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화 1960년대 (5)
히틀러의 장례식은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엄청난 규모의 독일 국민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운 것을 카메라에 담아 제국방송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송출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독일 제3제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하자!”
독일 정부의 결정에 따라 독일의 독자적인 규격으로 찍힌 컬러 영상 외에도 NTSC방식과 PAL방식으로 전환된 컬러 영상이 통신 위성을 타고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 * *
1945년 전쟁이 끝났지만, 3강(强) 사이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진행중이었다. 물론 중국처럼 대놓고 총탄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음지에서는 3국의 첩보원들이 목숨을 걸고 움직이고 있었고, 양지에서는 서로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특히나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부분에서 독일과 소련은 ‘목을 걸었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증명할 정도였다.
독일은 패전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소련은 패배자 같은 승리자라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이런 3강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부분은 핵, 전자, 그리고 우주였다. 핵과 전자 부분에서는 미국, 그리고 의외의 존재인 한국이 독일과 소련을 확실히 한 발자국 이상을 앞서고 있었지만, 우주 부분에서는 독일과 미국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었다.
1941년으로 회귀해서 미국본토에 온 다음, 미국과 기술 협력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내로라하는 학자들과 기술자들이 한국의 전문가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런데 고다드 씨는 어디에?”
“고다드가 누구지요?”
연락책으로 나온 미군 장교의 반문에 KAI의 엔지니어는 혀를 찼다.
“기록으로만 봤는데 진짜 찬밥 취급이었군. 그 양반이 어떤 양반이냐 하면….”
KAI엔지니어의 설명을 들은 미군 장교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 전화기를 붙잡았다.
“당장 고다드란 사람을 찾아!”
그렇게 해서 찾아낸 고다드는 칼텍의 ‘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의 연구진으로 합류했다. KAI의 엔지니어들은 물론이고 한국 군인들까지 독일의 V시리즈 로켓들과 고다드의 연구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자, 미 정부는 고다드의 액체연료 로켓 연구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잘 될까요?”
미국 정부의 움직임을 보던 정 수석차관은 KAI의 강도현 수석 설계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은 강 수석팀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뜨거운 감자가 하나 있으니까….”
강 수석팀장의 예견처럼 JPL의 대대적인 확대개편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FBI가 고민을 하게 만든 ‘뜨거운 감자’가 튀어나왔다.
정부와 방첩기관이 고민을 하게 만든 ‘뜨거운 감자’는 중국인 전학삼(錢學森, 첸쉐썬)이었다.
“중국공산당에 도움을 주었다라… 역시나 축출을 해야 하나?”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적이나 주변인들의 평가를 보자면 공산주의와는 지극히 거리가 먼 인물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첸이 중국공산당에 간 것은 우리 쪽의 과실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전학삼의 거취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가운데 보고를 받은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결론을 내렸다.
“우리에게 +1이 되고, 경쟁자에게는 -1이 된다면 그것은 이득 아닌가? 충성스러운 미국인으로 만들게.”
“알겠습니다.”
후일담으로, 이렇게 내려진 결정으로 인해 중국-남과 북 모두 합쳐서-의 우주 개발은 30년을 뒤쳐지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주개발’을 공언한 장개석과 모택동 모두 인재를 구하는 과정에서 전학삼에게 접근했지만, 전학삼은 양쪽의 권유를 모조리 거부했다.
“나는 중국계 미국인이오.”
전학삼의 단호한 거부는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다른 중국인 엔지니어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결국 남이던 북이던 중국으로 돌아간 이들 가운데 핵심기술을 가진 이들의 수는 극히 적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기술발전은 속도가 더뎠고, 옆에 있던 한국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 * *
어쨌거나 이런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던 가운데 1956년 9월, 독일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지크프리트’라는 이름이 붙은 인공위성은 50일 동안 지구 주위를 돌면서 ‘총통 만세, 독일 만세’의 모스 부호를 송신했다.
“독일이 선수를 쳤다!”
“우리라고 멍하니 있을 수는 없다!”
독일의 인공위성 발사에 충격을 받은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로켓 발사에 들어갔다.
1957년2월. 미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익스플로러1호’라고 명명된 인공위성은 지구 주변을 돌며 ‘헬로, 월드(Hello, World)’의 모스부호를 송신했다.
