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9화 (9/243)

# 9

누가 들으면 비웃을 이야기다.

하지만 최치우는 진지했다.

그가 현재까지 습득한 정보에서 이 세계의 정점은 마크 주커버그나 엘런 머스크 같은 첨단 산업의 개척자들이었다.

무력을 키우는 것은 기본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의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다.

“갈 때까지 가보자.”

최치우의 혼잣말은 아무도 듣지 못한 채 복도를 맴돌다 사라졌다.

그러나 언젠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태풍이 되어 세계를 강타할지 모른다.

전에 없이 거대하고 복잡한 세계에서 눈을 뜬 최치우는 날이 갈수록 더 큰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

모의고사를 봤다.

내신 시험과 모의고사는 결이 다르다.

수능을 대비하는 모의고사는 학교에서 임의로 문제를 출제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적나라하게 실력이 드러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험 당일 가채점을 해본다.

오차는 있겠지만 가채점만 해도 대략적인 성적은 예측할 수 있었다.

최치우도 한 과목 시험이 끝날 때마다 가채점을 해봤다.

그는 1반이 아닌 7반에서 시험을 쳤다.

가형 수리 영역과 과학 탐구 등 이과 시험지를 받아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7반 학생들은 뜬금없이 이과 시험을 보러 온 1반 최치우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했다.

단 한 마디의 비아냥거림이나 의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전교생 모두 최치우가 금성고 일진을 제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기, 치우야.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는데?”

시험을 다 치고 1반으로 돌아온 최치우에게 같은 반 학생이 조심스레 말을 전했다.

“고마워.”

최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는 늘 혼자만의 공부에 집중했고, 친구들도 빵셔틀이었다가 학교를 접수한 최치우를 무서워했다.

그래서인지 고맙다고 대답했을 뿐인데 말을 건 친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치우는 이제껏 괴롭힘을 당하면 당했지 누굴 못살게 군 적이 없었다.

게다가 유강수에게 말해 일진이 설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뒀다.

그런데 학생들은 그를 동경하면서도 위험하게 여겼다.

‘이해할 수 있어. 어느 세계에서나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은 대부분 외로웠으니까.’

최치우는 가방을 들고 교무실로 걸어갔다.

교무실 문을 열자 담임이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냈다.

두 사람은 모의고사 성적을 놓고 일종의 내기를 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성적은 3주가 지나야 발표된다.

그러나 가채점 결과만으로 충분히 성패를 가릴 수 있었다.

“다른 과목은 됐고 수리 가형과 과탐만 확인하자. 이번에 출제도 어렵게 나왔으니 너무 실망하지는 말고.”

담임은 최치우의 실패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과 과목에서 큰코다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거라 확신했다.

최치우는 그런 담임을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채점이긴 하지만 조금 놀라실 것 같습니다.”

“놀라? 내가? 왜?”

담임이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아직도 그는 최치우가 이과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냈을 거라곤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최치우는 뜸들이지 않고 가채점 결과를 말했다.

“수리 가형에서는 3점짜리 하나, 2점짜리 하나 틀려서 95점을 받았습니다. 과탐은 암기보다 개념 이해 문제가 많아서 하나도 안 틀렸습니다.”

“뭐? 지금 뭐라고 했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닌가?”

담임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이렇게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본다.

김병철의 어머니가 길길이 날뛰며 항의할 때도 담임은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최치우가 중간고사 2등을 했을 때는 놀라긴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문과생이 느닷없이 이과 모의고사를 쳐서 수리 가형 95점, 과탐 만점을 받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이번 모의고사는 어렵게 출제됐다.

“그, 그럼 언어랑 영어는 몇 점이지?”

“언어는 4점짜리 하나 틀렸습니다. 영어는… 문제가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아무튼 89점입니다.”

두 과목의 성적도 놀라웠다.

언어는 보나마나 1등급이다.

다만 영어가 조금 아쉬웠다.

최치우는 구글에서 영어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 공부를 해왔다.

실제로 낯선 언어를 탐구한 것이다.

그렇기에 시험용으로 문제를 꼬아서 낸 쓸데없는 영어 문항은 이상하다고 넘겨 버렸다.

그래도 2학년 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평균 5등급, 6등급을 전전하던 최치우가 영어만 2등급, 나머지 과목은 모두 1등급을 받은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과 영역에서.

