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376화 (376/464)

# 376

376화 에펠탑 (5)

콜티츠의 제안이 도착했을 때, 자리에 참석했던 영국군 지휘관들은 바로 본국으로 연락을 했다. 연락을 받은 육군의 최고지휘부는 바로 처칠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처칠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내각을 소집해 바로 명령을 내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에펠탑의 핵폭탄은 우리 영국이 손에 넣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지만 미국이 쉽게 내줄 리가….”

“쉽게 내주지 않는다면 강탈을 해서라도 무조건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오! 그 다음에 적당히 사과하면서 협상을 하면 돼! 미국이 가진 것은 그렇다고 쳐도 독일도 가지고 있는데 아직 우리만 없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제일 급선무야!”

‘선 강탈, 후 협상’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각료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핵폭탄이 무슨 전함도 아니고….’

‘저 급한 성격이 또 사고를 치려하는군.’

1차 대전이 벌어졌을 때, 해군성 장관이던 처칠은 터키가 주문한 전함을 압수했던 일이 있었다. 전략무기인 전함을 적국이 될 확률이 높은 나라에 넘김으로써 전력을 분산시킬 위험을 피하자는 생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친독과 친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오스만 제국이 확실한 적이 되어 버리고 26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을 할애해야 했으며 ‘갈리폴리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강탈은 안 됩니다! 미국이 우리 영국과 적이 될 리는 없겠지만, 미국은 지금까지와 같은 막대한 지원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세는 이미 기울었습니다! 강탈과 같은 행위는 향후 우리 영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가 않습니다!”

“이미 미국의 핵개발에 참여했던 우리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돌아와 핵폭탄을 개발 중입니다! 괜히 미국과 트러블을 일으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처칠의 말에 각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강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처칠도 할 말이 있었다.

“지금 파리가 수복되고 있소! 파리가 수복되면 그 다음은 바로 베네룩스고, 베를린이란 말이오! 미군들이 베를린까지 가기 전에 우리는 베를린을 한 방에 날릴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이후 정국에서 우리 영국의 이익을 지킬 방법이 없소! 독자적인 핵개발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상,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폭탄을 얻을 기회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법이오!”

“총리의 뜻이 무엇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강탈은 절대 안 됩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다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고 나서자 결국 처칠도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그럼 여러분들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여러분들의 뜻을 따르겠소.”

“감사합니다.”

회의를 끝내고 나온 처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도 이 자리에 머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군.”

드골의 자유 프랑스 정부도 발칵 뒤집힌 것은 마찬가지였다. 파리에서 전투를 벌이던 르클레르가 연락을 해서 독일과 미국의 야합(?)에 대해 성토를 하면서 에펠탑의 핵폭탄까지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파리가 폐허로 변할 뻔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파리가 수복되면 바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할 준비를 하고 있던 드골은 목소리를 높였다.

“앤드루스 사령관을 만나야 한다!”

영국과 자유 프랑스의 대응으로 인해 발칵 뒤집어진 것은 앤드루스의 유럽 주둔 미 육군 사령부였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각료들과 드골이 밀고 들어와 에펠탑의 핵폭탄에 대해 따지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정확한 상황은 보고되지 않았다. 정확한 상황이 들어오는 대로 동맹국에게 알려 주겠다.’

원론적이지만 두루뭉술한 대답과 함께 영국 각료들과 드골을 위시로 한 자유 프랑스의 각료들을 돌려보낸 앤드루스는 부관을 돌아봤다.

“커피 한잔 갖다 주겠나?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을 자기에는 틀려먹은 것 같군.”

“Yes, sir.”

커피를 가지고 오기 위해 부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앤드루스는 책상 위의 시계를 바라봤다. 파리에 돌입을 준비하던 워커와 리지웨이가 사후 보고를 한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그 몇 시간 동안 정보를 얻어든 영국과 자유프랑스 정부의 사람들이 몰려 들어온 것이었다.

훗날, 앤드루스의 회고록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인들이 보여준 신속함은 내 생애 두 번 다시 겪어 보지 못한 신속함이었다.’라고 적을 정도로 빠른 대응이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를 단번에 바꿀 정도로 신속한 대응을 겪은 앤드루스는 에펠탑에서 노획한 핵폭탄에 ‘파리스의 사과’라는 별명을 붙였다. 세 여신이 충돌하게 만들고, 뒤이어 트로이 전쟁까지 벌어지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던 그 황금사과가 아주 잘 어울리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령관 각하. 워커 사령관의 전화입니다.”

부관의 보고에 앤드루스는 수화기로 손을 뻗으며 부관을 바라봤다.

“커피는? 진하게 한잔 가져오도록.”

“Yes, sir.”

워커와의 통화를 끝낸 앤드루스는 부관을 불렀다.

“메모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부관이 메모 수첩과 연필을 들고 의자에 앉자, 앤드루스는 한 문장씩 말하기 시작했다.

“수신. 조지 C. 마셜 육군 참모총장. 발신....”

*       *       *

앤드루스가 보낸 보고서는 바로 대서양 해저 케이블을 타고 워싱턴에 도착했다.

“참모총장 각하. 앤드루스 사령관이 보낸 비상 전문입니다.”

“오늘은 2시간 이상의 시간외 근무를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을 했는데 말이지. 후우~.”

한숨을 내쉬던 마셜은 부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줘 보게.”

부관에게서 서류를 받아든 마셜은 내용을 읽어 가면서 점점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은 마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히틀러가 아주 똥을 싸 놨군. 하아~.”

다시 한번 전문을 읽은 마셜은 수화기를 들었다.

“백악관과 연결하도록.”

