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8
398화 제1차 국가 개발 5개년 계획. (1)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기 일주일 전, 리숭민은 미국으로 출국했다. 여의도 비행기지에 도착한 특별기를 오르기 직전, 리숭민은 배웅을 나온 이병석과 얼마 안 남은 지지자들과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그동안 수고했네.”
“꼭 다시 오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겠지.”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눈 리숭민은 이병석과 마지막 악수를 나누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자네도 미국으로 오지 그러나?”
“…조심히 가십시오.”
거절의 뜻을 보이는 이병석의 대답에 리숭민은 가볍게 악수를 하고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일단의 사람들이 따로 모여 리숭민의 출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 시원섭섭하군.”
고 제독의 평가에 옆에 있던 정 수석차관이 말을 받았다.
“걸림돌 하나를 치웠을 뿐입니다.”
“과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사람들일세. 저렇게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하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
“모든 권력을 혼자서 독점하고 싶은 이와 이미 모든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이들, 그리고 외부의 인지도는 가지고 있지만 뿌리가 없는 이들 사이에 최대공약수를 뽑는 일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로서로 조금씩만 양보를 한다면… 그렇다면 좀 더 나은 역사를 써 가지 않았을까?”
“제독님은 이상주의자로군요.”
정 수석차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말은 동화에나 나오는 말입니다. 제독님, 만약 제독님의 말처럼 하게 되었다면 저분들은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그 반대급부로 21세기에서 온 우리들이 희생양이 되었을 겁니다.”
“그건 좀 비약 아닌가?”
정 수석차관의 말에 고 제독의 얼굴과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정 수석차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까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정의 사람들이 뉴욕에 오고 난 이후에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군을 함부로 대한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네?”
“왜 그랬을까요?”
“전력이 막강해서?”
“그 막강한 전력을 이루는 병사들이 무서워서입니다.”
“응?”
“그 선상 반란이 있고 난 다음부터 제독님은 물론이고 함장들과 고급 장교들이 그들만의 독단으로 무엇을 행한 적이 있습니까?”
“…없었지?”
“만약, 타임워프를 했다는 것이 처음 확인되었을 때처럼 제독님이 모든 권한을 행사했다면 우리는 임정의, 아니면 리숭민이나 또 다른 권력자들의 소모품이 되었을 겁니다. 임정이나 권력자들은 제독님과 고급장교들만 설득시키면 되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초급 장교들이나 부사관, 사병들의 의사는 상관없이 말이지요. 안 그랬을 것 같습니까?”
“… 그건 장담 못하겠군.”
“제독님과 고급장교들은 ‘조국과 민족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리고 명령을 받는 것에 익숙한 이들입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죽어라.’ 명령을 내리면 부하들은 그 명령을 따라야한다는 생각이 이미 뼛속까지 박힌 이들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임정은 그런 ‘조국과 민족’을 대변하는 존재고 말입니다. 만약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초급장교들과 부사관, 사병들에게 명령만 내리면 되는 상황이었다면 임정은 마음 편하게 9전단을 부렸을 것입니다.”
고 제독은 심각한 얼굴로 정 수석차관의 말을 곱씹었다. 한참동안 고심을 하던 고 제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과도한 비약(飛躍)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짚이는 곳이 너무나 많군.”
“제독님이나 고급 지휘관들이 초급 장교들과 부사관, 사병들을 소모품으로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정도 군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초급 장교들과 부사관, 사병들 역시 동의를 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협력을 했고, 확실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고 말입니다.”
“그렇기는 하지….”
정 수석차관의 말에 고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아프리카에서, 서울에서, 일본 본토에서 그리고 기타 여러 전선과 전투에서 만들어 낸 어마어마한 전훈(戰勳)들의 대부분은 밑에서부터 기획해서 올라온 것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 제독은 그대로 승복하기가 힘이 들었다.
“하지만 말일세.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희생을 해야….”
“제독님 젊었을 때, ‘헬반도’라던가 ‘헬조센’이라던가 하는 말이 많았었죠?”
