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9화 (19/243)

# 19

어머니는 살짝 놀란 눈치였다.

웹툰이 나쁜 일이라서가 아니다.

아들에게 그런 재능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최강이 제 가명이에요. 그림 작가 문지유는 저랑 같이 작업하는 누나입니다. 조만간 한번 소개시켜 드릴게요.”

“정말이니, 치우야?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언제 또 이런 일을 했을까. 장하다, 우리 아들.”

“시간을 많이 뺏기진 않아서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거 한번 봐주세요.”

최치우는 어머니에게 통장을 내밀었다.

당장 쓸 수 있는 돈에 1년 치 대학 학비와 생활비까지 모두 7천만 원 이상의 액수가 찍혀 있었다.

“어, 어머나? 무슨 돈이 이렇게 많이…….”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김밥집에서 몇 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그러나 절대 모을 수는 없는 돈이 통장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치우는 떨리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웹툰으로 번 돈이에요. 대학 학비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하고 싶으신 것 있으면 뭐든 다 하세요.”

“치우야, 너가 벌써부터 이렇게 효도를 하면 뭐 하나 해준 거 없는 나는 어떡하라고…….”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최치우는 말없이 어머니를 마주 보고 있었다.

원래는 진짜 큰돈을 모을 때까지 숨기려 했지만, 이렇게 말을 꺼내길 잘한 것 같았다.

잠시 감정을 추스른 어머니는 통장을 다시 최치우에게 돌려줬다.

“아직 네가 학생이라서 마냥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나보다 더 나은 어른이구나. 큰돈을 번 것도 대단하지만 쉽게 안 쓰고 모아서 내게 보여준 게 더 고맙고 기특하다.”

“그래도 통장은 어머니가 갖고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아니야. 우리 아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그릇을 가진 거 같네. 이제 곧 성인이 될 텐데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날개를 펼치렴.”

최치우는 마지못해 통장을 다시 받았다.

동시에 그는 어머니의 깊은 마음씀씀이에 울컥했다.

돈 앞에서는 가족도, 친구도 없어지는 세상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욕심을 내기는커녕 아들을 전폭적으로 믿어줬다.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아본 적이 있던가.

최치우는 이곳에서 처음 경험하는 게 참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제라도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는 기쁨을 알게 돼 다행이었다.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

수능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다른 고3 학생들은 막판 스퍼트를 올리느라 삼당사락을 실천하고 있었다.

삼당사락은 세 시간 자고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네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다들 수능 대비에 집중할 때였다.

하지만 최치우는 여느 고3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공부는 평소 하던 대로 쭉 계속했다.

느슨해지지도, 그렇다고 억지로 긴장의 끈을 당기는 것도 아니었다.

급하게 무리하는 것보다 컨디션 관리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어도 매일 체육관에서 수련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금강나한권의 성취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호령독삼을 먹고 만독불침과 임독양맥 타통을 이룬 게 결정적이었다.

단전에서 내공이 든든하게 받쳐주니 진도가 확확 나갔다.

초식, 내공, 그리고 오의는 무공을 이루는 3대 요소이다.

한 가지만 뛰어나다고 해서 무공을 완성시킬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발전 속도가 느려진다.

최치우는 비로소 금강나한권을 완성하기 위한 3대 요소를 모두 갖췄다.

이전에 비해 무공의 느는 속도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금강나한권을 수련하지 않았다.

그는 체육관 중앙에 가만히 서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이만하면 몸도, 단전도 제대로 자리를 잡았어. 이제 마나의 힘을 빌려도 될 것 같다.’

최치우는 대자연의 원초적인 힘, 마나(Mana)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무공이 궤도에 올랐으니 마법도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마법 수련은 무공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위험한 일이다.

마나를 사용하면 몸이 아닌 정신이 타격을 입는다.

그게 바로 마법사 중에서 유독 미친 흑마법사가 자주 나오는 이유였다.

