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
386화 정쟁(政爭)이라는 이름의 전쟁. (1)
유럽 전선이 예상보다 빨리 종결되면서 한반도의 정세도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국민투표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해지기 위해서는 경쟁 세력의 힘을 1%라도 줄여야 합니다.”
“그래야겠지.”
“적어도 이 땅의 새로운 세대들이 전면에 나설 때까지 기득권들을 억제해야 합니다. 기득권들이 힘을 얻으면 국호(國號)만 공화국으로 바뀐 조선이 존재할 뿐입니다.”
“인정하네. 그리고 동의하고. 최선을 다해보세.”
주석과 임정의 각료들, 그리고 임시 의정원의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정 수석차관은 폭주(暴注)에 가까울 정도로 한반도에 사는 이들을 몰아붙였다.
정 수석차관의 첫 번째 표적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이었다.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날을 기점으로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일본인 지주들은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모든 것을 빼앗겼다.
“지금 즉시 조선을 떠나라.”
“가산을 정리할 시간이….”
“1가구당 조선 엔으로 1만 엔까지의 현금, 귀금속은 용인하겠다. 그것만 가지고 꺼져.”
“이보시오!”
“그냥 맨몸으로 나가게 해줄까?”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발끝으로 조선인들을 부리며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즐기던 일본인들은 1만 엔 상당의 귀금속을 몸에 지닌 채 일본 본토로 쫓겨나야만 했다.
“1만 엔?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닌가?”
“총독부 공무원 2년 연봉 조금 넘으니까, 어떻게 보면 많은 돈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로써 2가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탐욕에 찌든 무력집단.’이라는 편견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꽤 긴 시간이 지난 이후에 튀어나올 징징거림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흠, 그렇군….”
일본인 지주들과 그 가족들을 추방하는 것과 달리 몇몇 일본인들은 한국인으로 귀화하도록 집요한 설득 과정이 벌어졌다.
설득의 대상은 몇 안 되는 공업시설의 기술자들이었다.
“좋은 결과만 나온다면 급여도 인상이 될 것이고, 한국인들과 법적 차별도 없을 것이다.”
“주택이 필요하다면 주택도 싸게 불하(拂下)를 받게 해주겠다.”
임시정부의 회유책을 통해 적지 않은 일본인 기술자들이 한국인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포섭의 대상은 한반도 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만이 아니었다.
일본 본토에 거주하는 과학자, 고급 기술자, 엔지니어들 가운데서도 전범 기업들과 연관이 되지 않은 이들에게도 포섭의 손길을 뻗었다.
이 가운데에는 훗날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나 전자 회사의 창업주들도 있었는데, 정 수석차관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혼다나 토요타, 소니를 한국에서 창업하게 만드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자동차나 전자 관련 기술이 전무한 현재 상황에서 미국으로 인재를 보내 키운 다음 다시 써먹을 때까지의 공백을 메울 인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즉, 그들이 만들 회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지만 그들의 머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처음 10년은 공백을 메울 존재로, 그 다음 10년은 경험을 알려 줄 존재로, 그 다음 10년은 강력한 경쟁자로 반드시 필요합니다.”
임시 행정명령으로 반포된 ‘국적 취득법’에 따라 그들은 3가지 방법으로 한국식 성씨를 만들어 개명을 했는데 하나는 ‘타나카, 나카무라’ 등과 같은 자신들의 성씨를 원래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중, 중촌’처럼 한국식 음독으로 바꾸는 것, 마지막 하나는 완전한 한국식 성씨로 창씨개명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안은 법적으로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었기 때문에 선택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고, 귀화 일본인 대부분은 두 번째나 세 번째 방법으로 성을 바꾸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너무 느슨한 것 아닌가?”
“한국인은 한국인다운 성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네.”
‘국적 취득법’을 처음 내놨을 때, ‘창씨(創氏)’항목을 본 임정의 많은 이들이 조금 더 강력한 방법을 선택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의견에 강하게 반대를 한 것은 21세기 출신들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지 대한민족이 아닙니다.”
