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화 중국 (11)
서울. 조선 공산당 중앙당사.
당사의 대회의실에서는 며칠째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련에서 흐루쇼프 서기장이 직접 보낸 서한이오. 이번 일에 지극히 ‘신중하게’ 행동하라. 확인해 보시오.”
발언을 끝낸 리승엽은 흐루쇼프의 친필 서한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옆의 간부에게 건넸다.
회의실에 모인 간부들은 돌아가며 서한의 내용과 흐루쇼프의 사인을 확인했다.
회의실에 모인 주요 간부들이 모두 서한을 확인하자 리승엽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흐루쇼프 서기장의 의견처럼 이번 일은 지극히 신중하게 판단한 이후에 행동해야 하오.”
리승엽의 말에 반대편에 앉아 있던 간부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서기장 동지의 말은 이번 거사(巨事)에 동참하지 말자는 뜻이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소이다.”
리승엽이 속내를 밝히자 발언을 한 간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건 아니 될 말이오! 이번 일이야말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란 말이오!”
반대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리승엽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김장철 동지! 모 주석의 속내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오? 이번 일은 우리 조선 공산당과 조선의 적화(赤化)가 목적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 내부를 단속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는 몰라서 그러는 것이오?”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우리 조선 공산당은 조선의 적화를 도모할 수가 없다는 것 또한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 아니오!”
“지금처럼 꾸준하게 인민에게 파고들어 세를 넓히면 의회를 통해서 정권을 장악할 수 있고, 그때부터 적화를 시도하면 될 일이오!”
리승엽의 말에 김장철은 코웃음을 쳤다.
“흥! 의회? 서기장 동지야말로 지금 사세(事勢)를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오? 지금 우리 조선 공산당의 형편을 보면 말라 죽어가고 있단 말이오! 30만을 자랑하던 당원들이 이제 18만밖에 안 남았소! 18만!”
김장철이 ‘18만’을 강조하자 옆에 있던 다른 이가 첨언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17만도 안 되오. 지난 3개월 동안 1만이 넘는 당원들이 당적을 버렸소이다. 당적만 놔둔 채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까지 제한다면 진성(眞誠)당원은 13만 정도요. 열성(熱誠)당원은 8만 정도고.”
충격적인 상황에 리승엽은 물론이고 김장철도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장철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당원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인민들 사이에 파고들어 세력을 넓힌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이오? 서기장이야말로 작금의 상황을 무시한 채 꿈을 꾸고 있는 것이오!”
김장철의 말에 많은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조선 공산당은 망해가는 중인 상황이었다. 많은 당원들이 당적을 버리고, 당원증을 버리고, 당을 떠나고 있었다.
* * *
조선공산당이 쇠락(衰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은 한미 연합군이 한반도를 목표로 진행한 본토진공작전이 이뤄지면서였다. 다시 조선 공산당을 움직이던 박헌양은 스탈린의 명령대로 ‘협력도 반항도 하지 않는다.’라는 작전을 실행했다.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던 스탈린과 박헌양의 판단과 달리 한미 연합군의 작전은 성공가도(成功街道)를 달렸고, 임정이 공산당을 우호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한 박헌양은 대구에서 무력투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구에서 발생한 무력투쟁은 박헌양 자신까지도 죽음으로 몰아넣는 실패로 끝이 났고, ‘대구해방구’에서 벌어진 우익 인사들의 학살 사건이 대대적으로 기사화되면서 조선 공산당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당시 조선 공산당은 ‘무력투쟁 포기, 정당 정치로의 전환’을 선언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줄어든 입지로 인해 1945년에 벌어진 국민선거에서 조선 공산당은 ‘국회의원 당선자 0명’이라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기회는 이번이 다가 아니다!”
‘와싱상담(臥薪嘗膽)’을 선언한 조선 공산당은 절치부심하면서 세력을 다시 넓힐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 기회를 찾은 것만 같았다.
대한민국의 경제 개발이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노동자와 농민 사이로 파고 들어가자!’
전형적인 공산당의 전술을 사용해 움직였지만, 상황은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 친일파들을 단죄하면서 몰수한 토지들을 바탕으로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선언한 것이었다. 토지공개념을 기반으로 한반도와 북해도의 거대한 농지들과 미개척지들이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토지를 얻게 된 농민들은 정부의 절대적인 지지자들로 변해 있었다.
그와 반대로,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만든 인민농장과 협동농장들은 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실패로 끝이 났다.
산업체들로 파고 들은 공산주의자들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탐욕스러운 자본가와 고통받는 노동자의 대립구조’를 이용해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정부가 몇 발자국 앞서서 움직이고 있었다.
