내공을 억제하지 않는 한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최치우의 주량이 어마어마하게 보이는 게 당연했다.

이시환이 그런 최치우에게 감탄하며 말했다.

“이야, 너 술 마시는 거 보니까 총학 회장해도 되겠는데?”

“총학 회장? 그거 하면 좋은 겁니까?”

“골치 아프지. 옛날처럼 뒷돈 챙기다간 큰일 나는 세상이고, 단과대 돌아다니며 술도 엄청 마셔야 되고. 그래도 사회 나가면 그만한 스펙이 또 없잖아? 서울대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 된다는 것도 느낌 있지 않겠어?”

이시환이 씨익 웃었다.

그가 오늘 처음 본 신입생 최치우에게 진짜로 총학 회장을 권할 리 없었다.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냥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뿐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서울대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 된다. 까짓것, 총학 회장 한번 해보는 것도 재밌겠어.’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으로 당선되면 주요 일간지에 기사가 실린다.

총학의 명성이 예전만은 못해도 서울대 회장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존재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치우는 총학 회장을 고등학교 반장처럼 쉽게 생각했다.

이시환의 농담이 나중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아직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쭉, 쭉쭉, 쭉쭉!”

그렇게 이어진 술자리에서 최치우는 막강한 주량을 과시하며 관심을 받았다.

어느덧 몇 개의 동그라미가 작살났다.

최치우에게 관심을 보인 이시환도 넓은 방구석에 쓰러져 있다.

해가 뜰 무렵까지 살아남은 다섯 명이 하나의 동그라미를 다시 만들었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춘천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웹툰 리얼 헌터 이야기를 하던 여학생 중 한 명이다.

아까도 평균 이상의 외모라고 생각했지만, 취기가 올라 빨개진 얼굴은 한층 더 귀여웠다.

그녀는 생긴 것과 다르게 술을 제법 잘 마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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