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6화 (16/243)

# 16

<무서운 고3>

여름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 마지막 금요일.

네트에 새로운 웹툰이 연재를 시작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 아닌데 베스트 도전을 거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어디선가 솟아오른 신인의 깜짝 데뷔였다.

스토리 최강, 그림 문지유.

네트 웹툰 독자들은 생경한 이름에 의문을 표했다.

신인의 데뷔작이 곧바로 연재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네트는 메인 배너에 리얼 헌터를 걸어줬다.

홍보에 힘을 팍팍 실어준다는 뜻이다.

독자들은 리얼 헌터 프롤로그를 보기 전부터 호기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타이밍도 좋았다.

개학을 앞뒀기에 10대 학생들의 잉여력이 절정을 찍고 있었다.

적어도 조회 수는 보장된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별점이 낮거나 악플이 많이 달리면 초반부터 흐름을 잃는다.

망작으로 낙인찍히면 수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뒤로 갈수록 재밌어진다는 변명은 프로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재밌고 갈수록 더 재밌어지는 작품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리얼 헌터의 프롤로그와 1화가 업데이트된 당일, 최치우는 하루 종일 네트에 접속하지 않았다.

문지유에게도 하루는 연락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마음 같아선 한 시간에 몇 번씩 네트를 접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꾹 참았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조바심을 내게 되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업데이트 후 열두 시간쯤 지나서 네트에 접속했다.

그동안 공부와 무공 수련에 집중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파이트 클럽에서 칠성파 행동 대장 김인철을 손쉽게 이겼지만, 그렇다고 만족할 최치우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실전을 경험했기에 더욱 강해지고 싶었다.

김인철 정도가 아니라 파이트 클럽이 보유한 A급, S급 싸움꾼들, 나아가 세계의 강자들과 겨뤄보고 싶은 호승심이 생겼다.

스스로 만든 가명처럼 최강이 되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어쨌거나 지금은 웹툰의 스코어를 확인할 차례였다.

네트는 웹툰 조회 수를 노출시키지 않았다.

대신 별점과 댓글로 반응을 예측할 수 있었다.

별점이 높고 낮은 것만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점수를 줬는지도 중요했다.

스으윽-

최치우는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스마트폰 화면을 넘겼다.

웹툰 코너를 누르자마자 리얼 헌터의 홍보 배너가 보였다.

확실히 네트에서 신경을 써주는 티가 났다.

“밥값은 해야 될 텐데.”

최치우는 리얼 헌터의 성공을 자신했다.

지금도 자신감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웹툰이 공개된다고 생각하자 약간 떨렸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되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번 손가락을 움직였다.

팟!

구형 스마트폰이라 화면 전환이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곧 리얼 헌터의 첫 번째 장면이 액정을 가득 채웠다.

“와!”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문지유와 함께 둘이서만 작업한 웹툰이다.

또한 최치우가 직접 경험한 지난 인생이기도 하다.

그 장면이 네트에 떠올라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 명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김인철의 주먹을 막아내고 금강나한권으로 KO 승리를 거뒀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쾌감이 느껴졌다.

“3만 5천!”

최치우는 화면 위쪽에 뜬 별점을 확인했다.

별 다섯 개 만점에 평균 4.75점이 마크돼 있었다.

높은 점수보다 고무적인 것은 별점 주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이다.

3만 5천 명.

연재 후 12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신인의 데뷔작 프롤로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별점을 줬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보통 독자 열 명 중 한 명이 별점을 준다고 한다.

리얼 헌터 프롤로그의 조회 수가 35만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스르르륵-

최치우는 스크롤을 빨리 내렸다.

댓글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4천!”

대략 4천 명의 사람이 리얼 헌터를 보고 자신의 감상을 남겼다.

열두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베플도 여럿 올라와 있었다.

“대박의 스멜이 난다, 네트 담당자 일 잘하네, 이거 아무래도 신인 아닌 거 같음……. 최강 작가님, 문지유 작가님, 휴재하면 통조림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응원 같네.”

최치우는 다른 독자들의 공감을 많이 받은 베스트 댓글들을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었다.

대부분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좋은 내용이었다.

베플이 아닌 댓글 중에는 물론 악플도 있었다.

