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374화 (374/464)

# 374

374화 에펠탑 (3)

-도착 5분전.

헤드셋을 통해 기장의 알림을 들은 벌레는 같이 탄 부하들에게 손을 쫙 펴 보이며 소리를 질렀다.

“5분 전! 전원 준비!”

“5분 전! 전원 준비!”

벌레의 외침에 복창을 한 부하들은 방독면을 쓰고 상태를 점검했다. 방독면 점검을 끝낸 부하들은 헤드셋을 다시 둘러쓰고는 NBC방호복의 두건을 뒤집어쓴 다음 단단히 밀착시켰다. 마지막으로 철모를 다시 쓰고 철모에 달린 야간투시경의 상태까지 확인한 부하들은 엄지손가락을 위로 들어 올리며 크게 외쳤다.

“이상 무! 준비 완료!”

“좋아! 돌입 준비!”

크게 외친 벌레는 성대 마이크의 스위치를누르고는 명령을 전파했다.

“돌입을 준비한다. 이상.”

벌레의 명령이 떨어지자 헬리콥터들의 움직임이 바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저격조. 위치 잡았다. 이상.

저격조를 태운 3대의 헬리콥터들이 에펠탑을 중심으로 반지름 500m의 원을 만들어 탑의 3면을 장악했다.

-저격1조. 시야 좋다. 이상.

-저격2조. 시야 좋다. 이상.

-저격3조. 시야 좋다. 이상.

저격조의 보고를 받으며 벌레는 지상을 살폈다. 별다른 총성이나 적대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지상을 살피던 벌레는 망원경을 들어 연합군이 있는 지역을 살폈다.

전조등을 밝힌 하프트랙들과 트럭들이 맹렬하게 달려오는 것을 확인한 벌레는 성대 마이크의 스위치를 눌러 상황을 알렸다.

“지상은 조용하다. 독일이 약속을 지켰다. 돌입에 집중한다.”

-빨갱이 확인.

-창 확인.

“벌레부터 들어간다. 이상.”

돌입을 결정한 벌레는 도어거너(Door Gunner)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벌레의 수신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도어거너는 기장에게 알렸고, 벌레가 탄 헬기를 선두로 에펠탑에 돌입을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여기는 저격1조! 3층 전망대에 백기가 올랐다!

-저격2조! 여기도 백기다!

-저격3조! 백기 확인!

저격조에서 올라오는 긴급 보고에 벌레는 마이크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돌입 중지! 돌입 중지!”

벌레와 동시에 도어건너도 기장에게 상황을 알렸고, 막 속도를 올리려던 헬리콥터는 기수를 위로 들며 다급하게 속도를 줄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자 돌입조를 태운 헬리콥터들은 에펠탑 주위를 선회했다. 3층 전망대에 펄럭이는 백기들을 확인한 벌레는 입술을 깨물고는 결론을 내렸다.

“벌레다. 돌입 재개한다. 이상.”

-빨갱이다. 잠시 후면 연합군이 도착한다. 돌입할 필요가 있나? 자칫 잘못하면 저들이 오해할 수 있다. 이상.

-여기는 창. 빨갱이의 말에 동의한다. 이상.

“여기는 벌레. 만약 백기를 내건 이들이 소수라면? 우리가 먼저 장악을 해야 한다. 이상.”

벌레의 말이 더욱 합당했기 때문에 빨갱이와 창은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빨갱이. 뒤를 따르겠다. 이상.

-여기는 창. 동의한다. 이상.

빨갱이와 창의 동의를 얻은 벌레는 기장에게 통보를 했고, 기장은 곧장 헬리콥터를 에펠탑의 꼭대기로 몰고 갔다.

“라이트!”

탑의 꼭대기에 도착한 헬리콥터는 도어에 장착하고 있던 서치라이트를 아래로 비췄다.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는 안테나를 비롯해 여러 안테나들 사이에 자리한 빈 공간을 찾은 헬리콥터는 정지 비행을 시작했고, 로프를 붙잡으며 벌레는 작게 투덜거렸다.

“지상300m에서 패스트 로핑이라니… 미친 게 확실해.”

자기 자신을 미쳤다고 말하면서도 로프를 굳게 움켜쥔 벌레는 심호흡을 하고는 헬리콥터에서 줄을 타고 내리기 시작했다.

“강하!”

벌레의 뒤를 따라 부하들이 줄줄이 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이들이 다 내려오자 헬리콥터는 서둘러 자리를 이동했고, 벌레와 부하들은 한쪽 바닥에 자리한 점검용 출입구의 문을 열고는 안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여기는 벌레. 진입 시작했다. 이상.”