최저시급과 그를 기반으로 한 최저일당제도를 만들어 적용했고, 그것을 관리, 감독하기 위한 ‘노동청’이라는 감독기관까지 만들어냈다. 급료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자 정부는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까지 보장했다.
그리고 이 노조가 조선 공산당을 벼랑으로 몰고 간 최대의 공신(功臣)이었다.
정부는 노동자가 노조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면서 그와 동시에 경영권자에게도 자유롭게 해고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물론, 부당해고에 관한 기준도 명시했고, 부당한 해고에 대한 심사를 청원할 수 있었다. 부당해고라는 판결이 나오면 복직도 보장하는 법안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칼날은 ‘노조는 정치성을 가질 수 없다.’라는 법적 조항이었다.
-노조의 구성원은 노동자이다. 노동자는 개인의 자유 의지로 노조에 들어갈 수 있다. 노조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정치성을 표명한다면 이는 노동자의 자유 의지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중대범죄이다. 따라서 노조는 정치성을 가지거나 특정 정당을 지지할 수 없다.
즉,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노조를 구성하면서 공산당 지지를 외치거나 하면 바로 노조를 해체시키고 노동자들을 해고해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만들어진 조항이 ‘복수노조 허용’이었다. 한 사업체에 여러 개의 노조가 만들어질 수 있고, 노동자는 자신의 권익을 가장 잘 지켜 줄 수 있는 노조에 가입하거나 다른 노조로 옮길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었다. 하지만, 진짜 날카로운 칼은 거기에 부속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였다. 복수의 노조가 만들어졌어도 경영자와 협의를 할 수 있는 창구는 단 하나였다. 그리고 이 창구는 전체 노동자의 과반을 차지하는 노조가 차지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사업주와 정부의 입김이 닿는 어용노조가 그 권한을 차지했다.
이렇게 법이 만들어지고 공표가 되면서 산업체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이 대거 철퇴를 맞았다. 설립한 노조에서 공산주의 학습을 시키다가 ‘불법행위’로 적발되면서 대거 검거되거나 해고를 당하면서 퇴출당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한민국의 경제가 성장하고 점점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면서 조선공산당에서 탈당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자신과 가족들의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했고, 조금씩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 더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공산주의를 포기하게 된 것이었다.
상황이 그렇게 변하면서 조선 공산당은 당원이 내는 당비로 버티는 것이 아닌 당의 지원으로 당원이 버티는 형국으로 변해 버렸다. 끝까지 남은 진성 당원, 열성 당원들을 지키기 위해 리승엽은 중국과 소련에게 뻥튀기까지 해가면서 지원비를 받아서 이들의 생계를 해결해야만 했다.
여담으로, 노동조합과 관련된 법안의 발표 기사를 보면서 내용을 확인한 벌레 일당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S그룹 출신 아니랄까봐...”
‘무(無)노조 정책’으로 유명한 S그룹의 일화를 떠올린 것이었다. 반면 벌레 일당의 뒷담화 주인공이 된 정 수석차관은 귀를 후비며 중얼거렸다.
“누가 내 욕을 하는 거지? 너무 많아서 알 수가 없기는 한데….”
투덜거리던 정 수석차관은 신문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것도 내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많을 텐데, 난 사인밖에 안 했다면 믿을까?”
노동법과 노조에 관련된 법안은 정 수석차관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정 수석차관의 부하들, 그리고 놀랍게도 1940년대의 정부 공무원들이 합작해 만들어낸 법안이었다.
정 수석차관과 그의 부하들의 원래 직장이었던 필코마이닝은 원래부터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합작 기업이었고, 정 수석차관 일행들은 각 그룹의 핵심부서에서 촉망받던 인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었기 때문에 노조 문제는 다 한 번씩은 연구했던 경험들이 있었다. 그리고 공무원들 역시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에서 입신양명을 하는 꿈을 품은 인재들이었고.
* * *
리승엽이나 김장철 모두 지금 조선 공산당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는 것은 같았다. 하지만 이 위기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반대였다.
“그렇다고 봉기를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가! 지금 온다고 하는 부대의 병력은 1만2천이 전부일세! 국군은 25만이야! 그 가운데 20만이 육군일세! 1만2천 대 20만! 불가능해!”
“그 25만이 다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지 않소! 1만 2천의 병사들과 우리가 제대로 봉기를 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소이다!”
“저 육군에 가장 흔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트럭일세! 반나절이면 다 몰려올 거야! 그리고 저 20만 가운데 실전 경험을 가진 이들도 부지기수일세! 우리 당원들 가운데 실전 경험이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나?”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우리도 1만 2천이나 오고 있지 않소! 그리고 군 내부에도 우리 조직이 들어가 있소이다!”