“그렇지.”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런 말조차 안 합니다. 그렇게 욕을 하는 것도 정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정이 없으면 그런 욕도 안 해요. 조국? 자신들의 자리보전을 위해서라면 남한이 8조각, 9조각으로 갈라져도 상관하지 않고, 남녀 둘로 갈려서 으르렁거려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정치인들의 조국, 죽어라 일을 해봤자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조국이 타임워프 전의 조국이었습니다.”
“그래도 조국일세.”
“2010년대에도 이미 한 해에 몇 만의 국민들이 국적을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30대 후반의 중장년층들이 가족을 이끌고 이민을 가는 상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타임워프 직전의 상황은 어땠는지 아십니까?”
“…”
“제가 일하고 있던 S그룹이나 다른 30대 그룹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 30대 이상의 비율을 한참 앞섰습니다. 그 대단한 조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이들이 조국을 버렸단 말입니다. 바로 고 제독님과 고급장교들이 명령을 내리는 그 세대들이 말입니다.”
정 수석차과의 말에 고 제독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그, 그건 알지 못했네.”
“어학연수네, 관광이네하고 한국을 벗어난 젊은이들이 미국의 모병소의 문을 두들기고, 프랑스 외인부대에 지원서를 들이밀었습니다. 아니면 워킹홀리데이를 핑계로 나가 허드렛일을 하면서 비자를 받을 기회만 노리거나 말입니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언론이나 정부에서 단 한마디라도 나온 적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제독님이 그렇게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일민족, 순수민족을 울부짖지만 정작 인적자원이 모자라 다문화가정의 자녀들까지 군대에 입영시킨 것이 오래전입니다. 필요할 때만 외치는 민족이라면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
정 수석차관의 말에 고 제독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고 제독을 바라보며 정 수석차관은 말을 마무리 지었다.
“제독님이 꿈꾸시는 조국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저는 저와 제 친구들이 살아가기에 편한 한국을 만들 생각입니다. 누군가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의 대한민국 말입니다.”
어느새 비행기는 이륙을 했고, 말을 끝낸 정 수석차관은 몸을 돌려 비행장을 떠났다. 저 멀리 대기하고 있는 지프차로 걸어가는 정 수석차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고 제독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세상이 많이 변했었구나.”
* * *
초대 대통령과 초대 국회의원들의 취임식이 있기 전 며칠 동안. 행정부는 바쁘게 움직였다.
“행사 준비를 철저히 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를 철저히 하고 위험지역을 중점 감시하도록!”
“취임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재가를 받아야 할 정책들에 대한 준비에 만전을 기해!”
정 수석차관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돌아다니며 채근을 해댔고, 그에 따라 관계부처들은 밤을 꼬박 새워 가며 근무를 해야 했다.
삐톡!
“응? 웬 톡이….”
사흘 동안 이어진 야근으로 인해 잔뜩 피곤해진 얼굴을 한 채 국방부 건물로 들어서던 창기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알람에 고개를 갸웃하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 * *
전쟁이 끝나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서 21세기 출신들은 공통적인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포기할 수가 없다!”
자신과 한 몸과도 같았던 스마트 기기들을 포기할 수가 없던 21세기 출신들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았다. 필사적인 궁리 끝에, 그들은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국군의 경우, 21세기 한국군의 통신체계인 스파이더 네트워크 장비를 뜯어내 국지적인 인터넷망을 설치했다. 그 결과, 국방부 건물과 육해공 3군의 본부건물 내부에서는 느리지만 와이파이를 구동시킬 수 있었다. 한편 구축함들은 내부 네트워크를 이용해 그럭저럭 쓸 만한 환경을 유지했고, 한반도는 21세기와 비교해도 꿇림이 없는 최강의 네트워크 환경-한반도 함 내부 한정이지만-을 자랑했다.
정 수석차관과 그의 부하들이 있는 행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필리핀에 도착하면 사용하려고 준비했던 자재들을 꺼내 행정부 건물에 내부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네트워크 시스템을 가장 먼저 구축한 이들은 H조선과 KAI의 엔지니어들이었다. 전쟁이 진행 중일 때부터 그들은 자신들의 컴퓨터들을 서로 연결해 네트워크 시스템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괴물 같았던 이들은….