-여기는 빨갱이. 돌입하겠다. 이상.

-안쪽 조용합니다. 계속 전진하겠습니다. 이상.

“여기는 벌레. 조심해라. 이상.”

주의를 주었지만 벌레의 표정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곧이어 빨갱이와 부하들을 태운 헬리콥터들이 접근했다. 벌레의 머리 위에 멈춘 헬리콥터에서 밧줄들이 내려왔고, 뒤이어 빨갱이를 선두로 한국군들이 줄줄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네스와 카라비너라니… 여유가 넘치는구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카라비너에서 밧줄을 풀고 다가오는 빨갱이의 모습에 벌레는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빨갱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 몸은 소중한 것이여. 모르냐?”

“지랄. 카라비너와 하네스는 또 언제 챙긴 거였냐?”

“혹시 몰라 챙겼지.”

“장하다 장해.”

벌레와 빨갱이는 만담을 나누며 에펠탑 안으로 들어갔다.

*       *       *

복잡한 강철 구조물 사이로 난 가느다란 통로와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온 벌레와 빨갱이, 그리고 둘의 부하들은 3층 전망대 입구에서 전진을 멈췄다.

벌레의 수신호를 받은 부하 둘이 전망대로 들어가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고, 다른 둘이 총을 겨눈 채 돌입을 준비했다.

“3,2,1, 돌입!”

말과 동시에 문이 열렸고 총을 겨누고 있던 병사들이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벌레와 빨갱이가 부하들을 이끌고 밀고 들어갔다.

전망대로 밀고 들어간 벌레와 빨갱이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축음기에서는 ‘릴리 마를렌’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무장을 해제한 무장 친위대원들이 나른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기술자로 보이는 이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옹기종기 모인 채 무장친위대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What the….”

의외의 광경에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벌레가 욕설을 내뱉으려 할 때, 한 손에 와인 잔을 든 무장 친위대 장교가 그에게 다가와 경례를 하며 입을 열었다.

“Willkommen(어서 오시오).”

*       *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정신을 차린 벌레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독일군의 무장들을 최대한 빨리 수거하고, 폭탄의 상태를 확인해!”

그 말에 벌레의 부하들은 아직 무장을 하고 있던 친위대원들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벌레의 부하들이 다가오자 친위대원들은 별다른 반항도 하지 않고 무기들을 건네주었고, 전망대의 독일군들은 모두 비무장 상태가 되었다.

창기와 그의 부하들이 핵폭탄으로 달려가는 것을 본 벌레는 자신의 앞에 선 친위대 장교에게 거수경례로 답을 했다.

“대한민국 주임원사 김진한이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치프! 시체입니다!”

하고자 했던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벌레는 시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앳된 독일군 소년병이 죽어 있었다.

표정이 날카롭게 변한 벌레는 권총에 손을 가져가며 친위대 장교를 노려봤다. 무언의 질문에 친위대 장교는 짧게 대답했다.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헛된 시도를 하기에 어쩔 수 없었소.”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쟁에 졌다는 것. ‘히틀러의 착한 아이(Hitler ist ein gutes Kind)’였거든.”

“히틀러의 착한 아이?”

“유겐트(Jugent) 출신이었소.”

“그러는 당신도 무장친위대 소속 아닌가?”

벌레의 지적에 하우어 대위는 와인 잔을 비우고는 대답했다.

“꽤 좋은 직장이었거든. 친위대라는 거. 하지만 유겐트는 종교지.”

*       *       *

하우어 대위는 전형적인 1차 대전 직후 혼란한 독일 사회에서 자란 젊은이의 표상과도 같은 이였다.

패전으로 인한 혼란한 상황에서 의무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왔지만 이어진 대공황은 그에게서 모든 기회를 박탈해 버렸다. 방황을 하던 그가 선택을 한 것은 ‘친위대’에 취업(?)을 하는 것이었다.

친위대 특유의 제복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 ‘강한 독일’을 부르짖는 히틀러의 연설은, 괴테 시대부터 독일 사회에 면면히 내려온 ‘초인’에 대한 갈망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꾸준히 나오는 월급은 실제적인 도움이었고.

그렇게 해서 친위대에 취업(?)을 하게 된 하우어는 곧이어 무장 친위대로 자리를 옮겼다. 군복무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부사관이 되었고, 성실히 근무를 한 덕에 장교로 추천을 받아 SS사관학교에서 단기 교육을 받고 장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부사관 시절부터 대위가 되었을 때까지, 그는 전선에서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렇게 싸워 공훈을 얻어 승승장구해 가는 것과 비례해 그의 마음과 정신은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       *       *

“폭탄은 아직 활성화된 상태는 아니야. 내부 기폭장치 등은 제대로 들어가 있는데, 외부에서 조작해야 하는 제어장치와 시한장치 등은 아직 연결조차 되지 않았어.”

