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4화 (14/243)

# 14

<금강의 재림>

5천만 원에서 3.3%의 세금을 뗀 금액이 통장에 꽂혔다.

파이트 클럽 운영자에게 받은 4백만 원은 불과 한 달이 지나 열 배 넘게 불어났다.

웹툰으로 돈을 벌겠다는 최치우의 작전이 통한 것이다.

최치우는 일곱 차원을 넘나들며 다양한 인생을 살았지만, 돈을 버는 게 목적이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돈 버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고등학교 3학년이 할 수 있는 최대치 이상을 이뤄내고 있었다.

그림 작가 문지유는 최치우를 인생의 구원자로 믿고 따르게 됐다.

하루도 쉬지 않고 알바를 전전하던 스물한 살의 습작생이 최치우를 만나 일약 네트 정식 연재 작가가 됐다.

계약금과 선금 1억 원은 문지유가 꿈도 못 꾼 액수였다.

그녀는 최치우의 말이라면 껌뻑 죽을 기세였고, 고시원에서 오피스텔로 거처와 작업실을 옮겼다.

비축분을 쌓은 뒤에는 채색과 터치 작업을 도와줄 문하생도 뽑을 예정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문지유는 인생역전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최치우는 강영아 팀장의 케이툰 대신 윤영국 팀장의 네트와 계약을 맺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네트의 조건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업체 대 작가로 협상을 했다.

겨우 몇 번 만났다고 해서 업체 담당자와 인간적인 관계가 됐다고 기대하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호구로 전락한다.

최치우의 경험치를 평범한 고등학교 3학년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는 네트와 케이툰의 경쟁을 유발시켰고, 1억 원 당일 입금을 제시한 윤영국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도 강영아와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네트와 계약을 하지만, 다음 작품은 케이툰과 긍정적으로 의논해 보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리얼 헌터가 성공하면 두 번째 웹툰을 계약할 때는 케이툰도 더 나은 조건을 들고 올 것이다.

무작정 판교로 찾아간 날부터 사흘 만에 1억 원을 당긴 최치우는 흥분하지 않았다.

5천만 원은 큰돈이지만, 최치우의 그릇은 그보다 훨씬 더 크다.

그는 아무 일 없는 듯 계획대로 움직였다.

문지유처럼 이사를 갈 필요도 없었다.

멋진 아파트를 사고 어머니에게 가게를 선물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걸 비밀로 할 계획이다.

스토리를 짜내는 것도 여유로웠다.

머릿속에 살아 넘치는 이야기를 적당히 정리하면 작업이 끝난다.

나머지는 문지유의 몫이다.

3회까지 작업하며 감을 잡은 문지유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었다.

통장에 거액이 꽂히니 그녀에게 200% 동기 부여가 된 모양이다.

대신 최치우는 체육관을 알아봤다.

본격적으로 상승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선 알맞은 공간이 필요했다.

무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돈 버는 일 못지않게 중요했다.

위기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치우의 영혼은 강해지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속성을 타고났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남자가 되는 것, 최신식 무기를 지닌 군단도 제압할 수 있을 것.

허무맹랑한 미션처럼 보여도 최치우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였다.

“이 정도면 괜찮겠는데요.”

텅 빈 체육관을 돌아본 최치우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안내한 부동산 사장님이 화색을 띠었다.

“그럼 여기로 계약하겠나?”

“월세가 얼마라고 했죠.”

“권리금은 없고 보증금 천에 월세 백이네. 아주 저렴하게 나왔지.”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이곳은 집 근처의 상가 건물 꼭대기에 덩그러니 남겨진 태권도 체육관이다.

체육관이 망하고 석 달이 지나서 조금 지저분했지만 그만큼 싸게 나왔다.

무엇보다 같은 층에 다른 상가가 없는 게 마음에 들었다.

“넓고 탁 트였고. 여기로 계약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건물주도 무심한 양반이라 월세만 잘 넣으면 신경 쓰지 않을 걸세.”

“오늘 바로 계약서 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세, 그럼세. 헌데… 어려 보이는데 태권도 체육관을 운영할 생각인가?”

“아닙니다.”

최치우는 딱 잘라 대답했다.

자세히 묻지 말라는 뉘앙스가 묻어났다.

눈치 빠른 부동산 사장님은 금방 화제를 돌렸다.

최치우는 부동산으로 걸어가며 문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웹툰 계약과 달리 부동산 임대 계약을 하려면 대리인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최치우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는 문지유를 부른 것이다.

그는 강해지기 위한, 세상의 정점이 되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갔다.

최치우는 한 걸음씩 걷는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초스피드 질주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최치우는 성장의 궤도에 올라탔다.

그게 로켓이든 자동차든 마차든 꾸준히 성장한다는 게 핵심이다.

한여름의 더위는 그의 열정만큼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

슈우욱- 펑!

퍼퍼펑!

주먹이 허공을 때릴 때마다 바람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속도였다.

최치우는 양팔을 자유자재로 뻗으며 다양한 초식을 펼쳤다.

만약 그의 앞에 사람이 서 있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웬만한 사람은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곤죽이 돼 쓰러질 것 같았다.

“후우- 쉽지 않다.”

정작 최치우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동작을 멈추고 땀을 닦으며 방금 전의 움직임을 돌아봤다.

초식과 초식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다.

주먹에도 훨씬 더 묵직한 힘이 실려야 금강나한권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금강나한권을 수련한 지 1주일이 지났다.

이만하면 엄청나게 빨리 익히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최치우의 기준은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내공이 부족한 게 첫 번째 문제, 초식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게 두 번째 문제.”

