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3
373화 에펠탑 (2)
워커 사령관의 호출 명령에 원 준장을 비롯한 연합군의 지휘관들이 제1상륙군 사령부로 집결했다.
지휘관들이 모두 참석한 것을 확인한 워커 사령관은 대기하고 있던 헌병에게 명령을 내렸다.
“독일군 사자를 데려오도록.”
“yes, sir.”
잠시 후, 헌병에게 이끌려 회의실로 도착한 독일군 사자는 콜티츠 중장이 보낸 제안을 지휘관 모두에게 이야기를 했다.
사자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원 준장이었다.
“지금 독일이 한 짓과 그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레지스탕스와 프랑스군에게
항복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알 것 같기는 합니다만, 제공한다는 정보는 무엇입니까?”
“그걸 이제부터 알아야겠지. 정보는 무엇인가?”
“베를린으로부터 매우 치명적인 폭탄이 보내졌습니다.”
‘매우 치명적인 폭탄’이라는 말이 나오자 회의실 안의 모든 지휘관들이 바짝 긴장했다. 그런 지휘관들을 대표로 워커 사령관이 사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매우 강력한 폭탄이라면 ‘푸른 재앙’인 것인가?”
“아닙니다. 핵분열폭탄입니다.”
독일군 장교의 대답에 의자에 앉아 있던 모든 지휘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핵분열!”
“자세히 설명을 해보도록!”
사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선발된 무장SS의 호위 아래 3시간 전에 핵폭탄이 파리에 도착했다.
-핵폭탄이 옮겨진 장소는 에펠탑. 3층 전망대에 설치가 진행 중이다.
-핵폭탄은 반조립 상태로 들어왔으며 완전히 조립이 끝날 때까지 12시간이 필요하다.
“3층 전망대라면… 그리 높지 않을 테니 특공대를 조직해 돌입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독일 장교의 이야기를 들은 지휘관들 가운데 한 명이 의견을 내놓자, 다른 지휘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지휘관들의 반응에 원 준장은 작게 투덜거렸다.
“아무리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라지만….”
‘우물 안의 개구리.’
전쟁이 진행되면서 많은 미군 지휘관들과 접촉을 하면서 원 준장이 느낀 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미군 지휘관들의 대부분이 미국에만 익숙해 있었다. 좀 더 넓게 보는 이들도 중남미 대륙을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럽은 ‘구(舊)대륙(Old continent)’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작게 투덜거리던 원 준장은 손을 들고는 오류를 정정했다.
“3층 전망대라고 하면 에펠탑의 꼭대기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원 준장의 말을 들은 미군 지휘관들은 독일군 장교를 돌아봤다. 독일군 장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대기 맞습니다.”
독일군 장교가 확인까지 해주자 미군 지휘관들은 일제히 욕설을 내뱉었다.
“Shi~~~t!”
* * *
독일군 사자가 밝힌 콜티츠의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콜티츠 휘하의 파리 주둔 독일군은 프랑스 레지스탕스와 프랑스군을 제외한 연합군에게 항복한다.
-미군과 연합군은 항복한 독일군의 안전을 보장한다. 항복한 독일군 포로들은 미국 본토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우선적으로 수용시킨다.
-미군과 연합군은 항복한 독일군들이 파리에서 진행한 미술품 약탈 행위에 대한 면책-최고집권자의 명령에 의한 강제적인 약탈이므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을 보장한다.
-이 조건을 수락한다면 콜티츠 휘하의 독일군은 즉시 교전을 중지하며 에펠탑으로 가는 최단거리의 도로를 안내한다.
-독일군이 교전을 중지하는 대상은 프랑스군과 레지스탕스를 제외한 연합군임을 다시 확인한다. 프랑스군 또는 레지스탕스들이 접근할 경우, 독일군은 즉시 교전에 돌입할 것이다.
-이 협상의 결정 시한은 에펠탑에 들어간 핵폭탄이 완성되기 전까지이다. 만약 그 안에 결정이 나지 않는다면 독일군은 결사응전을 할 것이다.
“Damn it! 아주 끝내주는 협박이로구먼….”
사자가 전한 내용을 들은 워커 사령관은 욕설을 내뱉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워커 사령관은 부관을 불렀다.