“남이 하면 불륜(不倫)이고 내가 하면 비련(悲戀)입니까? 일본이 우리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한 것을 욕해서 뭐할 겁니까?”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것에 성씨가 좌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강해진 것이 모두 창씨개명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21세기 출신들의 강한 반발로 인해 임정이 공표한 ‘국적 취득법’의 창씨 부분은 상당히 느슨해졌다. 하지만 국적 취득은 영주권과, 주민권으로 나뉘어 더욱 까다로워졌다.
훗날,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는 이들의 창씨는 크게 둘로 나뉘었는데, 서양이나 제3 세계 지역 출신들은 첫 번째 방안을 주로 사용했고, 중국과 일본, 기타 아시아 출신들은 두 번째를 주로 사용했다.
이에 대해 몇몇 사회학자들은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서양우월주의의 산물이다.’라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 * *
일본인 지주들만큼이나 혹독하게 당한 이들은 친일파들과 한국인 지주들이었다.
임시정부의 행정 명령으로 만들어진 ‘친일파 처벌 특별법’과 ‘친일파 처벌 특별 위원회’는 매섭게 친일파들과 지주들을 몰아쳤다.
“내가 친일을 했다는 증거를 대시오!”
“억울하다! 내 죄가 있다면 지주라는 것뿐이다!”
친일파 처벌 위원회에 끌려 온 많은 지주들과 친일파들이 무죄를 주장했지만. ‘친특위’에게는 강력한 무기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첫째는 여러 신문사들에서 나온 기사들이었다. 누가 일본 총독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표창을 받았다는 기사들부터 시작해 일본 정부에 얼마를 헌납했다는 기사들이었다.
“자… 증거가 있냐고 물으셨소?”
“이건… 이건…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어쩔 수 없다? 아직도 병상에서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는 이육사와 윤동주 선생 앞에서 그 말 한 번 해봐!”
“그 분들에게는 면목이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내게 죄가 있다면 식민지에서 유명해졌다는 것뿐이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들에게 친특위는 두 번째 무기들을 꺼내 들었다.
친특위가 준비한 두 번째이자 최강의 무기는 조선총독부를 점령하면서 확보한 각종 사찰 보고서들이었다. 종교, 경제, 문화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지도층이라 불리는 이들의 행적에 관한 사찰 보고서들이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매우 적극적으로 협력하였고, 때로는 한발 먼저 앞서 의견을 제시하는 등 조선인들의 귀감으로 삼아야 함.’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쩔 수 없었다?”
“…”
친특위의 심문관이 내놓은 사찰 보고서들을 본 친일파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물적 증거는 물론이고 인적 증거도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버티는 친일파들도 적지 않았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파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친특위는 꼼수를 부렸다. 친특위가 부린 꼼수는 ‘공개조사’였다. 모든 심문 과정은 철저하게 공개가 되었고, 조사실에는 라디오 방송국은 물론이고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몰려들어 심문 과정을 기록해 기사로 실었다.
“재판 가운데 제일 무서운 것이 인민재판이지.”
정 수석차관의 말마따나 라디오 방송과 신문기사를 보고 분노한 국민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서울의 종로 거리를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친일파들을 극형에 처하라.’라는 문구를 휘갈겨 쓴 플래카드를 든 민중들이 몰려나와 데모를 했고, 친일파들의 집에는 돌과 각종 오물들이 날아들었다.
결국, 대부분의 친일파들은 굴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버틴 이들도 있었는데 그 일례가 김설란이었다.
“나는 비록 조선에서 조선인으로 태어났지만 모든 면에서 일본인이다. 일본인 아마키 유츠란으로 일본에 충성을 한 것이 무슨 죄란 말이냐!”
“이화여전 교장 김설란은 무엇이오?”
“아마키 유츠란으로서 조선의 통치를 위해 김설란이라는 이름을 썼을 뿐이다!”
아예 일본어로 떠드는 김설란의 궤변에 심문관은 펜을 내려놓았다.
“잠시 5분만 쉽시다.”
휴식을 요청한 심문관은 다른 심문관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누가 나 대신에 저 년을 맡아주시오! 안 그러면 내 손으로 저 년을 죽일 것 같아 두렵소이다!”