“확실해?”

“저기 기술자 양반들한테도 이야기를 듣고 내가 직접 확인했어.”

창기의 대답에 벌레는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으며 소리를 질렀다.

“상황 해제!”

“상황 해제!”

복창을 한 부하들은 갑갑한 방독면을 서둘러 벗기 시작했다. 벌레는 옆에 있던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상 진입부대에 연락해서 이거 싣고 내려가라고 해.”

“알겠습니다.”

“이로써 한숨 돌렸군.”

한결 여유를 가진 벌레는 문제의 친위대 장교가 어디에 있는지 살폈다. 한손에 와인병을 들고 다른 손에는 와인 잔을 든 채, 전망대의 창문 가까이에 앉아 파리의 야경-비록 등화관제로 인해 캄캄하지만-을 감상하는 친위대 장교를 본 벌레는 그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은 다음 말을 걸었다.

“한 잔 주시겠습니까?”

“기꺼이.”

하우어 대위가 따라준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벌레는 말을 이었다.

“다시 소개하지만 대한민국 육군 주임원사인 김진한이라고 합니다.”

“무장친위대 대위 하우어요. 만나서 반갑소. 때와 장소는 영 안 좋지만.”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 졌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벌레의 물음에 하우어 대위는 몸을 돌려 소년병의 시체-근처에 있던 테이블보를 가져다 덮었다.-와 문제의 폭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 빌어먹을 폭탄과 저 빌어먹을 애송이 때문에 그렇소. 저 애송이 몇 살로 보였소?”

“잘해야 10대 후반?”

“18살이요. 그런데 계급이 소위지. 18살짜리 소위가 전장의 광기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오?”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전쟁이 진 거요. 15, 16살짜리 어린애들을 받아 병사들로 훈련시키고, 그 가운데 골라 1년짜리 단기 과정으로 양성한 장교… 광기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광기에 먹힐 거요. 그런 놈들인데도 철십자 훈장을 받았지. 젠장! 내 동기들과 부하들은 목숨을 걸었어도 받기 힘들었던 것이 단지 훈련 잘 받았다는 이유로! 그래서 졌다는 거요!”

“하….”

하우어 대위의 말에 벌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우어 대위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와인 잔을 다시 채운 하우어 대위는 말을 이어갔다.

“저 폭탄도 그렇소. 강력한 폭탄이지. 하지만 너무 크고 무거워 제대로 써먹기 힘든 미완의 폭탄이지. 출발 전에 받은 설명에 따르면 탈출을 위한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30분의 시한장치를 장착한다고 했는데, 30분 동안 얼마나 멀리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당장 이 에펠탑을 내려가는 것만 해도 10분은 잡아 먹을걸?”

“그렇기는 하지요.”

이미 확인을 하기는 했지만 화물 운반용 엘리베이터를 제외한 승객용 엘리베이터는 사용불능이었다.

손에 든 와인 잔을 비우며 하우어 대위는 결론을 내렸다.

“통제가 안 되는 군인들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전쟁에서 졌다는 소리요.”

빈 와인 잔에 포도주를 채운 하우어 대위는 벌레의 와인 잔에 포도주를 채워 주었다.

“이제 나의 전쟁은 끝났소. 주임원사의 전쟁이 끝나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행운을 빌어주지.”

“감사합니다.”

*       *       *

“3층 전망대에 있는 친위대 포로들과 핵폭탄을 인수받으라는 명령이다. 그 친위대 덕에 험한 꼴을 안 보게 되었으니 ‘잘’ 대해주라는 (take ‘good’ care of) 명령이다.”

에펠탑 앞의 광장.

하프 트랙에서 내린 콤튼 소령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잘’대해 주라는 말 잘 들었지?”

“예.”

“제대로 해라.”

“걱정 마십쇼.”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니 에이블(A중대)은 나와 같이 화물 운송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나머지는 도보로 올라간다. 이동.”

“이동!”

콤튼 소령의 명령을 받은 중대장과 소대장들은 자신들의 부하들을 인솔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3층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도착한 미군 병사들 가운데 한명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저 위쪽, 시커먼 공간을 바라보던 병사는 옆에 서 있던 상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탑. 높이가 얼마나 됩니까?”

병사의 물음에 상사는 주머니를 뒤져 관광책자를 꺼냈다.

“대략 985피트.”

“3층 전망대면 얼마 안 올라가겠죠?”

“제일 꼭대기야.”

“Si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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