노잼이라거나 삽화가 너무 순정만화 스타일이라거나 등등.

그러나 최치우는 악플 하나하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새겨들을 이야기는 참고하면 되고 그렇지 않은 말은 패스하면 그뿐이다.

“소심한 우리 그림 작가에게 메시지나 보내줘야겠다.”

최치우는 1화까지 마저 보고 기분 좋게 네트 앱을 종료했다.

그러곤 곧장 문지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반응 좋으니까 계속 힘내서 쭉쭉 치고 나갑시다. 가끔 보이는 악플에 상처받지 말고. 개학하기 전에 밥 먹으러 작업실 놀러 갈게요.

문지유의 새 오피스텔이자 작업실은 홍대 부근에 있다.

홍제동에서 버스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라 부담이 없었다.

딩동!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답장이 왔다.

-진짜 내가 네트 작가가 되다니… 아직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어. 정말정말 고마워, 치우야.

진심이 담긴, 참으로 그녀다운 메시지였다.

최치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여리고 착한 사람이야.”

문지유의 뽀얀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두 살 연상이지만 막내 여동생처럼 챙겨주고 싶었다.

이성에게 느끼는 연애 감정과는 조금 달랐다.

아무튼 웹툰 리얼 헌터는 네트 콘텐츠 팀의 든든한 지원사격 덕분에 시원하게 닻을 올렸다.

스토리가 무너질 일은 없고, 문지유가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계속 순항할 것 같았다.

***

개학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학생들이 우울증에 빠지기 딱 좋은 시기이다.

고3은 말할 것도 없다.

2학기가 시작되고 두 달만 지나면 수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입학을 노리는 학생들도 대부분 2학기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래저래 학생(學生)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최치우는 우울하지도, 마냥 공부에만 몰입하지도 않았다.

공부는 하던 대로 쭉 유지하면 충분히 원하는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모의고사 성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1학년과 2학년 내신이 엉망이지만 수능으로 만회하면 된다.

논술 역시 누구보다 자신 있는 영역이다.

최치우는 인 서울 상위권 공대에 진학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혼자만의 믿음이 아닌, 깐깐한 선생님들도 인정한 믿음이다.

대학 학비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웹툰 계약금과 선인세로 1억을 받아 5천만 원씩 나눴다.

1천만 원은 체육관 보증금으로 썼고, 나머지는 건드리지 않았다.

파이트 클럽 데뷔전에서도 비슷한 액수의 돈을 벌었다.

기본 파이트머니 2천만 원에 승리 수당 2천 500만 원을 현찰로 지급받았다.

스폰서들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김인철을 갖고 놀며 데뷔한 신인 파이터 최강에게 그만한 대가를 지불했다.

만약 A급, S급 파이터들이 출몰하는 매치에서 이기면 1억도 우습게 벌 것 같았다.

이리하여 보증금을 빼고도 19살 고3의 수중에 8천만 원이 넘는 돈이 있었다.

4년 치 대학 학비를 여름방학 안에 해결한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8천만 원을 은행에 묻어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학비는 언제든지 또 벌면 된다.

그는 1년치 대학 학비와 생활비만 남겨둘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대략 6천만 원을 쓸 수 있었다.

변두리 동네에 작은 가게를 낼 수 있고, 바로 직전 환생의 경험을 살려 신기술 개발에 투자할 수도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돈을 불리는 것만큼 자신을 성장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공을 폭발시킬 계기가 필요해. 그래야만 무공 수련에 드는 시간을 아껴서 다른 일을 시도할 수 있어. 금강나한권을 대성하면 마법도 조금은 익혀야겠지.”

그는 이런저런 구상을 하며 목적지에 다다랐다.

수십 대의 버스가 승객들을 싣고 출발하는 터미널이다.

최치우는 전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한옥마을을 구경하거나 비빔밥을 먹기 위해 가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전주에는 국내 최고의 심마니이자 땅꾼이 살고 있었다.

한때는 방송 출연도 자주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누구에게도 약초를 팔지 않는다는 괴짜 기인.

그를 만나러 가는 당일치기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았다.

***

버스가 전주에 도착했다.

최치우와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한옥마을, 청년시장, 비빔밥, 콩나물국밥, 한복 체험.