하지만 그의 호소에 나서는 심문관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이런 사정은 주석을 비롯한 임정의 각료들에게도 알려졌다.
“이런 능지처참을 해도 모자랄 년을 봤나!”
“그냥 죽여 버리십시다!”
이야기를 들은 각료들이 모두 분통을 터뜨렸지만, 정 수석차관이 그들을 말리고 나섰다.
“참으시지요. 그렇게 처리하면 지금 당장 속은 시원할지 모르나 이후 경쟁자들이 비판할 거리를 주게 됩니다.”
“그렇다고 저걸 그냥 넘어가자는 것인가?”
주석의 물음에 정 수석차관은 비릿하게 웃었다.
“일본인이라니 일본인으로 대접해줘야지요. 우리 동포 여성들을 정신대로 만드는 일에 적극 협조한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니 전쟁범죄자로 기소를 하면 됩니다.”
“전쟁범죄자?”
“예.”
정 수석차관의 제안에 주석을 비롯한 임정의 각료들 역시 비릿하게 웃기 시작했다.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범죄자 재판은 혹독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설란은 친일파로 처벌이 받는 것이 아니라 부역행위자이자 전범으로 국제재판소에 피소되었다.
‘민간여성 성노예 착취 범죄’는 가장 가혹하게 판결이 나는 범죄였고, 결국 김설란은 1급 유죄를 인정받아 교수형에 처해졌다.
* * *
친특위의 조사가 끝나고 친일파들은 ‘친일파 처벌 특별법’에 따라 처벌을 받기 시작했다.
-본 특별법의 친일 행위는 조선제국의 강제 병합과정과 그 이후 벌어진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에 적극협력한 행위로 정의한다.
-친일행위라 함은 식민통치를 위한 행정에 적극 협력한 것. 독립운동가를 고변한 것, 일본제국을 대신해 동포의 재산을 침탈한 것, 일본제국의 식민통치를 선전하기 위한 모든 문화, 예술, 활동 등. 일본제국의 식민통치를 이롭게 한 모든 행위를 말한다.
-친일파의 범위는 20세 이상은 친일 행위 당사자로 인정한다. 이는 선대의 친일 행위를 확실히 인지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친일 행위를 통해 얻은 유형무형의 이득을 충분히 누렸기 때문이다.
-을사5적을 비롯한 3급 이상의 친일행위자들은 모든 재산을 국가가 몰수한다.
-3급 이하 5급까지의 친일 행위자들 역시 등급에 따라 일정 비율로 재산을 몰수한다. 이는 그들이 조성한 재산이 친일 행위로 인한 대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등급의 친일 행위자들은 재산 몰수 외에 등급에 따라 징역형과 금고형을 구형한다.
-모든 등급의 친일행위 당사자와 그의 후대로서 8세 이상의 남녀는 사법, 행정, 교육 등에 진출할 자격을 박탈한다. 입법 분야에서 선거권은 부여하나 피선거권은 박탈한다.
-친일 행위 당사자와 그 후대에 관한 처벌은 연좌제로 볼 수 있으나 친일 행위의 특별성과 그 행위로 동포들이 입은 피해를 고려해 친일파 특별법에 한해 한정적으로 인정한다.
-문학을 비롯해 문화 예술계에서 활동한 친일 행위자들의 경우, 교과서에 기록되어 후대의 동포들이 그 친일 행위를 알게 할 것이다. 문학 예술가의 경우, 기존에 판매된 책 이외의 추가로 인쇄, 판매를 금지한다. 연극이나 무용, 영화 등의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경우 모든 공연을 금지한다. 또한 이들이 교육계에 투신하거나 후진을 양성하는 것을 금지한다.
-친일 행위 당사자, 또는 그 후대가 재단 법인을 만든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분야의 재단 법인은 창설을 금지한다.
-교육, 장학
-문화예술
(하략)
신문을 통해 친일파 특별법의 내용을 확인한 지식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사회에서 거세를 시켜 버리는군.”
“통쾌하기는 한데 이러다가 독재정권이 들어서는 것은 아닌지….”
“길거리의 동포들은 아주 환영을 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