*       *       *

“허어….”

한숨과 함께 전문을 내려놓은 루즈벨트는 돋보기를 벗어 손에 든 채 회의실에 모인 이들을 돌아봤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프랑스는 무시해도 될 것 같지만, 영국은 반드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 들 것입니다.”

“동감입니다. 영국의 인력과 기술이라면 얼마 안 가 독자적인 개발을 할 것입니다. 그걸 생각한다면 적당히 생색을 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전쟁 이후를 생각한다면 영국에 양보를 하면서 적당히 생색을 내는 것이 최고기는 합니다.”

“그런가….”

각료들의 대답을 들으며 루즈벨트는 각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많이 부드러워졌군. 이것도 한국인들의 여파인가?’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핵 권력의 독점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 각료들의 반응이 매우 부드러워졌기 때문이었다.

-막기는 막되, 무조건 강제하지는 않는다. 단, ‘확실한’ 내 편에 한해서만.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만.”

“노획한 핵폭탄의 안전을 100% 보장할 수 없다는 추가 보고가 올라온 만큼, 확실한 기술진들이 필요합니다. 프랑스에는 그런 이들이 없지 않습니까? 이 부분을 설득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료들의 조언을 들은 루즈벨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칠의 성격으로는 도둑질도 불사할 것이 확실하니, 차라리 생색을 내는 것이 더욱 나을지도 모르지. 좋소! 그런 방향으로 합시다.”

백악관에서 그런 결론이 나왔지만 모두가 환영을 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는 계속해서 반발을 했다.

“과학자들과 기술진들이 없다니! 그것은 우리 프랑스에 대한 모욕이오! 퀴리 부부를 잊었는가! 그들의 제자들이 있는데 이 무슨 헛소리를!”

“그들을 지금 자유 프랑스 정부가 데리고 있소?”

미국의 지적에 자유 프랑스 정부의 대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말한 학자와 기술자들 대부분은 아직 프랑스 본토에 있었고, 자유 프랑스 정부는 아직 본토에 돌아가지 못한 상황이었다.

결국, 독일이 에펠탑에 남기고 간 핵폭탄은 영국의 차지가 되었다. 칼레 항구에서 핵폭탄이 영국 수송선에 실릴 때, 미군은 에펠탑에서 같이 확보한 청사진의 사본들과 함께 주의를 주었다.

“에펠탑에서 폭탄을 봉인한 이들의 보고에 따르면 핵폭탄의 본체 안에는 트랩으로 보이는 장치가 존재한다고 하오. 언제 활성화될지 모르는 상황이니 만약 해체를 한다면 최대한 민간인들이 없는 곳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경고가 있었소.”

“봉인한 이들이 누구요?”

“한국군과 조립을 담당하던 독일 엔지니어들.”

“알았소.”

미군의 경고를 들은 영국군은 바로 상부에 보고를 했다. 보고를 받은 담당자들은 즉시 초고상층부에 보고를 했고, 처칠은 각료들과 함께 의견을 교환했다.

“그래서 그 경고를 누가 했다고?”

“한국군들과 독일 엔지니어들입니다.”

대답을 들은 각료들의 표정은 순간 미묘해졌다.

“흐음… 한국이라….”

“그 미래에서 왔다고 소문난?”

“소문일 뿐인데 신뢰할 수 있겠소?”

“그들의 함선을 실제로 봤던 이들은 믿어야한다고 말을 합니다만… 글쎄요. 저는 차라리 미국의 위장 공작이라는 소문이 더 신빙성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 레이저 무기도 보여 주지 않았소이까? 믿어봅시다.”

“차라리 마술사의 마술을 믿거나 신문에 실린 ‘오늘의 운세’를 믿는 것이 더 낫지 않겠소?”

‘한국군에 대한 신뢰’를 주제로 설전이 벌어지자 처칠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만! 한국군의 신뢰도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해도 될 것이오. 지금 중요한 것은 트랩의 문제라고 생각하오.”

처칠의 지적에 공군 장성이 대답했다.

“공군에도 유능한 폭탄 해체반원들이 있습니다. 설계도도 있는 이상 해체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안전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적당한 장소를 확보하는 것이 선결입니다.”

“맞습니다.”

“그럼 적당한 곳을 추천해 보시오.”

처칠의 말에 각료들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곳을 이야기했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장소들은 모두 먼 곳에 있군. 안전도 생각해야 하지만 시간도 생각을 해야 하오.”

처칠이 지적을 했지만 각료들이 내놓는 장소는 대서양이나 태평양의 무인도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들이 있는 것인가! 기껏 손에 들어온 핵폭탄을 전쟁이 끝난 다음에나 써먹을 생각들인가! 아니, 사용을 하건 말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손에 쥐고 있어야 앞으로의 행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 안 하는 거요! 다시 검토를 해서 가지고 오시오!”

처칠의 일갈에 각료들은 다시 자료들을 뒤져야 했다. 그리고 나름 최적의 장소를 찾아내 처칠에게 보고했다.

“스카파 플로우(Scapa Flow)?”

“예. 스카파 플로우입니다. 만의 한복판에서 작업을 한다면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주변에 끼칠 피해가 가장 적습니다. 또한 주변 지형 덕에 외부 공격에 대한 안전도 확보할 수 있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사히 해체가 끝난다면 최대한 빨리 연구소에 보낼 수 있습니다.”

담당자의 설명을 들은 처칠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서류에 서명을 했다.

“실행하시오.”

“감사합니다.”

이로써 독일이 만든 핵폭탄은 스카파 플로우로 향하게 되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살아남았던 독일 해군의 전함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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