그리고 1년 뒤, 소련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스푸트니크’라는 이름이 붙은 인공위성은 궤도를 돌며 ‘공산주의 만세!’의 모스 부호를 송신했다.
그렇게 해서 벌어진 우주경쟁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인공위성이 하늘로 쏘아 올려지기 시작했다.
통신위성, 군사위성은 물론이고 미국정부와 한국정부가 합작해 만들어낸 항법위성이 지구 주변의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일이 쏘아 올린 통신위성이 히틀러의 장례식을 전 세계로 중계하고 있었다.
* * *
“쯧… 윗동네 생각이 나버리는군.”
화면을 보던 벌레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주변에서 같이 화면을 보던 21세기 출신 한국인들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모두 어렸을 때 실시간으로 봤고, 이후에는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봤던 북한 지도자의 장례식 장면과 오버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베를린 외곽에 만들어진 국립묘지를 향하는 운구행렬의 좌우로 수많은 독일인들이 몰려나와 눈물을 흘리며 오른팔을 위로 번쩍 들어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었다.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눈물범벅이 되어 ‘하일 히틀러!’를 연호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에 벌레가 비아냥거렸다.
“조국을 초토화시킨 악마가 아니라 국부(國父)가 되어서 죽는군. 우리가 시간이동을 하면서 만들어낸 최대의 수혜자야.”
“입맛이 쓰군요.”
“어쩌겠냐… 그나저나 새로운 지도자의 이름이 루돌프 바우만이라고?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아닌 것이 다행인가?”
“그 사람이 누구인데요?”
인수의 물음에 벌레는 시선을 돌리며 짧게 대답했다.
“있어. 그런 인간이.”
같은 시간, 한국에서도 빨갱이가 창기에게 비슷한 대답을 하고는 투덜거리고 있었다.
“덕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벌레 새끼가 그립네.”
* * *
‘히틀러의 죽음이 어떤 영향을 끌고 올 것인가?’
히틀러의 죽음 이후, 주요 국가들의 지도자들, 언론인들 그리고 정치학자들이 가진 공통의 관심사는 이것이었다.
“당장이라도 민주화 요구로 독일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독일의 세력권에 커다란 분열이 생길 수 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위와 같이 예상을 했지만, 의외로 독일의 나치당은 여전히 독일을 쥐고 움직이고 있었다. 국가사회주의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역시 독일과의 동맹 관계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상황을 보며 벌레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나 저기서 떨어져 나가면 바로 소련이 달려들 텐데… 아이큐 두 자리만 넘어가도 헛짓거리는 안 할 거다. 독일이야… 히틀러가 지난 십몇 년 동안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왜 이렇게 밝은 면만 보려고 그러는지….”
신문기사를 보며 비아냥거리던 벌레는 신문을 접어 한쪽에 치우고는 인터폰을 눌렀다.
-네, 사장님.
“차량 준비시켜줘요. 칼텍에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Mr. Kim.”
“오랜만입니다. 제임스 교수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소식을 듣고 바로 오려고 했는데 그 장례식 때문에….”
“그 작자의 장례식 때문에 스케줄 꼬인 이들이 많지요. 어차피 죽을 거 1941년 전에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히틀러의 죽음을 화제로 대화를 시작한 두 사람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임스 교수는 자신의 손바닥만 한 2개의 칩을 벌레에게 내밀었다.
“요청하신 칩입니다. 하나는 TV 전파를 영상과 음향으로 치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영상과 음향을 전파로 치환하는 것입니다. 칩 하나로 2개의 기능을 다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 정도도 최고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사님.”
“별말씀을….”
“엔지니어를 보내겠지만, 생산라인을 만드는 데에는 교수님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최선을 다해 협조하도록 하지요.”
교수와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온 벌레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중얼거렸다.
“세계 최초의 산학협력인가? 내년이 기대되는군.”
* * *
벌레가 1964년을 준비하며 움직이고 있을 때, 정 수석차관 역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자 연구소에서 아직 답이 안 왔나?”
“아직입니다.”
“이거 늦는걸? 벌레 새끼라면 지금쯤 VTR 관련해서 움직이고 있을 텐데….”
미국에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벌레를 떠올리며 정 수석차관은 부하들을 닦달했다.
“전자 연구소에 가서 채근 좀 해! 지금 영상가전기기의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직전이란 말이야! 잘못하면 타야 할 파도는 못 타고 허우적거리게 될 뿐이야!”
