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13화 (13/243)

# 13

이름에서부터 불교의 향기가 묻어나온다.

금강나한권(金剛羅漢拳)은 소림사의 독문절기이다.

구파일방의 종주인 소림사에서도 선택받은 무승(武僧)만 전수받는 최상승 무공이었다.

소림사에는 두 개의 호위 집단이 있다.

바로 사대금강과 십팔나한이다.

어떤 시기에는 사대금강이 소림사의 최종 호법이 되고, 또 어떤 시기에는 십팔나한이 그 자리에 선다.

기준은 간단하다.

당대의 사대금강과 십팔나한이 각자 최고의 재능을 지닌 무승을 선택해 금강나한권을 전수한다.

이후 두 명의 제자가 비무를 펼쳐 이긴 쪽이 소림사 최종 호법이라는 영예를 누린다.

이렇듯 금강나한권은 사대금강과 십팔나한의 비법이 결합된 최강의 호위 무공이었다.

백보신권을 뛰어넘는 상승 무공이지만, 호위를 위한 무공이기에 살수가 적다.

물론 필요에 따라 일격에 상대의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쓸데없는 살기를 풍기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제껏 수련해 온 달마역근경의 기운과도 자연스레 융합될 것이다.

“계속해서 땡중들의 무공을 익히려니 찝찝하지만, 그래도 동자공이 아니라서 다행이군.”

최치우는 피식 웃으며 소림사에서의 일화를 추억했다.

그도 직접 금강나한권을 익힌 적은 없었다.

다만 천마의 암습으로부터 소림사 방장을 구해줬고, 고마움의 표시로 여러 비급을 보며 무공에 대한 이해를 높일 기회를 부여받았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니 낡은 비급 안에 적혀 있던 구절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최치우의 결정으로 전설 속 소림사의 최강 호위 무공이 현대에 되살아나게 됐다.

우웅- 우우웅-

그때 눈치 없이 스마트폰이 울렸다.

최치우는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금강나한권을 좁은 집 안에서 수련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적절한 공간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모르는 번호네?”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금강나한권에 신경이 몰려 있었던 것이다.

“여보세요.”

“최치우 씨? 아니, 최 작가님?”

“네? 누구십니까?”

“네트 콘텐츠 팀장 윤영국입니다. 한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작가님.”

***

네트는 콧대 높은 회사이다.

단순히 국내 최고의 웹툰 플랫폼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온라인 세계를 지배하는 공룡이고, 이제는 뉴스와 웹툰을 비롯해 거의 모든 콘텐츠 생태계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구글이 힘을 못 쓰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여러 잡음이 있지만, 네트가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케이툰은 모바일에 특화된 전문 기업이다.

국민 메신저로 출발한 케이툰은 대리운전, 내비게이션 등 각종 O2O 서비스를 런칭해 매출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당연히 미래 먹거리인 콘텐츠에도 관심을 드러냈고, 그렇게 만들어진 계열사가 케이툰이다.

전체 회사 규모에서는 네트를 따라갈 수 없지만, 모바일 콘텐츠 분야에서는 케이툰이 1위이다.

몇 달 전에는 웹툰과 웹소설을 포함한 전체 콘텐츠 일 매출이 5억을 넘겼다는 기사도 나왔다.

물론 매일 5억 원어치 웹툰과 웹소설을 파는 건 아니겠지만, 콘텐츠만으로 연 매출 1,000억을 달성한 대기업이다.

판교에 세워놓은 사옥 빌딩만 봐도 네트와 케이툰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건축비로만 몇 백억을 쏟아 부을 수 있는 회사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최치우는 한국을 대표하는 온라인 모바일 기업인 네트와 케이툰으로부터 모두 러브콜을 받았다.

신경질적이던 윤영국 팀장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전화를 건 게 시작이었다.

윤 팀장과 미팅 약속을 잡고 30분쯤 지났을까.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케이툰의 웹툰 팀장 강영아였다.

우격다짐으로 원고를 전달한 날, 강영아는 윤영국보다 더 매몰찬 태도를 보여줬다.

그러나 전화 통화에서는 마치 큰누나처럼 다정하고 포근한 말투로 최치우를 설득했다.

반드시 리얼 헌터를 케이툰에 연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치우는 윤영국과 오후 3시, 강영아와 오후 4시에 각각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는 멀리 떨어진 판교까지 가지 않았다.

하루 사이에 갑과 을이 바뀐 셈이다.

“최 작가님!”

카페 문이 열리고 윤영국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충혈된 눈으로 짜증을 내던 얼굴이 선하지만, 최치우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금방 다시 뵙게 됐네요, 팀장님.”

“제가 그날은 좀 무례했지요?”

“아닙니다. 약속도 안 잡고 찾아갔으니까요.”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인쇄물과 USB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는데… 우연히 본 한 컷이 괜찮아서 한번 보기나 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

윤영국은 그날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

최치우의 예상이 적중했다.

USB만 줬다면 절대 리얼 헌터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인쇄물을 칼라로 뽑아갔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 컷을 보게 됐고, 결국 리얼 헌터에 빠져들고 말았다.

윤영국 팀장은 콘텐츠 분야의 전문가이다.

아무나 네트 콘텐츠 팀을 이끌 수 없었다.

그가 한번 뜨면 출판사와 콘텐츠 제작사, 에이전시, 매니지먼트, 그리고 네트에 입성하길 원하는 작가들까지 긴장하며 얼어붙는다.

“작가님, 제가 마실 것 먼저 가져오겠습니다. 커피 괜찮으시죠?”

그러나 악명 높은 윤영국은 싹싹한 신입 사원처럼 최치우의 기분을 맞추려 노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괜찮은 작품을 연재해서 인기를 끌어야 콘텐츠 팀의 실적이 좋아진다.