마나를 쓰기 위해선 굳건한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고, 정신력의 토대는 튼튼한 육체다.

이론적으로는 무공과 마법을 함께 익히는 게 이상적이다.

‘마검사……. 권법을 먼저 배웠으니 마권사인가. 아무튼 어느 차원에서도 도전하지 못한, 누구 하나 성공한 적 없는 일을 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왜인지 두 눈을 감은 최치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검사(魔劍士), 또는 마권사(魔拳士)는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차원을 돌고 돌아 지구에서 처음으로 마법과 무공을 함께 쓰는 존재가 탄생할 것 같았다.

최치우는 대기와 함께 흐르는 마나를 느끼기 위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또 하나의 새로운 전기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

“금성-! 빛나는 별 금성-! 으싸랴, 으싸! 으싸랴, 으싸!”

1학년과 2학년 후배들이 새벽을 밝히고 있었다.

원래 고3이 수능을 치는 날이면 후배들은 시험장 앞에서 응원가를 부른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내려오는 전통이다.

최치우는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어린 동생들의 응원을 받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짜식들, 아침 일찍부터 고맙네.’

이런 맛에 사회에 나가면 고등학교 선후배를 챙겨주는 건지도 모른다.

응원 대열을 지나친 그는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른들을 돌아봤다.

수험생의 학부모들이 교문 앞에서 울 것 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몇몇 어른들은 수능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지키기도 한다.

최치우의 어머니는 출근길 김밥을 말아야 하기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아쉽지 않았다.

만약 어머니가 추운데 덜덜 떨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면 마음이 더 불편할 것 같았다.

‘잘하고 올게요.’

그는 김밥집에서 자신을 생각하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수능이라는 관문을 멋지게 뛰어넘을 것이다.

‘솔직히 크게 부담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는 다른 학생들처럼 시험을 앞두고 긴장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고3에게 수능은 가장 중요한 시험이다.

그렇지만 수능 때문에 긴장해 버리면 링스 월드 이후 무려 일곱 차원을 겪은 짬밥이 무색한 일이다.

배정된 자리에 앉은 최치우는 조용히 정신을 집중했다.

이윽고 감독관 선생님이 들어와 이런저런 안내를 했고, 1교시 언어 영역이 시작됐다.

부스럭, 부스럭.

“에취!”

시험이 시작됐는데 여기저기에서 소음이 들린다.

최치우의 바로 앞자리에 유독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놈이 앉았다.

녀석은 펜으로 계속 시험지를 긁고 30초에 한 번씩 기침이나 재채기를 해댔다.

다른 학생들도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시험 감독관이 나서서 직접 제재할 정도는 아니었다.

최치우는 언어 영역 문제를 풀다 말고 잠깐 다른 쪽으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저놈 하나 때문에 다른 학생들까지 피해를 입으니까… 힘을 좀 써야겠군.’

결심을 마친 그는 머릿속으로 주문을 캐스팅했다.

캐스팅을 하겠다는 마음만 먹었을 뿐인데 공기와 함께 흐르는 마나가 최치우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사일런스 스페이스(silence space).’

그의 몸을 통과한 마나가 복잡한 도형으로 변화했다.

곧이어 재배열된 마나의 흐름이 앞자리의 소음 유발자를 덮었다.

‘됐다.’

최치우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문제로 눈길을 돌렸다.

다른 학생들도 최치우 덕분에 짜증나는 소음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최치우는 앞자리 전체를 마나로 감싸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는 걸 차단한 것이다.

한 사람을 조용하게 만드는 사일런스(silence)는 1서클의 기본적인 마법이다.

하지만 공간 전체의 소리를 봉인하는 사일런스 스페이스는 3서클에 해당되는 중급 마법이다.

얼마 전부터 마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최치우는 눈부신 속도로 제로딘 시절의 실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아슬란 대륙에서 최초로 현자 클래스에 도달한 경험이 어디 가지 않았다.