“알겠습니다!”
부하들을 채근한 정 수석차관이 다시 보고서를 펼칠 때, 부하직원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들어오시라고 해.”
잠시 후, 안내를 받아 들어온 방문객을 본 정 수석차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조 소장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보고서로 작성해서 올리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좀 급한 마음에 왔습니다.”
“앉으시죠.”
소파의 자리를 권한 정 수석차관은 조윤하 소장의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공군과 관련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 공군의 하이급 전투기는 앞으로도 계속 팬텀이 맡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당분간은 팬텀이 맡을 것입니다.”
“팬텀 다음 세대에 관한 계획은?”
“스케줄상으로는 1970년대 중반입니다.”
“최대한 앞당길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F-15급 전투기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조 소장의 말에 정 수석차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독일 전투기들이 그 정도입니까?”
“아주 실하더군요.”
* * *
히틀러의 장례식을 끝으로 공식적인 일정은 끝이 났지만, 외교라는 것이 의례 그렇듯이 공개적으로 아니면 비밀리에 벌어지는 회담들로 인해 조문단의 체류기간은 점점 늘어났다.
독일정부가 제공한 호텔의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던 조윤하에게 루프트바페의 장성들이 우르르 몰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당신이 그 ‘레드2’입니까?”
“맞습니다. 내가 그 ‘레드2’입니다.”
조윤하의 대답을 듣자마자 독일군 장성들이 우르르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여기 사인을!”
목에 철십자 훈장을 건 장성들이 이국의 여군에게 열광을 하는 모습은 호텔 직원들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던 독일인들과 외국인들에게도 낯선 장면이었다.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옆으로 밀려난 고 제독은 그 광경을 보며 피식 웃으며 남궁 준장을 돌아봤다.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 그나저나 자네는 좀 섭섭하겠군. 자네도 만만치 않은 악명을 가지고 있지 않나?”
고 제독의 말에 남궁 준장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날 저녁, 남궁 준장과 조 소장에게 초대장들이 왔다. 발신인은 각각 독일 육군과 공군이었다.
다음 날 오전. 초대를 받은 조 소령은 베를린 근처의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환영합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목숨 걸고 싸웠던 장성들은 물론이고 그 이후 세대인 젊은 장교들은 조 소장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짧은 환영식이 끝나고 루프트바페의 장성들은 자신들의 항공기를 조윤하 소장에게 보여주었다.
“Me305‘Habicht(매)’입니다.”
“멋진 기체로군요.”
“우리의 자랑입니다. 한번 몰아 보시겠습니까?”
독일 장성의 말에 조윤하의 눈이 반짝였다.
“제가 몰아도 괜찮겠습니까?”
조윤하의 물음에 루프트바페 장성이 눈을 찡긋했다.
“‘공식적’으로는 불가합니다. 하지만, 여기는 지금 우리 루프트바페밖에 없지요.”
“제안 감사합니다.”
루프트바페의 호의로 조윤하는 루프트바페의 최신 전투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잠시 후, 그녀를 에스코트할 목적으로 2기의 전투기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
* * *
“그렇게 해서 몰아 본 결과, 슈퍼 타이거를 상대로 한다면 ‘먼저 뽑는 놈이 승자’인 상황입니다. 팬텀을 상대로 한다면 팬텀은 절대로 도그파이트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군요.”
“독일이 저런 전투기를 내놓은 이상, 소련도 신기종을 내놓을 것입니다. 그렇게 나온 신기종이 모택동 손에 넘어간다면 북해도는 물론이고 서해가 시끄러워집니다. F-15가 필요해집니다.”
조 소장의 설명에 정 수석차관은 심각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항우연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방문 감사합니다.”
조윤하 소장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직원은 또 다른 방문객이 왔음을 알렸다.
“이번에는 누구?”
“남궁 준장이십니다.”
“이번에는 육군이야? 들어오시라고 해.”
안내를 받아 들어온 남궁 준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용건을 꺼냈다.
“120mm 주포를 가진 전차가 필요합니다!”
“아이고야….”
조 소장이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여의도 비행장에 막 도착했을 때, 2대의 팬텀이 하늘을 박차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쌔애액!
요란한 소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팬텀을 보던 조 소장은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회귀 전에는 스틱이, 그 쌍년 때문에 이글 칵피트에서 밀렸는데… 전역을 좀 미룰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