리얼 헌터라는 예사롭지 않은 작품을 보유한 최치우는 윤영국의 밥줄을 보장해 줄 사람이다.

인기 작가 앞에서는 모두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최치우는 아직 정식으로 연재하지도 않았지만 윤영국에게 인기 작가 대우를 받고 있었다.

“최 작가님, 설마 리얼 헌터가 첫 번째 작품은 아니시겠죠?”

“처음 도전해 본 겁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이 정도로 밀도 높은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회에 기승전결을 담으면서 동시에 다음 회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절단마공! 기성 작가들도 어려운 걸…….”

“재밌었다니 다행이군요.”

“재미가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랬다면 팀장인 제가 여기까지 직접 오지 않았을 겁니다. 작가님, 무조건 우리 네트와 계약하시죠. 목요일? 금요일? 원하시는 요일에 작품 넣고 메인 배너에서 홍보까지 팍팍 해드리겠습니다!”

윤영국은 음료를 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적극적으로 나섰다.

팀장이 직접 이런 조건을 내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구나 신인 작가에게는 파격적인 대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치우는 흥분하지 않았다.

주도권을 자신이 잡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당장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싶지만 그림 작가와도 상의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조금 뒤 케이툰 담당자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케이툰 담당자를요? 누가 나온다고 합니까?”

“강영아 팀장님이 온다고 들었습니다.”

“그 불여시가! 아, 이런. 죄송합니다, 작가님. 아무튼 강영아는 안 됩니다. 네트가 1위 업체답게 무조건 케이툰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세팅하겠습니다.”

최치우는 앳된 얼굴로 자연스레 강영아의 이름을 말했을 뿐이다.

능구렁이 작가들이 간보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덕분에 윤영국의 경쟁심을 부추기게 됐다.

네트와 케이툰, 윤영국과 강영아.

웹툰 바닥의 오랜 라이벌이 최치우의 리얼 헌터를 놓고 맞붙게 된 것이다.

“오해를 살까 봐 조심스럽지만, 선약을 했으니 그 후에 결정을 내리는 게 도리 같습니다. 윤 팀장님의 진심은 제게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알겠습니다, 작가님. 그런데 혹시 그림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을까요?”

“그림 작가는 당분간 저를 통해서만 외부와 접촉할 예정입니다. 계약을 하게 되는 날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최치우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업체에서 문지유와 개별적으로 미팅을 하면 일이 꼬일 수 있었다.

서로 괜한 오해가 생기고, 사소한 불신 때문에 팀이 붕괴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대외 활동은 리더인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내성적인 성격의 문지유도 오히려 고마워했다.

윤영국은 눈앞에 앉은 고3 신인 작가가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작품은 대단했지만 직접 만나면 손쉽게 구워삶을 줄 알았다.

그런데 순진한 건지 노련한 건지 감을 잡기도 힘들었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괴물이지…….’

윤영국은 속마음을 숨기고 웃는 낯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네트에서 정식으로 연재하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 쉬지 않고 설명했다.

이만한 열정이 있으니 3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팀장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최치우는 윤영국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웹툰 업계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머, 우리 최 작가님! 이렇게 다시 보니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4시 10분 전, 일찍 도착한 케이툰 웹툰 팀장 강영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과감하게 가슴골이 드러난 옷을 입고 딱 달라붙는 스키니 진으로 S라인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알 것 다 아는 30대 중반의 섹시함이 풀풀 풍겼다.

강영아 역시 첫 만남에서는 최치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강 팀장, 오랜만입니다.”

윤영국이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를 확인한 강영아는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가 금방 미소를 지었다.

“이게 누구야? 윤영국 팀장님 아니세요? 요즘 네트에서 연재하던 작가들이 계약 위반으로 소송 걸어 고생하신다고 들었는데,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요.”

최치우는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의 신경전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했다.

본의 아니게 판을 벌인 셈이 됐다.

어쩌면 약간은 본의가 들어갔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두 분, 아시는 사이였군요. 제가 이런 미팅이 처음이라 실례를 한 것 같습니다.”

최치우는 티 없이 맑은 눈빛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하나도 안 난감했다.

웹툰 업계에서 신인이 받을 수 있는 조건에는 한계가 있다.

양대 포털과 정식 계약을 맺으면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고, 대박이 보장된 기대작이면 또 한 번 한계를 넘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최치우는 경쟁사끼리 자존심 싸움을 붙여 버렸다.

기성 작가가 이렇게 미팅 일정을 잡으면 욕을 엄청 먹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 신인의 얼굴로 판을 벌였기에 흠이 안 됐다.

“미팅 끝났으면 그만 일어나시죠, 윤영국 팀장님?”

“아직 작가님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2순위로 왔으면 기다리세요, 2위 업체의 강영아 팀장님.”

“모바일에서는 우리가 1위인 거 몰라요?”

“요즘도 PC로 웹툰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모바일 타령이십니까?”

점입가경이다.

그만큼 리얼 헌터의 가능성이 크기에 두 사람이 체면 불구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다음 날, 최치우는 둘 중 한 사람과 만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제껏 그 어떤 신인도 받지 못한 조건이었다.

계약금 5천만 원, 선인세 5천만 원.

총 1억 원, 당일 즉시 입금.

문지유는 당장 모든 알바를 때려치웠고, 최치우는 금강나한권을 수련하기 위한 체육관을 알아봤다.

여름의 무더위가 한창이다.

하지만 최치우의 여름은 더욱더 뜨거워질 것 같았다.

가을이 찾아오려면 한참 멀었다.

수확의 계절이 오기 전까지 최치우는 태양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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