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번째 환생-6화 (6/243)

# 6

<금성고, 접수>

공부를 재미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전국을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 힘들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 잘하는 것과는 다르다.

수많은 고3 중에서 공부 자체를 즐기는 학생은 거의 없다.

대부분 마지못해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한다.

그러나 최치우는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고3이 되기 전까지 조용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이던 그에게 대반전의 시간이 찾아왔다.

최치우는 새로운 세상의 지식을 알아가는 게 너무너무 재밌었다.

그가 경험한 어떤 차원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구의 역사는 방대했고 다양한 영역에 걸쳐 학문이 발전해 있었다.

최치우는 특히 세 과목에 광적으로 몰입했다.

바로 영어, 세계사, 그리고 수학이었다.

영어는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을 빨아들이기 위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언어이다.

세계의 역사는 그의 탐구심을 자극하며 지구라는 차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다.

수학이라는 과목은 다소 의외의 선택일 수도 있지만, 최치우가 아슬란 대륙에서 유일하게 현자 클래스를 정복한 마법사였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마법은 마나와 수식의 결합으로 발현되는 기적이다.

고위 마법일수록 복잡한 수식을 순식간에 해석해야 캐스팅이 완료된다.

최치우는 고3 학생들이 배우는 수리탐구보다 훨씬 고난도의 수학을 이미 마스터하고 온 것이다.

그렇기에 수학 진도가 빨리 나가고 재미를 붙이는 게 당연했다.

학교에서는 그가 공부에 빠졌다는 사실을 몰랐다.

수업을 집중해서 듣기는 하지만 질문을 하거나 관심을 끌지 않았기 때문이다.

1학기 중간고사를 치기 전이기에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다만 최치우는 체육관에서 격투기 선수를 준비 중인 위험한 인간이라고 소문이 났다.

김병철을 박살 낸 다음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매점을 들락거리며 심부름을 하던 빵셔틀 최치우는 학생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평소 김병철과 친하게 지내던 일진들이 벼르고 있다는 말이 돌았지만, 최치우가 그런 풍문을 신경 쓸 리 없었다.

그는 바닥에 위치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바빴다.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최치우는 하루하루를 금쪽같이 썼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는 학교에서 지식을 쌓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달마역근경을 수련했다.

달마역근경은 몸의 탁기를 배출하는 동시에 육체도 단련시키는 도인법이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내공이 쌓였고, 몸 안이 깨끗해지며 기초 체력이 잡히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늦은 밤에는 달마역근경을 수련하기 어려웠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방문을 열면 들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밤 시간에는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세계를 헤엄치며 온갖 정보를 마구잡이로 흡수했다.

최치우는 무력만으로 이 세계의 정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고3 학생이 당장 재력이나 명예를 추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아니면 기회를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이렇듯 버리는 시간 없이 하루를 아껴 쓰니 시간이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어? 병철이다!”

“야, 야! 병철이 다시 학교 나왔어!”

언제나처럼 교과서를 펼치고 집중하고 있는 최치우의 귓가로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그에게 맞아 죽사발이 된 김병철.

금성고를 대표하는 양아치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것이다.

2주가 흘렀으니 꽤 오래 병가를 낸 셈이다.

최치우는 자연스레 고개를 들었다.

교실 앞문으로 김병철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가관이군.”

최치우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김병철은 아래턱과 콧잔등에 보호대와 붕대를 붙이고 있었다.

저런 꼴을 만들고도 징계를 안 받았으니 운이 정말 좋았다.

“뭘 봐? 구경났냐, 새끼야?”

김병철이 같은 반 아이들을 이리저리 째려보며 걸어왔다.

턱이 나가서 발음이 샜지만 여전히 성질머리가 더러운 건 똑같았다.

최치우는 같은 반 학생들에게 특별히 친밀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애들이 김병철에게 겁을 먹은 모습은 더 보기 싫었다.

“김병철.”

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김병철을 불렀다.

그러자 일부러 시선을 피하고 있던 김병철이 움찔 놀라는 게 보였다.

“조용히 들어가서 앉아라. 나대지 말고.”

무엇보다 강력한 경고였다.

김병철은 트라우마가 남았는지 최치우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대신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순간 반 안의 아이들이 최치우를 바라봤다.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왕년의 빵셔틀이 아니었다.

방금 전 그는 분명 같은 반 친구들을 지켜준 것이다.

최치우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에는 동경과 고마움이 섞여 있었다.

일제히 집중된 시선을 받은 최치우도 그런 기운을 감지했다.

‘나쁘지 않은데?’

세상을 구한 것도 아니고 나라를 지킨 것도 아니다.

그저 같은 반 학생들이 욕먹는 걸 막아준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마치 영웅을 보듯 최치우를 쳐다봤다.

강해지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최치우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 환생에서는 주로 생존 자체가 목적인 극악한 현실에 처했다.

그래서 강해지는 족족 마주치는 적들을 죽이기 바빴다.

그러나 비교적 평온한 일상이 주어지자 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곱 번이나 환생을 했지만 여전히 배울 게 많았다.

‘이번 환생은… 나쁘지만은 않아.’

최치우는 다시 교과서로 눈길을 돌리며 생각했다.

이렇게 색다른 인생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공부도 재밌고 삶도 재밌었다.

***

3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쳤다.

고3에게 내신 시험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수시는 2학년까지의 성적 반영 비율이 높고, 정시를 노리는 학생은 내신보다 모의고사를 더 신경 쓴다.

그래서 고3 시험은 이제까지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 기초 지식에 따라 성적이 갈린다.