“겨우 280명으로 무엇을 도모할 수 있나? 그리고 이건 생각해 봤나? 저 중국에서 여기 조선까지 제일 가까운 곳을 연결해도 200km가 넘어! 적어도 하루 낮, 하루 밤은 꼬박 바다를 지나야 한단 말일세! 국군의 해군이 눈 뜬 장님도 아니고 이걸 그냥 보고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 병력들이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하냔 말이오!”
“그 부분은 중국도 충분히 생각해서 작전을 짤 것이오! 우리는 이곳 조선에서의 일만 충실히 하면 되는 것이오!”
“전국에 퍼진 우리 당원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바로 경찰의 눈에 걸릴 걸세!”
“소규모로 움직이면 되는 일이오! 경찰들이 모조리 감시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고, 그들이 알아챌 때면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일 것이오!”
김장철의 거센 반발에 리승엽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보게. 이번 일이 잘못되면 우리 조선 공산당은 그야말로 끝장나는 거야. 우리는 그동안 모아놓은 무기들의 많은 부분도 상실한 상황일세. 정부의 간교한 술책 때문에 말이지.”
“알고 있소이다.”
리승엽의 지적에 김장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반도를 완전히 손에 넣은 다음 임정이 가장 먼저 발표한 법령들 가운데 하나가 ‘개인의 총기 소유 금지’였다. 이 법안이 발표되면서 경찰과 군에 신고를 하지 않은 총기를 가지고 있다가 적발이 되면 중형(重刑)을 받아야 했다. 덕분에 꽤 많은 공산당원들과 조직폭력배들이 밀수 총기를 가지고 있다가 감옥에 들어가야 했다.
총기를 단속하면서 정부는 ‘교활한’ 수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갖고 있다가 적발되면 중형을 받지만, 자발적으로 신고를 한다면 돈을 주고 구매를 했다는 것이었다.
권총 한 자루에 20kg들이 쌀 한 포대, 소총의 경우에는 40kg들이 쌀 한 포대를 살 돈을 지불하자, 엄청난 양의 밀수 총기들과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조총들이 경찰서와 군부대로 밀려들었다.
그 가운데에는 공산당이 비밀리에 숨겨 둔 무기고를 신고하면서 떼돈을 번 이들-공산당원이었던 이들이 90%였다-도 꽤 있었다.
리승엽은 계속해서 김장철을 설득했다.
“이보시오. 김 동지. 우리는 무기도 부족하고, 병력도 부족하오. 교두보를 만드는 것에 성공한들 그 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겠소? 해방구? 만들자마자 바로 국군에 의해 진압될 것이고, 우리 당원들은 죄다 죽어 나가겠지. 그리고 조선공산당은 끝장날 것이고. 흐루쇼프 서기장도 신중하라고 하지 않았소?”
“교두보만 제대로 만들어지고 병력만 제대로 들어온다면 혁명은 성공할 수 있소이다. 해방구를 통해 인민들은 저 자본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얄팍한 꿈에서 깨어날 것이오.”
“계속 말하지만 병력도, 무장도 부족하오.”
“혁명의 기틀만 만들어지면 전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지원할 것이오! 저 ‘국제여단’의 예를 잊었소?”
스페인 내전 당시 사회주의 정권을 지지하면서 참전한 이들이 모인 ‘국제여단’이 나오자 리승엽은 고개를 저었다.
“결국은 모두 실패했소. 서기장으로서 나는 이번 작전에 조선 공산당은….”
“서기장!”
리승엽이 끝까지 거부를 하자, 김장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리승엽의 말을 끊은 김장철은 목소리를 높였다.
“서기장! 당신은 지금 반동행위를 하고 있다! 공산당의 숙원인 적화혁명(赤化革命)이 코앞에 있는데 계속해서 패배주의적인 발언만 하며 다른 동지들의 혁명의지를 업신여기고 있다! 내가 가진 권한으로 반동행위를 한 서기장의 제명을 요청한다! 찬성하는 동지들은 손을 드시오!”
김장철의 외침에 회의실에 모인 이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서기장의 제명은 확정되었다! 끌고 가라! 비밀이 새어 나갈 수 있으니 제대로 감금하도록!”
“이보게! 김 동지!”
전광석화와 같은 일 처리를 통해 제명을 당한 리승엽은 건장한 청년당원들에게 붙들려 끌려 나갔다.
리승엽이 끌려 나간 다음 김장철은 다른 간부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동지 여러분! 중국공산당이 우리를 돕겠다고 나섰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오!”
이로써, 기사회생(起死回生)의 한 방을 노리며 조선 공산당은 모든 판돈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