‘이것도 작은 선행이겠지.’

사일런스 스페이스에 뒤덮인 당사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최치우와 같은 교실에서 수능을 치는 학생들은 아주 쾌적한 환경을 얻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최치우는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도운 셈이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꾸준히 허철후와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다.

‘자, 이제 진짜 시험에만 집중하자.’

입술을 굳게 다문 최치우는 언어 지문을 빠르게 훑어 내렸다.

그는 어렵게 출제된 모의고사에서도 연일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지난 두 차례의 모의고사에 비하면 이번 수능은 난이도가 조금 쉽게 조정된 것 같았다.

아직 언어 영역만 보았지만 한 번에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목표는 만점이다.’

그의 목표는 수능 만점이었다.

출발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과연 최치우가 금성고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을지 해가 질 무렵이면 결판이 날 것이다.

***

휘이이이-

칼바람이 쌩쌩 불며 지금이 겨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최치우는 춥지 않았다.

어느덧 일 갑자를 채운 내공이 단전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숨만 쉬어도 충만한 내력이 혈도를 타고 전신을 돌아다니는데 추울 리 없었다.

뿐만 아니다.

급할 때는 마나를 이용해 불덩어리를 소환할 수도 있었다.

이만하면 맨몸으로 겨울 산에서 조난을 당해도 여유롭게 살아 돌아올 것이다.

무공과 마법을 동시에 익힌 그는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그동안 파이트 클럽 운영자는 2차전을 제의해 왔다.

그러나 최치우는 한국에서 제일 강한 상대가 아니면 응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어중간한 사람과 싸우는 건 의미가 없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파이트 클럽 말고도 많기 때문이다.

그는 실전 경험에 보탬이 될 상대를 원했다.

내공과 마법을 쓰지 않고 싸우더라도 최소한 UFC 선수보다 센 상대여야 붙을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운영자가 생각이 있으면 다시 연락이 오겠지.’

최치우는 파이트 클럽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B급이긴 해도 그는 칠성파 행동 대장 김인철을 압도하며 진가를 보였다.

운영자에게 안목이 있다면 반드시 제대로 된 대박 대진을 들고 올 것이다.

그보다 최치우는 기쁜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달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는 수능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정말 단 한 문제도 틀리지 않으면서 금성고의 자랑이 됐다.

문제는 올해 수능이 예년보다 쉽게 출제됐다는 점이다.

평소라면 수능 만점자가 한 명이나 두 명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열세 명이 만점을 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능 만점은 대단한 일이지만, 관심은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이 귀찮아지지 않고 잘된 거라니까.’

최치우는 오히려 만점자가 여럿 나온 걸 다행으로 여겼다.

벌써부터 언론에 오르내리며 영양가 없는 주목을 받을 때가 아니었다.

“어머니!”

최치우가 김밥집 문을 열었다.

방금 막 주문 받은 돈가스 김밥을 말고 있던 어머니가 눈을 크게 떴다.

아들이 말도 없이 가게로 찾아와 놀란 것이다.

“치우야, 무슨 일 있니?”

“사실 오늘 대학 발표 나는 날이었어요.”

“정말?”

“서울대 합격했습니다!”

“우리 아들-! 장하다! 진짜 장하다!”

어머니가 말던 김밥을 놓고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격하게 기뻐하는 모습은 최치우도 처음 봤다.

“어머! 축하해요, 언니!”

“이제 서울대 아들 뒀네? 진짜 부럽다!”

김밥집의 주방 이모와 손님들도 축하를 보내줬다.

최치우는 넓은 어깨로 어머니를 꼭 안아드렸다.

서울대 공대 에너지 자원 공학과.

그곳에서 차원이 다른 꿈을 펼치게 될 것이다.

이제 10대가 아닌 20대, 성인으로서의 삶도 펼쳐지게 된다.

또 어떤 인연과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최치우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앞날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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