“리지웨이 사령관에게 최대한 빨리 와 달라고 전해. 나 혼자 결정을 할 일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부관에게 명령을 내린 워커 사령관은 대기하고 서 있는 헌병에게 손짓을 했다.
“손님 모시고 나가도록.”
“Yes, sir.”
사자가 밖으로 나가자 워커 사령관은 지휘관들을 돌아봤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워커 사령관의 물음에 회의실 안은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핵폭탄이 완성되기 전에 파리를 점령하고 핵폭탄의 완성을 막아야 한다. 독일군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핵폭탄은 이미 완성이 끝났거나 임박했을지 모른다. 이 제의는 미군들이 근처에 몰려드는 순간을 노리는 함정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차라리 파리를 버리고 우회를 해야 한다.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리지웨이가 사령부에 도착했다. 이야기를 들은 리지웨이는 고심을 거듭하다가 의견을 제시했다.
“쓸데없는 희생은 피합시다. 제1상륙군과 제2상륙군 병력 가운데 최소한만 진입을 시키는 것이 어떻소?”
“최소한만?”
“파리 주둔 독일군을 제압하는 것은 에펠탑을 처리한 다음 진행해도 늦지 않소. 에펠탑의 처리가 실패하면 그 즉시 모든 병력은 파리를 우회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거 괜찮은 의견 같소이다.”
두 사령관이 합의를 하자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독일군이 안내하는 도로를 따라 진입을 하는 육상 병력이 우선 선발되었다.
“귀관의 부대는 무조건 진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에펠탑 확보에 실패하는 즉시 병력을 빼서 우회를 한다. 알겠나?”
“Yes, sir.”
“그리고 남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말을 흐린 워커 사령관은 지휘관들을 돌아봤다.
“누가 에펠탑을 확보하겠소?”
워커 사령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휘관들의 시선은 모두 한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지휘관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원 준장의 자리였다.
모든 지휘관들-미군은 물론이고 영국군까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원 준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저의 부대가 일을 맡아야 하는 것입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벌레와 레드의 팀원들이요. 그들만큼 능숙한 이들이 없지 않소?”
“레인저들이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저희 레인저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레인저부대의 지휘관이 강하게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워커 사령관은 고개를 저었다.
“레인저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실적을 보면 믿고 맡길 수가 없어요.”
“끄응….”
워커 사령관의 대답에 원 준장은 앓는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중동과 일본 전선은 물론이고 생 나제르의 유보트 벙커 소탕까지, 벌레 일당들이 레인저보다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었다.
“군대에서는 너무 튀어도 좃된다더니….”
‘너무 잘난 덕에’ 덤터기를 쓰게 된 원 준장은 주변을 돌아봤다.
억울함과 분통함,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레인저부대 지휘관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원 준장의 시선에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일의 성공 여부를 떠나 한국군의 용전분투에 대해 대통령께 상신하겠소. 대통령은 한국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나 역시 작전에 필요하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최대한 지원을 하겠소.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지휘관들이 증인이 되어 줄 것이오.”
워커 사령관이 ‘보상’과 ‘보증’을 약속하자 운 준장은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원 준장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독일군의 말이 사실이기를 빌 수밖에 없군.”
결심을 한 원 준장은 워커 사령관과 리지웨이 사령관을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우리가 이번 일을 맡겠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지금 즉시 돌아가서 장비들을 준비하겠습니다. 필요한 장비와 지원은 요청을 하는 즉시 보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무조건 5분 안에 지원을 해주겠소.”
워커 사령관의 확답을 들은 원 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워커 사령관과 리지웨이 사령관에게 경례를 하고는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원 준장을 내보낸 워커 사령관은 리지웨이 사령관을 돌아봤다.
“훗날 2차 대전이 역사와 전설로 남게 된다면 주인공은 우리 미국이 아니라 저들일 것 같소.”
워커 사령관의 말에 리지웨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해서, 우리가 에펠탑을 털어야 한다.”
원 준장의 설명을 들은 벌레와 빨갱이, 창은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갔다.
“아니! 일을 따와도 꼭 이런 일을 따오십니까!”
“그렇게 우리가 미우셨어요!”
“차라리 홍차맛 플루토늄을 먹으라고 하시지!”