그는 왜 발전 속도가 더딘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빈약한 내공으로 1주일 사이 일성(一成)의 성취를 얻었으니 무림에서는 천재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최강의 존재이던 기억이 있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내공은 꾸준히 수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별한 계기를 만들어야 되겠어. 영약을 먹거나 추궁과혈을 받아 추진력을 얻으면 몇 단계는 그냥 점프할 수 있으니까.”

단전에 쌓이는 내공은 대각선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진전이 느리다가 일순간에 확 늘어나는 계단식 그래프에 가깝다.

현대에 추궁과혈로 내공을 전수해 줄 고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영약을 구해 먹는 게 지름길이다.

최치우는 통장 잔고를 떠올리며 다음 문제를 고민했다.

“초식에 대한 이해는 역시 실전으로 터득해야지.”

실전 경험보다 더 나은 수련은 없다.

내공을 쓰지 않고 육체의 힘만 이용해 초식으로 싸우면 오의(奧義)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금강나한권은 전생에서 익히지 않은 무공이기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파이트 클럽 운영자는 예상 외로 잠잠했다.

운영자가 준 400만 원이 시드머니가 되어 웹툰 계약까지 체결했는데 아직 별다른 오퍼가 없었다.

“때가 되면 다시 만날 테니… 오늘은 하던 거나 끝내고 공부하자.”

최치우는 생각을 접고 몸을 움직였다.

사대금강과 십팔나한의 무공이 그의 손끝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소림사 최강의 호위 무공이 무르익는 날, 세상은 절대 깨지지 않는 금강의 화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웹툰, 무공, 그리고 공부까지.

최치우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신을 완벽한 보석으로 다듬어갔다.

벌써 지치기에는 하루하루 남다르게 성장하는 재미가 너무 컸다.

머나먼 여정의 출발점을 막 벗어났을 따름이다.

체육관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그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

시간은 똑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지루한 수업 시간에는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고, 좋아하는 여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한 시간이 일 분처럼 느껴진다.

여름방학도 마찬가지였다.

아스팔트를 녹일 듯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의 기세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자유롭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던 여름방학의 끝이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9월에 개학을 하면 11월 수능이 코앞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누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최치우는 지나간 방학이 아쉽지 않았다.

탱자탱자 놀면서 허송세월을 했다면 흘러간 여름이 아까울 것이다.

하지만 최치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치열한 여름을 보냈다.

단순히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한여름의 태양보다 뜨겁게 움직이며 미래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쐐애액- 퍼퍼펑!

직선으로 뻗은 주먹 끝에서 바람이 압축되어 터졌다.

최치우가 가진 내공으로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권풍(拳風)이었다.

손바닥을 펼치고 권풍을 쏘아내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장풍(掌風)이 된다.

최치우는 영화에 나오는 경지를 서울의 외딴 체육관에서 구현하고 있었다.

“내공은 진짜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 사람 하나 잡는 건 일도 아니겠어.”

수련을 멈춘 최치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단전에 쌓인 내공은 이제 겨우 손톱 크기를 벗어나고 있었다.

아직 손가락 한 마디만도 못하다.

그럼에도 권풍의 위력이 제법 강렬해 보였다.

금강나한권이라는 무공 자체가 워낙 뛰어나서 소량의 내공으로도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여전히 몸에 붙지는 않는군.”

최치우는 뭔가 불만인 듯 티셔츠를 벗었다.

그의 상체에는 한 달 사이 눈에 띌 정도로 잔 근육이 붙어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은 아니었다.

그러나 육체의 힘을 폭발시키기 위해선 큰 덩어리의 근육보다 잔 근육이 촘촘히 들어서는 게 더 낫다.

공교롭게도 이런 몸매가 요즘 트렌드였다.

하지만 최치우는 자기 몸매를 감상하기 위해 웃통을 벗은 게 아니었다.

그는 이어서 바지도 벗었다.

아무도 없는 체육관 중앙에 달랑 속옷 한 장만 걸치고 섰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몸의 흐름을 느끼려는 것이다.

“초식의 오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몰입해야 해.”

최치우는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었다.

부족한 실전 경험은 채워 나가면 된다.

금강나한권을 만들고 익힌 사람들, 즉 소림사 무승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실전만큼 중요했다.

그가 두 눈을 감았다.

이 순간 최치우는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아닌 소림사 본산의 무승이 되었다.

무공에 담긴 그들의 전통과 정신을 이해할 때, 비로소 금강나한권이 몸에 딱 맞는 옷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일초식부터 다시…….”

최치우는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망자의 영혼을 흡수해 제국을 멸망시킨 링스 월드에서의 기억, 최강의 헌터로 세상을 구한 기억, 천하제일검이 되어 천마를 쓰러트린 기억, 현자가 되어 마법의 지평을 넓힌 기억, 기계화군단을 이끌고 로봇 대전을 벌인 기억 등등 세계의 꼭대기에서 수많은 사람을 내려다보던 경험은 잠시 묻어둘 필요가 있었다.

금강나한권을 수련할 때는 소림사 무승의 심정으로 몰입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무공을 온전하게 터득하는 실마리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때였다.

마음을 잡고 다시 수련을 하려는 찰나, 전화기가 눈치 없이 울렸다.

무음으로 바꾼다는 걸 깜박한 모양이다.

그냥 무시하기엔 폰이 너무 요란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휴, 쉬었다 하자.”

최치우는 자세를 풀고 눈을 떴다.

그는 폰을 던져둔 체육관 구석으로 걸어갔다.

액정 화면에는 전혀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여보세요.”

“치우 군!”

낯선 목소리였다.

그러나 마치 최치우를 잘 아는 듯 스스럼없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누구… 아, 운영자!”

최치우는 음성의 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파이트 클럽의 운영자.

애들에게 돈을 주고 싸움을 붙이는, 하지만 자기 말로는 선수를 육성하는 거라 주장하던 중년인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운영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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