고3 때 갑자기 시험을 잘 치거나 못 치는 경우가 드물다는 뜻이다.

그만큼 최치우의 급부상은 예외이고 이변이었다.

2학년까지 최치우는 반에서 20등 안에 든 적이 없었다.

한 반에 30명이 모여 있으니 항상 하위권에 머물렀던 것이다.

그런데 3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2등을 했다.

반에서 2등, 전교로 따지면 15등 안에 들었을 확률이 높다.

학생들은 그가 김병철을 박살 냈을 때보다 훨씬 더 놀랐다.

선생님들은 아예 경악했다.

투명인간 같던 최치우가 갑자기 전교권에서 놀게 됐으니 순순히 믿기 힘들었다.

시험지 유출과 같은 부정행위가 없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했지만 헛짓거리였다.

최치우는 개학 후 2달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싸움으로도, 공부로도 전교생의 주목을 받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사실 자신조차 시험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다.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즐거워서 공부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비결인지도 모른다.

탁기를 배출하며 맑아진 몸과 정신, 엄청난 기억과 이해력도 분명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 세계에 적응하며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시험 성적을 확인한 최치우는 우쭐거리지 않았다.

그는 얼른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효도라는 개념이 아직 생소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칭찬받을 일을 해낸 것 같았다.

반에서 2등을 한 것보다 어머니를 웃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분 좋았다.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 옛말 그대로 최치우는 매일매일 새로워지고 있었다.

***

중간고사가 끝나고 최치우는 김병철을 쓰러트렸을 때만큼 주목을 받았다.

믿기 힘든 성적 상승에 놀란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마다 들어와서 최치우가 누구냐고 찾았기 때문이다.

편안한 정년퇴임이 목표인 담임도 깜짝 놀랐다.

김병철 사건을 무마하는 데 앞장섰던 담임은 한결같이 최치우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성적이 나온 뒤에는 태도가 달라졌다.

은근슬쩍 칭찬을 하며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담임은 자기 반에서 몇 명을 좋은 대학에 보냈는지의 수치로 한 해 농사를 판단한다.

지극히 구시대적인 관점이지만, 애초에 그런 양반이니 어쩔 수 없었다.

전혀 기대도 안 하던 최치우가 송곳처럼 튀어나왔으니 담임이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인 서울 대학에 한 명을 더 집어넣을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목을 받는 것이 최치우에게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시기와 질투는 인간의 본성이다.

빵셔틀이 싸움을 잘하는 걸로도 모자라 공부까지 잘하게 됐다. 그것도 갑자기.

처음에는 그를 동경하던 시선이 차차 불만스럽게 바뀌기 충분했다.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숨죽이고 있던 3학년 일진도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김병철이 망신을 당했을 때부터 낌새는 있었다.

툭!

복도에서 낯선 학생이 어깨를 부딪쳐 왔다.

최치우는 개의치 않고 계속 걸어갔다.

하지만 뒤에서 노골적인 적의가 느껴졌다.

“어이, 최치우!”

이름까지 부르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3학년 교실 복도가 조용해졌다.

쉬는 시간을 맞아 시끄럽게 뛰어다니던 학생들이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최치우는 등을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키는 작지만 허벅지가 보기 싫을 정도로 두꺼운 놈이 서 있었다.

“뭐?”

최치우는 귀찮다는 듯 퉁명스레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 고등학생들의 일진 놀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김병철은 패야 하는 놈이라서 팼다.

그러나 다른 일진과는 굳이 싸울 필요가 없었다.

물론 최치우의 입장과 금성고 3학년 일진들의 입장은 다르다.

놈들은 그래도 친구인 김병철이 처참하게 당했으니 복수를 해주려는 것 같았다.

“오늘 학교 마치고 같이 좀 가자.”

의도는 뻔했다.

최치우는 눈앞의 상대가 전혀 겁나지 않았다.

환생 첫날과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몸 상태가 많이 달라졌다.

꾸준히 달마역근경을 수련하며 내공과 외공 모두 기초를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병철을 상대로도 긴장해야 하던 때와는 달랐다.

“후.”

최치우가 짧게 한숨을 뱉었다.

그는 눈을 똑바로 뜨고 질문을 던졌다.

“넌 이름이 뭐냐?”

“3반의 유강수다.”

“체격이 운동부 같은데?”

“유도부다.”

“그래, 유도부. 아무튼… 김병철 때문에 나서는 거겠지?”

유강수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치우는 심플하게 결정을 내렸다.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조용히 학교를 다니려면 금성고 전체를 접수해야 할 것 같았다.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굳이 피하려 애쓸 이유도 없었다.

‘아직 피지컬도 엉망이고 이제 막 적응하는 단계지만… 주니어 리그에서 몸을 푼다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겠군.’

최치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무림에는 후기지수(後起之秀)라는 개념이 있다.

젊고 뛰어난 신인을 뜻하는 말로, 후기지수 사이에서도 뛰어난 무인들은 칠룡(七龍)이나 오봉(五鳳)으로 불렸다.

절세신룡 이태민도 후기지수를 제패하고 천하제일검으로 성장한 바 있다.

피 튀는 무림의 후기지수와 고등학교 일진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어 재밌었다.

그러나 유강수는 최치우의 미소를 비웃음으로 받아들였다.

“웃기냐? 웃어?”

분위기가 한층 험악해졌다.

그럼에도 최치우는 계속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알았다. 대신 하나만 약속해.”

“무슨 약속?”

“일일이 상대하기 귀찮으니까 한 번에 다 모여서 와. 이참에 싹 다 정리하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