“괴수들한테 컴퓨터를 보여줬을 때부터 예상은 했었지만….”
성 부장은 눈앞에 있는 네트워크 장비들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쟁쟁한 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성 부장과 그 부하들의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보고는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초기에는 진공관으로 그리고 드디어 출시되기 시작한 트랜지스터들을 이용해 초기형 컴퓨터와 네트워크 장비들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덩치는 빌딩 한 층을 차지할 정도인데 성능은 자네들이 가지고 있는 그 손바닥만 한 놈들도 못 쫓아가고 있으니….”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괴수들을 보며 성 부장은 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단순 계산 속도만 따지면 최신 스마트폰하고도 다이다이 뜨는 괴물들을 만들어 냈으면서 무슨!’
그리고 그들의 결과물을 본 미국 정부와 미 국방부의 반응은 간단명료했다.
“Shut the fuck up, and take my money!”
* * *
어쨌거나 톡이 울리자 창기는 스마트폰을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응? 단톡이네?”
-주의! 주의! 주의! 벌레와 빨갱이 붙었음. 물리면 약도 없다!
내용을 확인한 창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거 때도 잠잠하던 새끼들이 무슨 약 처먹었나?”
사무실로 올라온 창기는 부하에게 상황을 물었다.
“상황은?”
“진돗개 둘입니다.”
“그 정도면 아직은 괜찮네. 왜 붙은 거야?”
“국가문제 때문에….”
“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그 국가?”
“예.”
부하의 대답에 창기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하이고야.”
‘친일파 의혹이 있는 이의 작품을 국가로 쓸 수 없다.’라는 의견으로 인해 새로운 국가를 결정하기 위한 공모전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아픈 상황이었지만 창기는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벌레와 빨갱이가 있는 곳을 찾았다.
벌레와 빨갱이는 휴게실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고, 21세기 출신들은 물론이고 광복군까지 둘의 서슬에 눌려 멀찌감치 떨어져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창기는 다시 한번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거야 원….”
하지만 저러고 있어 봤자 좋을 것도 없었기 때문에 창기는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새끼들아! 아침부터 뭔 헛짓들이야?”
“뭐냐? 넌?”
“일들 안 할 거야? 여기서 시간 죽이고 있으면 야근 수당 받을 때 좋은 말 나오겠다?”
“저 새끼가 뻘 짓을 하려고 하니까 문제지!”
벌레의 말에 빨갱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왜 뻘 짓이야!”
“‘임을 따르는 노래’를 국가로 지정하자고? 썅! 차라리 ‘아름다운 산하’가 낫겠다!”
“둘이 비교가 되냐!”
“왜 안 되는데!”
“내러티브가 다르잖아, 내러티브가!”
“뭐가 달라? 둘 다 독재에 항거하는 노래인데! 오히려 그렇게 따지면 ‘아름다운 산하’가 더욱 국가에 어울린다!”
“독재에 항거한 이들을 추모한 곡이야! 독재에 항거해 죽은 이들을 위한 노래란 말이다!”
“‘아름다운 산하’는 뭐가 다른데? 이쪽은 한 개인이 살아 있는 권력에 저항해 만든 노래야! 한 개인이! ‘임을 따르는 노래’를 만든 이들은 동지도 있었고, 방패가 되어 주고 은신처가 되어 줄 이도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산하’는 한 개인이 그 모든 압제를 홀로 받아야만 했어! 국가의 기본은 국민 개인이야! ‘앞서 나간 이를 모든 이가 따르는’ 것은 전체주의야! ‘너와 나’ 개인이 중심이 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다!”
둘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옆에서 둘의 설전을 보고 있던 창기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난 도대체 몇 년 동안이나 이 말싸움을 봐야 하는 거지….”
회귀 전에도 둘이 싸움을 벌이는 단골 주제였던 까닭에 창기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였다. 결국, 참다못한 창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고! 그냥 둘 다 제출 해버려! 높으신 양반들이 결정하거나 아니면 국민투표로 결정하게!”
결과적으로 둘의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다. 두 노래 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너무 생경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원래의 애국가 가사는 살린 상황에서 21세기 사람들이 아는 곡이 아닌 다른 곡이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