전주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삼삼오오 무리를 지었다.

평범한 고3이었다면 최치우도 한옥마을부터 찾아 풍년제과 초코파이를 입에 물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평범한 고3은 공부하기 바빠서 개학을 3일 앞두고 여행을 올 여유도 없다.

여러모로 특이한 최치우는 곧장 택시를 잡았다.

“어디로 모실까? 한옥마을?”

택시기사가 당연하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손님을 태우면 십중팔구 한옥마을 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치우의 대답은 택시 기사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용진읍으로 부탁드립니다.”

“용진읍?”

“네.”

“거긴 신도시 너머 완주 쪽인디… 한옥마을 가야 되는 거 아녀?”

“용진읍 가는 거 맞습니다.”

“거참, 특이하네.”

택시기사는 최치우가 한옥마을이 아닌 다른 곳을 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최치우는 입을 닫고 자리에 몸을 묻었다.

그는 자신을 전주까지 오게 만든 괴짜 기인에 대해 생각했다.

‘허철후, 나이는 60대 초중반, 7년 전쯤 TV에 소개되며 유명세를 얻었지만 이후 잠적하면서 잊힌 인물이 됐음. 심마니와 땅꾼 세계에서는 전설이고……. 그러나 방송 출연을 거부하면서 약초와 뱀도 더 이상 팔지 않는다고 하지.’

최치우는 인터넷으로 용하다는 약초꾼을 찾던 중 허철후를 알게 됐다.

온갖 사짜 약초꾼과 심마니 이야기가 넘쳐나는 와중에 허철후라는 이름이 유독 눈길을 잡아끌었다.

뭐라도 팔기 위해 과장 광고를 일삼는 약초꾼들과는 격이 달랐다.

허철후는 과거 누구보다 유명한 심마니였지만 스스로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무림에서 날고 기는 고수들이 갑자기 은거를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였다.

그렇게 세상을 등진 은거기인들은 여간해선 다시 재주를 사용하지 않는다.

만약 허철후가 진짜 대단한 심마니라면 더더욱 쉽게 은거를 풀지 않을 것이다.

최치우는 또다시 도박을 하는 기분이다.

무작정 판교를 찾던 것처럼 일단 전주로 왔다.

계획은 있지만 대책은 없다.

무림에서도 은거기인들은 어찌하기 힘든 존재였다.

‘은거를 결심한 사람들은… 힘으로도 움직일 수 없고, 돈으로도 안 되는 족속이지. 마음을 얻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세상이 싫어서 숨은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돈, 권력, 명예를 제시했다간 대놓고 무시당할 게 분명했다.

가장 간단하면서 또 가장 어려운 일, 바로 마음을 얻는 수밖에 없었다.

“학생, 용진읍 다 왔는데 어디로 갈겨?”

“저수지 쪽으로 가주세요.”

“저수지? 거긴 사람 사는 동네가 아녀.”

“저수지에 내려주시면 됩니다.”

택시기사는 백미러로 최치우의 얼굴을 쳐다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학생, 혹시 공부가 힘들다고 딴생각 품은 건 아니제?”

“딴생각이요?”

“거시기… 자살이라든가…….”

“아닙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습니다.”

최치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오해를 받았지만 택시기사가 걱정을 해준 게 싫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끼이이익-

비포장도로를 달려온 택시가 멈춰 섰다.

최치우는 돌아갈 길이 먼 택시기사에게 넉넉히 비용을 지불했다.

“학생, 다시 버스터미널로 갈 거제? 그럼 이따 나한테 전화혀. 여기는 택시가 다니지도 않는 곳인게.”

“감사합니다.”

최치우는 기사 아저씨의 번호를 저장하고 등을 돌렸다.

눈앞에 이름 모를 산이 보인다.

용진읍 저수지 옆 야산 중턱에 허철후의 거처가 있다는 것만 확인했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최치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단전에 쌓인 내공이 종아리로 내려가 근육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경공을 펼쳐 시간을 아끼려 했다.

팍! 파팍!

땅을 박차는 소리부터 달랐다.

최치우는 한 번에 몇 미터씩 산길을 박차고 올라갔다.

이런 속도면 금방 중턱에 다다를 것이다.

“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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