벌레 일당의 격한 반발에 원 준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도 안 맡고 싶었는데. 우리 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잖냐.”
“레인저들은요? 레인저들은 무슨 동호회랍니까? 아니면 공수부대도 있지 않습니까?”
“레인저들은 실력을 믿을 수가 없다고 그러시잖냐. 그리고 지금 공수부대는 우리가 아는 공수부대가 아니잖아. 그냥 낙하산 탈 줄 아는 보병인데 뭘 맡기리? 이놈들아, 난이도 높은 출장이라고 생각하자. 이 출장 성공하면 우리나라에 대한 지원이 좀 더 많아질 수 있어.”
원 준장의 말에 빨갱이와 창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이 빌어먹을 용병 팔자.”
“빌어먹을 외통수네.”
“씨발… 지지리 복도 없지.”
원 준장의 말에 벌레가 욕설을 뱉는 것을 끝으로 상황은 임무 수행으로 일단락되었다. 선택권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일단 일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정이 나자 벌레와 빨갱이, 그리고 창은 빠르게 일을 진행했다.
“완성까지 12시간이라고 하셨죠?”
“맞아.”
“도착한 9시부터 카운트를 하면, 지금은 01시. 09시면 조립이 끝난다. 데드라인은 7시로 잡는 것이 제일 낫겠지?”
“피할 시간도 있어야 하니까.”
“그럼 애들한테 상황 설명하고 출장 지원자 받아. 영감님. 출장 나간 애들을 위한 특근 수당 확실하게 챙겨 주셔야 합니다.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확실히 준비하지.”
원 준장의 대답에 벌레와 창이 말을 덧붙였다.
“훈장 쪼가리 말고 달러로.”
“수당은 6개월분의 급료는 되어야 합니다.”
“… 그렇게 하지.”
원 준장의 고개가 끄덕이자 벌레 일행은 다시금 머리를 맞대고 일을 진행했다.
“가장 빠른 것은 헬리콥터야. 미군의 헬리콥터를 지원받아야 해.”
“헬리콥터에서 운용할 저격조들도 필요해. 최소한 3개조. 문제는 3개조면 저격조 애들 전부라는 거.”
창의 지적에 벌레는 빨갱이를 돌아봤다.
“최대한 구슬러 봐.”
“노력할게.”
“그 다음에… 폭탄 해체반이 필요하겠지?”
벌레의 물음에 창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는 폭탄 심는 거 전문이지, 폭탄 뽑는 거 전문이 아니야. 하지만 EOD가 없으니 우리가 나서야겠지.”
창의 말대로라면 창의 팀은 무조건 참가를 해야만 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던 벌레가 욕설을 내뱉었다.
“썅! 지원자를 가장한 강제 투입이로군! 가장 똘똘한 놈들은 하겠다고 덤벼들어도 뒤로 빼 놔. 군의 내일을 위해서는 필요하니까.”
원 준장이 일을 따(?)오고 1시간이 조금 넘었을 무렵, 작전의 준비는 거의 80%까지 진행되었다.
“NBC방호복과 방독면은 다 준비됐지?”
“준비 끝.”
“컨테이너에 처박아 놨던 223들은 어때?”
“독일제답게 멀쩡하다. 탄약들 남아 있는 거 다 긁어냈어.”
“좋아! 업무 투입조 전원 집합!”
벌레의 외침에 작전에 투입될 인원들이 모두 벌레 앞으로 모였다. 자신 앞에 반원의 대형을 그리며 모인 이들을 바라보며 벌레는 입을 열었다.
“그동안 꽤 많은 출장을 다녔는데 가장 엿 같은 출장을 가게 되었다. 우리네 팔자 드러운 거는 시간이동으로 이미 증명되었지만 또다시 증명하게 되었네.”
“하하.”
벌레의 말에 건조한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 병사들을 보며 벌레는 말을 이어갔다.
“조국이라던가 전우애라던가 그런 같잖은 소리는 집어던지고, 일감을 받았으니 일하러 간다. 몸이 재산이라는 것 잊지 말고. 안전제일이니 확인 사살 잊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아! 패스트로핑이니까 장갑 잊지 말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멀리에서 헬리콥터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던 벌레는 다시 고개를 돌려 동료들과 부하들을 돌아봤다.
“그럼 가 보자고.”