담임은 자신의 교직 생활 상식을 뒤엎은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가채점이라고 해서 최치우가 헛소리를 할 리는 없었다.

“이거 잘만 하면…….”

담임이 심상치 않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상식보다 명예가 더 중요했다.

“영어만 신경 쓰면 의대도 노릴 수 있는 성적이다. 문과에서 제자를 의대로 보낸 최초의 교사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네?”

“최치우, 의대로 가자!”

담임이 더 신이 났다.

그를 쇼크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더 큰 충격요법이 필요할 것 같았다.

최치우는 어림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공대 갈 겁니다.”

“뭣이라?”

담임은 최치우의 성적을 들을 때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최치우는 흔들림이 없었다.

“공대 가겠습니다.”

“…….”

때 아닌 적막이 교무실을 감쌌다.

최치우는 담임의 허탈한 표정을 외면하며 할 말을 했다.

“약속대로 수리와 과탐은 이과반에서 수업 듣겠습니다, 선생님.”

담임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최치우가 받은 성적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보겠습니다.”

담임은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선 최치우를 멍하니 쳐다봤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는지, 아니, 왜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공대생이 되겠다고 대차게 선포한 최치우는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작은 것이지만 뜻하는 바를 이뤘다.

하나씩 성취해 가는 재미가 남달랐다.

집으로 가는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

이과 모의고사에서 기대한 만큼의 성적이 나왔다.

그러나 기분이 좋은 만큼 고민도 깊어졌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최치우는 파이트 클럽 운영자에게서 400만 원 수표를 받고 난 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처음으로 돈을 만지게 되자 현실감이 생긴 것이다.

중간고사에 이어 모의고사도 대박을 쳤지만 그럴수록 돈의 필요성이 커졌다.

담임에게 선포한 것처럼 공대를 가려면 학비가 들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 장학금이나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야 하고, 등록금 외에도 돈 들어갈 일은 많다.

겨우겨우 학비만 내면서 대학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고생하는 모습도 그만 보고 싶었다.

“운영자가 다시 찾아오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군.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결코 나쁜 기회는 아냐.”

최치우는 좁은 방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력을 키우려면 내공과 외공을 동시에 단련해야 한다.

그러나 혼자 수련만 주구장창 한다고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다양한 실전을 거쳐야 된다.

최치우는 일곱 차원에 걸친 경험이 있어서 일반 사람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몸으로 싸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현재의 육체로 어디까지 이겨낼 수 있는지 경험을 쌓는 게 더 빨리 강해지는 길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 운영자의 제의를 다시 검토했다.

고등학교 일진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프로페셔널 파이터들과 붙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 큰돈을 받아 시드머니를 불릴 수 있다면 사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파이트 클럽은 그렇다 치고, 400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찾아야지, 뭐든.”

최치우는 자본금 400에서부터 돈을 불려 나갈 작정이다.

사업을 시작하기엔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장인이 연장을 탓할 순 없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그래도 머릿속을 떠도는 아이디어가 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돈 버는 능력을 증명한 적은 한 번도 없었군.”

최치우는 혼잣말을 읊조리며 웃었다.

링스 월드와 지난 여섯 번의 환생에서 그는 정점에 이른 최고의 인간이 됐다.

하지만 돈을 제대로 벌어본 적이 없었다.

왕궁 대마법사로 지내며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된 게 아니라 다른 능력을 키워 재물을 얻은 것이다.

돈이 중요하다는 생각 자체를 이번 생에서 처음 해봤다.

그만큼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지.”

최치우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것을, 바닥에서 4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능을 1년도 안 남긴 고등학교 3학년의 포부라기엔 지나치게 크고 원대했다.

실패하면 망상이지만 성공하면 꿈이 된다.

최치우는 재운(財運)을 스스로 만들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400으로 물건을 사서 되파는 유통을 해봐야 얼마 남기지도 못해. 답은 하나밖에 없어.”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최치우의 눈동자가 예사롭지 않게 빛나고 있었다.

무력과 지력, 거기에 재력까지 갖춘다면 혼자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시작은 미약하나 창대한 끝을 이루기 위해 최치우는 도전하고 또 도전할 생각이다.

“내가 경험한 인생을 팔아보자. 100%, 아니, 200% 먹힌다!”

무슨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최치우는 스스로 만족한 듯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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